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토장정 18-2 (2011. 11, 05)
14.7km(662.3km)
(답동 - 하사리 - 염산면)
어제 저녁 10시경부터 빗방울이 떨어졌다. 오늘의 일토장정은 취소일거라 생각하고 잠을 잤는데 새벽부터 빗방울이 멈추기 시작하더니 아침이 되어선 햇살까지 비추는 것이 아닌가. 일찍 잠에서 깬 일행은 서둘러 씻고 여관을 빠져나와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는 다시 출발지로 향한다. 오후3시 50분 KTX를 타려면 12시에서 12시 30분에는 영광에서 출발하여야한다. 그러면 오늘 일토장정은 3시간~4시간이 고작이니 15KM 내외일 것이다.
답동 팬션 앞에 도착하여 간단히 생리현상을 처리한 다음 갯바위를 향해 걸어 나아갔다. 간척사업으로 만든 바둑판 모양의 논에는 이제 더 이상 황금빛이 아니다. 그 곳의 주인은 이제 철새들이고 바람일 것이다. 가끔 부지런한 농부의 논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파란 싹이 올라온 보리였다. 논과 농로 사이에는 수로가 있었고, 그 수로와 농로 사이에는 좁은 공간의 터가 자리 잡고 있으나, 그 곳 또한 부지런한 농부가 가만 놔 둘리가 없다. 마늘이 심어져서 초록을 띠고 있다. 모든 초록 세상은 사라지고 파스텔과 무채색으로 변한 이때에 몇몇 놈들만 초록을 자랑하니... 어찌 이렇게 인간사와 같으냐.
사실 본인의 어릴 적 풍경은 이랬다.
추수가 끝난 논에선 아낙 몇 명이 연실 허리를 구부리며 이삭을 주웠다. 철새들의 습격을 받기 전에 한 톨이라도 이삭을 줍기 위해 허리를 혹사 시키는 것이다. 땅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이들의 삶의 방식인 것이다. 이뿐이랴?
놀고 있는 자투리땅만 있으면 콩이며, 옥수수를 심어 생계에 보탬했다. 사실 일토장정하면서 느낀점이지만 많은 농토가 놀고 있다. 잡초로 우거진 밭, 식재를 했지만 형식상 식재하여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벼보다 더 농사가 잘된 피, 부서진 하우스와 잡초만 있는 하우스...먹거리가 풍족해지고, 물질적으로 풍부한 현대에서 벌어지는 이 모습을 우리 조상님들이 보았다면 아마 종아리가 남아나질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남에 입성하면서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전남의 농부들은 과거 내 어릴적 농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과 땀에 그저 탄복할 뿐이다.
바둑판 모양의 논이 끝날 무렵 수로 옆에 무엇인가 쌓여있었다. 혹시?하고 생각했지만 설마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혹시?가 맞았다. 석면이었다. 석면이 수로 옆에 쌓여 방치되어 있다. 방치한 자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 주변의 사람들은 왜 항의를 안했을까? 방치한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공무원들은 무엇을 했을까? 난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현명할까?
염산면 설도항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걷는다.
그러나 중간에 강이 있어 해안을 따라가지 못하고 백산교를 향해 질러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마을이 나온다. 하사리와 상사리란 마을로 민가가 군락을 이루고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이 마을을 위성지도로 확인하면 논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태이며, 모든 논은 추수가 끝나 황량하였고, 오가는 이가 없어 너무 조용하다 못해 삭막하였다. 마을 안에는 밭이 있는데 이곳의 밭은 온통 파밭이다. 일렬로 가지런히 정돈된 파밭은 모두 출하 시기를 앞둔 상태였다. 하사리 마을을 벗어나니 다시 논이 나오고, 논 너머에는 우리가 방향을 잡은 강이 나온다. 강둑에 올라서니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방향을 잡지 못해 위로 올라가야 백산교 나오는지, 아래로 내려가야 백산교가 나오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서 내 위치를 확인하니 아래로 내려가란다.
현대인들은 기계의 의존도가 높다. 네비게이션을 믿고 차를 몰다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여기서 믿을 수밖에 없는 건 스마트폰의 어플 밖에 없는 것을...
둑을 따라 무작정 아래로 내려간다. 둑에는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만 존재할 뿐, 잡초로 우거져 있어 요리조리 피해가며 길을 걸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때 저 앞에 노인 한분이 자전거를 끌고 오신다. 정말 오랜만에 낯선 사람을 만난다. 잡초가 우거진 이 둑길을 자전거를 끌고 오는 것만으로도 노동이다. 그 노인은 “이런 길에 사람이 다 오네?”하며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이 아래로 내려가면 저쪽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나오나요?” 그 노인의 말에 의하면 약1km만 내려가면 다리가 나온다. 노인의 자전거 뒷자석에는 콩이 실려 있다. 깊게 패인 주름에 굽은 허리, 벌어진 다리에 몸빼바지(?)를 입으신 모습이 전형적인 우리의 시골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제 좀 쉬어도 되실 나이시지만 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신다. 그들의 이런 삶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놓았다. 자전거를 힘들게 끌고 가는 뒷모습에 인생의 황혼이 보인다.
저 앞에 백산교가 눈에 들어온다. 발걸음이 바빠진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다. 백산교에는 지원조가 기다리고 있고, 10여명이 릴낚시를 던져 놓고 망둥이를 기다리고 있다. 백산교에 다다르자 난 그 다리위에 주저앉았다. 오전에 산 모시송편을 3개나 먹었다. 맛있다.
배가 고픈 탓인지 너무 맛있다. 그렇게 앉아서 가을하늘을 바라본다.
하늘과 들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움직임이 읽혀진다. 파랑 도화지 위에 펼쳐지는 하얀 구름의 조화와 무채색의 들과 갯벌의 조화에서 진하게 가을을 노래한다. 50년의 세월을 살아왔건만 제대로 가을을 느껴보았는가? 이제야 그 가을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가을도 또다시 소리없이 가고 있다.
시골집 담장에 얽힌 담쟁이와 고개를 빼꼼이 내민 감나무에서 나의 2011년 가을은 그렇게 가고 있었다.
내 입가에는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김광석의 “너무 아픈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왜 이 노래가 갑자기 내 가슴에 꽂히는지 모르겠다.
첫댓글 고도야~~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감성적이고 이기심이 많아진단다... 우리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잖아.!!
길을 걸으며 비워야 하는데 자꾸만 채울려하는 이 못된심보.....가을은 가을인가보다...가을을 타고..ㅠㅠㅠ
담에는 꼭 낚시대를 가지고 다녀야겠더구먼...........
온통 괴기 천지인디.............ㅋㅋ
서럽다
나만 내년에 50이지 (민증상?)
그래도 사랑은 사랑인거지
글, 사진 올리느라 고생 많았소...
상단 이미지및 주파거리 수정 완료하였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