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8. 12
정책목표는 집값 잡는 게 아니라 주거 안정이 돼야
부동산 얘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 했다. 누구나 다 하고 있으니 좀 지겹기도 했다. 어떻게 변명을 하든 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은 결과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과 달리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 장관은 국회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을 묻자 과잉 유동성과 저금리라고 답했다. 유동성 과잉으로 상승 국면을 막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늘어난 통화량은 이른바 M2 기준으로 500조원이 넘는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00년 5.25%에서 지금은 0.5%로 떨어졌다. 유동성이 늘고 금리가 낮아지면서 20년 동안 400조원에 불과했던 가계부채는 1600조원으로 늘었다. 부동산 시장에는 돈이 넘쳐난다. 오르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돈이 넘쳐나는 부동산 시장
사실 금융위기 이후 돈을 풀어서 경기를 유지해 왔던 세계 각국이 모두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베이징 주택값은 지난 5년 동안 50%가 뛰었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10개 주요 대도시 주택가격도 53% 올랐다. 경기가 좋지 않았던 유럽도 20% 뛰었다. 독일도 지난 10년 동안 7대 도시의 주택가격은 118%, 임대료는 57% 상승했다. 심지어 일본 수도권 주택가격도 2013년부터 20% 올랐다. 특히 도쿄는 도심 규제를 풀어 건설회사들의 주택 건설을 30% 늘렸는데도 집값이 뛰었다.
통화량과 금리만큼 주택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별로 없다. 특히 금리의 영향은 즉각적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돈을 빌려 집을 살 때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그만큼 줄어든다. 미국은 코로나19로 3월에 급하게 기준금리를 1.5%포인트 내리자 3~4월, 두 달 동안 주택가격이 단숨에 2.1% 뛰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12%가 넘는 상승률이다. 지난 한 해 미국 주택가격 상승률이 3.9%에 그쳤던 것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가 주택가격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알 수 있다. 유동성 공급 증가와 저금리가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자산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데는 거의 예외가 없다. 지난 7월4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게재된 한 기사의 제목도 ‘집이 이긴다(The house wins)’였다.
기본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가격이 오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2018년 신고소득 1억원이 넘는 근로자는 80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근로자 중 억대 연봉자 비중은 4%다. 2008년에는 전체 연말정산 신청자의 1.4%인 20만 명이 되지 않았다. 직원 평균 급여가 1억원인 회사도 10년 전에는 단 한 곳도 없었지만, 지난해에는 13곳에 달했다. 상장사 직원들의 평균 급여는 지난 10년 사이 3000만원대 후반에서 5000만원대 중반으로 늘어났다. 우리 기억에 경기가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지만 지난 10년 동안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늘었다. 소득이 늘어나는데 자산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는 없다.
▲ 문재인 정부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정책을 냈지만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화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그 중심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있다. / ⓒ연합뉴스
상황을 이렇게 정리해 보면 정부 잘못에 대해서는 좀 달리 생각하는 게 옳다. 이건 처음부터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부동산 문제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는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부동산은 끝났다’는 식의 발상은 실패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유동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주택가격 상승을 막을 수 없다는 게 너무 뻔한데도 정부는 자잘한 규제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물론 그동안 우리 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그리고 코로나19라는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유동성을 줄이거나 금리를 높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정책이 가진 한계를 미리 알았어야 했다. 시중의 돈을 부동산 시장이 아니라 주식시장으로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이제야 나오고 있다. 과잉 유동성과 저금리가 부동산 가격 폭등의 근본 원인이라는 설명은 옳다. 하지만 그게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것처럼 공급 부족도 사실이다. 이건 지난 정부에서 시작됐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한 신규 택지 지정 중단을 선언했다. 사실상 주택 공급이 중단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의 씨앗이 뿌려졌다.
지금 정부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설계해 놓은 부동산 정책엔 공급 대책이 없었다. 정부가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50조원 규모의 도시재생사업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내 집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남에 집을 갖는 것은 더 그렇다. 지금 사는 집에서 편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어디든 내가 사는 동네가 서울 강남 못지않게 살기 좋은 곳이 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이게 정부 출범 초기 부동산 정책 구상의 대전제였다.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장하성 전 정책실장), “강남이 좋냐”(김현미 장관) 등의 말도 그래서 나왔다. 저성장과 저출산,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집값이 계속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굳이 집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로지 문제는 투기다. 그래서 집값은 투기만 잡으면 될 것으로 믿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투기 부추겨
하지만 결과적으로 투기를 부채질한 것은 정부였다. 민간 임대주택 활성화를 염두에 두고 임대사업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준 덕분에 2016년 등록된 임대주택은 79만 호였는데 지금은 156만8900호로 늘었다. 시장은 이걸 가능하면 갭투자로 집을 사들여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라는 취지로 받아들였다. 2만 명이 안 되던 5채 이상 보유자는 2018년에는 거의 8만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2018년 통계청 기준으로 서울 주택 약 80만 채가 비거주 다주택자 소유고 44만 채가 임대 등록된 상태다. 이 모두가 투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집값 상승을 부추긴 것은 사실이다.
부동산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집값을 잡는 게 아니라 주거 안정이다. 집값은 주거 안정의 결과로 따라온다. 부동산 시장 불안은 고위 공직자들이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기본적으로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로 인한 과잉 유동성 상황에 정부가 부추겼던 투기 수요가 겹치고, 수급 불균형까지 여러 요인이 중첩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 정부는 뒤늦게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공급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앞으로 몇 번의 부동산 대책을 더 내놓을지 모르지만 어떤 정책도 역시 효과는 제한적이고 부작용이 따를 것이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남긴 정말 중요한 교훈은 따로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은 작동하기 어렵다.
김상철 /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