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_vV0RzZQi0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각 책의 기별과 신학 공부를 계속합니다. 오늘은 35번째 강의로서 예레미야의 기별과 신학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제34강에서는 예레미야의 기별과 신학 제1부 전반부를 다루었고, 오늘 후반부에는 결론에 이르는 내용을 다룹니다. 예레미야서의 특징과 기여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예레미야 공부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이전에 보여드린 이사야 두루마리 사본과 같이, 성경을 기록하던 필사실과 생활 시설이 남아 있는 쿰란 동굴 유적은 구약의 역사와 신앙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고고학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예레미야서의 독특한 특징과 영적 기여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예레미야서는 첫 번째로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The Weeping Prophet)'라고 하는 특별한 칭호를 받을 만큼 애통함이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왕조가 망하고 왕들이 사슬에 매여 잡혀가는 현실 속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상태가 너무나 안타깝고 슬퍼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사야 53장 3절에 나타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인 '슬픔의 사람(Man of sorrows, 우리말 성경에는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슬픔을 아는 자)'의 모형이 되는 인물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을 자신의 삶 속에서 재현했습니다. 실제로 예레미야는 자신을 "끌려서 잡혀가는 순한 어린양과 같다 (렘 11:19)"고 표현하며 이사야 53장의 메시아 예표와 흡사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대부분의 선지자가 심판의 기별을 선포했지만 예레미야만큼 개인적인 영적 아픔과 눈물로 호소한 선지자는 없습니다. 그가 예레미야 9장 1절에서 토로한 심정은 백성들의 고통에 얼마나 깊이 동참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자신의 머리를 물통으로, 눈을 눈물이 솟아나는 샘구멍으로 비유할 만큼 통렬하게 애통해했습니다. 훗날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의 두 번째 멸망(AD 70년 로마에 의한 파멸)을 내다보시며 감람산에서 도성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셨는데(눅 19:41), 눈물 흘리실 메시아의 심성을 미리 보여준 인물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그가 '반역자 선지자(Traitor prophet)'로 오해받았다는 점입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바벨론 제국에 순복하고 항복해야 산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렘 27장). 이 기별은 당시 왕들과 백성들에게 조국을 배반하는 매국노나 반역자의 소리로 들렸습니다. 여호와를 신뢰함으로 적군(아시리아)에게 끝까지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라고 설교했던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처럼 동일한 하나님이 상황에 따라 정반대의 기별을 주시는 것은, 당시 유다가 선왕 므낫세의 죄악으로 인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선, 즉 '루비콘강'을 건넜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계점을 넘어갔기에 무모하게 대항하다 전멸당하지 말고, 바벨론의 멍에를 메고 항복하는 것만이 도성의 완전한 불탐을 막고 목숨이라도 건지는 유일한 개혁의 길이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비록 당대에는 반역자라 핍박받았으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후 포로지 백성들에게는 참된 선지자로 영원히 존경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그 암담한 심판의 한복판에서도 가장 찬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점입니다.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끝이 아니며 하나님이 정하신 70년의 기한이 차면 반드시 본토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낙관적인 약속을 던져 줍니다. 이 소망의 메시지는 예레미야 3장 16~18절, 12장 14~15절, 23장 3~8절의 네 간략한 문단과 함께, 예레미야 30장부터 33장까지의 '위로의 네 개 장'에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으신 언약은 불변하며, 다윗 왕조의 영원성을 기초로 장차 의로운 메시아를 보내사 영원한 왕국을 재건하실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입니다. 밤이 지나면 반드시 새벽 낮이 오듯이 하나님의 언약은 깨지지 않고 완수됨을 재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네 번째 특징과 신학적 기여는 성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새 언약(New Covenant)'의 선포입니다(렘 31:31~34). 예레미야는 시내산에서 돌판에 새겨주었던 옛 모세의 언약을 대체할 새로운 영적 언약의 도래를 발표했습니다. 백성들이 시내산의 법을 깨뜨려 언약의 땅에서 쫓겨났기에, 이제는 돌판이 아닌 마음에 새기는 언약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옛 언약은 외적인 조항과 의식 중심이라 백성들이 남편 되신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이라는 딴 남자를 찾아 영적 간음을 행함으로써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반면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인간의 생각과 내면의 심령 속에 직접 새겨주시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내적 변화와 도덕적 순종을 이끌어내어 온 백성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온전히 알게 하시는 구원 섭리의 대전환입니다.
