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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탐방 2탄 < 청도에서 예천 구경 가기 >
2015년 9월 10일(목요일) 문득 안창성 선생이 오는 12일(토요일) 기차로 용궁을 거쳐 예천에 갈 예정인데 같이 갈지 어떨지를 물어왔다. 모든 일에 신중한 나는 약 2초의 장고(長考) 후 같이 가자고 했다. 4초는 생각했어야 했는데… 경솔한 판단이었다.
그리고는 인터넷 지도에서 용궁과 예천을 찾아보고 명승지를 찾으니 주로 회자(膾炙)하는 것이 회룡포와 용문사, 삼강주막 등이었다. 기차표를 내가 끊기로 했기에 아침 7시 41분 청도에서 출발해 10시 27분 용궁역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열차표를 끊고, 오후 2시 55분에 예천에서 출발해 청도에 5시 58분에 도착하는 직통과 18시 36분 예천에서 출발해 김천에서 환승해 청도에 22시 12분에 도착하는 무궁화 열차가 있다고 하고 올 때는 몇 시에 올지를 물었더니 2시 55분 기차를 타자고 했다. 속으로 헤아리길 4시간 동안 예천 구경을 다 하려나 했지만 워낙, 계획을 잘 짜시는 분이라 다시 묻지 않았다.
마침 예천 간다니까 자기 고향이라며 신선생이 고향의 지명 발음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보’에 ‘개포’까지 인접하니 거꾸로 읽다가는 욕먹을 지명이라 생각했다. 재미난 지명의 답례로 그날 있었던 학생과의 대화를 이야기해 주었다. 대입 자기소개서 지도를 하는데 누가 밴드로 보신탕 사진을 보냈다. 옆에 있던 고3 여학생이 뭐냐고 물어 보신탕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개 십 년” 키운 걸 아느냐고 했다. 우리말은 조사(助詞)가 중요하다.
작은 배낭을 하나 메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겨우 4시간 다닐 걸 하는 생각에 다 두고 비가 온다기에 지팡이 겸해서 긴 우산만 하나 챙겨 출발했다. 역 계단을 올라가는데 안선생은 컴퓨터 가방 비슷하게 생긴 검은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가방이 없느냐고 물었다. 무슨 가방이냐고 반문했더니, 세면도구에 잠옷까지 넣으려면 가방이 있어야지라고 했다. 잠옷이라....... 1박 2일이구나. 4초만 생각했더라도....... 운동화, 양말, 팬티, 바지, 남방, 모자. 내가 걸친 것은 고작 천 조각 6개뿐이구나. 러닝셔츠도 없으니. 그러나 걱정은 그것으로 끝났고 다시 이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다. 그게 나의 장점이다.
청도에서 출발한 열차는 경부선을 따라가다가 김천에서 단선인 경북선으로 갈라져 상주, 함창, 점촌, 용궁, 예천을 거쳐 영주에서 중앙선과 만나는데 우린 용궁에서 내려 먼저 회룡포에 갔다가 다시 용궁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버스로 예천에 갈 생각이었다. 검은 가방 안에는 대학 노트 앞뒤로 3장이나 우리가 갈 명승지와 유명 식당들의 정보가 빨간 볼펜으로 별표까지 얻어가면서 정리되어 있었다. 오늘은 회룡포가 여행의 중심이었고,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고 나룻배도 없는 삼강주막은 별 볼 게 없다며 빠져 있었다.
회룡포(回龍浦)는 원래 의성포(義成浦)였는데 오래전에 의성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 살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곡류하는 내성천에 의해 기묘하게 이루어진 지형이 의로운 자연환경을 이루었다고 해서 ‘의’ 자와 내성천의 ‘성’ 자를 따서 ‘의성’이라 하고, 삼면이 강변이나 개천이 끼어 있다해 물가를 의미하는 ‘포’ 자를 합해 ‘의성포’라 명하였다고도 한다. 그러다가 예천군청에서 이웃한 의성군과 지명이 혼동된다고 하여 1999년부터 회룡포라 개명했다는데 용궁면에 속한 비룡산(飛龍山) 앞 회룡포란 지명이 그리 나쁜 개명은 아닌 듯하다.
