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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군 육군 제5군단 예하 제3보병사단. 상징 명칭은 백골(白骨)부대. 주로 철원에 위치하여 최전방 GOP, GP를 지키는 철책사단.
메이커 사단답게, 이곳의 사단장이 되면 3스타를 넘어 4스타도 노릴 수 있을 정도이다.
2. 역사
1947년 12월 1일 부산광역시에서 제5, 6, 9연대와 이응준 대령을 초대 여단장으로, 조선경비대 '제3보병여단'으로 창설되었으며, 이후 1949년 5월 12일 최덕신 대령을 초대 사단장으로 하여 '제3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
별개로, 해당 사단의 핵심부대인 18연대(진백골연대)는 3여단 창설에 맞춰 3여단 내에서 창설되기도 했으며, 자원 입대한 서북청년회 회원들이 중심이 된 부대였다. 따라서 극도의 반공 성향과 전투적 기질을 자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철모 좌우에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고향 땅을 되찾겠다."라는 의미로 백골(白骨) 마크를 그려넣었다고 한다.
다만 6.25 전쟁 초기에는 뱅뱅 돌다가 황해도 옹진을 찍고 수도경비사령부에 들어가 수도사단(김석원 준장) 소속이었다. 개전 1개월도 못 되어 엄청난 손실에 부대 건제를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어 7월 24일에 18연대는 재편되어 산하의 1대대로 격하되고, 같은 사령부 내에 있던 3연대는 2대대, 8연대는 3대대가 되는 등 18연대 내부로 포함되며 부대 편제가 1/3로 줄어들었다. 이 모든 게 5,7,수경사 3개 사단이 1개 사단으로 통폐합되는 과정에 발생된 일이다. 하지만 3개 연대의 핵심 요원들이 제18연대로 재편되자 이후 막강 연대로 변모하였다. 한때 수도 사단 봉급의 태반을 차지할 정도로 고참하사관들이 많아 BAR 사수까지 중사, 상사로 짜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연대장이 임충식(국방부 장관), 부연대장이 한신(국군)(합참의장), 3대대장이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다.
어쨌든 부대 통합으로 18연대에서 서북청년회원의 비중은 확 줄어 들었다. 그래도 '백골부대'라는 명칭은 여전히 사용했는데, 워낙 용맹하다 보니 수도사단의 궂은일은 다 도맡아 하여 스스로 '등골부대', '산골부대'라고 자조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백골부대 놈들은 미국 놈들보다 더 악독하여 사람만 보면 죽인다"고 선전하여 국군을 보면 '백골부대'는 지금 어디쯤에 있냐며 걱정했다고 한다. 또한 국군 포로 중에 백골부대원이 있으면 무조건 총살했다고 한다. 북한군 내 백골 공포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1950년 11월 22일~24일 주을 전투 중에는 너무 치열한 교전에 질린 하사관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이 새끼들아! 백골부대다!"하고 외치며 뚜벅뚜벅 걸어가니 그토록 완강하게 버티던 북괴군이 삽시간이 무너졌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흥남 철수작전 기간 중 당시 3사단 26연대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흥남 철수 전 함흥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18연대는 수도사단과 같이 철수하다가 폭설로 길이 막히는 바람에 배편으로 흥남으로 이동, 다시 수도사단과 만날 예정이었고, 3사단 또한 22, 23연대가 배편으로, 26연대가 기차편으로 흥남으로 이동, 집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18, 22, 23연대가 배에 올라있던 그 순간에 흥남철수가 결정되면서, 배에 탄 연대들이 그냥 부산으로 직행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수도사단하고 26연대를 바꾸기로 결정하며, 18연대는 3사단으로 예속 전환되었다.
전환 직전에는 수도 사단장은 송요찬이고 3사단장은 백남권. 연대장은 임충식 대령으로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비로서 18연대가 22·23연대와 만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백골부대" 명칭으로 더 자주 불리게 되었으며, 이 와중에 3보병사단의 별명은 "사자부대" 였는데, 6.25 전쟁 이후 여력이 생기자 보다 전투적인 명칭을 원하는 사단장의 의향에 따라 "백골부대"가 사단의 공식 명칭이 되었고, 18연대 역시 자신들이 원조 백골이라는 의미로 명칭을 진백골로 바꾸었다.
이 당시의 18연대에 대해서는 당시 대대장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대한민국 군인 정승화>, 중대장이었던 김종민의 <대전쟁> 참조.
