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명예교수회 ‘뮤지엄 산’ 탐방기-
콘크리트, 빛과 물
그리고 자연을 만나다
김영태 / 건축학부
2024년 5월 2일 명예교수회 봄 문화탐방 여행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작품 ‘뮤지엄 산’을 탐방하는 일정이었다.
아침 6시 45분에 어린이회관을 출발, 버스 안에서 간단한 조식을 하고 뮤지엄 산에 거의 다 온 근처 황금들밥 식당에서 중식을 하고 여교수님들의 라인 댄스를 하는 건강한 모습을 구경했다. 뮤지엄 산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12시쯤이었다.
산 속에 감추어 진 ‘뮤지엄 산’은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뮤지엄의 명칭으로 산으로 한 것은 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문으로는 ‘공간⋅예술⋅자연’을 뜻하는 SAN(Spase Art Nature)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이 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 빛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Ando Tadao, 1941~ )의 설계로 시작하여 ‘빛의 공간 예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1943~)의 작품 전시 개막과 함께 2013년 5월에 개관하였다.
故 이인희 한솔그룹 초대 이사장이 2005년 강원도 원주의 아크밸리 산자락에 미술관을 짓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하여 2013년에 그 꿈이 이루어졌다. 미술관을 짓겠다는 꿈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만나면서 현실이 되었고 새로운 별천지를 만들겠다는 건축가의 의지는 2만여 평의 산 위에 미술관을 수많은 관람객이 찾는 곳으로 만들어 냈다.
안도는 자연 지형을 인위적으로 변형하지 않고 절토나 성토 없이 가능한 원형을 살려, 유기적 자연형태와 인공의 기하학적 형태 구성의 탐구를 일관성 있게 해온 일본 건축가이다. 그는 한국인의 자연관에 근접한 결과물을 뮤지엄 산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강원도 원주의 해발 275m 되는 산자락 지형에 친자연의 미술관을 2013년에 완공하여 개관한지 벌써 11년의 시간이 흘렀다.
영남대 명예교수 30여 명이 주차장에서 내려 미술관의 ‘웰컴센터’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일행들은 열주로 이루어진 미술관 도입 영역을 거쳐 매표장이 있는 ‘웰컴센터’ 안으로 입장하였다. ‘플라워가든’의 자작나무 숲을 지나 벽을 따라가다 만나게 된 것은 ‘워터가든’과 ‘뮤지엄 본관’이었다. 여기는 물 위에 떠 있는 듯 서 있는 붉은 조각물이 일행을 맞았다. 알렉산더 리버만(Alexander Liberman, 1912~1999)의 아치 조각 작품이다. 악센트를 주는 듯 쇠 파이프를 절단 조립한 구조물이 우뚝 솟아 있다. 웅장하게 수직으로 서 있는 아치의 장면은 압권이었다.
잔잔한 수면공간은 주변 자연공간과 함께 선명한 선線과 물성物性 그리고 색채色彩를 나에게 남겨 주었다. 거기에는 자연과 인공 그리고 철과 물의 대비가 있었다.
아치를 거쳐 ‘워터가든’을 가로 질러 ‘뮤지엄 본관’과 마주친다. ‘뮤지엄 본관’ 건물은 콘크리트 박스Box에 파주석坡州石으로 옷을 입혔다. 이 부분만은 콘크리트 노출을 피했다. 건축가 안도가 많이 고심했으리라 믿어진다. 아마 한국이라는 장소성을 인식했으리라 짐작된다.
본관에 들어오면 콘크리트로 폐쇄된 매스Mass 속에서 창과 벽 틈으로 햇살조각이 파고 들어온다. 그로 인해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어둠(陰)과 밝음(陽)의 극명한 대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시교차가 이루어진다. 마치 벽과 바닥에 조물주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착시를 하게 한다. 이러한 공간에서 페이퍼 갤러리(紙⋅持⋅志)와 판화공방, 통로와 각각의 방에는 회화, 조각, 설치작품들의 전시가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여기의 건물 내부에서 바깥을 보면 개구부를 통해 풍경이 들어와 있어서 내⋅외부의 경계가 순간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는 차경借景의 기법이다.
