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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와 함께 서양 문학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고대 그리스 서사시입니다.
일리아스가 전쟁과 분노의 이야기라면, 오디세이아는 한마디로 ‘집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어제 TV 벌거벗은 세계사 트로이 목마 편을 다시 봤습니다 (김헌교수님편)
오디세이 영화를 보기 전에 등장인물들과 시대배경을 알고 싶어서입니다.
이게 단지 신화일까? 역사적 사실일까?에 대한 논란도 있답니다.
신화와 역사적 사실이 뒤섞인게 맞는 것 같습니다.
[트로이 목마]
*발단
제우스가 소개팅하여 이루어진 신의 결혼식이 열립니다.
모든 신들이 초대받았는데 불화의 신만 초대받지 못했죠.
그러자 불화의 신이 잔칫날 밥상에 떡하니 '황금사과'를 던집니다.
"가장 아름다운이가 주인이다"라는 글이 새겨있었죠.
제우스 아내 헤라와 미의여신 아프로디테 전쟁의 여신 아테네가 서로 자기라고 싸웁니다.
난처해진 제우스는 트로이의 파리스에게 선택하라 하죠.
트로이 왕자 파리스는 아주 멋지고 인기많은 청년입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선물 즉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것이 맘에 들어 그녀로 결정하죠.
그 여인이 그리스의 헬레나 왕비입니다. 유부녀입니다.
파리스도 님프라는 요정과 결혼한 유부남. 불륜입니다.
헬레나는 파리스를 따라 트로이로 갑니다.
*전쟁
아내를 뺏긴 그리스왕은 트로이로 쳐들어 갑니다.
트로이에게는 파리스의 형 헥토르가 있습니다.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리스에는 아킬레스와 오디세이가 있습니다.
(아킬레스건 유래/아킬레스는 바다의 여신 태티스와 인간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신처럼 불멸할 수 없죠. 그래서 태티스가 불멸을 주기위해 인간과 신의 경계에 있는 강에 아가 아킬레스를 거꾸로 들고 담급니다.그때 발꿈치를 잡고 담그다보니 거기만 강물에 안닿았죠. 그곳이 아킬레스건 즉 아킬레스의 약점입니다)
*결말
어쨋든 지루한 싸움이 계속됩니다.
트로이 헥토르는 아킬레스에게 죽습니다. 헥토르의 누이동생이 아킬레스 유혹해 약점을 알아냅니다. 결국 아킬레스도 죽습니다. 거기다가 그리스도 내분과 신들의 분노를 사서 계속 전쟁에 지고 있습니다.
이때 등장한게 바로 트로이 목마이고 이걸 계획한게 오디세이입니다. 그리스가 이기고 오디세이는 영웅이 됩니다.
[오디세이 이야기]
오디세이 군대는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이영화는 오디세이 귀향을 다룬 것입니다.무려 10년이 걸립니다.
*챕 지피티참조
문/왜 오디세이는 집으로 바로 안갔나요?
답/이게 《오디세이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집에 가기 싫어서 10년을 떠돈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이타카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계속 사건이 터집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포세이돈의 분노입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과 배를 타고 귀향합니다. 그런데 도중에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들어갑니다. 폴리페모스가 부하들을 잡아먹자 오디세우스는 그에게 포도주를 먹이고 눈을 찔러 탈출합니다.
여기까지는 오디세우스다운 훌륭한 지략이었습니다.
그런데 탈출한 다음이 문제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존심 때문에 멀리서 폴리페모스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외쳐버립니다.
“네 눈을 멀게 한 사람이 이타카의 오디세우스라는 것을 알아라.”
그러자 폴리페모스가 아버지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복수를 부탁합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아주 늦게, 모든 동료를 잃고 비참하게 돌아가게 해달라고.
그때부터 바다가 오디세우스의 적이 됩니다.
그런데 전부 신의 탓은 아닙니다
이게 《오디세이아》가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오디세우스 자신과 부하들의 호기심·욕망·오만 때문에 여행이 더 길어지기도 합니다.
키르케의 섬에서는 1년을 머뭅니다. 세이렌의 노래도 굳이 직접 들어보고 싶어 합니다. 부하들은 하지 말라는 일을 계속 저지르고, 결국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까지 잡아먹습니다. 그 벌로 배가 난파되고 오디세우스만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요정 칼립소의 섬에서 무려 7년을 보내게 됩니다. 칼립소가 그를 사랑해서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10년의 방랑은 단순히 **“포세이돈이 방해해서”**라고만 보면 부족합니다.
신들의 힘 + 운명 + 부하들의 실수 + 오디세우스 자신의 성격이 계속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호메로스가 상당히 흥미로운 인간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오디세우스는 집에 너무나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동시에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영리하지만 허영심이 있고, 신중하면서도 호기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빠져나오는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 성격 때문에 새로운 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바로 그 모순 때문에 오디세우스가 3천 년 가까이 매력적인 인물로 남은 것이죠.
문/고향 도착후 아내의 반응은?
답/원작 《오디세이아》에서 이 재회는 단순한 **“20년 만에 부부가 감격적으로 만났다”**가 아닙니다. 오히려 굉장히 영리하고 긴장감 있는 장면입니다.
페넬로페는 돌아온 남자가 정말 오디세우스인지 쉽게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침대를 이용해 시험합니다. “우리 침대를 옮겨 놓으라”고 하죠.
그런데 오디세우스가 발끈합니다. 그 침대는 살아 있는 올리브나무를 기둥 삼아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라 옮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부부만 아는 비밀입니다.
그제야 페넬로페는 그가 진짜 남편임을 확신합니다.
여기서 침대는 상당히 중요한 상징입니다.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오디세우스도 10년 동안 떠돌았습니다.