그리고 본진인 3사단에 대해 살펴 보자면 6.25 전쟁 발발 초창기 진짜 어이없는 일들을 겪어왔다. 서울 지원을 위해 22연대를 서울로 보내어 축차투입되었고 후에 영덕지구에서 3사단을 이끄는 이준식 준장의 혼성 3사단으로 편성되어 한강선 방어 이후 지연작전을 펴게 된다. 3사단의 구성연대인 22,23연대가 건제를 유지한채 유지되고 있음에도 7월 5일부 3사단은 해편되었다가 단 이틀 후인 7월 7일 재건되었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서 종전의 유승렬 사단장이 경남관구사령부로 보임되고 이준식 준장이 3사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1개월간 영덕지구 전투를 훌륭히 이끌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시간을 얻는데 큰 공을 세웠다.[11] 8월 9일부로 김석원 준장이 사단장으로 보임하여 포항지구 전투를 훌륭히 이끌고 이후 군관민 전원 철수로 유명한 포항철수작전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하여 특히 '10월 1일' 대한민국 국군 최초로 삼팔선을 돌파해(사단 예하 23연대 10중대) 현재 국군의 날의 유래가 되었다. 이때 3사단장이 참군인으로 이름 높은 이종찬이었다. 이종찬은 1950년 11월 12일에 최석 준장으로 사단장이 취임할 때까지 3사단장직에 있었다. 그러나 1951년 그 유명한 현리 전투에서 부대원 2/3가 전사, 실종당하는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당시 3사단 사단장이 전장병 외출 및 귀가 통제 조치를 하여 전쟁이 터지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휴전 후에는 1973년 3월 7일 전방에서 군사분계선 푯말 보수 작업을 실시하던 중 인민군 육군 초소에서 총격을 가하자, 사단장 박정인 장군의 지휘로 예하 71포병대대가 도발을 가한 인민군 초소를 제압하고, 부대원들을 구출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3.7 완전작전은 휴전 이후에 전방에서 발생한 30여 건의 북한군 침투에 가장 성공적, 모범적으로 대응한 '완전작전'의 사례로 손꼽힌다. 매년 3월 7일에는 3.7 완전작전 선봉 대대 영내에서 기념 행사를 실시한다.
6.25 전쟁 때부터 백골부대로 불렸다고 알려져 있으나 전쟁 당시에는 백골부대가 아니라 사자부대(獅子部隊)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6.25 전쟁 당시 3사단은 제2913부대로도 불렸다. 정승화 총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흥남 철수 이후 3사단으로 18연대가 오자 사단장이 이제부터 우리 사단은 백골부대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상술했듯 공식으로 바뀐 건 휴전 후 여력이 생겼을 때다.
현재는 제5군단 예하 사단으로 중부전선 철원 지역에서 제6보병사단과 함께 GOP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아래에는 국군 최초의 기갑여단인 제1기갑여단과 국군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제5포병여단이 있으며, 대한민국 육군을 대표하는 메이커 사단이다. 전통적으로 해골을 좋아하는지라, 자체 행사나 내부 구조물, 현판 등에는 무수히 많은 해골을 그려넣고 있다.
47번 국도를 타고 포천시 이동면에서 철원군 서면으로 넘어가면 만날 수 있는 조형물. 백골부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43번 국도 문혜리에서 와수리로 가는 길에도 있다. 사단 사령부 입구에도 있다.
훈련소에서 퇴소하는 이등병들에게 주는 술도 백골주라고 부른다. 해골 모양 잔에 술을 담아서 백골주였다. 경례 구호도 다른 부대와 달리 "백골!" 이라고 한다. 1972년까지 경례 구호가 "돌격"이었는데, 제25대 박정인 사단장이 '살아 국가에 충성하고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자'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백골"로 변경했다.
의외로 회관 이름은 삼성회관인데 삼성회관 옆에 영외 PX인 삼성마트가 있다. 진백골연대의 회관 이름이 백골회관이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한편 임무변경 등으로 인해 강원도에 있었던 사단본부가 근시일 내 경기도 포천시로 이전할 계획이다. 다만 철원군 주민들이 수입 감소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2020년 5월 13일 육군 유튜브에서는 3사단 장병들이 KCTC 훈련을 실시한 이야기가 공개 되었다.
3. 상징
3.1. 사단 마크
이 이미지는 해골과 대퇴골 마크가 빠져있던 시절의 구형 부대 마크인데 오류가 있다. 아래 두 개의 별이 상단의 별과 같이 양다리가 아래로 향해있는데 원래는 별의 꼭짓점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향해 있어야 한다. 문서 상단의 현 부대 마크를 보면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이 이미지가 디씨 백골갤 자동짤방으로 있던 시절에 이미지를 수정해야 한다고 건의글이 꽤나 올라갔으나 알바가 무관심한 탓인지 바뀌지 않았다.
