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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정장공의 복수(5)
"송나라다!"
위(衛)를 칠 것인가 송(宋)을 칠 것인가 고민하던 정장공(鄭莊公)은 주우가 살해되고 위선공(衛宣公)이 새로운 군주로 즉위함에 따라 마음을 하나로 정할 수 있었다.
전쟁 준비에 착수했다.
- 복수전이다.
신하들의 사기는 높았다.
모두들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지휘해야 할 상경 제족(祭足)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송나라를 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가 아니던가.
정장공은 궁금하여 제족(祭足)을 불러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팔짱만 끼고 있소?"
제족(祭足)이 기다렸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신은 지는 전쟁에는 참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는 전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번 전쟁은 집니다."
"그대의 말을 듣고 송나라를 치려 하는데 지는 전쟁이라니,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구려."
제족(祭足)은 정장공의 얼굴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지난번에 우리나라를 친 나라는 송(宋)나라 하나가 아니라 5개국 연합군입니다."
이번 정(鄭)나라가 일으키려는 전쟁은 그것에 대한 복수전이다.
정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면 당연히 다른 네 나라는 겁을 먹고 송나라 요청이 없더라도 다시 연합하여 구원군을 보낼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어려운 싸움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할 일.
"아니, 어려운 싸움이 아니라 지는 싸움이 됩니다. 이래도 신의 말뜻을 모르시겠습니까?"
정장공(鄭莊公)은 깜짝 놀랐다.
제족(祭足)이 지적한 사항은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그렇군. 내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소. 군사를 일으키기에 앞서 저들의 연합을 막을 계책부터 마련해놓았어야 했는데........과연 그대의 지략은 천하 제일이란 말을 들어도 손색이 없소."
"과찬의 말씀입니다."
"필시 그대에게 묘책이 있을 듯싶은데?"
"묘책이라기보다는......진(陳)나라는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먼저 진나라와 화친을 맺고, 그 다음 멀리 있는 노(魯)나라와도 좋은 조건을 내세워 손을 잡습니다. 그런 후에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가면 반드시 송나라를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과연 지낭(智囊)이오!"
정장공(鄭莊公)은 탄복한 후, 사자를 진나라로 보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 어찌 자기 뜻대로만 움직일까.
정장공(鄭莊公)의 화친 제의를 받은 진환공(陳桓公)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 정장공은 희대의 사기꾼이다. 어찌 그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사자를 돌려보낸 후 신하들에게만 들려준 말이다.
신하들 중에 이복 동생인 공자 타(陀)가 끼여 있었다. 그는 진환공과 생각이 달랐다.
- 정장공(鄭莊公)은 희대의 효웅입니다. 그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우리 진(陳)나라의 보배입니다. 지금이라도 사자를 다시 불러들이십시오.
이에 진환공(陳桓公)이 대답했다.
- 정장공(鄭莊公)이 화친을 맺으려면 송이나 위나라 같은 큰 나라와 맺을 것이지, 왜 하필이면 우리같이 작은 나라와 화친을 맺으려 드는가. 이는 필시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 사이를 이간시키려는 수작이 틀림없다.
한편, 진환공(陳桓公)이 화친을 거절했다는 보고를 받은 정장공은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화를 냈다.
"진(陳)나라가 무엇을 믿고 이리도 거만한가. 송(宋)나라를 치기 전에 먼저 진나라부터 박살내리라!"
제족(祭足)이 곁에 있다가 급히 만류한다.
"주공은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정나라는 강국이며, 진(陳)나라는 약한 나라입니다. 어째서 진나라가 우리의 청을 거절했는지 그 이유부터 알아야 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주공께서 진(陳)나라와 다른 나라를 이간시키려는 계책으로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에게 진나라가 우리의 청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묘안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노여움을 잠시 거두십시오."
제족(祭足)은 정장공의 귀 가까이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잠시 후 정장공(鄭莊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좋은 생각이오. 그대 말을 따르리라."
다음 날, 한 무리의 정(鄭)나라 병사들이 은밀히 도성을 빠져나가 진나라 경계까지 깊숙이 들어갔다.
