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41
백야 김정웅 시인
백야(白夜) 김정웅(金正雄)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예총에 있을 때 가끔 가는 출장 중 공식행사장에서 그냥 수인사 정도로만 하고 지내다가 내가 한국문협 사무처장 재임시에 그가 전북 고창에서 문협 지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교류가 시작 되었고 그후에 고창 미당문학관 관장으로서 지역문단과 한국문학 발전에 앞장서서 괄목할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중 우리는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문학을 하기 위해서 시를 쓰기 위해서 때로는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있어도 참아야 하고 때로는 심장이 짜릿짜릿 저미어 오는 것도 참아야 했다. 그 진통을 겪고 나서는 그 열매는 달다. 수난의 시어를 하나하나 맑은 생수로 건져올릴 때 화자는 쾌감을 맛본다. 어찌하여 나의 문학청년 시절은 허무하고 어설펐다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나는 나대로 의의가 있었고 진실이 흘렀고 낭만이 깃들고 희망이, 희열이, 동경이 내 안전에 버름버름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제2수필집『올곧은 喊聲』에 수록된 「나의 문학청년 시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너나 할 것 없이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했던 문학청년들의 고뇌와 방황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1960년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시에 받은 위문편지-D여고생 ‘안나’와의 편지 교환을 통해서 문학에 대한 동경이 그의 뇌리에서 더욱 정립되어 1990년에 드디어 처녀시집『안나의 강변』을 상재하기도 했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다.
그는 1938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하고 미국 아리조나 벤슨대학에서 영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활동과 업적은 지대하다. 한국예총 고창지부장과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문협 한국문사발굴위원장, 세계시문학연구회장, 한국자유시인협회 이사, 그리고 자유문예학과 마들문예대학을 경여하고 있다.
또한 그는 1963년『靑春』지에 수필 「그리움」이 당선되고 1975년에는 KBS에서 공모한 시가 당선되어 정식으로 문학활동을 했지만, 그는 다시『동양문학』과 『문예사조』에 시와 평론으로 재등단의 길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시집『안나의 강변』『선운사 바람소리』『태양이 떠 있는 시각』『모양성 신화』 『계절속에 피는 사랑』을 비롯해서『신인 내린 아름다운 설경』『이상향의 여인』『상사화』에 이르기까지 총 21권을 상재하여 그의 작품성과 동시에 문학적 근면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수필집『백성을 하늘과 같이』『올곧은 함성』『문화관광해설사의 변』과 평론집『桐里문학과 판소리(신재효론)』외 다수가 있다. 그는 이와 같이 주옥 같은 작품으로 ‘고창군민의 장’과 ‘세계시금관왕관상’, ‘한국자유시인상’, ‘미국 에피포도문학상’, ‘한국민족문학상’, ‘고창문학상’ 그리고 ‘국제펜작촌문학상’ 등을 수상하는 영광을 가졌다.
한 오라기 바람 소리에 / 부서지는 강물이 되어 / 달빛 그림자로 서 있다. // 밤마다 꿈결 속에 / 누군가를 연민하던 추억이 / 추녀 끝에 찰랑대고 // 아슬한 하늘과 바다에 맞닿는 / 공허의 터널에서 / 사뿐히 내딛는 안나의 발자국소리 // 해조음에 명멸되었다가 / 낭랑히 들려오는 안나의 목소리 // 태산을 헐어내어 바다를 메우고 / 호수를 막아 정원을 가꾼다 해도 // 내 마음은 / 싱그러운 5월의 강변에 서서 / 안나의 가슴에 / 한 송이 장미꽃을 달아주련다.
그는 제20시집『시상향의 여인』에서 연작시 18편 중에서「안나의 강변 . 2」전문이다. 그기 군 복무시 ‘안나’라는 여고생과의 위문편지 사건이 이처럼 시로 형상화하는 것은 문학청년의 가슴 깊이 각인된 체험 중에서도 ‘그대’가 지워지지 않는 영원의 여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와 나는 국내 문학심포지엄 외에도 해외문학심포지엄이나 문학기행에도 함께 참가한 경력이 많다. 특히 저 멀리 이집트에서 2010년 10월 2일부터 9일까지 개최된 문학기행의 기억은 새롭다. 열사의 사막에서 고대문명의 유적지를 답사하는 일은 생애에 가장 잊지 못할 여행으로 남아 있다.
아부심벨은 아스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 제19왕조 람세스 2세가 누비아 지방에 건립한 신전 / 이를 통해 자신의 권력과 신성을 과시하고자 한다 // 입구에 있는 20미터의 거대한 네 개의 좌상이 있고 / 왼쪽 머리와 토르소는 지진으로 훼손되었으며 / 태양신을 숭배하여 동쪽을 향해 지어져 / 1년에 두 번씩 햇빛이 신전 안으로 비치도록 되었다 // 신전은 나일강 위의 절벽에 사암을 깎아 지었으며 / 유네스코가 기금을 조성하여 수몰되지 않도록 / 정교하게 3등분 되어 원형 그대로 옮겼다 // 사우너은 크게 람세스를 위한 대신전과 / 그의 왕비 네페르테리 왕비를 위한 소신전으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이집트 ‘이부심벨의 대신전’을 방문하고 상세하게 작품으로 창출하였다. 그는 이집트 기행시「고대 문명의 이집트」를 연작시로 10편을 완성하였다. ‘룩소’와 ‘피라미드’, ‘스핑크스’, ‘멤피스 박물관’, ‘람세스 상’, ‘하셉수트 장례신전’ 등과 수도 카이로의 인상 그리고 나일강과 아스완 댐, 사막의 열기 등이 인상 깊게 묘사되어 있다.
그와 나는 이전에 2008년 4월 30일, 문협 개성 방문에도 동참해서 선죽교와 박연폭포 등 옛 송도3절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보고 온 경험도 있다.
그리고 2012년 6월 27일부터 30일까지 그가 회장으로 있는 세계시문학연구회 주관으로 ‘한-몽 문학교류 심포지엄’에 참석해서 몽골을 두루 기행한 바도 있다. 그와 나는 해외 기행도 이첨 많은 동행을 통해서 인간적인 친분을 쌓으면서 문학적인 교분도 동시에 축적하는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그는 나에게 말한다. ‘그 언제 고창 한번 내려 오시오. 풍천장어와 복분자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미당 서정주문학관 관장으로 있으면서 우리 한국문학의 정수(精髓)를 계승하고 우리 서정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불철주야 전국을 누비고 있는 그의 근면성을 본받아야 하리라.
그는 지난날 공무원과 방송국 일을 하면서 남이 흉내낼 수 없는 특기를 하난 가지고 있다. 문학행사가 끝나고 여흥시간에는 그가 구사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의 모방은 좌중의 인기를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묘기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특유의 유연한 음성과 음율로 읊는 시낭송도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훤칠한 키와 몸매는 신사의 전형적인 맵시로 우리 문단의 칭송을 받고 있다. 국제펜 회의나 문협 회의때 자주 만나면 소주 한잔과 더불어 서로의 안부를 anse는다. 이제 우리도 고희를 넘기면서 몸조심하자고.......
올해 6월에는 시계시문학연구회 심포지엄을 필리핀에서 개최한다는 홍보에 여념이 없다. 동행하자는 간곡한 부탁을 전해주고 있다. 그때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