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착한 곳은 카비테였다. 필리핀은 그럴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TV에서 보던 지프니보다 자전거에 일인용 자리를 만들어 붙인 것 같은 트라이시클이 더 많았다. 빌딩은 거의 볼 수 없었고 제일 큰 건물은 마켓 아니면 쇼핑몰이었다.
남편이 딸과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은 달랑 차 한대였다. 우리는 그 동네에서 제일 나아보이는 , 리조트 이름이 붙은 시골 호텔에서 한 달을 보냈다.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내려가 커피와 빵을 먹었다. 시골 리조트지만, 맑은 하늘과 화창한 날씨, 그리고 예쁜 수영장, 그늘집은 기분을 내기에 충분했다.
몇 안되는 손님 때문인지 식사를 주문하려고 프론트에 전화를 걸면, 저쪽에서 먼저 "투 그릴드 치킨?"하고 물어왔다, 매일 매일 똑같은 식사를 하면서도 딸과 나는 꿈같이 행복했다.
만날 사람도 만나야 할 사람도 해야할 일도 없는 그런 한 달이었다. 여행과는 달랐다. 급하게 여기저기 쏘다니고 알고 싶은 욕구도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살게 될 테니까.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친절한 교민을 만났다면, 수퍼는 여기에, 학교는 여기에 등등 소개를 받았겠지만, 그만큼 일상이 일찍 찾아왔을테니.
한국을 떠날 때 딸 아이는 분리불안이 있었다. 아빠는 필리핀에 먼저 들어와 있었고 나는 늘 바빴다. 고작 일학년짜리를 미술학원으로 종이접기로 다시 피아노로 넣었다 뺐다 하는 일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신발주머니를 움켜쥐고 엄마가 안 데리러오면 어쩌나 하며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어쩌다 조금 늦으면 바들바들 떨며 울었다고 한다. 나는 아빠도 여기에 없는데 엄마가 안 데리러 오면 어떻게 하냐며...
나 또한 일에 지쳐가고 있었다. 늘 열심히 했지만 백그라운드가 좋은 사람들에게 밀렸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온 힘을 쏟아내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백기를 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남편에게 예정보다 일찍 가게 되었다.
짐이 오기까지 한 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그렇게 주어졌다.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해방되고, 일에서 벗어나고, 심지어는 요리와 청소까지 날아간.
완벽한 날씨는 거기에 더해진 축복이었다. 딸은 스물 네시간 내 곁에서 종알거렸고, 우리는 하루종일 붙어서 뒹굴고 같이 먹고 꼭 안고 잠이 들었다.
아이의 분리불안에 대해 의사가 내린 처방이었다. 그냥 불안해 하지 않을 때까지 옆에 있어 주세요. 그의 처방은 어쩌면 과속증에 걸린 나에게 주는 것이었다. “잠시 멈추세요 그리고 쉬세요”.
서로에게 온전히 내어준, 멈춤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완벽하게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