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 수많은 나무는 우듬지가 서로 닿지 않을 만큼 공간을 유지하며 자라는 현상을 ‘수관기피(樹冠忌避)’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용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삭막한 표현도 아니다.
가끔, 연리지(連理枝)도 있지만, 서로 가까이하기 부끄러워서 공간을 유지하는 현상이라니 참 재미있는 이야기 같다.
산보(散步)하는 길옆에는 200살 쯤 되보이는 지긋한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매일 보는 소나무지만 오늘따라 안보이던 나뭇가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또 만났구려, 근데 어디 아프시오?”
소나무 한 그루 나뭇가지가 붉게 변하여 삭정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 기온에다 오염된 독한 공기를 먹고 있으니 몸 성하게 산다는 게 어쩌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지만, 죽은 물고기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처럼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나 또한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터라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언제나 그곳에서 나를 묵묵히 반겨주던 소나무. 나는 소나무를 친구로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건네 본다. “건강하시게,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나….
나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가 청새치와 군함새와 파도와 대화를 했듯이 나는 나무의 생각을 묻고자 말을 건넨다.
“내가 말하는 게 기분 나쁘면 말 안해도 돼! 그러면 다음부터는 말 걸지 않을게.”
나무도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야 괜찮아, 세상사는 이치가 다 그런거잖아...!”
나는 소나무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품격있는 대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