육군본부 부대마크
이때의 부대 마크는 은근히 대한민국 육군본부의 부대 마크를 닮아서 전투복에 원색 마크로 오바로크를 치던 시절에는 멀리서 보면 헷갈리기도 했다. 큰 차이점은 가운데에 큰 별이 있으면 육군본부 부대 마크, 없으면 제3보병사단 부대 마크였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육본 마크는 하단 두 개의 별이 상단 별과 같이 정위치되어 있지만 백골부대는 상술한 바와 같이 별의 꼭짓점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향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외곽 삼각형의 삼변의 중간 지점이 육군본부 마크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지만, 백골부대의 경우는 쐐기 문양으로 끊겨 있다. 끊긴 부분끼리 이어보면 역삼각형이 나온다. 삼각형 안에 이렇게 역삼각형을 만들면 위와 양 옆에 삼각형이 3개 생긴다. 하지만 전반적인 부대 마크 디자인이 상당히 비슷하고 중앙의 별표만으로는 구별이 잘 되지 않았고, 이 때문인지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전투복에 오바로크 치는 부대 마크가 위장색 마크로 변경되면서 같은 파랑 원색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위장색에서 색상 배열의 차이를 두어, 검정색 계열의 바탕을 사용하는 육군본부 마크와 달리 연두색 계열의 바탕을 사용해서 원색 마크와 상당한 차이점을 두었다.
해골마크가 민간인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부대 이미지에 타격이 생긴다는 이유로 부대 마크에 넣지 않았다는 낭설이 있지만 애초에 전투복 상의에 부착하는 연대 비표에 해골 마크가 들어가는데 부대 마크에 넣지 못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 부대 측에서도 해골 마크를 '죽을 각오로 싸우면 반드시 산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 '죽을 수는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는 수사불패(雖死不敗)의 정신을 담는 것으로 정의하는 등 상당히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실제로도 부대를 거쳐 간 지휘관이나 장병들이 북한과 대치하는 최전방의 부대임에도 부대 마크가 용맹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건의를 꾸준히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덕분인지 몰라도 2012년 12월 3일부터 부대 마크에 다시 해골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대한민국 육군본부 마크와 완전 구별이 가능해져서 위장색 마크도 기존 연두색 바탕에서 육군본부 마크와 동일한 검정색 바탕으로 바뀌었다.
연대 비표 때문에 육군본부 독극물처리부대나 화생방부대로 오인받기도 한다. 실제로 DC인사이드 백골부대 갤러리에 가보면 23연대 병사는 육군본부 독극물처리부대로 포병연대 병사는 육군본부 폭발물처리반으로 오인받았었다고 한다. 또 해골이 가진 상징성 덕분인지 외국인들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부대 마크 중 하나이며, 미군들과 교류할 때도 부대 마크를 주면 엄청 좋아한다 카더라.
3.2. 사단가
돌격 명령 내리면 비호와 같이
적을 쳐 무찌르는 조국의 방패
백골혼 이어받아 죽음을 겁내지 않고
조국 통일 선봉에서 싸워 이겼다!
조국 산천 울리는 우리의 함성
승리의 깃발 들고 전진 또 전진!
오랑캐 무찌르고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화랑의 후예들이 싸워 이겼다!
우리는 백골이 되어도 싸워서 이기는
무적의 정예란다, 우리 3사단!
3사단 공식마크
3.3. 구호
먼저 경례구호는 다른 부대와 달리 "백골!" 이라고 한다. 다른 부대와 겹치지 않는 전군 유일한 구호 경례다. 1972년까지 경례 구호가 "돌격"이었는데, 제25대 박정인 사단장이 '살아 국가에 충성하고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자'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현재의 경례 구호인 "백골"로 변경하였다.
살아도 白백骨골! 죽어도 白백骨골! 必필死사卽즉生생 骨골育육之지情정! 白백骨골! 白백骨골! 파이팅!
일명 백골 구호. 현재 사용 중인 사단 정식 구호이며, 그만큼 대내외적 행사에도 가장 널리 사용된다.
그리고 부대 정문이나 그 인근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등에 대한 거친 격문들이 쓰여진 플래카드가 달려 있고 부대에 따라서는 연병장 같은 부대 시설에도 걸려있다. 아예 김씨 삼부자 사진을 영정마냥 검은 테두리 쳐서 걸어두는 부대도 있고 대치 중인 북한군 부대의 지휘관들의 사진도 살생부로 걸어놓은 부대도 있다.