또한 곳곳에 물이 있는 장소가 배치되어 있어 건물 박스가 물 위에 떠있는 듯 한 효과를 이루고 있다. 잔잔한 수면, 물의 흐름과 물 흐르는 소리, 물 위에 비치는 주변의 풍경들, 그 위에 빛의 산란 등이 그 만큼의 풍경을 만들어 보인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활용한 수면은 마치 캔버스 위에 붓과 물감으로 페인팅을 한 회화작품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보니 그의 작품 ‘빛의 교회’, ‘물의 사원’ 등이 예사롭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본관의 전시장 밖으로는 부드럽고 완만한 ‘스톤가든’이 있다. 그 안에는 9개의 ‘스톤마운드’가 자리하고 있다. 아마 경주의 신라 왕릉을 석축石築으로 차용한 것아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곡선으로 이어지는 ‘스톤마운드’의 산책길을 따라 주변으로 흩어진 철조鐵彫의 추상 조각 작품이 나에게 큰 감동을 일으켰고, 주변에 나무와 돌, 풀과 꽃, 하늘과 바람, 햇빛을 만끽하는 장소가 되었다. 거기에는 자연과 인공 그리고 철鐵과 돌石의 대비가 있었다.
겨울이면 눈이 와서 하얀 이불이 스톤마운드가든을 덮고 있는 또 다른 풍광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계절과 시간이 이 풍경에 개입한 여러 얼굴과 표정을 상상해 본다.
이처럼 관람동선이 대략 2Km가 넘는 ‘건축적 산책’을 통해 사람들은 자연과 건축(인공)이 서로 긴밀하게 조우하여 이루는 장면들을 매순간마다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뮤지엄산의 전체 배치는 주어진 땅(山)의 기세를 거스르지 않고 산자락에 수평으로 펼쳐진 선형 구조로 되어 있다. 이를 따라 개별 건물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도록 했다. 건물뿐만 아니라 부지 전체가 뮤지엄이 되도록 했다,
건축물 역시 중정 공간을 도입하여 내부공간에 외부공간과의 직접적인 연결성을 주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하늘과 빛을 담아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연은 자연스럽게 건축 속으로 들어오고 다시 건축은 자연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러니 건축은 인간과 자연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은 대부분 노출콘크리트Exposed Concrete로 만들어져 있다. 그가 구조재인 철근콘크리트를 노출시킨 것은 건축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적은 건축비에 내부의 실내 마감재와 외부 피복 재료를 감당할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골조가 바로 노출됐다고 한다. (실제 공사비는 더 많이 든다)
이는 르 코르뷔제(Le Corbusier,1887~1965)의 작품과 알바 알토(Alvar Aalto,1898~1976) 등의 건축물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핀랜드 건축가 알바 알토의 건축 작품을 보면 붉은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한 건물이 대다수이다. 그렇지만 붉은 벽돌이 떨어져 나간 듯 골조가 그대로 보이는 디테일로 설계한 것을 볼 수 있다. 옷을 걸친 여인의 누드 좌상을 보는 듯하다. 르 코르뷔제의 롱샹교회를 비롯한 많은 건축 작품의 외장 대부분이 거푸집 형틀에 의해 만들어 진 콘크리트 구조체의 노출이었다. 그래서 그의 건축물은 콘크리트로 제작한 조소彫塑 작품으로 유명해 졌다. 인체 누드와 같이 건축 누드에서 볼 수 있는 미적 감동이다.
안도는 젊은 시절 유럽과 미국을 건축 답사하면서 이에 많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필자도 건축현장에서 가끔 골조공사가 다 된 구조체를 보고 미적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마치 그림을 그리면서 붓 놓을 때를 놓치고 덧칠하다가 그림을 망치는 경우와 흡사한 느낌이라고 할까? 어떻든 안도는 노출 콘크리트의 대가가 되었다.