이 새 언약의 신학은 훗날 신약 성경 히브리서 8장 7~13절과 10장 16~17절에 고스란히 판박이처럼 전면 인용되어, 짐승의 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성취된 복음의 핵심 뼈대가 되었습니다. 돌판에 새겨 몽둥이로 강요하던 낡은 옛 언약의 체계가 청산되고, 내면의 변화를 이루는 은혜의 새 언약 시대가 열렸음을 입증하는 신학적 기초입니다.
다섯 번째 특징은 여호야긴 왕을 향한 무서운 파문 저지 선언입니다(렘 22:24~30). 성경은 여호야긴을 '고냐' 혹은 '고니야(Coniah)'라는 축약형 애칭으로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오른손의 인장 반지(왕권의 상징)일지라도 빼어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줄 것이며, 고국 땅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바빌론에서 유배되어 죽을 것이라 선언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실제로 고니야는 8세에 즉위해 불과 100일 만에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가 그곳에서 감옥 생활을 하다 죽었습니다. 다윗 왕조의 지상 통치권의 대가 완전히 끊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장 12절의 예수님 족보를 보면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고니야)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라고 기록되어 있어 무자하리라는 예언과 배치되어 보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혈통적 단절 속에서 법적인 입양 계보를 통해 메시아 왕권이 이어진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의 친자손 중 다윗의 보좌에 앉아 유다 땅을 직접 통치할 지상 왕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왕조 단절 선언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시드기야는 고니야의 아들이 아니라 숙부(삼촌)로서 왕이 되었고 유다는 멸망했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왕조는 끊어졌으나 영원한 의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신령한 왕국은 영원히 중단되지 않습니다.
여섯 번째 특징은 메시아를 '의로운 가지(The Righteous Branch)'로 예표한 신학입니다. 예레미야는 메시아 예언이 적은 대선지서이지만, 23장 5~6절과 33장 15~16절 두 문단을 통해 메시아의 선명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메시아는 다윗 왕조라는 생명의 원동치 뿌리에서 터져 나오는 푸른 가지이십니다. 그분의 통치는 결코 불의하거나 편파적이지 않고 완벽한 공의와 정의('체데크'와 '미쉬파트'로 잠언 다음으로 예레미야서에 약 80회나 대칭 강조됨)로 가스리십니다. 지상의 통치는 시드기야로 끝났으나, 다윗의 후손으로 임하사 "여호와 우리의 의"가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의 왕국은 영원히 무궁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예레미야서의 핵심 신학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핵심 요약정리
새 언약과 마음의 종교 신학:
바벨론 순복과 섭리적 심판 신학:
무모하게 대항하라는 선지자들과 달리, 이미 죄악의 도를 넘어 한계선을 넘었으므로 무력 저항을 멈추고 바빌론의 멍에를 메고 항복하라는 파격적인 기별을 전했습니다. 본서에 '바벨론' 명칭 수치가 구약 전체의 절반 이상인 149회나 집중 등장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채찍으로 사용하신 주권적 징치(징계)의 도구입니다.
참된 예배와 마음의 할례 신학:
심판 너머의 소망과 의로운 가지 예표:
다음 강의 시간에는 나라를 잃은 처참한 파멸의 현장에서 예레미야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묵상으로 읊조린 슬픔의 성경, 『예레미야 애가』의 정교한 기별과 신학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