대적관 구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백골사단
쳐부수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정은
김정은은 미친개 몽둥이가 약! 약! 약!
부관참시 김일성 김정일 능지처참 김정은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22]을 박자! 박자! 박자!
위의 구호는 김정일 사망 이후에 변경된 버전이고 대적관 구호의 초창기 버전은 다음과 같았다.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백골사단!
쳐부수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부자!
김부자는! 미친개! 몽둥이가 약! 약! 약!
부관참시! 김일성! 능지처참! 김정일! 김정은!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 박자! 박자!
이는 대적관(對敵觀) 구호라고 하며 식사 시간 때 취사장 앞에서 이 구호를 외치고 입장해야 한다. 위 구호는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자 바뀐 구호다. 2010년 12월에 신원식 사단장 재임 당시 최초로 제정되었는데 만들어질 당시에는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백골사단, 쳐부수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부자, 김부자는 미친개 몽둥이가 약!(3회 반복), 부관참시 김일성 능지처참 김정일! 김정은!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3회 반복. 단. 포병연대는 총칼 대신에 포탄이다.) 였다.
천하무적 백골 구호는 다음과 같으며 주로 분·소대 이동 시 쓰인다. 인솔자가 묻고 나머지 인원들이 대답하여 주고받는 형태.
아래에 있는 진격 구호와 함께 2009년 12월에 만들어졌었다.
천하무적 백골! / 천하무적 백골!
천!하!무저~억! 백골! / 천!하!무저~억! 백골!
삼팔선 최초 돌파부대는? / 이십삼연대!
혜산진까지 돌격부대는? / 이십이연대!
최북단 부령[24] 진격부대는? / 십팔연대!
적에게 가장 무서운 포병은? / 백골포병연대!
천!하!무저~억! 백골! / 천!하!무저~억! 백골
진격구호 역시 천하무적 백골과 마찬가지로 주고 받는 형태이며 다음과 같다.
우리 선배들이 지켜낸 자유 / 우리가 지켜 물려준다
우리 조국땅을 침범한 놈은 / 한 방에 날려버려
오늘은 걷고 내일은 뛰고 / 백두산 까지 진격
살아도! / 백골!
죽어도! / 백골!
필사즉생! / 골육지정! 백골! 백골! 파이팅!
근데 이러한 백골부대의 부대 내부 구호가 2013년 3월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당시에는 한미 연례 연합군사훈련 '키 리졸브'가 진행 중이었다. 이에 북한과 국내 종북 세력들은 '최고존엄 모독' 운운하면서 맹비난을 퍼부었고, 자신들의 관영 TV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국방장관, 합참의장 이름을 붙인 허수아비 표적에 사격을 가하는 선전 영상을 내보냈다.
하지만 2018년 4월 이후, 북한과의 평화 무드가 생기며 문재인 정부에 의해 대적관 구호가 폐지되었다. 이에 대해 제3자 및 출신자들의 의견이 갈리지만, 기간병들 입장에서는 희소식인데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해봐야 기간병들에게는 본인들 귀찮게 하는 짓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4. 근무환경
아무래도 별명도 그렇고, 부대 이미지가 상당히 험악해서인지 갓 입소한 장정들에겐 빡센 부대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306보충대 같은 곳에서 훈련소와 자대를 통보받을 때, "훈련소 3사단, 자대 3사단!" 소리를 들은 장정이 있으면 옆에 같이 있던 다른 장정들이 조롱하는 게[26] 국룰 마냥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306보충대에서 충원하는 병력은 제3야전군사령부 예하 부대들로 배치되었는데, 3사단의 경우 이들 중 가장 빡센 지형 조건에서 주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이커 부대라 군기를 강하게 잡는 데다 무릎과 허리도 많이 망가지고, 복귀하면 훈련 때문에 할 건 또 짜증나게 많고, 부대 전통 때문에 다른 육군 보병사단보다 훨씬 전투적인 자세를 요구하며 그렇다고 내무 생활이 편한 것도 아니다.
