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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신성”과 “속죄”는 정한 위치에 도달하다
Ⅰ. 신성의 묘사의 뛰어난 가치
1. 개인적인 탈선에서 그릇된 결론이 내려짐
재림교의 비교할 수 없는 증인의 증언
그의 모든 충만함 중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이해할 수 있는 전반적인 주제는 전장에 제시되어왔다. 이 증거는 영감 받은 믿음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화잇 부인의 좀 더 나아간 이중의 증언 첫째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 다음 십자가에 관련된 완전한 속죄에 관한 제시를 보충하고 비교한다.
이것들은 자주 강조된 바와 같이 단체에서 공인되지 않고 연합된 견해가 아닌 저들 개인의 견해를 나타낸 개인이 책을 쓴 어떤 불행한 표현들이 비 SDA 학자들 중에서 재림 교도들은 본래부터 그런 것을 주장하는 실제로 적그리스도의 일과 의심 없이 일반적인 그렇게 묻기를 이것들은 최초의 재림교를 구성하는 모든 자들의 정직한 진정한 견해가 아니었는가? 왜냐하면 이 음성들은 뛰어난 사람들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저들의 질문은 이해할만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비난에 대하여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되고 솔직하게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이해할만한 조사를 통한 결론
가장 효과 있는 답변은 의심할 것 없이 재림교의 주요 증인의 현저한 증언에 따르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계속되는 증언의 일치성과 계속 검이 입증되고 이 주요 진리들에 관한 재림교의 진수인 예수의 믿음 혹은 영원한 복음의 핵심의 위치에 놓여있는 영원한 진리들에 관한 어떤 이들의 그릇된 견해를 부정하는 화잇 부인의 증언에 따르는 것이다. 그 결과들은 빛을 비추어 주고 만족을 주고 아마 깜짝 놀라게 함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우리가 수십 년에 걸친 이 두 기본적인 진리에 관한 부인의 저서들을 조직적으로 조사해 보기까지는 엘렌 화잇의 묘사의 충분한 의미를 인식할 수 없었다. 이것을 우리는 여기서 부인의 전체 증언을 기록하면서 해 보겠다.
3. 그의 모든 충만함 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높임
이 묘사 중에 올바른 생각과 건전한 결론들을 위한 연구와 인재를 위하여 그리고 최고의 질서 중에 구성적인 검토를 위한 주제들이 수십개 있다. 어떤 이들이 그렇게 하는 경향을 지금까지 가겨온 바와 같이 보통 지성인들에게 내려다보이는 설교를 하거나 경박한 이야기들, 무가치한 제목들, 사소한 질문들, 무익한 추측들에 의존함으로 우리의 목회를 결코 값싸게 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거대한 주제들, 고상한 이야기들, 변화시키는 원칙들, 우리 자신의 감동받은 신성한 충동들을 제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백성들의 시야를 높이자. 이것들은 필수적으로 향상시키고 실천으로 인도한다. 이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큰 주제들을 잡으라는 하나님이 조건에 응할 수 있다(E. G. W, R&H. 4. 9. 1906). 우리가 이 웅대한 주제들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때 세상은 초월적인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며 그러한 구세주의 충만하신 임재와 권능으로 감동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군중들은 일어나서 우리를 복 있는 자라고 부를 것이다. 수많은 증가되는 수의 소위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의 모든 충만하신 속죄에 관한 영원한 진리들을 대부분 내버린 이 시대에 그리하여 저들의 백성들은 혼미하여 이 표류와 탈선의 시대에 빛과 확신을 더듬어 찾고 있는 이 세대에 누리들이 일어나서 우리를 복되다 부를 것이다. 이때는 우리의 황금 시기요, 우리의 최상의 기회이다.
4. 신성 문제에 엘렌 화잇의 투고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거기 관계된 것 등에 관한 엘렌 화잇의 취재 범위를 공개하련다. 그것은 범위에 있어서 웅장하다. 여기에 통찰력, 이해성, 균형, 신비성이 있다. 아무리 중에 어떤 저자도 일찍이 그 취재범위에 근처에 갈 수 없다. 우리의 최대의 신학자들도 그 감명 깊은 개관이나 내용에 견줄 만큼 가까이 가지 못한다. 우리는 이 타협과 불확실의 시대에 너무 주저하고 너무 겁내고 너무 불확실하고 담대하고 적극적인 성서에 기초된 확신을 표현하는데 너무 두려워해 왔다. 이 묘사들은 기초 진리들의 저들의 파악에 있어서 과거와 현대의 세상의 대 신학자들의 제시와 비교된다고 저들 자신이 주장했다. 그리고 이 말씀들은 저들의 눈을 흐리게 하는 광채로 때때로 눈부신 학식 있는 신학적 빛들에 의존하는 기울어진 것과 불균형이 없다. 우리는 부끄러워할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자랑할 것뿐이다. 그리스도의 00한 선재와 완전한 신성,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 문자적인 부활, 실제적인 승천, 그리고 임박한 직접 재림 등에 관하여 광범위하게 도전하고 부정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신성의 충분한 진리에 관한 엘렌 화잇의 투고 속에 모든 것이 자랑할 것뿐이다. 여기에 소유하고 사용해야 할 닻이 있고 한 안내서가 있고 청사진이 있다. 여기에 SDA의 확고부동한 신앙이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주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래에 따옴표로 간을 막음 중추적인 부분들과 함께 인용문들은 단순히 Question on Doctrine의 부록 A와 B항에 값비싼 수집에서 끌어온 조직적으로 논리적 연락이 있는 엘렌 화잇의 주요 구절들이다. 그 책에 있는 충분한 성구와 더불어서 그 내영은 왜 우리와 같지 않은 신앙을 가진 학자들이 QD의 분명한 이 절정으로 인해서 엄청나게 감명을 받았는가를 해명한다.(SDA Bible Commentary, 7-A권에 재판됨)
Ⅱ.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놀라운 제시
여기에 그리스도의 00하신 선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성, 성육신 동안의 그의 본성, 신성과 인성의 전에 없던 연합, 그가 우리의 본성을 취하실 때 실제로 쓰셨던 것, 우리의 죄악적 경향은 쓰시지 않았으나 실제로 본래 그의 것이 아닌 우리의 죄, 죄책, 징벌 등이 모두 그 분에게 전가되었다. 다음에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묘사가 있다.