그는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쌍둥이의 형으로 태어나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오사카 외곽 출신으로 촌뜨기였다, 어릴 때 무엇인가 만드는 것에 골똘하고 동네 친구와 싸움질을 잘 했다고 한다. 그는 공업고등학교 기계과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학교는 잘 다니지 않고 학교에서 뭘 배운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고교를 졸업하면서 권투선수 생활을 했고 알바로 트럭 운전수도 하면서 소위 백수 생활을 했다.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건축공사 현장에서 ‘노가다’ 일을 하게 된다. 우연이 필연이 되어 드디어 오랜 방황을 끝내고 건축가의 길을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왜소한 프로 권투선수이자 힘겨운 막노동자였던 한 젊은이는 독학과 현장 답사를 통해 서서히 건축가가 되어갔다. 일본의 고건축에서 시작하여 유럽의 고건축을 답사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건축 본질을 이해하게 되고 그곳의 현대 건축을 만나면서 충격을 받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르 코르뷔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 루이스 칸(Louis Kahn, 1907~1974) 등의 건축 작품에 심취했고 그곳의 수많은 건축물을 스케치하고 스스로 공부하면서 독자적 건축관을 형성해 나갔다. 아마 코르뷔제의 작품이 그의 제일 큰 스승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박스Box로 이루어진 본관 건물을 통과하고 나면 ‘영상관’과 ‘제임스 터렐관’이 있다. 우리일행의 탐방 일정에 여기는 생략돼 있다. 탐방 여정이 끝났다는 생각으로 일행들이 있는 ‘카페테라스’에서 커피 한잔을 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여행은 힘이 든다. 특히 미술관 탐방은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보지 못하고 가는 아쉬움이 있었다. 오랜만에 화가인 배우자와 함께 미술관에 왔는데᠁ 요행스럽게 오창혁 교수와 화가인 그의 부인과 넷이서 다행히 터렐관 관람을 하게 되었다. 터렐관은 건축가 안도와 화가 터렐이 협동 설계한 건물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접하지 못했던 빛의 마술사 터렐의 작품에 매료되어 우주공간에 내가 있는 듯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간이 캔버스가 되고 빛이 물감이 된 것 같은 터렐의 작품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제임스 터렐은 미국 국적의 화가이다. 빛과 우주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이미 유명해 진 예술가이다. 그는 다양한 공간 체험을 바탕으로 관람자와 작품 사이의 상호 작용을 중시하고 있다. 시간성에 의한 빛의 연출, 신체의 움직임에 의한 체험, 감각과 기억을 환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제임스 터렐의 빛의 사용은 장소적 의미와 공간 범위의 확장 표현이다. 관람자 몰입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본질적 경험을 더 명확하게 부각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현 시대가 추구하는 융합적 사고와 함께 공간디자인의 차원을 한층 더 높여 주었다. 이렇게 보니 터렐과 안도의 주제는 ‘빛‘이라는 공통성을 가진 예술가이다.
건축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하면서 많은 감동을 준다. 마치 음악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듯, 그래서 건축은 동결凍結된 음악이라고 했다.
3시간쯤 관람을 마치고 일행은 오후 3시경에 ‘뮤지엄 산’을 출발하여 제천 호수변 도로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오후 5시쯤 풍기에 도착하여 영주축협 한우 프라자에서 석식을 했다. 대구로 귀가하는 일행은 4시간을 버스 속에서 유쾌한 분위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후 9시 반에 어린이 회관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탐방 소감을 말하라는 김정숙 교수의 제의로 두서없이 소감으로 얼버무렸던 같고, 반 승낙 상태에서 늘푸른나무 원고 청탁을 받았다.
한참 동안 잊고 있다가 독촉을 받고서야 이 원고를 썼다. 평소에 글을 자주 쓰지 않아서 서툰 점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이번 탐방 여행을 주선하고 준비해 주신 이광식 회장님과 박인수 위원장, 오창혁 간사, 김정숙 편집위원장 그리고 촬영을 맡아한 강용호 위원장의 배려와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함께한 오랜만에 보는 교수님들의 얼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모두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한다.
첫댓글 교수님, 고맙습니다. 역시 건축가가 뮤지엄산을 설명하시니, 체계를 다시 잡습니다. 5월 2일 싱싱하던 공기와 반갑던 마음을 꺼내어 다시 뮤지엄산을 여행하게 합니다. 안도 다다오만 기억할 뻔 했던 뮤지엄산에 이곳저곳을 지키고 있는 여러 예술가들도 다시 철저히 공부해야하는구나를 느낍니다. 특히 제임스 터렐관을 가시지 못한 교수님들께 <사진5>는 큰 동기를 일으키지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진과 전문적인 설명,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들고 갈 애정어린 안내서입니다. 감사합니다. (단체 사진은 강용호 교수님이 촬영한 것으로 편집진에서 카페에서 따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