물론 그 빡세다는 지형 조건이라는 것도 과거 제3야전군 예하의 경기도 쪽 사단들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그래 봤자 진짜 강원도 중동부전선의 산악 지대에 비하면 3사단이 선녀로 보이고. 바로 옆 사단인 15사단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완만한 지형이다. 철원이 상당힌 넓은 평야 지대인데 화천과 경계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 15사단이 담당하는 섹터가 이 험준한 산악 지형이 시작되는 철원과 화천의 경계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에는 동부전선보다 더 춥다. 철원이 남한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파가 몰아치는 해에는 철원이 동시베리아보다 더 추운 경우가 많은데 상황실에서 겨울에 새벽 근무 하다가 뉴스의 아침 날씨를 보면 분명 훨씬 북쪽인 블라디보스토크보다 추운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MBC 주말 예능프로그램인 일밤의 병영 체험 예능 코너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의 해군 제2함대 다음 부대로 선정되어 12월 10일부터 5박 6일간 촬영을 하였으며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혹한기 훈련도 실시하였다. 이후 진짜 사나이 300의 부대들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의외로 외출/외박 시 가볼 만한 명승지가 많다. 도피안사, 직탕폭포, 임꺽정 바위 등. 일반인들은 겉으로만 보이는 해골과 관련된 이미지만 보고 빡세다고 생각하지만 철원-포천 지역이 강원도와 경기도 사이에 넓게 펼쳐진 분지 평야 지대다 보니 강원도 산악 지대에 위치한 부대나 원래부터 훈련량이 장난 아닌 기계화부대에 비하면 이미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부대에 속한다. 험준하다는 것도 3군 예하의 경기도 쪽 사단들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고, 철원이 15사단이 관할하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3군 관할인지라 주로 경기도 쪽 전방 사단들과 비교해서 그런 듯하다. 같은 강원도 철원 지역의 바로 옆 사단인 15사단에 비하면 훨씬 지형이 평탄하다고 할 수 있다. 15사단이 관할하는 철원과 화천의 경계 지점부터 험준한 산악 지형이 시작된다. 직할대, 18여단, 22여단, 23여단, 포병연대 중 18여단과 22여단은 GOP를 담당하는 부대인데 18여단은 담당 작전 지역 중 일부 구간의 지형이 강원도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하며 심지어 22여단의 담당 구역 중 절반 정도는 넓찍한 평야 지역이다.
2011년 때려잡자 김정일 구호가 북으로 유출되면서 한동안 북한이 완전히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당연히 북에선 게거품을 물며 책임자 처벌하라, 괴뢰당국의 호전광들은 광란의 댓가를 치를 것이다! 라고 패악을 부려댔다. 입만 열면 남한 대통령들을 비방하고 서울 불바다에 갖은 협박질을 하는 놈들이 저러니 웃긴 노릇이다.
모히칸 스타일과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강조하던 적이 있었다. 일명 백골컷(백골형두상)이라고 하며, 윗머리 9mm, 옆머리 1mm이다. 사단-연대-대대를 거치면서 계속 압박이 들어오고 간부들부터 머리가 잘려나가서 단기복무 간부 및 말년 병을 제외하고는 병, 간부 할 것 없이 사이좋게 빠박이로 생활하는 수준이다. 정작 저걸 시킨 사단장은 백골컷을 안 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안한다.
5. 예하부대
3사단 공식마크투명 제3보병사단의 예하부대
제18보병여단
제22보병여단
제23보병여단
포병여단
사단 신병교육대
5.1. 사단 직할대
본부근무대
수색대대(5.22완전작전)
과거 1992년 5월 22일 야음을 틈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월경하여 침투한 적 3명에 대해 퇴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수색대대를 투입하여 전원 사살한 작전이 있는데 5.22 완전작전이라 한다. 이때 공비를 사살한 중대장은 대장 진급에 성공하고 합참의장까지 올랐다.(정규전 제외하고 최초 을지무공훈장을 배출한 작전)
제3전차대대
공병대대
정비대대
보급수송대대
정보통신대대
의무대대
군사경찰대대
화생방지원대
방공중대
제305경비연대 제42관리대대, 제5군단 군기교육대와 같은 건물을 사용한다.
보충중대
5.2. 신병교육대
대한민국 육군 마크투명 대한민국 육군
신병교육대
제3보병사단 신병교육대 (백골신병교육대)
第三步兵師團 新兵敎育隊 (白骨新兵敎育隊)
The 3rd Infantry Division Recruit Training Center ("White Skull" Boot Camp)
위치
강원도 철원군 서면 금강로 7626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제3보병사단/신병교육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3. 제18보병여단 진백골
여단본부
군수지원대대
진백골1대대
아리랑2대대
백혼3대대(GOP)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제18보병여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4. 제22보병여단 혜산진
여단본부
군수지원대대
불사조1대대
이한림2대대(GOP)
야성마3대대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제22보병여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5. 제23보병여단 맹호
여단본부
군수지원대대
비호1대대(신병교육대)
백호2대대
청호3대대
수색중대
5.6. 포병여단 금성지구 화력사수
여단본부
선돌 11포병대대(KH179) 또는 육군최초창설 11포병대대
칠하나 369포병대대(K55A1)
선승 72포병대대(K55A1)
가온 635포병대대(K9)
5.7. 과거부대
제26기계화보병여단
토우중대(2019년 2월 28일 해체되었다.)