1. 초월적 그리스도의 신성
무엇보다도 먼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는 본질과 품성과 목적에 있어서 영원하신 아버지와 하나이시다. 그와 아버지는 같은 본질이시다(Signs 11. 27. 1893, p. 54). 그것은 본질과 존재이다. 그는 하나님의 특성들을 소유하신 아버지와 동등이시다. 그렇다. 그 보다도 그는 본질적으로 최고의 의미에서 하나님이시다. 그는 영원토록 복되신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시고 자존하신 분이시다. 화잇 부인은 그것을 반복한다. 그는 영원하신 자존하신 창조되지 않은 분이시다. 그는 근본적 빌리지 않은 파생되지 않은 생명이시다. 그는 모든 것의 근원이시오, 보존자이시다(부인의 독특한 문구에 있어서 얼마나 놀라운 묘사인가. 그것은 인쇄되었던 초기의 반대되는 영감 받지 않은 개인적 견해들과 직접 정반대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부터 존재하시고 구별된 존재이시나 아버지와 하나이시다. 그가 영원하신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 중에 계시지 않은 한때도 결코 없었다. 모든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연합되어 있다. 그는 모든 영원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영광들에 동참하셨다. 영원한 날부터 그는 아버지와 하나이셨다. 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어찌 이보다 더 이상 말할 수 있으며 더욱 명백하게 더 모호하지 않게 말할 수 있겠는가! 언어로서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묘사를 할 수 없다. 이것은 모든 아리나 주의에 대하여 완전한 해독제이다. 다음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그리고 영원한 한 선재와 삼위의 관계를 주목하라.
2. 영원한 신성의 제 2위
더욱이 그는 하늘 트리오의 세 살아 계신 인격자 중의 제 2위였다. 신성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구성된다. 하늘에 있는 세 최고의 권세요(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하나님의 이름은 삼중의 이름이다. 그것이 기초적 삼위일체이다. 그리고 그것이 권위 있는 재림주의이다. 다음은 성육신 동안에 그리스도의 본성을 주복하라. 그는 우리 인간 본성을 취하셨으나 우리의 죄악적 기질은 취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죄, 죄책, 죄의 형벌은 모두 그분께 전가되었으나 실상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더욱 놀라운 표현이었다.
3. 인성과 신성의 연합
성육신은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붙잡아 매는 금사슬이다. 성육신 기간동안에 그리스도는 하나의 진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육신 중에 있는 하나님이었다. 그 안에는 모드 ㄴ신성의 충만함이 육체도 거하신다. 그는 위엄과 영광 중에 아버지와 동등이셨다. 그 무한의 연합은 타락한 인류의 유일한 희망을 공급하신다. 그리스도 안에는 두 본성이 한 인격 안에 신비하게 섞여 있었다. 신성은 인신으로 옷 입혀졌다. 그가 인성의 옷으로 그의 신성을 가리셨을 때 그는 그의 신성과 분리되지 않았다. 신성과 인성이 병합되었다고 엘렌 화잇은 강조했다. 신성은 인성을 위하여 저하되지 않았다. 신성은 그 위치를 보존했다. 베들레헴 말구유 안에 있는 그 도움 없는 애기는 아직도 신성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인간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본다. 그것은 불가치한 신비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스런 사실이다. 그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4. 죽을 수 있으나 생명의 근원이심
그리스도는 다른 어린애들과 꼭 같지는 않으셨다. 그는 인간 육체 속에 계신 하나님이었다. 인간 가족의 한 분으로서 그는 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서 세상을 위한 생명의 샘이었다. 그의 신성한 인격 안에서 그는 죽음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원해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그것은 그 자신의 행위요 자기 자신의 증인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하나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인간화해서는 안 된다. 그는 지상에 계시는 동안도 하나님 이였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스스로 벗으시고 한 인간의 모양과 형체를 취하셨다. 그는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그의 신성한 영혼 위에 한 산과 같이 죄책을 견디셨다. 그는 죽음을 강요당하지 않으셨으나 자기 자시의 자유의지로서 죽으셨다. 그러나 죽은 것은 그의 인간적 본성이었고 신성은 몰락되지 않고 죽지 않았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성만 죽고 신성은 죽지 않았다. 그것도 역시 명백하다. 이것 역시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그것이 비 SDA 신학자들(다른 이들에 의하여) 전에 동일하게 언급되었지만.
5.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본성을 취하셨다
그의 성육신 동안에 그는 마치 하나님이 그를 창조하셨을 때처럼 인간의 대표자로서 서 있었다. 둘째 아담으로서 그는 첫째 아담의 시작한 곳에서 시작했다. 그는 아담이 타락한 땅을 통과하셨고 그는 아담의 실패를 구속하셨다. 그는 인성을 취하셨으나 인간의 죄악성은 취하지 않으셨다. 그는 에덴에서 사단이 승리를 얻었던 그 같은 본성으로 사단을 정복하셨다. 그는 그 죄에 극소량도 참여하지 않으셨다. 그는 인간이 쌓여있는 유약과 약점들에 예속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에 관해서 아무런 오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는 죄의 경향들을 갖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타락 이전의 아담과 같았다. 그에게는 죄의 때가 없는 순결하고 죄 없는 분이었다. 그는 타락할 수 있었다. 그는 인성을 쓰셨고 인성이 시험받는 것처럼 모든 점에 있어서 시험을 받으셨다. 그러나 한 순간동안도 그에게는 한 가지 악한 성질도 없었다. 아담이 에덴에서 유혹자에게서 공격을 받았을 때 그는 죄의 때가 없었다. 그리스도는 아담이 에덴에서 유혹으로 공격을 받은 것같이 광야에서 시험으로 공격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시험의 광야에서 그가 견디기 실패했던 그 시험을 견디기 위하여 아담의 위치에 서계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인류가 에덴에서 4000년간 방황한 후에 그리고 저들의 근본적 순결과 정직의 상태에서부터 4000년 방황한 이후에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다. 그러나 결코 여하한 방법으로도 그리스도 위에 부패의 때나 경향이었다는 최소한의 인상도 남겨서는 안 된다. 그 다음에 강한 권면이 있다. 모든 인간 존재로 하여금 우리와 똑같은 그런 분, 그리스도를 인간과 같은 분으로 만드는 입장에 서지 않도록 경고 받도록 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예리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할 수 없는 문구이다. 이 확실한 기초 위에 우리는 반드시 서야 한다.
6. 인간 본성의 채무를 취하심
그리스도는 진실로 인간성을 소유하셨다. 그는 인성의 부채를 지셨다. 그러나 그는 줄곧 신성의 참여자였다. 그는 참으로 그 모든 책임부채와 함께 우리의 인성을 입으셨다. 그는 그가 인간을 돕기 위해 그 위에 타락한 사람의 연약성을 가지고 그는 사람의 몫을 담당하셨다. 그러나 그는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육체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었다. 그의 영적 본성은 죄의 모든 때에서 자유로웠다. 그러나 모든 축척된 세상의 죄가 죄를 짊어지신 분위에 놓여졌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였고 부패한 한 때도 그 위에 놓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죄의 수치를 느끼셨다. 세상의 죄의 무게가 그의 영혼을 누르고 있었다.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은 죄인에게 해당되는 죄의 형벌을 받으셨다. 그 자신은 무죄하셨으나 그는 죄인의 형벌을 지셨다. 무죄자로서 그는 죄인들을 위한 대리자가 되셨다. 모든 죄의 죄책이 세상의 구주의 신성한 영혼 위에 그 무게로 눌렀다. 그는 그의 죄 없는 본성에 우리의 죄 있는 본성을 뒤집어 쓰셨다.
