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법성포로 1...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며)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귀족 가문이었던 이자연... 그는 경원 이씨(현 인천 이씨)로 딸을 왕에게 시집보내면서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7대에 걸쳐 80여 년 동안 10명의 왕비를 배출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권력을 가진 자가 이자겸이다. 그는 권세가 강화되면서 부하인 척준경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켜 외손인 인종을 가두었다. 하지만 인종이 척준경을 설득하여 오히려 이자겸을 붙잡아 법성포로 유배를 보냈으니 이자겸의 난이다.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이자겸... 뒤이어 묘청의 난을 거치면서 무신(武臣)정권이 탄생하였다.
이자겸이 유배(流配) 간 법성포(法聖浦)... 법성포의 法은 불교를, 聖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가리킨다. 즉 ‘성인(聖人)이 불법(佛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浦口)’라는 뜻이다. 한반도 불교는 삼국시대에 전파되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부견이, 신라는 눌지왕 때 묵호자에 의하여 전파된 반면 백제는 인도의 마라난타에 의하여 중국 동진을 거쳐 법성포로 들어왔다. 불법을 전하면서 불갑사를 개창(開倉)하였다. 2006년 이곳에 기념공원이 건설되었다. 한편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阿無浦)’로 ‘아미타불’에서 나온 명칭이란다.
법성포는 작은 반도의 남안에 자리 잡아 북서계절풍을 막을 수 있는 천연의 항구다. 고려 때부터 조창(租倉)이 설치되었고, 조기로 유명한 칠산바다의 기항지로서 성수기는 파시(波市)가 이루어졌다. 波市란 고기가 한창 잡힐 때에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을 뜻한다. 옹진군의 연평도와 부안군 위도의 조기 파시, 여수의 거문도 및 청산도의 고등어 파시, 제주도 추자도의 멸치 파시가 유명하다. 최근 기름 값의 상승으로 고기를 잡는 것보다 중국 어선에서 사오는 것이 저렴(低廉)하다니 자원 없는 서러움이다.
한편 법성포는 굴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민어과에 속한 조기... 산란을 위해 동지나 해역에서부터 추자도와 흑산도 해역을 거쳐 서해안으로 회유(回遊)한다. 이때 참조기를 잡아 소금에 절여서 말린 것이 굴비다. 음력 3월 중순 곡우사리 때 잡힌 조기가 가장 알이 충실하고 황금빛 윤기가 있는 조기를 참조기 또는 석수어(石首魚)라 한다. 고려 때부터 임금님께 진상(進上)하였던 조기는 이자겸이 굴비 맛에 반하여 인조께 바치면서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에서 굴비라 부르게 되었다. 2월 12일 한화관광을 따라 떠난 여행길... 호남고속도로로... 여산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달려 나간다.
영광 법성포로 2... (영광읍을 지나며)
가는 길에 비가 더 강해진다. 제주에서는 강풍 때문에 비행기의 이착륙이 금지되었다고 방송에 나온다. 오늘 여행은 많은 비 때문에 순조롭지 않을 것 같다. 장성과 고창 분기점을 거쳐 ‘천년의 빛’ 영광(靈光)IC로 빠져 나간다. 신령스런 빛의 고을로, 자연의 영묘한 빛이 반짝이는 은혜로운 지역이란 뜻이다. 그래서 靈光은 백제 불교가 처음 들어왔기 때문에 불교(佛敎)와 연관이 많은 듯하다. 국도23번을 따라가다 보면 신호준 가옥(辛鎬俊 家屋)... 철종 때 건축된 이 가옥은 각종 수목과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풍치(風致)가 좋은 이 가옥의 내부의 정원도 잘 조성되어 있다. 집의 규모가 큰 것으로 볼 때 주변에 많은 농토를 가진 부호(富豪)였을 것이다. 특히 이 집안의 명정(命旌) 현판(懸板)... 임금이 정려(旌閭)로 명한 집으로 세금과 군역(軍役)을 면제를 받았으니 개인의 명예일 뿐만 아니라 마을의 경사일 것이다. 더 지나면 임진수성사(壬辰守成祠)... 壬辰守成祠는 임진왜란 때 수령(首領)이 없었던 상황에서 자체수비와 병참임무를 수행하며 영광읍성을 지켜낸 55명의 영광 지역 선비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이는 호국의지와 의열(義烈)정신으로 후세에 귀감(龜鑑)이 될 일이다. 600만 이스라엘 민족이 주변의 3억 인구의 아랍 국가를 제압하고 존립하는 이유가 투철한 애국정신이다. 4차례의 전쟁이 발발하였는데 해외에 있던 유대인... 자금 지원은 물론 젊은이는 군에 자원입대 하였다. 반대로 아랍 국가의 청년들은 해외로 도망을 갔다하니 정신력이 문제일 것이다. 최근 북 핵실험으로 경직된 남북관계... 단합된 국민의식이 중요하다. 월남처럼 강력한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전쟁이 나면 후방에서 공산주의의 민중 봉기(蜂起)가 더 무서운 일이다.
국도 23번에서 22번으로 갈아타면서 법성포에 도착한다. 입구에 조기 모형탑이 법성포가 굴비의 고장임을 말해준다. 도착시간이 11시 40분.. 점심시간이 가까워 제일 먼저 찾은 곳이 동원식당((356-2351)... 굴비정식이 12,000원인데 진수성찬(珍羞盛饌)이다. 소문만 무성한 다른 모범 식당보다 값이 싸고 정성이 깃들어져 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이 식당... 3년 전에 찾아왔을 때나 지금이나 손님을 대하는 모습이 변하지 않았으니 추천하고 싶다. 친절은 사회를 움직이는 쇠사슬로 착한 마음씨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선물을 받은 것과 무엇이 다르랴! 그 정(情)이 잊히지 않아 오늘 또 찾아온 것이다.
