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이 비유는 도마가 자신의 마음 너머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보고 만지는 체험이다.
나. 에고의 벽을 헐고 내면에 임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고 만지는(호라오) 내용이다.
다. 도마 자신이 하늘의 제사장이 되어 십일조를 드리고 받는다.
라. 세상의 돌 성전(교회)에서는 십일조와 헌물(아들)이 아닌 사망의 십일조가 되는 것이다.
마.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다(하나님은 대상이 아니다).
2. 본론
가. 이 비유는 도마가 자신의 마음 너머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보고 만지는 체험이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7).”
이 비유는 도마의 속사람의 손(깨달음의 손)으로 자신의 옆구리(몸 된 성전)를 만지는(호라오) 체험을 한 것이다. 도마 자신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직접 보고 만지고 있는 내용이다. 몸 밖에 나타난 예수를 보고 만지는 내용이 아니다. 성경은 비사와 비유의 관계로 번역하지 않으면 오역하게 된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내면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고 만지는 내용이다. 도마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말한 것은 대상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비사로 된 말씀은 깨어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나. 에고의 벽을 헐고 내면에 임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만지는(호라오) 내용이다.
종교인들이 해석한 이 문장은 하나님을 대상화한 것이다. 그러나 닫혀 있는 자신의 내면에서 에고의 벽(마음의 벽, 이 세상 가치관의 벽)을 허물고 내면에 임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고 만지는(호라오) 내용이며, 도마의 에고(카르디아)를 찢고 내면에 임하신 하나님과 하나(호라오) 된 것이다. 도마는 에고(겉 사람) 안에 갇혀있었으나 그리스도(속사람) 예수가 도마의 에고의 벽을 뚫고 임하심으로 겉 사람의 마음(카르디아)은 사라지고 깨달음을 통해서 자신의 속사람을 보고 만지는 내용이다.
그래서 도마는 자기 자신인 주님을, 나의 하나님하고 외치게 된 것이다. 이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이 도마 안에 세워진 것을 호라오 하면서 고백하고 있는데 이는 도마 자신이 참 십일조로서 아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대상이 아니다.
다. 도마 자신이 하늘의 제사장이 되어 십일조를 드리고 받는 내용이다.
도마는 깨달음을 통하여 내면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늘의 제사장이 되어 십일조를 드리고 받는 내용이다. 도마 자신이 제사장으로써 드리고 하늘의 왕으로서 참 생명이 된 자신을 받는 것이다. 속사람의 눈으로 보는 ‘호라오(만진)’는 현재 상만 가지고 있다. 그러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떨쳐버리고 지혜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차원의 나(에고 에이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몸과 마음은 내가 아닌 것이 된다. 몸과 마음은 잠시 조건에 따라 드러난 것으로 이 몸과 마음을 잠시 이용하는 것이 된다. 십일조를 바친 결과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아무나 참 십일조와 헌물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서만 가능하다.
라. 세상의 돌 성전(교회)에서는 십일조와 헌물(아들)이 아닌 사망의 십일조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돌 성전(교회)에서는 참 십일조와 헌물이 아닌 허상인 돈 십일조와 돈 헌물을 드리고 받는다. 사망의 십일조다. 이 행위가 도적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하고 있는것도 모른다. 예수는 이 행위를 도적질, 간음, 살인으로 말씀하셨다. 간음한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였다. 참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을 대상으로 섬기는 자들은 이러한 하늘의 비밀(뮈스테리온)을 모르고 있다. 이들은 내면에서 하나님과 하나 된 자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인 것이다. 미친 자들로 본 것이다.
종교인들에게는 감히 위대하고 전지전능하고 우주보다도 더 크나큰 하나님이 더럽고 추악한 인간 안으로 들어와서 계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죽여야 할 이단인 것이다. 기독교는 피의 역사로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울이 그러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그의 생각은 모두 무너졌다.
자신 안에서 핍박하던 그 예수가 나타났다. 비로소 하나님 말씀의 핵심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선 조건이 제시되어 있다. 자신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자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고 만지는 선 조건이다.몸 밖에서 종교 행위를 하는 내용이 아니라 내면의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이론이 아닌 실제 사건이다.
마.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다(하나님은 대상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되는 자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라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거짓을 진리로 믿고 있다. 하나님은 죄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의 빛으로 하나 된 자는 어떤 죄도 없다. 왜냐하면, 죄가 있는 마음(휘장)이 끝났기 때문이다. 죄를 초월한 자는 어떠한 종교 행위를 할 수도 없고 다른 이에게도 종교 행위를 종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종교 행위를 용서(아피에미)하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