7. 모든 점에서 또는 모든 원리에서 시험을 받으셨다
그는 서러움 많은 인간성의 고난과 시련에 참여하셨다. 더욱이 그는 그 거룩함의 완전함에 비례하여 고난당하셨다. 그러나 한 단순한 생각으로나 느낌으로도 시험에 반응하지 않으셨다. 그는 그 모든 채무들과 더불어 인성을 지셨다. 그는 유혹에 굴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다. 그것이 그가 우리의 연약성을 느끼셨는가하는 이유이다. 그 분별은 예리하고 근본적이다.
8. 세상의 죄와 죄책을 지셨다
그는 세상의 죄의 죄책을 지셨다. 그는 하나의 불충성이나 죄가 없었지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그는 인류의 약점들과 타락 성을 지셨다. 그는 인류가 죄악의 4000년간 약화되었을 때 인성을 받아들이셨다. 그는 우전의 큰 법칙의 작용의 결과들을 받아들이셨다. 그는 실패와 영원한 손실의 위험을 가지고 싸우셨다. 그는 인류에게 그의 신성의 생기와 썩지 않는 권능으로 부음을 질병의 침해를 막으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간사함이나 죄악이 없었다. 그는 세상에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셨다. 엘렌 화잇은 되풀이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에 관하여 오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는 죄 이외에는 우리 중 하나와 같았다. 그는 죄의 한때도 없이 출생하셨다. 그는 죄나 더러움의 때가 없을지라도 퇴화된 상태에 있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다. 그는 가난과 가장 비천한 상태로 인간들 중에서 낮추셨다. 그 다음 그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심으로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보이셨다. 그러나 다시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에 관하여 그릇된 인식을 주지 말라고 권고하셨다.
9. 타락한 본성의 정욕이 없이
그의 인성 중에 그는 그의 신의 성품의 순수함이 보존되었다. 그는 부패로 더럽혀지지 않았고 죄에 대하여 외인이었고, 그리고 우리 인간의 타락한 본성의 정욕을 소유하지 않았다. 그는 무죄한 분이었다. 죄의 어떤 흔적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꼭 같은 연약함이 쌓여 있었다. 그는 우리의 연약성에 있어서 한 형제였으나 같은 정욕을 소유하지 않았다. 그는 무죄한 분이었다. 죄의 어떤 흔적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키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타락한 상태에 있는 사람의 본성을 취하심으로 그 죄에 극소량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 중에 거하시려고 오셨으나 아무런 어려움을 받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를 비난한 자들은 무한한 순결이신 분의임재 앞에서 정죄당할 것이다.
10. 인간성을 영원히 보존하신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심으로 자신을 결코 끊을 수 없는 줄로 인류에게 붙잡아 매셨다. 영원한 세월을 통해서 그 분은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 분을 타락한 인류에게 주셨는데 영원히 그의 인간성을 보존하신다. 그는 인간성을 채택하셨고 가장 높은 하늘에 그 같은 것을 가지고 가셨다. 얼마나 놀랍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를 이곳에 묘사했는가! 그의 위대함과 영광은 우리의 이해력을 초월한다. 그러나 그의 우리와의 동일성은 우리의 모든 사랑과 존경을 끌어 모을 만큼 너무도 진실되고 놀랍다. 그는 하나의 유일한 신인이시다. 영원히 우리의 주님과 구세주이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Ⅲ. 오해받은 주 분야에 틀림없이 초점을 모음
1. 그릇된 견해들 중에서 건전한 가르침
결코 잊어서 안 될 것은 여기서 검토된 이 귀한 보석들과 기본 진리들은 우리의 상당수의 유능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신성, 세상에 계실 동안 그의 신인 양성, 그의 시험의 실제성, 죄의 경향의 문제, 그리고 20여개의 연관된 문제 등의 이 기초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혼돈하고 분리되고 있을 때 엘렌 화잇의 의록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부인에게 위탁된 기별을 선포함에 있어서 빗나가지 않으면서 엘렌 화잇은 부인의 증언의 일평생 동안 모든 다른 이들보다 훨씬 앞서서 굳게 섰다. 참으로 오늘날 우리 중 대부분보다도 앞섰다. 부인은 다른 이들의 탈선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진실로 신령한 손이 인도하고 보호했다. 부인의 묘사의 계속성과 일관성은 이 현대에 성령이 지도한 저서의 기적 중의 하나이다. 수십 년간 계속 기록해 내랴오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넓은 분야에서 아무것도 수정할 것도 없고 삭제할 것도 없고 변명할 것도 없고 침묵을 지키고 묵인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것은 섬세하고 쾌활하고 많은 분은 위해 여러 지역에 있었다. 어느 누가 감히 현대 역사에서 그와 비길만한 기록을 낼 수 있겠는가!
2. 논쟁 중에 연합을 가져옴
우리가 다시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은 수십 년간 우리를 괴롭힌 혼란과 논쟁의 두 주요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1931년까지는 그 논쟁이 없어지지 않았고 양편은 긴요한 일치점에 혼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치 연합 수락에 이른 것은 오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1951년 전에는 저들은 저들의 누가적인 증언의 충분한 의미를 파악할 만큼 모아서 함께 출판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재림교에 관해서 종교계에서 이 큰 신성의 거침돌인 오해에 관해서 부인의 저서를 통해서 담대히 다루고 대부분 해결한 분은 엘렌 화잇이었다. 부인의 것은 지혜로운 인간의 통찰력이나 진리의 예민한 지각 이상이었다. 그것은 신령한 비추임과 초인간적 능력이 포함된 것이다. 그 같은 일은 다음에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속죄의 큰 주제에도 역시 사실이다.
Ⅳ. 속죄의 행위는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다
예수의 믿음의 영원한 진리들의 두 번째 근본적 영역, 그리고 또한 유감스럽게도 초기 수십 년 동안에 어떤 이들 사이에 혼돈과 오해가 있었던 것은 십자가의 행위였다. 속죄는 엘렌 화잇이 매우 많이 쓰고 매우 건전하게 매우 조직적으로 끊임없이 기록한 웅대하고 중대한 주제의 다른 하나이다. 이 기초적인 것에 관한 비재림교 신학자들과 다른 학자들에게 큰 오해를 사도록 한 것은 우리 선친들 중의 어떤 이들의 제한된 견해들이었다. 이것은 저들의 편견 없는 관심을 획득하기 전에 조만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엘렌 화잇이 매우 강력하고 아름답게 지시한 속죄에 관한 더 넓은 이중의 범위에 관한 엘렌 화잇의 이해하기 쉬운 증언을 검토해 보자.
1. 속죄의 희생의 중심성
이 분야에 있는 부인의 모든 기록된 보배에 기초로서 총괄적인 말은 죄에 대한 속죄로서 그리스도의 희생은 다른 모든 진리 덩어리 중에 큰 진리이다. 그 말은 모든 것을 내포한다. 이 속죄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들리우셨다로서 명백히 정의된다. 그리고 부인은 부언하기를 십자가는 매력의 큰 핵심이다. 더 나아가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세상을 움직이는 수단이다. 다른 모든 진리는 거기에 대한 강조에 비례해서 감화나 권능이 부여된다. 진실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별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속죄에 관하여 가장 확신 있는 발언을 수집하라는 권고를 받는다. 그리스도와 못 박히신 그 분의 인격과 그 행위는 세계의 길이와 넓이를 통하여 울려야 할 하나님의 기별이다. 그 위에 우리의 모든 희망이 달려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중의 양상이 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과 중보사업은 시간이 지속되는 동안 우리 마음을 점령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력에 관한 해설자들이 해야 한다.