그들은 사냥하는 척하다가 느닷없이 진(陳)나라 마을로 침입하여 백성들과 재물을 1백여 수레쯤 약탈하고는 재빨리 신정으로 귀환했다.
약탈해 온 포로와 재물을 확인한 정장공(鄭莊公)은 이번에는 대부 영고숙을 불러 지시했다.
"그대는 진나라 포로들과 재물을 가지고 완구로 가 진환공(陳桓公)에게 바치고 잘못을 사죄하시오."
영고숙은 정장공(鄭莊公)이 노리는 바를 짐작했다.
그 날로 진나라 백성들과 재물이 실린 수레를 끌고 진(陳)나라로 향했다.
그가 완구에 당도했을 때는 진환공(陳桓公)과 그 신하들이 궁정에 모여 한창 정나라의 불법 행위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영고숙은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예를 올린 후 진환공(陳桓公)에게 말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귀국에 대한 약탈 행위는 우리나라 관리가 정과 진 두 나라 관계가 잘못된 것으로 오해하고 일으킨 일입니다. 이는 순전히 우리 정(鄭)나라의 잘못이므로 제가 우리 주공을 대신하여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이제 억울하게 잡혀온 사람들과 재물을 모두 돌려드리니, 군후께서는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주십시오. 아울러 우리 주공께서는 진(陳)나라와 형제의 우호를 맺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군후께서는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오."
영고숙의 인품은 진(陳)나라에까지 알려져 있었다.
진환공(陳桓公)은 정장공이 명신 영고숙을 사신으로 보내 사죄의 말을 전하고 잡혀간 포로와 약탈해 간 재물을 돌려주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 이 정도면 정(鄭)나라가 우리와 화친을 맺으려는 뜻이 진실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마침내 진환공(陳桓公)은 정나라와의 화친을 허락하고 영고숙을 융숭히 대접해 돌려 보냈다.
모사 제족(祭足)의 책략과 명신 영고숙의 높은 인품을 적절히 이용하여 진(陳)나라와 화평조약을 이끌어낸 정장공(鄭莊公)은 다시 중신들을 정청으로 불러 송나라에 대한 복수전을 거론했다.
"진(陳)나라가 우리와 손을 잡았으니, 이제 군사를 일으켜 송(宋)나라를 치는것이 어떻겠는가?"
"기다리던 바입니다."
모두들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제족(祭足)은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정장공(鄭莊公)이 그런 제족을 향해 물었다.
"또 무엇이 부족한가?"
제족(祭足)이 대답한다.
"송나라는 공작(公爵)의 나라입니다. 왕실에서도 송나라에 대한 대우가 결코 소홀하지 않습니다. 경솔히 쳐들어갔다가는 오히려 왕실과 다른 제후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제족(祭足)의 말이라면 일단 듣고 보는 정장공(鄭莊公)이었다.
처음의 호기로운 기세와 달리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좋은가?"
"일단은 주공께서 낙양의 왕성으로 들어가 천자께 알현을 청하십시오. 그런 후에 천자의 명을 받아 송(宋)나라를 친다고 널리 선전하면 대의명분도 서고, 제나라나 노나라를 비롯한 다른 제후들도 떳떳이 부를 수가 있습니다."
정장공(鄭莊公)은 얼굴을 활짝 펴며 무릎을 쳤다.
"만전지계(萬全之計)란 이를 두고 하는말이로다."
"다만 한가지 당부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정장공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제족(祭足)이 염려스런 투로 말했다.
"무엇이오?"
"이번에 입조하시면 2년 전 곡식을 훔쳐온 일로 인해 주환왕께서 주공을 홀대하실 수도 있습니다. 왕이 무슨 말을 하여도 주공께서는 참을 자신이 있습니까?"
"그런 것이라면 아무 염려 마오. 한 순간의 홀대쯤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계책이 정해지자 정장공(鄭莊公)은 세자에게 나라를 맡기고 제족(祭足)과 함께 오래간만에 낙양으로 향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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