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번역) - 682[4 ~ 83](240903)
< 전 체 번 역 >
손건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 “저는 죽음 따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사군께서 는 국가를 위하는 충심은 조조나 원소 그리고 여포등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전날 이자들과 상종했던 것은 부득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듣자오니 유 장군께서는
한[漢]나라의 후손으로서 같은 종친으로 정의가 절실하여 천리 길을 달려와 의탁하려하 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남을 헐뜯으며 어진 이를 이같이 질투하는 것이요!”
유표가 이 말을 듣고 채모를 꾸짖었다. : “내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자네는 더 이상 여러 말 하지 말게.” 채모는 부끄러워하고 원망을 하며 나갔다. 드디어 유표는 손건에게 먼저 가서 현덕에게 알리라고 하는 일면으로 자기는 친히 성에서 삼십 리 밖까지 나가 영접했다. 현덕이 유표를 보자 아주 공손히 예를 올리니 유표 역시 심히 후하게 대해주었다. 현덕은 관우와 장비등을 불러 유표를 절하며 뵙게 했다. 유표는 현덕과 같이 나란히 형주로 들어가 그들에게 별도로 집을 마련하여 거주토록 해주었다.
한편 조조는 현덕이 이미 형주로 가서 유표에게 몸을 의탁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 바로 군사를 이끌고 공격을 하려했다.
정욱 : “원소를 없애지도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형주와 양주를 공격했다가는 혹시 원소가 북쪽에서 군사를 일으킨다면 승부를 예측할 수 없으니 차라리 허도로 돌아가 병력을 기르 고 예기를 저축해 두었다가 내년 봄 따뜻한 때를 기다려 군사를 영솔하여 먼저 원소를 쳐 부수고 그 후에 형, 양을 취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남과 북을 잇는 이 점을 한 번에 다 얻을 수 있습니다.”
조조는 그 의견을 따라 군사를 인솔하고 허도로 회군했다. 건안 8년 정월에 조조는 다시 군사를 일으키려고 상의를 하게 되었다. 먼저 하후돈과 만총을 파견하여 유표를 방어토록 하고 조인과 순욱을 남겨 허도를 방어케 하고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관도에 나가 주둔했다.
한편 원소는 지난해부터 감모로 피를 토하던 병세가 조금 회복되어 허도를 공격하고자 상의를 하니 심배가 간언을 드렸다. : “작년에 있었던 관도와 창정의 패배로 아직 군사들의 사기가 오르지 않고 있으니 아직은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지키면서 군사와 백성들의 힘을 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참 의론하고 있는데 조조가 관도로 진출하여 기주를 공격하러 온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원소 : “만약 적병이 성 아래 이르러 해자까지 밀어닥치기를 기다렸다가 적을 막으려 한다면 이미 때는 늦고 만다. 내가 대군을 거느리고 나가 적을 대적하겠다.”
원상 : “아버지께서는 아직 몸도 완쾌되지 않았는데 원정을 나가신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소자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적을 맞겠습니다.” 원소는 이를 허락하고 사람을 시켜 청주로 가서 원담을, 유주로 가서 원희를, 그리고 병주로 가서 고간을 합류케 하여 네 방면의 군사가 동시에 조조를 깨트리도록 하였다. 이야말로 :
얼마 전에는 여남에서 전쟁의 북소리 울렸는데
또 다시 기북으로 정벌의 북소리가 움직이는구나.
승부가 여하히 될까 궁금하구나. 다음 회를 보자.
