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일 일본의 나가노현 야마노우치초 음악당에서 아시아 각국의 젊은 연주자 25명이 참가한 클래식 음악제에서 비공식적으로 무대에 섰다.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세레나데’,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를 약 30분간 지휘했다. 정식 연주회가 아닌 공개 리허설 자리라 그는 애초 의자에 걸터앉아 지휘를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정이입을 하는 부분에서 벌떡 일어나 온몸을 사용해 정열적으로 지휘했다. 또 “이옙” “하이” 등의 목소리를 내며 세심한 부분까지 연주자들에게 지시를 하는 등 전성기 때와 크게 다름없는 열정적 모습을 선보였다.
무대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늘이 내 제 2의 인생의 첫날”이라고 감격했다. 그는 또 “음악은 멋지다. 음악가가 되길 정말 잘했다”라며 “지휘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 오자와는 “가족은 럭비에 비유하면 스크럼 같은 존재”라고 “오늘 지휘를 하면서 (나를 지탱해 준 가족의 고마움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선 “기관을 절개했기 때문에 말하기 힘들다. 15kg나 몸무게가 빠졌다. 현재는 음식을 하루 4~5차례에 걸쳐 조금씩 나눠 먹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또 “다만 고민스러운 것은 여섯 걸음 정도 걸으면 허리가 아파 앉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지휘 중에는) 정작 벌떡 서고 만다”고 웃음을 지었다.
오자와는 5일 나가노현의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정식으로 복귀한다. 당분간은 12월과 내년 3~4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되는 음악제 ‘재팬 NYC’에 전념할 예정이다.
오자와는 생존해 있는 전 세계 지휘자 중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마에스트로(거장) 반열의 지휘자로 평가받고 있다. 2006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60년간의 아시아 영웅’의 한 사람으로 뽑기도 했다.
그는 1935년 중국 선양(瀋陽)에서 일본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7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 명문 도호(桐朋)음악학교에서 수학한 뒤 독일의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사사하며 총애를 받았다. 73년 38세의 나이에 미국 5대 오케스트라의 하나인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맡아 30년간 재임했다. 2002년 빈 슈타츠오퍼 음악감독에 취임했다. 베를린 필, 빈 필하모닉을 정기적으로 지휘하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유연한 지휘 스타일에다 자유분방한 복장이 트레이드 마크다.
2006년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그의 지휘에 감명을 받고 평양국립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초빙하려다 무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