2. 완전한 속죄가 십자가 위에서 이루었다
그 다음 다음의 놀라운 말씀이 있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의 희생을 보셨을 때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 속죄는 완전하다. 다시 그 분이 자신을 십자가 위에 드리셨을 때 백성의 피를 위하여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다. 한 번 더 그분이 문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을 때 그 때 완전한 속죄가 백성의 죄를 위하여 이루어졌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하늘의 우주가 십자가의 광경 앞에 섰을 때 그 분은 속죄의 완전함을 보셨다.
그것을 엘렌 화잇은 큰 속죄라고 말하면서 하늘의 인이 그리스도의 속죄 위에 인치셨다. 그의 희생은 모든 면에서 만족하다. 그것은 충분하고 효력 있고 완전하다. 십자가의 사건은 논쟁의 여지없이 속죄의 행위이다.
3. 성육신은 속죄를 위한 예비적 필수 요건
그리스도는 성육신에 인성을 취하심으로 세상을 위한 속전이 되심으로 세상을 사셨다. 그 분은 속죄 제물로 자신을 도리기에 가능하게 하시려고 자원해서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등이시기 때문에 속죄 제물을 드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하신 자존하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신령한 아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희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속죄의 일을 해야 할 책임 하에 있지 않다.
4. 흠없는 그리스도는 완전한 제물이었다
그리스도는 그가 완전히 흠 없어야만 이것을 하실 수 있다. 그가 십자가 앞에 달리셨을 때 그는 순결하고 흠이 없었다. 그가 죄가 없지 않았더라면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죽으심은 아무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자신을 드리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죄 없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로서 자기 생명을 드림으로 충분한 속죄를 이루셨다.
5. 희생의 제물과 드리는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책과 형벌은 범죄자들의 몸에서 신령한 대의자로 옮겨졌다.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분 위에 놓여졌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대신에 고통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 분은 이렇게 하심으로 제사장과 희생 드리는 자신이 제사장이 되어 자신을 희생으로 드리셨다.
6. 속죄의 유일한 수단인 십자가
그 포용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속죄는 온 인간 가족을 포함한다. 그것은 온 인류를 위하여 잠재적이었다. 그는 모든 그릇 행한 자를 위하여 죄값을 치르셨다. 그 속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충분했다. 그것은 세상의 죄를 위하여 준비적으로 되었다. 온 세상을 위하여 모든 장벽은 무너졌다. 결과로서 죄로 인하여 깨어졌던 교통이 재확립되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늘과 땅 사이의 큰 구렁을 다리 놓았다.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 되고 추방당한 자가 dkefm과 상속자들이 되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 낙원의 문들이 활짝 열렸다.
7. 의가 속죄를 통해서 준비되었다
속죄 희생을 통해서 우리의 과거의 죄를 덮어주는 의롭다고 해주는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가 온다. 그리고 갈보리 위에서 이루신 희생을 통해 은혜의 성화가 준비되었다. 그의 나눠주신 의 이리하여 완전한 의가 준비된다. 죄는 우리 때문에 그분에게 책임을 지웠으나 그 분은 완전히 죄 없이 남아 있었다(그러므로 그의 의는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8. 구속의 값이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지불됨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속전은 십자가 위의 속죄이다. 그런 것이 구속적 준비의 크기이다. 그 분은 타락한 인류에게 생명과 불멸성을 가져오기 위하여 오셨다. 그는 사람을 사형 선고에서 구워하셨다. 그것이 유일의 피할 길이다.
9. 공의와 자비가 십자가에 섞여 있다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동등이신 분이 인간의 자원하는 대리자로서 모든 불의와 죄에 대한 형벌을 지셨다. 공의가 십자가에서 경외심으로 무릎 꿇고 충분하다고 말했다. 사단의 비난은 대립되었고 영원히 확정되었다. 십자가는 공위와 자비의 대권들을 완전히 화목 시켰다. 이제 공의와 자비가 섞일 수 있고 십자가는 다시 하나님과 인간을 함께 이끄셨다.
10. 하나님의 공의 율법을 옹호하심
십자가는 율법의 불변성에 관한 답변할 수없는 논증이다(시 89:28-34). 그것은 그 죄 중에 있는 죄인들을 만나기 위하여 변경되지 않았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징벌을 예증한다. 이리하여 신령한 율법과 하나님의 정부의 보존은 유지되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보좌와 같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십자가는 율법에 대한 사단의 논증을 폐기한다.
11. 속죄는 인간의 필요보다 더 크다
속죄의 크기에 관해서 공의는 인간의 고난을 요구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고난을 잘 당하셨다. 유대인의 온 희생제도는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죽음을 예표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중보사업을 상징했다. 징벌과 치욕은 그 대리자에게 옮겨졌다.
12. 속죄는 사단에 사형 선고를 주었다
십자가는 사단에게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 그리스도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 대기만자의 포로에서 포로들을 해방시키는 권리를 얻으셨다. 갈보리는 우주에 대하여 사단의 비난하는 권세를 영원히 깨뜨리셨다. 십자가의 수단으로 말미암아 세상 임금 사단은 내쫓겼다. 그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단의 보좌를 탈환하였다. 그때 영원히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보좌가 서 있는 곳마다 나의 십자가가 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13. 속죄는 결단코 반복되지 않는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속죄의 행위)은 결코 반복될 필요가 없다. 결코 하나님의 우주에서 또 다른 반역이 없을 것이다. 이상은 속죄의 범위와 성취이다.
Ⅴ. 광범하고 대담한 일격으로 세워진 진리
1. 앞에서의 관찰
우리는 이 놀라운 말씀들은 모두 1888년 그 큰 위기와 큰 빛을 비친 총회 이후에 했다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한다. 엘렌 화잇의 묘사를 전체로서 숙고해 보라. 이 최고의 섬세한 주제에 관해서 제시함에 있어서 아무 주저도 흔들림도, 더듬는 것도 없고 아무 모순도 없다. 부인은 견해 차이가 계속되어 온 호전적인 어떤 이들의 압축과 그릇된 견해가 있었던 이 큰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분명하게 적극적으로 생생한 묘사를 해나갔다. 부인은 우리를 위하여 길을 개척했다. 부인은 하늘에서 온 빛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 빛은 받아들였다. 엘렌 화잇은 적극적인 진리를 제시함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았고 이리하여 자동적으로 오해가 풀리었다. 부인은 소용돌이치는 논쟁적 견해의 소용돌이에 의하여 방해를 당하지 않았다. 부인은 광범하고 담대한 일격으로 진리의 터를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빗나가지 않는 코스 위에 보존했다. 부인은 그 길을 그녀 주의에 있는 유능하나 잘못 인도하는 자들의 오류들과 함성을 피하여 견해들을 교정했다. 부인은 참된 개척자였다.