용궁역에 도착하니 용왕이 우릴 반긴다. 역사 안은 민간인에게 위탁되어 왼쪽은 토끼간 빵을 팔고 오른쪽은 자라 카페가 되었다 >
용궁역을 나오니 방향감각이 지도에서 생각하던 것과는 반대여서 잠시 당황했다. 택시는 보이지 않고 자가용만 다녀 혹시 택시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비현실적 생각이 들었다. 철물점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더 올라가면 택시 정류소가 있단다. 택시비 10,000원을 주고 장안사 절 밑 정류소에 이르니 진입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택시기사의 명함을 받아 챙긴 후 가파른 산길을 10초 오르자 요런 건물이 나타났다.
< 비룡산 장안사는 누가 불사(佛事)를 많이 했는지 여기저기 고치고 단장을 많이 하여 절이 깨끗했다 >
< 장안사에서 회룡포 전망대로 가는 길에 바위를 휘감은 용을 새긴 것이 있었는데 누군가 재미있는 장난을 쳤다. 장안사 스님의 작품이라면 분명 장난을 좋아하는 싱거운 스님일 것이다. 게다가 용 전체를 새긴 것이 아니라 일부만 새긴 것은 돌에서 용이 막 나오려는 것을 표현한 것이리라. 눈이 있는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눈이 있는 것이다 >
< 이 자리가 아니라면 그냥 기지개나 켜는 혹은, 수행을 게을리하여 벌서는 정도의 하찮은 동작이었을 텐데 마침 제 자리를 얻어 대단한 용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
< 머리에 무거운 탑을 이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회룡포 전망대로 올라가는 숲길은 소나무 사이의 오솔길로, 험한 곳은 나무 계단을 두어 편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시인들의 시를 나무판에 새겨 가다가 서서 감상하기 좋았다. 굳이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민족 앞에 떳떳하지 못한 시인들의 작품도 “국화 옆에 서“있는 ”사슴”처럼 어색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쉬웠지만, 황진이도 있었고 윤동주도 있었다. 그중 회룡포를 노래한 것이 두 편 있어 그중 낫다고 생각되는 것을 여기 올린다.
그리고 또 다른 작품.
< 그리고 이 시, 나는 아직도 이 시를 보내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 다행이다.
자기가 그 사람이라 생각되시는 분은 연락 주세요. ㅋㅋㅋ >
물돌이가 350°가 되어 사진의 좌측 숲으로 난 길로 차량이 통행하고, 우측 뿅뿅다리는 우측에 잔디밭 길난 곳의 연장 선상에 하나 있고 좌측 뿅뿅다리는 사진에 희미하게 보인다. 공사장 발판으로 주로 사용이 되는 구멍이 뿅뿅난 철 구조물로 만들어 뿅뿅다리라고 한단다. 그리고 동네 가운데 있는 흰 지붕을 연장해 산까지 가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산이 있는데 하트산이란다. 연인끼리 열쇠를 사서 걸어 놓으면 사랑이 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장안사 주차장 매점의 열쇠가 쏠쏠히 팔리는 모양이다.
택시 기사에게 전화해 용궁역 앞 박달식당에 도착하니 요금이 11,000원 나왔다. ‘박달식당’은 ‘단골식당’과 함께 용궁면에서 국산 막창 순대로 알려진 식당으로 주인아저씨가 아이를 4명 낳아 애국자라고 동네방네 선전하기도 하고 신발은 저희가 책임지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는 식당이다.
수육과 순대를 반씩 섞은 것도 있고, 순대만 시킬 수도 있는데 후자를 딸랑순대라고 했다. 그리고 불내나는 오징어구이도 시켰는데 둘 다 8,000원밖에 하지 않아 소주 2병까지 23,000원 계산했다.
< 바깥으로 나왔더니 기다리는 사람이 줄지어 있었다 >
역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예천행 시외버스가 왔다. 차비는 1인 1,900원이어서 대중교통의 경제성을 새삼 느꼈다. 예천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용문사 가는 버스 시간을 보니 이미 늦었다. 그래서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용문사까지 20,000원이란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포기 후 아예 내일 버스로 가기로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있지만 예천 장이 2, 7장이라 아예 장 구경을 가기로 했다. 시장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서 깨끗한 숙소를 물었더니 파라다이스 호텔을 소개해 주었다.