영광 법성포로 3... (법성포에서)
고량진미(膏粱珍味)같은 점심을 먹고 우중(雨中)에 시내를 배회(徘徊)하였다. 곳곳에 엮어 말려 논 굴비... 어쩜 그렇게 질서 정연할까? 엮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 전에 친구 집에 갔던 생각이 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 친구 동생에게 붕어빵을 사먹으라고 천 원짜리 돈을 주었다. 좋아했던 그 친구 동생... 50원하는 붕어빵을 20개를 사가지고 와서 먹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화제(話題)거리가 되었다. 그 붕어빵을 다 먹지 못하니 끈으로 묶어서 의자에 올라 마루에 있는 빨래 줄에 걸어놓고 먹었다니 웃지 않을 수 없다.
집합시간이 가깝다. 택시를 타고 백제불교 도래지인 좌우두로 갔다. 이곳은 인도승 마라난타(滅難陀)가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최초로 발을 디딘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관광명소로 개발하고 있다. 백제 불교를 개척했다고 하는 滅難陀... 침류왕(枕流王)은 그를 맞이해 궁중에 모시면서 우대하였다니 백제는 이미 불교를 알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백제는 양쯔강 유역의 남조(南朝)와 가까워 해로(海路)를 통한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으므로 그 전에 이미 민간에 의하여 불교 전래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편 영광하면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이외에 4대 종교 문화 유적지가 모두 있는 보기 드문 고장이다. 생활에서의 도덕 훈련을 강조하는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大宗師)의 탄생지가 영광이다. 백수면 길룡리를 중심으로 한 원불교(圓佛敎) 영산(靈山) 성지(聖地)가 있다. 6.25 전쟁당시 인민군의 교회 탄압에 항거하여 신앙을 지키려다 백여 명이 순교(殉敎)한 기독교인 순교지가 염산면 설도항에, 조선시대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인해 많은 천주교인이 순교한 천주교 성지가 영광읍 중앙로에 있다.
불교 도래지 근처의 숲쟁이 공원... 조선 중종 때 법성진(法聖津) 성(城)의 연장으로 심은 느티나무 등이 100여 년 이상 성장하여 이루어진 성을 말한다. 매년 법성포 단오제가 열리는 주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국가 지정 명승 22호인 이곳은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바 있다. 특히 꽃과 나무 사이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으면서 법성포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영광하면 바닷가 특유의 짠 맛과와 주렁주렁 걸린 굴비 대신 화사한 꽃과 나무가 반겨주니 봄날에 온다면 포구(浦口)여행이 더욱 풍성해진다. 특히 상사화(相思花)가 피는 불갑사(佛甲寺)와 함께 여행을 와도 좋을 듯하다.
영광 법성포로 4... (백수해안도로로)
숲쟁이 공원에서 옥당 공원으로 가로지르는 영광대교가 공사중이다. 이 다리가 개통되면 백수읍과 홍농읍 사이가 30분에서 10분으로 단축될 것이다. 여행길은 원불교 영산 성지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태산(少太山)이 태어난 영촌마을, 소태산이 어린 시절 산신과 도사를 만나려고 노력하던 구호동(九虎洞), 소태산이 어린 시절 산신을 만나기 위하여 기도하던 마당바위, 소태산이 대각(大覺)을 이룬 노루목(獐項) 등 선진포(仙津浦), 범현동 재각(齋閣), 언답(堰畓), 구인기도봉(九人祈禱峰) 등 원불교의 유적지가 산재(散在)해 있다.
원불교 성지를 지나 백수 해안길로... 첫 번째 만나는 곳이 옥당 박물관이다. 영광의 역사적 정신문화유산을 전시하여 현대 사회인들에게 정신세계를 이해시킴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역사적 인물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전시테마로 다른 지역의 문화유산 박물관과 차별성을 두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시대의 토기(土器)와 석기(石器)를 시대별로 전시하였다. 이 자료를 통하여 조상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생활용기를 통한 직접 체험으로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유익한 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비가 오는 관계로 안개 때문에 멀리 볼 수 없는 바다... 하지만 이곳이 영광 9경중 일경인 백수해안도로다. 백수읍 길룡리에서 백암리 석구미마을까지 16㎞에 달한다. 이 해안도로는 기암괴석, 광활한 갯벌, 불타는 석양이 만나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서해안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인 이곳은 나무 데크로 만든 2.3㎞구간을 비가 오는 도중에도 노을 전시관 까지 걸었다. 해가 뜨거나 질 무렵에, 하늘이 햇빛에 물들어 벌겋게 보이는 노을... 아침노을은 찰나의 아름다움이요, 저녁노을은 불타는 하늘이란다. ‘불탄다’하니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 밤’이 바로 신토불이인 토요일을 가리킨다.
인생의 노을 길에 진입한 70대... 건망중이 시작되는 시기다. 오래 산 사람은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라 경험이 많은 것이다. 남은 인생 보람 있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건망증이 가장 심한 사람이 다니는 산은 구리시의 ‘아차산’이란다. 하나 더 도둑이 가장 싫어하는 과자는 ‘누네띠네’란다. 가는 길에 막 썰어회, 거시기회, 모시떡 집을 지난다. 목소리부터 차분하여 스마일 맨으로 불리는 나OO기사님이 모시 떡을 사서 회원들에게 돌린다. 여행길을 친절히 안내하는 기사님께 고마움을 느끼며 영광IC로 진입하면서 마친다. 고맙습니다.
엮어 놓은 굴비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