2. 연합을 가져오는 선택적 수난들
그것은 놀라운 성취였는데 엘렌 화잇은 그 사실을 아는 모드 ㄴ사람으로 놀라게 하는 정확성과 건전함으로 논쟁적인 견해들 사이에 지도했다. 그것은 단순히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다. 부인은 영감 받은 식별력이 있었고 그녀가 확언을 변호하는 때를 알았다. 어떤 이들을 당황케 했던 이 선언들은 연합을 가져오는 선언이 되었다. 속죄의 행위가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리하여 위에 있는 하늘 법정에서 그 은혜를 적용할 준비를 이루었다고 선언하는데 관하여 어떤 이들이 초기에 주저하는 일이 널리 퍼져있었던 것이 대부분 끝을 맺게 되었다. 분명하고 솔직히 기록된 엘렌 화잇의 저서들은 최근 몇 년 내에 이 큰 주제에 관한 우리의 견해의 근본적인 건전성을 의심하던 비 SDA 학자들을 설복시켰다. 그러나 캔 처음부터 부인은 이 공개된 원리들을 빗나가지 않게 주장했다. 그리고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알기 쉬운 모사는 어떤 완고한 정신들이 아직도 주저하고 혼돈하고 다른 방향으로 결정하고 있는 동안에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상이 이 큰 논쟁적 주제에 관한 올바른 입장을 취하도록 도와주시기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사이다. 다음은 대제사장의 속죄 희생 적용을 연구해 보자.
제33장 “신성”과 “속죄”가 합한 곳에 정한 위치에 이르다 - No.2
Ⅰ. 속죄 희생에 관한 제사장의 적용(응용)
1. 속죄의 은혜를 베풀다
먼저 다음의 간결한 명백한 구절로서 시작하여 엘렌 화잇의 이 검토를 계속해 보자. “그 큰 희생은 드려진바 되었고, 가납되었다.” 그 다음 그가 승천하여 지금 봉사하고 계신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는 당신이 십자가에서 완성하긴 속죄의 행위, 즉 당신의 속죄의 은혜를 당신의 00들 뒤에 베푸신다.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우리의 “중보 하는 대 제사장이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그의 보혈의 효험을 가지고 탄원하신다. 더욱 이 “그의 피로 산 자들을 지금 그의 중보로서 지키신다.” 본론을 떠나서 화잇 부인의 저서의 특징이 되는 다음의 균형진 말을 충분히 주목해 보자. “하늘 성소에서의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는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죽으심과 같이 구원의 계획에 긴요하다.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부활 후에 승천하여 하늘에서 완성할 그 사업을 시작하셨다”(GC 489). 우리의 연구를 계속하자.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의 희생을 이루시기 위하여 죽으셨다.” 지금 그는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거 계시다.” 그러므로 이 하늘 중보는 휘장 안에서 지상에서의 제물의 효험을 계속하고 완성하신다. 이것들은 그 속죄의 두 분리 할 수 없는 국민들이다. 바로 여기에서 그 궁극적인 준비를 인식하는데 실패하는 대다수의 종교 단체들이 길을 잃은 곳이다.
2. 십자가의 화해를 적용하고 완성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으로 그의 부활 후에 승천하여 하늘에서 완성할 사업을 시작하셨다. 땅에서의 그의 사업(그의 희생의 속죄 행위)은 여기에서 충분히 완성되었다. 속죄의 조건들은 성취되었다. 그가 이상에 와서 할 사업은 완성되었다. 이제 그는 한없는 권위를 입으시고 그에게로 더 나아가서 “중보사업(십자가의 그의 행위의 은혜를 중보 하는)을 하기 위하여 개선장군처럼 하늘로 돌아가셨다. 우리의 중보자는 ”참 장막“에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당신의 보혈을 그가 제시하면서 당신의 흘리신 피의 효험을 탄원하신다. 그 분의 중보는 완전한 희생위에 기초된다. 그의 제물은 완전하고 우리의 중보자라서 그는 그 자신의 정한 사업을 행하신다. 그는 성소에서 봉사할 때 그의 속죄의 희생의 효과를 가지고 탄원하신다. 이리하여 그는 우리를 굳게 붙드신다. 그것이 그의 중보사업이요, 속죄의 측면이다.
3. 하늘가는 우리의 유일의 소망
이 준비는 용서를 위한 유일한 통로이다. “그가 죄를 용서하시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은 “죄인의 유일의 희망이요, 회복을 위한 유일의 매체이다. 그리스도는 땅에 있는 모든 남녀를 위하여 스스로 책임을 지셨다. 그는 우리를 당신 곁에 가까이 두신다.” 그는 당신의 인생의 팔로 우리를 안으시고 “신성의 팔로 무한한 자의 보좌를 붙드신다. 이렇게 그는 우리를 붙드신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치룬 값을 인정하여 머리를 숙이신다.
이같이 그리스도는 제사장의 옷을 입으시고 속죄의 큰 날에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신다. 수백만의 천사들은 우리의 하늘 제사장이요 대변자로서 하나님의 율법이 들어 있는 법궤위에 잇는 하늘 시은죄 앞에서 봉사 하실 때 돕고 있다. 참으로 “하늘에는 성소가 있다.” 어떤 이의 논리는 이와 반대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늘의 실재이다. 어떤 이가 상상한 거처럼 제한된 기능이 아니요 엄청난 크기이다. 특별히 오늘날 어떤 이들의 경향과 더불어 그것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4. 둘째 국면은 심판을 포함한다
이제 다음에는 놀라운 말씀 참으로 표준 되는 말씀이 있다. “그 는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의 제사장직에서 한 국면을 성취했다. 그는 지금 회개한 자들을 위하여 아버지 앞에서 탄원함으로 말미암아 또 하나의 국면을 성취하고 계시다(Ms. 42, 1901).
여기서 의미 있게 표현한 것과 같이 이 두 국면들은 구속 사업 전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는 세상의 심판이 위탁되어 있다. 제사장으로서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생각이지만 심판을 선언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로운 심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회피할 수 없다.
5. “계속적인 속죄”와 “항구적인 중재”
지성소의 휘장 앞에 항구적인 중재의 한 제단이 있다. 그 거룩함 앞에 계속적인 속죄의 제단이 있다. 그 이중의 준비는 하늘 궁전에의 그리스도의 무한한 중보의 기초이다.
6. 못박히신 구세주는 중보자와 심판장이심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모든 심판이 위탁되었다.” “그의 결정에는 호소할 길이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위탁하신 것은 그의 인선을 덧붙였기 때문(성육신을 받아들임으로)이다 는 것에 특히 주의하라. 이 때문에 그 분만이 최후 형벌과 보응의 날에 모든 죄인들과 성도들에게 보상이나 형벌의 선고를 선언하실 수 있다.
