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할매
소년은 일곱 살이다. 그렇지만 영양상태가 썩 좋지 않은데다 잔병치레마저 잦았던 터라 또래에 비해 덩치가 훨씬 작았다. 아마 다섯 살이라 해도 대개 곧이곧대로 믿으려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말도 더뎌 제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함에 있어 장애가 심했고, 말투 또한 어눌했다.
아빠 엄마가 새벽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일하러 나갔을 때면, 소년은 늘 집에 홀로 남겨졌다. 또래 아이들은 부모가 일 나갈 때면 흔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겨지게 마련인데, 소년의 부모에겐 그런 곳에 보낼 눈곱만큼의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기껏해야 헌책방에서 떨이로 묶음판매하는 그림동화책 몇 권이나 고물상 등지에서 주워왔을 법한 낡은 장난감 몇 개가, 같이 놀아주겠다는 친구마저 있을리 없는 무료한 소년의 동무역할을 해왔다.
소년은 하루 종일 방안에서 혼자 뒹굴며 헌 동화책을 넘겨보거나 낡은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를 뒤져 몇 가지 반찬을 끄집어내어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다.
아빠 엄마는 리어카에 야채를 그득 싣고 동네골목을 떠돌며 행상을 한다. 리어카를 조금 더 크게 개조했다지만, 싣는 데엔 한계가 있어 걸핏하면 마주치게 되는 트럭떼기 야채장수가 그리 부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저 놈의 트럭장수 때문에 이 장사를 못해 먹겠어.”
게다가 트럭에 장착된 확성기를 통해 녹음된 음성을 크게 틀어놓으면 주부들이 밥 먹다가도 뛰쳐나오는듯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목통 터져라 외쳐대도 얼씬 않던 주부들이 꼭 트럭장수 확성기 소리 듣고는 잘만 뛰쳐나오질 않던가.
“저런 트럭만 한 대 있음, 일이 얼마나 수월할꼬?”
“트럭만 있음 뭐혀? 운전을 할 줄 알아야제.”
“운전이야 배우면 될꺼고…. 저런 트럭 한 대 있음 물건도 더 많이 뗄 수 있고, 둘이 힘들게 리어까를 끌고 밀고 할 필요까진 없을 거 아녀.”
“트럭이 웬만큼 비싸야지.”
“허름한 중고는 그래도 이삼백이면 몬 사겠나?”
“이삼백은 더 할낀데? 사오백은 줘야 안하겠나.”
“그렇게 까진 안한다. 새차라도 끽해야 천만 원이면 살끼다.”
그래서 아빠 엄마의 절실하다 할 소원은 1톤짜리 트럭을 하루빨리 장만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장사가 잘돼야 트럭이라도 꿈꿔 볼텐데, 하루 종일 이 골목 저 골목 헤집고 다녀도 갈수록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아무리 부지런을 떨며 싸게 내놔도 물건이 싱싱치 않다느니, 비싸다느니 오히려 트집 잡기 바쁜 주부들 상대로 장사하기엔 언제나 쌓이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그 때문에 매상도 못 올린데다 하루 종일 맥빠지게 돌아다니다 지쳐서 밤늦게 돌아오는 날은 부부싸움이 잦게 마련이었다.
엄마는 제대로 돈벌이를 못한다하여 아빠를 무시하려들었고, 아빠는 엄마더러 식당일을 해서라도 돈 벌어오라 했다. 그리고 말싸움 끝에 제 성질을 못 이긴 아빠는 툭하면 엄마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마구하매, 나 와떠.”
“옹냐, 내 강아지, 추분데 얼렁 일루 들어온나.”
할매는 소년을 부를 땐 언제나 ‘내 강아지’라 했다. 소년은 강아지를 무서워했기에 강아지라 부르는 것이 영 떨떠름했지만, 할매가 귀엽다는 뜻에서 그러려니 했다.
할매는 일흔이 넘었을 쪼그랑 몸집에 늘 부스스한 머리와 남루한 옷차림으로 마대자루 하나를 들고 동네를 기웃거리며 고물을 주워왔다.
성질이 어찌나 사납고 입이 거칠었던지 눈에 거슬리면 아무한테나 쌍욕을 해서 ‘마귀같은 할머니’라 하여 ‘마구할매’란 별명이 붙여졌다.
소년이 할매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은 넉 달 전인 10월 중순경이었다. 골목에서 고물을 줍던 할매를 유심히 살펴본 소년은 할매가 줍는 것이 깡통이나 유리병따위라는 것을 알고는 할매 뒤를 따라다니며 눈에 띄는 깡통이나 유리병을 주워 할매한테 갖다주기를 되풀이하였다. 애초부터 할매를 돕겠다는 생각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짓이 마냥 재미있었던 것이다.
그뒤부터 소년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할매랑 붙어살다시피 했다. 그러한 진귀한 동행을 동네사람들은 별꼴이라며 혀를 내둘렀으나, 누가 봐도 할매와 소년의 관계는 친할머니와 친손자의 관계로 비쳐질 만큼 자연스러웠다.