제71포병대대(KH179, 3.7완전작전 포병대대. 369포대와 통합됨.)
6. 출신인물
6.1. 장교/부사관
채명신 - 한국전쟁 당시 22연대 연대장과 사단참모장으로 있었다.
정승화 - 12.12 군사반란 당시 육군참모총장. 현리 전투 당시에 23연대 예하 대대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했었다.
이원계 - (?~1950.12), 한국전쟁 초기 북진 시기의 진백골연대 6중대장. 계급은 대위, 사후 소령으로 추서. 6중대는 북진 당시 함경북도 부령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대장 포함 중대원 전원(후방으로 후송된 1명 제외)이 옥쇄하고 말았다. 2010년대 중반 즈음 진백골연대의 모 소초의 이름이 이분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당시 6중대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고 최수용 옹(2011년 별세)은 울산에 추모관을 건립하고 6중대원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현재 6중대의 위령제는 2014년부터 철원에서 열리고 있다.
박한기 - 학군 21기 출신으로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이다. 소위시절 23연대 3대대에서 소대장을 역임하였으며, 중위 시절 같은 대대에서 훈련 및 작전항공장교와 정보장교를 역임했다.
백선엽 - 1946년 2월 3여단(현 3사단) 5연대 1중대장으로 부임해 1대대장, 연대장을 거쳐 3여단 참모장을 지냈다.
김승겸 - 육사 42기 출신으로 前 합동참모의장이다. 대위 시절이던 1992년 5월 22일, 야음을 틈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투한 무장공비 3명을 차단 및 수색, 교전을 통해 전원 사살한 5.22 완전작전(위에 설명한 은하계곡 대침투작전)에서 전초13중대장으로서 큰 공을 세워 을지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소령 진급 후에는 사단 예하 대대 작전장교를 역임했다.
이철원 - 육사 42기 출신으로 예비역 대령이다. 파병부대 아라우부대의 부대장이었다. 지난 2011년경에는 3사단 참모장으로 있었고, 그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캐슬린 스티븐스와 35년 만에 해후하였다. 1976년 이 대령은 예산중 1학년이었고, 캐슬린 대사는 그 학교 영어 교사였다.
최진규 - 학사 9기 출신으로 前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이다. 대령시절 사단 참모장을 역임했다.
김종민 -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재 사법위원회 보좌관으로 6.25 전쟁 당시 정승화가 있었던 18연대에서 중대장, 대대장으로 복무. 6.25전쟁 참전기 '대전쟁' 집필.
정철재 - 3사 23기 출신으로 前 육군교육사령관이다. 대령 시절 18연대장을 역임했다.
강건작 - 육사 45기 출신으로 前 육군교육사령관이다. 대령 시절 22연대장을 역임했다.
유욱상 - 육사 45기 출신으로 현재 제8군 부사령관이다. 소위 시절 수색소대장, 중위 시절 사단장 전속부관, 대령 시절 23연대장을 역임했다.
신희현 - 학군 27기 출신으로 前 제2작전사령관이다. 대령 시절 22연대장을 역임했다.
정덕성 - 학군 29기 출신으로 현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이다. 대위 시절 18연대 1대대에서 중대장을 역임했다.
노경희 - 여군 36기 출신으로 진급 후 부사단장을 역임했다.
오금손 - 독립운동가 오수암의 외동딸이자 한국전쟁 당시 간호장교로 복무했던 백골부대의 전설적인 전쟁 영웅. 일명 백골 할머니. 포항 형산강지구 전투의 국군야전병원에서 부상병의 수발을 들던 중, 기습해 온 조선인민군 병사 11명과 맞닥뜨리자 개인 무장인 M1 카빈으로 대응하여 6명을 사살하고 나머지를 패퇴시켜 살아서는 받기 힘든 2계급 특진을 받아 대위로 진급했다. 이후 K고지 전투 중 전우들과 함께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전역.
조종설 - 육사 41기 출신으로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역임했다. 대위 시절 근무했다.
노재현 - 육사 3기 출신으로 중령시절 포병여단 예하 11포병대대에서 대대장을 했었다.
6.2. 병
건일 - 가수 겸 배우.
겔부 - 꾸나꼬무이야기 작가. 22연대에서 복무했었다.
김도형 -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기타리스트. 2022년 7월 25일 전역했다.
김원기 - 前 프로게이머. 혜산진연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했었다.
김선웅 - 코미디언. 혜산진연대에서 행정병 및 CCTV병으로 근무 하였다.