Ⅱ. “속죄와 중재” 모두
1. 중재의 놀라운 결과
여기 또 하나의 기억할 만한 중대한 말씀이 있다. 그리스도의 중재는 한 금사슬과 같이 하나님의 보좌에 붙어있다. 더욱 풍성하거나 더욱 안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이 그 분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그는 저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신다. 그는 저들에게 생명과 빛을 주시고 사단을 섬김에서 저들을 벗어나도록 당신의 영을 통해서 애쓰시고 계시다. 이리하여 그는 지존자와 당신의 백성 사이에서 서 계신다. 하나님께 접근하돌 준비시켜 주고 범죄에서 인간을 지키는 것은 그의 중보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속죄와 중보를 믿음으로 우리를 굳세게 요동치 않게 지킬 것이다. 속죄의 사업이 하늘 성소에서 진행될 때 신자들이 하나님의 큰 날 서도록 준비시키신다. 이리하여 휘장 안에 계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불멸하신 갈보리를 가지고 계신다.
예수님의 한 인격 속에 신성과 인성이 겸하신고로 그는 온 인류를 하나님 앞에 은총을 받도록 회복시키셨다. 우리는 이 방법을 통해서 “신의 형상을 반사하도록 준비된다.” 죄 대신 의의 완전한 교환이 있다. 죄인은 이리하여 자기에게는 아무런 개인적 공로가 없지만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 그리스도의 흠없는 의가 자기의 것이 된다. 향과 같이 “이 의의 향기는” 시은좌에 구름같이 올라간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완전한 그의 속죄의 행위와 중보의 사업을 소유한다.
2. 중보에 성령께서 동참한다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연합해서 일하시며 끊임없이 인간을 위해서 중재하고 계신다. 성령께서는 “기도와 인내와 찬송과 감사”라 울려나도록 “우리 마음 위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위에 계신 우리의 하늘 중재자께서는 당신의 대표자로서 성령을 보내시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 하나님의 우편에서 서서 우리 위해 탄원하신다. 이리하여 우리는 항상 이같이 말할 수 있다. “나는 우리의 연약함을 궤휼하시는 우리의 충실하신 대제사장 한 친구를 법정에 가지고 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성령은 우리 속게 우리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신다.
3. 중보는 우주를 포함한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그 범위에 있어서 온 우주를 포함하였다. 그러나 그는 “구속주”일 뿐 아니라, “중보자”이시다. 이리하여 새롭게 살길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열렸다. 그 중보 사업의 광대함을 숙고해 보라. 그는 사람을 위해서 중보하거 계실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들의 질서도 역시 그의 중보 사업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이것은 에덴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는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시고 우리의 영혼 때문에 탄원하신다. 이렇게 그는 우리 위해 화목을 이루신다.”(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놀랍고 긴요한가!)
4. 그의 인간 본성을 영원히 지니신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를 하시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겠다.” 그는 “우리의 성질로 옷 입으신 보증인”이시다. 십자가 후에 그의 모든 부활의 영광으로 승천하실 때 그는 이 인성을 지니시고 하늘 궁전으로 가셨으며, 영원한 세월을 통해서 그는 이 인성을 지니신다. 이같이 그는 그의 인성을(우리의 인간성) 하늘로 가지고 가셔서 영원히 그는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다. 지금 우리의 보증인이 되신 분은 “큰 무죄한 화목 제물이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은 함께 다화를 유지할 수 있다. 그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실 수 있음은 그 분이 하나님과 동등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의 인성을 영원히 보존함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이루실 것이라는 한 서약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은 하나님과 동등이신 중보자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그런 것이 그의 전능이요 영광이다. 그러나 “인간의 대제사장과 보증인은 반드시 인간의 성질을 가져야 한다. 귀한 사상이요 놀라운 준비여!” 이리하여 “무한하신 분과 연결은 재확립된다.”
Ⅲ. 영감의 묘사의 현저한 공헌(기여)
1. 틀림없는 정확성으로 제시되었다
우리의 초기의 혼돈과 논쟁을 하던 두 특별한 분야에 관하여(종교 세계에 있는 많은 이들 자극하고 사이를 나쁘게 하던) 하나님께서 부인에게 계시해 주신 그 웅장한 진리를 엘렌 화잇은 틀림없는 정확성을 가지고 제시했다. 그러나 그 중대한 신성과 속죄 문제는 기독론과 기독교의 모든 계획이 순환하는 모든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이 예수의 믿음이다. 이 기본적인 주제들에 관한 기독교계에까지 우리의 인상과 증거가 혼돈되고 분리되어 왔고 유감스럽게 되었다. 최초부터 끝까지 이들 큰 빛을 수십 년간 화잇 부인은 각 분야에서 참되고 강권하는 묘사를 강조했고 특히 1888영 이후에 우리 중 어떤 이들이 더욱 더 논쟁하고 확증과 교정이 요청될 때 성서적 기초는 확립되었다. 어떤 이들 사이에 끊임없이 견해 차이가 있는 동안 1888년부터 1915년 부인이 죽을 때 화잇부인의 펜은 개론을 말하고, 채우고, 보강하고, 반복하고, 확대하고, 때때로 약점과 오해가 있는 분야에 비상한 강조나 적절한 점들을 첨가했다. 그것은 큰 필요가 있는 때에 뛰어난 공헌이었다.
2. 비교할 수 없는 전개되는 초고
부인의 편에서 나온 이 전개되는 두루마리는 만일 우리가 그렇게 묘사할 수 있다면 황홀케 하는 그림을 형성한다. 부인의 기본적인 논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항상 전진하고 궤변하거나 논쟁을 자동적으로 답변하고, 전개하고, 확대하는 묘사를 형성한다. 그것은 계속적 조화와 완성의 놀라운 본이다. 이 말씀들은 항상 기록된 말씀과 조화 일치되었다. 우리는 현대 교회사의 연대기 중에 세워진 된 책들의 이 끊임없는 아름다운 광경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이 그것을 해명하는가? 그것은 남은 교회 안에 세워진 단 하나의 예언의 신의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리의 연합에 우리가 함께 모이게 된 이유이다. 우리도 이 사실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것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들에 대하여 적극적인 증거를 해야 한다. 여기에 개론적으로 말한 이 쌍둥이 진리들에 관하여 우리는 깊은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확신에 의하여 요동하지 않고 서야 한다. 이것들은 영원한 진리들이다.
Ⅳ. 십자가를 속죄로서 점차 인식함
반대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초기 수십 년에 걸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속죄의 희생 혹은 속죄로서 기록한 우리 지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이다. 초기의 한 예로서 제 3대 대총회장 J. N. Andrews는 1869년에 리뷰지 편집국장으로 있을 대 “속죄 희생이신 그리스도”라는 편집자 난에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는가에 관해서 기록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물은 “완전히 의로운 분”에 의해서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고로 그는 죄 없는 희생 제물이었다(R.&H. 10, 5, 1869. p. 120). 이 말은 그가 서 잇는 곳에서 드러내 놓았다.
1. "Signs"지는 죽으심을 속죄로서 강조한다
그리고 1888년 바로 전해에 와그너의 편집 지도하에 있는 서해안에서 시조지에 속죄에 관해서 여러 논문이 출판된 것으로 기대될 것이다. 어떤 것은 최초로 한 것이요, 어떤 것은 비재림교 학자들의 지지한 말에서 택한 것이었다. 예컨대 1885년 8월 27일 Signs지에 감리교 Christias Advocate지에서 인용한 다음의 말이 있었다.