동네에서 멀찌기 떨어진 할매집은 비록 누추하지만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있어 소년에겐 진기한 놀이동산이었다. 뿐만 아니라 할매는 가끔씩 허리춤을 부스럭거려가며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씩을 소년의 손에 쥐어주었고, 소년은 그 달음으로 구멍가게를 찾아가 먹고싶은 것을 사먹을 수 있었다.
“그 미친 할망구를 왜 자꾸 찾아가쌌노?”
소년이 마구할매한테 드나든다는 것을 눈치챈 아빠 엄마도 처음엔 꺼림칙한 기분에 몇 번인가 호되게 야단쳤지만, 비실비실할뿐 표정이라곤 전혀 드러낼줄 몰랐던 예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건강하고 활달해진 모습을 발견하곤 더 이상 뭐라하지 않았다.
할매는 12월 들어 갑자기 몸져누웠다. 더 이상 고물따위를 주우러 다닐 수 없었다.
판자떼기를 얼기설기 엉성하게 이어 만든 허름한 방안은 사방에서 찬바람이 설설 기어들어왔다.
어쩌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가 다녀갔어도 나아질게 별반 없었다. 오로지 소년만이 곁에서 할매를 지킬 뿐이었다.
해가 바뀌고 구정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엄마가 장사 나가기 전에 소년에게 일렀다.
“마구할망구한테 낼 설에 우리 집에 와서 떡국 드시라 캐라.”
소년이 할매를 찾아갔을 땐 할매도 깨끗하게 몸단장을 끝낸 뒤였다. 머리도 곱게 빗질을 했고, 누더기옷 대신에 눈부시게 하얀빛의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렇지만 할매는 기운이 없었던지 자리 위에 누워서 소년을 기다렸다.
“마구하매. 내리 서래 우리 지베 떠구우 무그러 가자.”
“옹냐. 내 강아지. 낼이 설이지? 옹냐. 낼 떡꾹 묵으러 가자.”
할매는 큼직한 상자 하나를 소년 앞으로 밀어놓았다.
“이거 돈인디 내가 벌어서 모아둔…. 이거 내 강아지한테 줄텡께, 이걸로 맛난 것도 사묵고…. 또 공부헐 때 필요한 거 사는데 쓴나. 알것제?”
할매는 그로부터 잠시뒤에 편안한 모습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소년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구하매. 고마 자고 이러나이 빠리 이러나이.”
소년이 아무리 흔들어도 할매는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소년은 울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물론 아빠 엄마는 일 나간터라 집에 있을리 없었다.
소년은 집근처 구멍가게로 쫓아갔다. 그래도 조금은 살갑게 대해줬던 사람이라곤 구멍가게 아줌마가 유일한 사람이었다.
“현아. 마구할맨 잠자는 게 아니라 돌아가셨어. 하늘나라에 가셨다구. 이제부턴 현이랑 놀아주지 못할 거야.”
아줌마는 할매 곁에 놓여있던 상자를 열어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구두 한 켤레가 들어갈만한 상자 안에는 만 원짜리 시퍼런 지폐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마구할맨 보기보단 아주 부자였구나. 근데 현아, 마구할매가 이 돈에 대해 뭐라 않든?”
“마구하매가 나 가지라고 주어떠.”
“응, 그렇구나.”
할매의 죽음은 관할 동사무소와 경찰지구대에 신고가 되었다. 몇몇 동네사람들도 할매집으로 몰려들었고 늦은 오후엔 담당 공무원과 사회복지사, 경찰관 등 낯선 사람 넷이 할매집으로 찾아왔다.
할매가 남긴 때가 덕지덕지 묻은 누런 상자 속에는 모두 2천3백29만8천4백 원이란 적잖은 액수의 돈이 들어있었다.
담당공무원이 동네사람들에게 다짐했다.
“할머니한테 마땅한 상속자가 나타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음 당연히 국고에 귀속될 겁니다.”
“아니, 그런 법이 어디 있어예? 현이 말도 그렇지만 마구할매가 평소에 손자처럼 대해왔던 얘한테 유산으로 남겨주신 것이 분명한데…. 이 주변 사람들 모두 현이와 할매 관계를 잘 알고있을 거구만예.”
“그렇지만 이 애한테 상속했다는 증거가 없잖습니까? 유언장을 남긴 것도 아니고, 믿을만한 증인이 유언을 청취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 이 애 말만 어떻게 믿습니까?”
“그렇다고 현이가 거짓말할 이유도 없잖아예. 거짓말을 둘러댈 주제도 못되는 애인데….”
“요즘 얼라들이 어른들 뺨칠만큼 오히려 더 영악한 거 몰라요?”
담당공무원은 발끈하여 따지려드는 구멍가게 아줌마에게 ‘댁이 무슨 상관이냐’란 일침을 가하고는, ‘관내의 더 불쌍한 불우이웃들을 위해 쓸 거’라며 몰려든 동네사람들의 거센 항의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송두리째 들고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