김정현 - 배우. 21살때 입대하여 3사단 조교로 복무했다고 한다. 기사
김병휘 - 야구선수. 22여단 3대대에서 복무했었다.
김종수 - YTN 기자.
김칸비 - 웹툰 작가. 18연대에서 복무했었다.
나원탁 - 야구선수.
박영진 - 코미디언. 포병연대 예하 대대에선 PX병으로 복무했었다.
박호두 - 유튜버. 3사단 22연대 출신이다. GOP에 파견 갔었다고 함.
백호 - 생명과학 강사. 메가스터디 강의에서 썰을 풀며 밝혔다.
서강준 - 배우. 2021년 11월 23일 3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 후 운전병으로 후반기교육을 받은 뒤 제1포병여단으로 자대배치 받아 복무했다.
서영주 - 배우.
성일종 - 정치인. 학군사관 출신.
싸패 - 인터넷 방송인. 2021년 4월 3일 감스트의 방송에서 백골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고 밝혔다.
씨드락 - 前 오인용의 애니메이터. 박격포병으로 복무.
슈가킴 - 밴드 화노의 멤버. 사단본부 군악대
양동근 - 가수 겸 배우. 사단본부 군악대 출신. 이후 국방홍보원으로 전출 갔다가 그곳에서 전역.
우주하마 - 유튜버 겸 트위치 스트리머. 군대리아 먹방 중 본인의 경례 구호가 백골이라고 밝힘.
이규형 - 영화감독. 영화 DMZ, 비무장지대에서 자신의 경험을 영화화하였다고 밝힘. 3사단 작전과 행정병이었으나 수색중대로 전출.
이대열 - 가수. 2022년 3월 29일 입대했다.
이시언 - 배우.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 주호민과 신교대 동기라고 한다.
이용 - 잊혀진 계절로 유명한 가수. 1977년에 입대하였고, 통신대대 출신으로 33개월을 복무했다고 한다.
이준혁 - 배우. 국군홍보원 홍보지원대에서 복무 중 연예병사 제도 폐지에 따라 23연대로 재배치.
이종윤 - 목사, 신학자. 18연대 3대대에서 군종병으로 복무했으며, 자신이 복무한 부대에 벧엘교회라는 이름의 교회를 개척했다. 학보병으로 입대했기 때문에 귀휴했다고 한다.
이재진 - 가수. 사단본부 군악대 출신.
이호진 - 축구선수.
임영웅 - 가수. 미스터트롯 진
임준혁 - 가수. 사단본부 군악대 출신.
장동민 - 코미디언. 22연대에서 복무했었다. 베스트 댓글 참고.
장무환 - 국군포로.
재윤 - 가수. 2023년 3월 21일 입대했다. 사단본부 군악대 복무 중.
정철욱 - 코미디언 겸 개그 유튜버 그룹 쓰리콤보의 멤버.
주원 - 배우. 2017년 5월 16일 3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했다. 기초군사훈련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1등상을 받았고 수료 후 조교로 복무했다.
준밧드 - 인터넷방송인. 22여단 GOP병으로 복무중
조웅래 - 기업인. 맥키스컴퍼니 회장
진용진 - 유튜버. 이 글을 보면 진용진의 전투복에 노란색 패치가 붙어있는데, 노란색 패치가 3사단 예하 연대 중에서도 22연대를 의미한다. 또한,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영상에서 '백골'이라는 사람이 남긴 댓글에 따르면, 진용진은 정확하게 따지면 3사단 22연대 3대대 본부중대 출신이었다.
최기선 - 1966년 복무. 정치인, 민선 1~2기 인천광역시장. KBS1 <TV 내무반 신고합니다> 1999년 5월 3일 방영분에서 언급.
형원(몬스타엑스) - 가수. 2023년 11월 14일에 입대했다.
홍성국 - 정치인, 학생군사교육단 24기 출신.
G-DRAGON - 가수. 2018년 2월 27일 3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하여 11포병대대에서 복무했다.