< 原 文 >
孫乾正色曰:「乾非懼死之人也。劉使君忠心爲國,非曹操、袁紹、呂布等比。前此相從,不得已也。今聞劉將軍漢朝苗裔,誼切同宗,故千里相投。爾何獻讒而妒賢如此耶!」
劉表聞言,乃叱蔡瑁曰:「吾主意已定,汝勿多言。」蔡瑁慚恨而出。劉表遂命孫乾先往報玄德,一面親自出郭三十里迎接。玄德見表,執禮甚恭。表亦相待甚厚。玄德引關、張等拜見劉表,表遂與玄德同入荊州,分撥院宅居住。
却說曹操探知玄德已往荊州,投奔劉表,便欲引兵攻之。程昱曰:「袁紹未除,而遽攻荊、襄,倘袁紹從北而起,勝負未可知矣。不如還兵許都,養軍蓄銳,待來年春煖,然後引兵先破袁紹,後取荊、襄。南北之利,一擧可收也。」
操然其言,遂提兵回許都。至建安八年,春正月,操復商議興兵。先差夏侯惇、滿寵鎭守汝南,以拒劉表;留曹仁、荀彧守許都;親統大軍前赴官渡屯紮。
且說袁紹自舊歲感冒吐血症候,今方稍愈,商議欲攻許都。審配諫曰:「舊歲官渡、倉亭之敗,軍心未振,尚當深溝高壘,以養軍民之力。」
正議間,忽報曹操進兵官渡,來攻冀州。紹曰:「若候兵臨城下,將至河邊,然後拒敵,事已遲矣。吾當自領大軍出迎。」袁尚曰:「父親病體未痊,不可遠征。兒願提兵前去迎敵。」紹許之,遂使人往青州取袁譚,幽州取袁熙,并州取高幹,四路同破曹操。正是:
纔向汝南鳴戰鼓,
又從冀北動征鼙。
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 文 段 解 說 >
(1)孫乾正色曰:「乾非懼死之人也。劉使君忠心爲國,非曹操、袁紹、呂布等比。前此相從,不得已也。今聞劉將軍漢朝苗裔,誼切同宗,故千里相投。爾何獻讒而妒賢如此耶!」
劉表聞言,乃叱蔡瑁曰:「吾主意已定,汝勿多言。」蔡瑁慚恨而出。劉表遂命孫乾先往報玄德,一面親自出郭三十里迎接。玄德見表,執禮甚恭。表亦相待甚厚。玄德引關、張等拜見劉表,表遂與玄德同入荊州,分撥院宅居住。
손건정색왈:「건비구사지인야。류사군충심위국,비조조、원소、려포등비。전차상종,불득이야。금문류장군한조묘예,의절동종,고천리상투。이하헌참이투현여차야!」 유표문언,내질채모왈:「오주의이정,여물다언。」채모참한이출。류표수명손건선왕보현덕,일면친자출곽삼십리영접。현덕견표,집례심공。표역상대심후。현덕인관、장등배견유표,표수여현덕동입형주,분발원댁거주。
懼 두려워 할 구. 苗 모 묘. 裔 후손 예. 苗裔 후손, 자손. 誼 옳을 의, 우정. 우의. 정의. 切 절실하다, 정성스럽다, 끊을 절. 讒 참소할 참, 妒 투기할 투. 慚 부끄러울 참. 恨 한할 한, 뉘우치다. 撥 다스릴 발, 나눌 발.
< 해 석 >
손건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 “저는 죽음 따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사군께서 는 국가를 위하는 충심은 조조나 원소 그리고 여포등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전날 이 들과 상종했던 것은 부득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듣자오니 유 장군께서는
한[漢]나라의 후손으로서 같은 종친으로 정의가 절실하여 천리 길을 달려와 의탁하려하는 데 당신은 어찌하여 남을 헐뜯으며 어진 이를 이같이 질투하는 것이요!”
유표가 이 말을 듣고 채모를 꾸짖었다. : “내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자네는 더 이상 여러 말 하지 말게.” 채모는 부끄러워하고 원망을 하며 나갔다. 드디어 유표는 손건에게 먼저 가서 현덕에게 알리라고 하는 일면으로 자기는 친히 성에서 삼십 리 밖까지 나가 영접했다. 현덕이 유표를 보자 아주 공손히 예를 올리니 유표 역시 심히 후하게 대해주었다. 현덕은 관우와 장비등을 불러 유표를 절하며 뵙게 했다. 유표는 현덕과 같이 나란히 형주로 들어가 그들에게 별도로 집을 마련하여 거주토록 해주었다.
(2)却說曹操探知玄德已往荊州,投奔劉表,便欲引兵攻之。程昱曰:「袁紹未除,而遽攻荊、襄,倘袁紹從北而起,勝負未可知矣。不如還兵許都,養軍蓄銳,待來年春煖,然後引兵先破袁紹,後取荊、襄。南北之利,一擧可收也。」
操然其言,遂提兵回許都。至建安八年,春正月,操復商議興兵。先差夏侯惇、滿寵鎭守汝南,以拒劉表;留曹仁、荀彧守許都;親統大軍前赴官渡屯紮。
且說袁紹自舊歲感冒吐血症候,今方稍愈,商議欲攻許都。審配諫曰:「舊歲官渡、倉亭之敗,軍心未振,尚當深溝高壘,以養軍民之力。」
각설조조탐지현덕이왕형주,투분유표,편욕인병공지。정욱왈:「원소미제,이거공형、양,당원소종북이기,승부미가지의。불여환병허도,양군축예,대래년춘난,연후인병선파원소,후취형、양。남북지리,일거가수야。」 조연기언,수제병회허도。지건안팔년,춘정월,조부상의흥병。선차하후돈、만총진수여남,이거류표;유조인、순욱수허도;친통대군전부관도둔찰。 차설원소자구세감모토혈증후,금방초유,상의욕공허도。심배간왈:「구세관도、창정지패,군심미진,상당심구고루,이양군민지력。」
投奔 (의탁할곳을) 찾아가다. (몸을) 의탁하다. 遽 갑자기 거. 蓄銳 생기 발랄한 힘과 기세를 키워 두다, 예기를 축적하다. 煖 따뜻할 난. 建安 8년. 서기 203년. 신라 奈解尼師今 8년. 고구려 山上王 7년. 屯 진칠 둔. 紮 감을 찰, 주둔하다. 屯紮 주둔하다. 舊歲 이해의 바로 앞의 해. 稍 벼 줄기 끝 초, 점점, 적다, 작다. 尙 오히려 상, 아직, 더욱이.