“그는 완전한 속죄로서 그리고 모든 믿는 자를 위한 완전한 의로서(고난과 죽으심에)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의에 의하여 공급되어 있다”(p. 515).
이리하여 그리스도의 의의 논쟁이 속죄가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신 그리스도 위에 강조의 초점이 됨에 따라서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행위에 점점 얽어 매이게 되었다. 1887년 3월에 Signs의 선정된 논제에 더욱 명백하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속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자리를 취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충분하고 부요하고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을 때 인간의 죄악이 하나님의 영원한 은총에서부터 분리시킨 달리는 건널 수 없는 구렁을 건너는 다리를 놓으셨다. 하나님의 건축물 중의 모든 놀라운 것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걸작이다”(Signs 3, 17, 1887. p. 162).
그러므로 어떤 이들 편에서 1888년 전후에 분명한 각성의 증거가 있다. 속죄의 충분한 범위에 관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행위에 관하여 각서의 증거가 있다. 그 두 가지 분야에서 분명히 동요가 있었고, 미네아폴리스에서 충분히 폭발되게 되어 있었으매, 그 이후 수년간 계속되었다.
2. “신성”과 “속죄”는 연결되었다
3월 31일자 America Tract Society의 소책자 647호의 편집과 와그너가 이번에는 인용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죄를 위한 속죄를 이루시려고 죽으셨다. 이 죽음은 인간의 해방을 가져오는 것으로서 죄인에게 꼭 해당되는 형벌로서 온 것이다. 다시 “믿음은 그리스도를 붙잡는 손에 불과하다... 칭의는 선물이다.” 이 때문에 재판장은 무죄 석방을 선언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칭의의 의와 성화의의를 소유한다(Signs 3, 31, 1887. p. 197). 이것은 다시 미네아폴리스 앞에서 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예증을 들면 “속죄하는 구세주”라는 제목으로 편집하는 중에 와그너는 이번에는 Asbury 대학교 총장이며, Christian Advoate의 편집자인 감리교 감독 Mathew Simpson의 “Yale Lectures”에 쓴 것을 인용했다. 여기서 심슨은 그 대신에 죽으신 속죄하시는 구세주께서는 율법을 크게 하셨고 죄인을 의롭게 하셨다고 주석했다. 그는 그 다음에 말하기를 “이것들이 나에게는 복음의 주요한 교리들이다. 죄인을 위하여 속죄를 이루시는 한 신령하신 구세주,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총에로 인간을 회복한다.” 이것은 신성과 속죄를 연결시키는 꿰뚫는 말씀이다. 이런 것이 인간의 아들들에게 기쁜 소신이다(Signs 8, 11, 1887. p. 486).
3. Johnson - 죽음을 통한 속죄
그 다음에 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 이후인 1891, 1, 20일자의 리뷰지에 당시 Union College 성경 교수 O. A. Johnson, 침례교 저자 Andrew Fuller가 쓴 “속죄와 칭의”에서 사상을 수집했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과의 동등에 대하여 말하고 그것은 그의 보혈에 효과를 준다. 그리스도가 우리 인성을 쓰셨을 때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한다. 그는 그 다음에 말하기를 우리가 가르치는 교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와 못 박히신 그 분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은 항상 기독교 구조의 모퉁이 돌이 되어왔다. 그의 신성과 속죄를 제한다면 모든 것은 멸망으로 갈 것이다(O. A. Johnson, R.&H. 1, 20, 1891. p. 34).
여기서 우리는 다시 그리스도의 신성과 속죄 매우 크게 인식, 이해, 강조란 필요가 있는 쌍둥이 진리를 발견한다. 이것들은 매우 결정적으로 우리를 대항해서 역사하던 어떤 이들의 제한된 관념 때문에 S.D.A.신앙을 갖지 않은 자들에 의하여 완전히 문이 닫혔던 이해와 정복의 문을 열게 하는 이중의 요점들이다.
4. Little John - 죽음을 통한 속죄
그리고 끝으로 1892년 8월 리뷰지에 전 베틀 크릭 대학 학장 W. H. Little John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해 기록하는 중 “십자가의 이야기”, “성육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 등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대들의 죄를 위한 속죄를 이루신데 대하여 말한다.
이리하여 전에 기록한바와 같이 1894년의 베틀 크릭 교회의 신앙 고백을 위한 길이 예비되고 있었다. 거기에 속죄가 십자가의 사건과 정당한 관계가 있도록 주장했는데 그 대표적인 베틀 크릭 회중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Ⅴ. 엘렌 화잇은 일찍이 “십자가”와 “속죄”를 같다고 말한다
1. “속죄의 희생”은 “속죄의 사업”이다
기록해야 할 것은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 전과 후에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죄에 대한 속죄를 이루는 것으로서 가끔 기록했다. 부인은 다른 이들과는 상관없이 구원의 진리들을 확립함에 있어서 “항상” 길 안내자였다. 그리고 이것은 속죄 문제에 관해서도 현저하게 사실이었다. 어떤 초기의 예를 주목해 보자.
1862년에 어떤 이들이 속죄를 하늘 성소에서의 대제사장의 사업에 제한시키는 제한된 사상을 출판하기 시작할 꼭 그때에 화잇 부인은 어떻게 멸망하는 사라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그 큰 희생 제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가에 대해서 기록했다. 이 행위를 부인은 담대히 “속죄”라고 불렀다. 속죄는 인가의 구속을 위하여 지불된 값이라고 했다(R.&H. 2, 18, 1862, p. 94). 부인은 오직 십자가만을 의미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은 1863년에 우리 대총회를 조직하기 전(前)해였다는 것이다.
또다시 1872년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속죄”으로 강조하면서 부인은 “속죄와 희생”과 동의어 “자원하는 희생”을 속죄로 2번 말했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인간의 죄를 위한 속죄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품성의 완전을 소유하셨는가에 대해 기록했다. 부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중보사업, 그리고 완전한 제물이신 그리스도에 관해서 기록했다. 부인은 그들을 나눌 수 없이 함께 묶었다.
2. 완전한 제물이 죄를 속한다
그리스도의 중보의 봉사와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의 회복과 그리스도의 무한한 희생과 완전한 제물에 관하여 말하면서 부인은 어떻게 “하늘의 대주제요, 하나님과 동등이신” 그리스도께서 반역한 인류를 위하여 죽으셔야 했는가에 관해서 말했다(R.&H. 12, 17, 1872. p.2-3). 부인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버지의 그것과 동등한 것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가차가 있다. 화잇 부인은 항상 명백하고 생기 있는 기록과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우리가 그 후에 받아들게 된 앞선 근거를 구성한다. 그 두 가지는 항상 함께 가야 한다.
그 다음 1878년에 “속죄의 본질”레 관해서 기록하는 중에 엘렌 화잇은 하나님의 아들의 완전한 제물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에 관해서 말한다. 부인도 그리스도의 피는 세상 죄를 위하여 속죄한다고 말한다(Signs 3, 14, 1878. p. 41). 그리고 이것은 1872년의 소책자에 스미스가 쓴 원칙들을 예관해서 최초로 쓴 것을 1874년 6월 에 Signs에 유감스런 재판 후에 기록되었다. 이 속죄는 단지 희생의 제물에 불과한 십자가 위에서 이룬 것과 는 거리가 먼 이 속죄는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업의 마지막 부분이다(Signs 6, 4, 1874. p. 8). 그 두 견해들 스미스와 엘렌 화잇은 물론 근본적인 논쟁이었다.