그런데 침대는 땅에 뿌리박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즉,
바다 = 방랑·변화·불확실성
침대 = 집·부부·기억·정체성
인 셈입니다.
그래서 호메로스가 말하는 ‘귀향’은 이타카 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페넬로페가 그를 알아보고, 오디세우스가 자신만의 기억을 증명하면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리고 제가 놀란 이야기를 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놀란이 이 장면을 따뜻한 부부의 재회로 찍느냐, 아니면 20년 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산 두 사람이 정말 다시 부부가 될 수 있는가라는 불안한 장면으로 찍느냐에 따라 영화 전체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앞서 한 가지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아직 개봉 전이므로, 제가 “놀란은 이렇게 해석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로서는 그의 최종 해석을 알 수 없고, 제가 말씀드린 것은 원작과 놀란의 기존 작품을 바탕으로 예상할 수 있는 해석입니다.
저라면 놀란 영화에서 가장 주의해서 볼 것이 바로 이겁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예전의 나로 돌아오는 것”은 같은가?
20년 동안 전쟁하고, 사람을 죽이고, 동료를 모두 잃고, 괴물과 신들을 만나고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이미 떠날 때의 남자가 아니니까요.
이렇게 보면 《오디세이아》가 단순한 모험담에서 갑자기 아주 현대적인 인간 이야기로 바뀝니다.
문/호메르스가 오디세이 통해 말하고 싶은것?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이 말하고 싶은것?
답/둘을 같이 놓고 보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다만 The Odyssey는 2026년 7월 17일 개봉한 작품이라, 놀란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는 실제 영화와 최근 인터뷰를 기준으로 보는 게 정확합니다. 먼저 호메로스부터 보면 핵심이 선명해집니다.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에서 말하는 것
저는 가장 중심적인 질문을 **“인간에게 돌아갈 곳이란 무엇인가?”**라고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디세우스는 10년 동안 떠돕니다. 아름다운 여신도 만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가능성도 주어지고, 온갖 신비한 세계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그가 원하는 것은 결국 이타카의 집과 페넬로페입니다.
그래서 ‘귀향(nostos)’은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이 아닙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되찾는 과정이죠.
그 과정에서 호메로스는 인간의 여러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디세우스는 용감하지만 허영심도 있고, 영리하지만 거짓말도 잘하며, 유혹에도 흔들립니다. 키클롭스에게서 무사히 탈출하고도 자기 이름을 자랑하는 바람에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기도 합니다.
즉 완벽해서 영웅인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욕망하고 실수하고 고통받으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인간이 영웅입니다.
그리고 세이렌 장면이 정말 상징적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유혹을 없애지 않습니다. 노래를 듣고 싶어 합니다. 대신 자신을 돛대에 묶습니다.
인간은 욕망을 없앨 수 없지만, 자신의 약함을 알고 스스로를 통제할 장치를 만들 수 있다.
이게 오디세우스라는 영웅의 특별한 점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왜 《오디세이》를 영화로 만들었을까?
놀란의 기존 작품들과 연결하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Christopher Nolan은 계속해서 시간, 기억, 정체성, 집으로 돌아가는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메멘토》는 기억과 정체성, 《인셉션》은 현실과 귀환, 《인터스텔라》는 우주를 건너서라도 가족에게 돌아가려는 인간, 《덩케르크》는 생존과 귀환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오디세이》는 놀란에게 의외의 선택이라기보다 놀란이 평생 다뤄온 주제의 원형에 가깝습니다.
특히 《인터스텔라》와 닮았습니다.
오디세우스: 전쟁 → 미지의 세계 → 시간의 흐름 → 수많은 유혹과 죽음 → 가족에게 귀환
쿠퍼: 우주 → 미지의 세계 → 시간의 왜곡 → 죽음의 위험 → 가족에게 귀환
둘 다 거대한 세계를 보여주지만 결국 목적지는 **‘집’**입니다.
그리고 놀란의 영화에서는 한 가지 질문이 더 강해집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과 폭력을 겪고 돌아온 사람은, 떠날 때와 같은 사람인가?”
이게 중요합니다. 오디세우스는 단순히 괴물을 물리치는 슈퍼히어로가 아닙니다. 전쟁에서 10년, 귀향에서 10년을 보낸 사람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속이고, 죽이고, 동료들을 잃습니다.
그러고서 페넬로페 앞에 섭니다.
그래서 호메로스와 놀란을 한 문장씩 압축한다면 저는 이렇게 읽겠습니다.
호메로스:
“인간은 세상을 떠돌고 모든 것을 경험한 뒤에도 결국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속하는지를 찾아 돌아간다.”
놀란:
“그 긴 여정을 통과한 뒤에도 우리는 과연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그래서 저는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세이렌이나 키클롭스 같은 괴물보다 ‘귀환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재회’가 훨씬 중요한 장면이라고 봅니다. 그 장면을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놀란이 호메로스를 어떻게 읽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거든요.
*트로이는 터키의 바닷가 마을입니다. 목마덕분에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여기서 유적들이 발굴되었다하니 적어도 그리스와 트로이 전쟁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알렉산더뿐만 아니라 나폴레옹도 트로이전쟁을 거론하였다는 기록도 있답니다.
*제가 김헌교수의 강의 들으며 인상깊었던 말
"두려움을 모르는자가 영웅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는 이가 영웅이다"
놀란 감독이 영화에서 보여주려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요.
오디세이는 영웅이었지만 곧 잊혀집니다.
군대를 다잃고 명성도 잃은 초라한 모습으로 귀향하죠.
삶의 여정끝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댓글 수필 쓸때 스토리텔링 즉 글의 전개가 참 어렵습니다. 그럴때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잘 알려진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함축하고 해석하는지를 눈여겨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