7. 사건 사고
8. 전쟁 범죄
제1공화국 당시 3사단의 학살은 주로 부산광역시와 대구광역시를 비롯한 경상도 일대에서 벌어졌다. 경상도 지역은 끝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사수했던 지역이었으므로 여타 지역과 달리 정부에 의한 학살이 9월까지 꾸준히 벌어졌다. 특히 원래 빨치산 토벌전을 위해 창설되었던 제23보병여단(당시 연대)의 김종원 23연대장은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살해했던 것으로 악명높았다.[53] 여타 3사단 장병들 역시 우익 정치깡패 집단인 서북청년단 출신자들이 다수 복무했기에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지나치게 잔혹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 발발 이전 경산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
1948년 5월부터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 대략 2년간 오늘날의 경산시 일대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 여순사건 당시 반란을 일으킨 국군 좌익분자들과 북한의 남파간첩들이 경상도 산악지역들에 잠입하자 국군과 경찰이 동원되어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제3보병여단의 제6연대와 6연대가 개편을 거친 22연대가 국군 정보국의 호림부대 및 경산경찰서와 함께 가담했다. 이 중 학살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호림부대였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다. 확인된 희생자들은 10명이지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는 최소 72명 이상이 살해되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이외에도 인접한 영천 일대에서도 학살이 벌어졌다.
보도연맹 학살사건
3사단 역시 한국전쟁 개전 초기 후퇴 과정에서 벌어진 보도연맹 학살사건에 깊게 관여된 부대이다.
경북 영덕군
1950년 7월 8일 영덕군 일대에서 벌어졌던 보도연맹원 학살은 영덕경찰서와 함께 23연대가 주도했다. 23연대는 영해면과 창수면 주민 80명을 살해했고 영덕경찰 강구지서는 지역 주민 30명을 학살했다. 영덕경찰 본청은 뫼골에서 약 160명을 살해했다.
경북 울진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단원인 신기철의 저서 《전쟁범죄》에 따르면 23연대는 7월 울진군 일대에서도 울진경찰서와 함께 매화 전시골에서 6명을 학살했다.
경북 포항시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포항시에서 벌어진 보도연맹원 학살에는 3사단 외에도 대한민국 해군 포항경비사령부, 포항경찰, 그리고 대한청년단이 관여되어 있다. 3사단과 한청, 포항경찰은 포항의료원 및 고디굴, 오늘날 과메기 덕장이 있는 구룡포에서 직접 희생자들을 총살하였다. 해군은 경찰의 협조를 얻어 포항 앞바다에 주민들을 끌고 나가 총살한 후 돌을 매달아 수장했다. 특히 해군의 학살은 당시 해군참모총장 손원일의 직접적인 명령이 있었다. 희생자들의 정확한 숫자는 불명확하며 수장된 이들이 200명, 육지에서의 총살로 살해된 이들은 도합 약 29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군의 형무소 재소자 학살
대구형무소 학살 사건
1950년 7월 3일부터 9일, 동년 7월 27일부터 31일까지 약 2차례에 걸쳐 대구형무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학살로, 보도연맹 학살 사건 및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사건의 일부이기도 하다. 학살이 벌어진 장소는 경산 코발트광산 외에도 대구 본리동, 칠곡군 신동재, 달성군 가창골 등이다. 3사단 22연대 헌병대가 우익 민병대인 대한청년단의 조력을 받아 주도했으며 희생자는 최소 1,500명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천형무소 학살 사건
1950년 7월 김천형무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학살. 역시 보도연맹 학살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약 600명의 미성년 소년범과 좌익사범이 3사단 22연대 헌병대와 김천지구 CIC, 김천경찰서,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미군에 의해 구성면과 대항면에서 집단 총살당했다. 나머지 300명은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어 그곳에서 살해당했다.
9. 기타
국방부 제작 영화 크레파스의 무대가 된 곳이다. 또한 1990년대 회고풍 청춘 영화인 1999, 면회도 작중 인물이 이 사단에 복무한다는 설정이라서 이 부대와 관련된 촬영지가 많다.
1993년 3월 14일 및 1997년 3월 2일자 MBC <우정의 무대>에서 소개되었고, KBS1 <TV 내무반 신고합니다>에선 1999년 5월 3일, 2000년 4월 3일 및 8월 7일, 2001년 6월 4일 등 총 4번 소개된 바 있었다. 후신인 <청춘 신고합니다>의 경우 2004년 5월 10일 방영분에서, MBC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의 경우 36~41회에서 각각 다루어졌다.
부대마크에 해골이 있다보니 주한미군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전역자의 말에 따르면 연합훈련 하고 부대패치 교환을 친목겸 하는데 백골마크가 불티나게 교환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대 상징이 해골이라 언더테일의 샌즈하고도 엮어서 샌즈부대 라고도 한다.
간혹 3사단, 정예사단, 해골이라는 공통점에서 제3SS기갑사단을 생각나게 만들기도 한다.
군인 자녀들을 위해 사단 병설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유치원 이름을 부대 이름에서 따온 탓에 백골유치원이 되어버렸다. 높으신 분들이 보시기에도 이름이 좀 그랬는지 현재는 진백유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