3. 갈보리에서 이룬 속죄
미네아폴리스 총회가 가까운 1887년 주안 또다시 화잇 부인은 오래 예언된 그의 초림시에 오시는 분과 마치 예표적 희생 제물이 메시야의 사업이 표상되었던 것과 같이 완전한 희생 제물이 인류의 되를 위하여 이루어야 할 때에 관해서 기록했다. 그 다음에 부인은 속죄를 갈보리와 동일시한다.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와 그의 신성한 율법의 뛰어남과 완전성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에 의한 갈보리 위에서 이루어진 속죄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Signs 8, 27, 1887. p. 511). 이것과 더불어서 11월 3일에 그것에 관해서 다시 명백히 말한 것이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 외에 인간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준비는 아무것도 없다. 갈보리에서 이루신 속죄를 거절한 자들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에 있었던 상태와 꼭 같다”(Signs 11, 3, 1887. p. 658). 그러므로 1887년에 2번 속죄의 행위는 갈보리에서 이루어졌다고 선언되었다.
4.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 속죄와 등일시 됨
한 가지 인용을 더 보충해야 하겠다. 11월에 화잇 부인은 무한한 희생에 관해서 한 번 더 기록했고 예수께서 어떻게 이 이탈된 땅을 하늘과 다시 연결되었는가를 기록했다. “아버지와 동등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난당하셨다. 그리고 미 모든 것은 우리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위한 속죄를 이루시기 위함이었다(Signs 11, 24, 1887. p. 705, 706). 위에 있는 것을 보아서 미네아폴리스 대결 전에 수년 동안 그리고 그 총회는 속죄를 십자가와 분리시키는 것을 배격한(1894년에) 입장을 베틀 크릭 교회가 취하기 6년 전에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십자가에서 완성(속죄의 행위가)되었다는 진리를 부인한 자들과 직접 논쟁 중에 있었다는 것은 논의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1844년부터 시작되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다시 우리는 화잇 부인의 그 당시에 속죄의 더 넓은 범위와 의미를 선포함에 있어서 얼마나 훨씬 앞서 있는가를 알게 된다. 그 당시 부인의 명백한 말씀을 읽는 자들이 어떻게 그 의미를 아는데 실패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저들의 눈먼 십자가와 속죄를 분리시키는 견해를 계속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측량할 수 있는 것보다 더하다. 확실히 그런 자들의 눈은 감겨있었다.
Ⅵ. “속죄의 행위”로서 “십자가”를 유례없이 높이는 자
1. 십자가와 더불어 항상 높이는 자
1888년 이전의 견해들을 엘렌 화잇은 결코 변경하지 않았다. 부인은 항상 속죄의 행위로서 십자가를 비할 데 없이 높이는 자가 되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부인은 항상 더욱 강력하거 더욱 강조 적이며 자주 있게 되었다. 1889년 12월 30일자 Signs에 기록하기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십자가의 효험”과 “갈보리의 삽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말하면서 부인은 부르짖기를 “오! 우리는 그 속죄의 가치를 다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다음에 이 무한한 희생, 이 속죄의 희생에 관해서 부인은 권고하기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높이라. 중보자를 높이라. 예수를 높이라.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명상하라”(Signs 12, 30, 1889. p. 786).
엘렌 화잇은 이 명백한 견해에서 결코 빗나가거나 후퇴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 밖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과 합법적 종교로 만족하거 있고 자기 의와 자기만족 상태로 되는 사실을 슬퍼하면서 부인은 십자가와 고난당하시는 아들에 대해서 말하고, 예수님은 의가 되시고 우리의 “속죄의 희생” - “죽으시는 그리스도가 되신다”고 선언했다(R.&H. 9, 2, 1890. p. 529).
2. 속죄는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
다음은 1899년 8월 Signs제에 있는 엘렌 화잇의 명언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이 끊어졌을 때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고 왜칠 때 그의 사업은 완성되었다.” 이것은 그가 “희생 제물리 되신 첫째 일이 완성되었다. 그 후에 그는 당신의 사업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00들에게 보내심으로 그의 사명을 완성하신다”(Signs 8, 16, 1899. p. 5). 그 다음에 부인은 계속해서 십자가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아버지는 속죄의 완전함을 보셨다(p. 6). 그는 “속죄의 위대한 사업을 입증하셨다.” 그것은 모호하지 않다. 그리고 부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아버지가 그 큰 속죄를 받으셨다는 것에 관해 말한다. 그리고 구속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흠없는 의의 옷으로 덮는데 대해서 말한다. 다음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에 인은 그리스도의 속죄에 쳐했다. 그의 희생은 모든 면에서 만족하다.” 이같이 속죄와 희생은 모순 없이 동일시되었다. 이보다 더 명백한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3. 1901년의 유명한 동일됨
그 사상은 “영원한 아들”, “속죄”, “완전한 희생 제물”,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해서 1899년 2월에 계속된다(Sgins 2, 22, 1899. 재판 p. 1). 다음에 1901년에 화잇 부인은 하나님의 독생자는 자원해서 인간의 죄를 자신위에 지시고 타락한 인류를 위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라고 그 다음에 이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죄에 대한용서가 있을 수 없다(Signs 4, 23, 1901. p. 257). 그러나 다음의 절정의 말씀이 나타난 것은 1901년 9월 24일자 리뷰지에 있다.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 사이에 십자가를 세우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의 희생을 보셨을 때 그는 그것의 완전을 인정하시면서 그 앞에 머리를 숙이셨다. “충분하다. 속죄는 완전하다”고 말씀하셨다(R.&H. 9, 24,1901. p. 615).
거기서 십자가와 희생은 완전한 속죄와 동일시되었다. 어떤 이들 편에서 그 옛날의 제한된 견해 때문에 그것을 하늘 성소에서의 봉사에 제한하고 속죄일에만 국한시키는 계속 주저하고 있을 때 엘렌 화잇의 말은 이같이 더욱 강력하게 되고 더욱 강조했다.
아직도 어떤 지도자들의 마음에 고집하고 있는 그 전통적 견해 때문에 어떤 이들이 주저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본은 엘렌 화잇에 의하여 명백히 제시되었다.
속죄의 행위인 십자가의 충분하고, 방해 없는, 장엄한 진리는 이제는 지울 수 없이 기록되어 있고, 그것이 소유한 그대로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바로 이 확대된 사상은 닫힌 마음들에 문을 완전히 열 것이다. 그것이 또한 지금 진행되고 있다. 엘렌 화잇의 의미심장한 말씀은 참으로 진리이다. “ 나의 출판된 서적 전체를 통해서 나의 현재의 가르침과 조화가 있다. 이것을 부인은 1906년 6월 14일자 8쪽에 썼다. 그 해외 기록은 그 정확성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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