2022. 01. 24
- LG엔솔 청약에 114조 몰리자 물적분할(物的分割) 규제(規制) 목소리 커져
- 주식회사 원리 전면 부정하는 정치 포퓰리즘식 황당(荒唐)한 공약(公約)
- 투기꾼 볼멘소리 휘둘려서야
'물적분할'은 한국에 주식회사제도가 도입된 후 100여 년 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고 정치인이 관심조차 갖지 않던 사안이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 규제 법안이 논의되고, 대통령 후보들까지 공약에 집어넣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물적분할이 왜 갑자기 문제시되는지를 이해하려면 오랫동안 왜 문제가 되지 않았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식회사 원리에 부합하고 주주총회에서 승인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내부에서 사업을 키울 수도 있고, 일부 사업이나 자산을 떼어내(자산분할) 새로운 계열사를 만들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을 통해 성장시킬지는 경영진이 '사업판단준칙' 범위에서 창의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 하지만 자산분할은 주주 이익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총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다.
자산분할 중 인적분할은 신규 회사에서도 기존 회사의 주주 구성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행사하던 권한을 그대로 갖고 결혼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적분할은 기존 주주들이 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신규 회사에 권리를 행사한다. 자식은 부모의 간섭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짝을 찾을 수 있다. 주주들은 장단점을 비교해서 결정한다. 결혼을 시키더라도 자식을 강하게 통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 인적분할을 택한다. 자식의 자율권이 클 때 더 좋은 배필을 찾을 수 있고 그래서 지분가치를 더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하면 물적분할에 표를 던진다.
지난주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청약에는 114조원이라는 역대 최대 금액이 몰렸다. 인적분할을 했다면 이렇게 돈이 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물적분할 규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나왔다. 왜 그런가?
정치 포퓰리즘 이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불만을 제기하는 금융투자자들은 물적분할이 대주주의 '횡포'로 이루어진 것이고 자신들이 '대박' 기회에서 소외됐거나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실상은 크게 다르다.
첫째, 물적분할은 주주 총의로 결정된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LG화학 주주의 82.3%가 찬성했다. 정부가 소수 의견이 옳다며 개입한다면 주식회사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다수를 악마화하는 것이다. 둘째, 주가 움직임이다. 중장기 보유자들은 수익이 좋지만 꼭짓점에서 매입한 사람들이 손해를 봤다. LG화학 주가는 2020년 1월 대비 두 배가 뛰었다. 2021년 3월 말 최고점 대비로는 40% 떨어졌다. 단기 투기꾼까지 모두 수익을 내도록 경영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셋째,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물적분할을 하면 기존 기업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 보호 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것은 주주 전체를 바보 취급하는 말이다. 국내 대기업에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외국 금융사들이 주주로 들어와 있다. 이들이 손해 볼 것을 몰라서 찬성표를 던졌다는 말인가? 오히려 분할 취지를 인정하고 지분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대주주나 대형 금융사들은 정치 투표에서 행사할 표가 별로 없다. 반면 문제를 제기하는 금융투자자들은 기업 지분율은 낮지만 정치 투표는 제법 행사할 수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표가 많은 쪽으로 경도된다. 이 과정에서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다. 기업과 경제를 어떻게 키울지에 관한 담론은 사라지고 투기꾼의 '피해'를 보상해주기 위해 상법과 자본시장법까지 고치겠다는 황당한 공약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물적분할이 불법"이라는 새빨간 사실 왜곡조차 주요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물적분할 반대는 배필 선택폭을 줄여 자식의 혼삿길을 막는 것이다. 거기에 정부까지 나선다. 대선 후에도 한국 경제호(號)의 항로를 걱정하게 만드는 한 가지 이유다.
신장섭 /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