< 해 석 >
한편 조조는 현덕이 이미 형주로 가서 유표에게 몸을 의탁했다는 소식을 탐지하고 곧 바로 군사를 이끌고 공격을 하려했다.
정욱 : “원소를 없애지도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형주와 양주를 공격하다가는 혹시 원소가 북쪽에서 군사를 일으킨다면 승부를 예측할 수 없으니 차라리 허도로 돌아가 병력을 기르 고 예기를 저축해 두었다가 내년 봄 따뜻한 때를 기다려 군사를 영솔하여 먼저 원소를 쳐 부수고 그 후에 형, 양을 취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남과 북을 잇는 이 점을 한 번에 다 얻을 수 있습니다.”
조조는 그 의견을 따라 군사를 인솔하고 허도로 회군했다. 건안 8년 정월에 조조는 다시 군사를 일으키려고 상의를 하게 되었다. 먼저 하후돈과 만총을 파견하여 유표를 방어토록 하고 조인과 순욱을 남겨 허도를 방어케 하고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관도에 나가 주둔했다.
한편 원소는 지난해부터 감모로 피를 토하던 병세가 조금 회복되어 허도를 공격하고자 상의를 하니 심배가 간언을 드렸다. : “작년에 있었던 관도와 창정의 패배로 아직 군사들의 사기가 오르지 않고 있으니 아직은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지키면서 군사와 백성들의 힘을 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3)正議間,忽報曹操進兵官渡,來攻冀州。紹曰:「若候兵臨城下,將至河邊,然後拒敵,事已遲矣。吾當自領大軍出迎。」袁尚曰:「父親病體未痊,不可遠征。兒願提兵前去迎敵。」紹許之,遂使人往青州取袁譚,幽州取袁熙,并州取高幹,四路同破曹操。正是:
纔向汝南鳴戰鼓,又從冀北動征鼙。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정의간,홀보조조진병관도,내공기주。소왈:「약후병임성하,장지하변,연후거적,사이지의。오당자령대군출영。」원상왈:「부친병체미전,불가원정。아원제병전거영적。」소허지,수사인왕청주취원담,유주취원희,병주취고간,사로동파조조。정시:재향여남명전고,우종기북동정비。
미지승부여하,차간하문분해。
河邊을 황하 강변이라 번역한 분도 있고 해자 가까이라고 번역한 분도 있다. 拒 막을 거. 遲 늦을 지. 痊 병나을 전. 纔 겨우 재, 조금, 방금, …에야 비로소. 向 향할 향, 접때, 이전에. 纔向 조금 전에, 방금 전에. 鼙 작은 북 비, 마상고(馬上鼓),. 기병(騎兵)이 마상에서 울리는 북. 정 征鼙 정벌의 북소리.
< 해 석 >
한참 의론하고 있는데 조조가 관도로 진출하여 기주를 공격하러 온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원소 : “만약 적병이 성 아래 이르러 해자까지 밀어닥치기를 기다렸다가 적을 막으려 한다 면 이미 때는 늦고 만다. 내가 대군을 거느리고 나가 적을 대적하겠다.”
원상 : “아버지께서는 아직 몸도 완쾌되지 않았는데 원정을 나가신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소자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적을 맞겠습니다.” 원소는 이를 허락하고 사람을 시켜 청주로 가서 원담을, 유주로 가서 원희를, 그리고 병주로 가서 고간을 합류케 하여 네 방면의 군사가 동시에 조조를 깨트리도록 하였다. 이야말로 :
얼마 전에는 여남에서 전쟁의 북소리 울렸는데
또 다시 기북으로 정벌의 북소리가 움직이는구나.
승부가 여하히 될까 궁금하구나. 다음 회를 보자.
24년 9월 3일
이 종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