< ‘1박 2일’에도 소개될 만큼 기름집이 많다. 게다가 ‘1박 2일’에 나온 기름집이라 선전하는 집도 있었는데 그게 영업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
일단 파라다이스 호텔(한식 50,000원) 603호실에 짐을 풀고 샤워 후 장 구경을 했는데 예천 사람들은 참기름만 먹고 소고기만 먹는지 한 집 건너 기름집이요 한 집 건너 한우 고깃집이었다. 참기름 집이 얼마나 많고 또 얼마나 성업 중인지 시장 안은 참기름 냄새가 진동해 어물전 비린내를 맡지 못할 지경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장 안을 돌아다니면 콧구멍에 통통하게 살이 찔 정도라면 조금 과장일까?
시장을 지나는데 누군가 우릴 불렀다. 식당 주인아줌마가 방충망이 잘못되어 움직이지 않으니 아저씨들이 좀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그런 부탁을 자연스레 하는 것이 정(情)스러웠다. 나는 고등학교 때 공업을 배웠고 자연계 출신이라 기계의 구조를 잘 이해하는 편이라 바로 고쳐주었다. 그리고 안주로 무엇이 있는지 물으니 굴비가 있단다. 굴비로 안주를 해 소주를 한 병 마시는데 이런 요상한 게 눈에 띈다.
생떡국이라니, 냉면 육수에 떡국을 넣은 시원한 떡국? 아니면 떡가래를 말리지 않고 바로 썰어 끓이면 생떡국? 결국 아줌마에게 물어 보니 찹쌀로 새알을 만들어 끓인 것이란다. 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찹쌀
굴비가 짜서 더 이상 시키지 않고 유명 맛집을 찾아 나섰는데 연탄불 석쇠 돼지고기 구이집인 ‘고향식당’을 찾았지만 오후 3시까지만 장사를 한다고 했고, 그 옆 통 미꾸라지로 찌개를 한다는 ‘유정식당’에도 갔더니 주인은 없고 탁자 위에 ‘연락하세요’라는 글과 함께 전화번호만 있었다. 돌아다니니 다리도 아프고 해서 내일 버스 탈 정류소의 위치를 확인한 후 호텔 옆 ‘동성분식’으로 갔다.
< ‘동성분식’도 맛집으로 소개되었다 >
< 분식점 내부. 요즘 보기 힘든 장식의 쪽문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연결되어 있단다 >
< 미안하다. 먹다가 찍었다 >
이 집은 파라다이스 호텔 옆에 있는데 허름한 외양과는 달리 태평추로는 예천과 인근 지역에서 알아주는 집이다. 태평추는 탕평채가 경상도 일원에 전해지면서 서민형인 태평추로 변했다고 하니 그 어원이야 어떻든 지금이라도 서울에서 탕평해서 경상도가 태평하면 좋지 않겠는가. 태평추는 원래 메밀묵을 사용하지만, 여름부터는 잘 상하지 않는 도토리묵을 사용한다고 한다.
메밀묵에 잘게 썬 김치와 간장, 참기름, 미나리, 다진 파, 술, 소금 등으로 재워둔 돼지고기를 예천에서 흔해빠진 참기름에 볶은 후 육수를 부여 따뜻하게 해 그 위에 김, 계란 지단, 깨 등을 뿌려 냄비째 내는데 묵 채보다 조금 발달한, 일종의 묵 전골이라 보면 되겠다. 그러나 이를 계속 끓이면 돼지죽처럼 되니 음식을 지저분하게 만들어 먹는 취미가 없다면 지나치게 끓이는 것은 피하는 게 좋겠다. 1인분에 6,000원이어서 정성에 비해 싸다는 느낌이었고 손님이 없어 주인아줌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동성 분식에서 태평추를 저녁 겸 안주 삼아 소주를 세 병이나 마시고 옆에 있는 낙원슈퍼에 가 소주 2병과 과자 부스러기를 사 호텔 603호에 돌아와 다시 술판을 마저 벌인 후 잠이 들었다. 파라다이스 호텔은 저렴하지만 갖출 것은 비치했고 얼마 전 리모델링했기에 깨끗했다. 중심지에 있어 이곳저곳 다니기도 편하여 다음에 마음에 드는 사람과 같이 예천에 오면 다시 찾고 싶었다.
아침에 호텔을 나올 때 그나마 소지품 중 필요성을 잃어버린 우산을 고의로 분실했다. 호텔 바로 앞 한식당에서 6,000원짜리 정식으로 아침을 마친 후 8시 30분 용문사 행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 다음 올 때를 대비해 용문사에 있는 운행시간표를 찍어 두었다 >
예천(醴泉)의 예는 “단술(甘酒)”이란 뜻이니 “단술이 넘치는 고장” 정도의 뜻이리라.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절이 넘치는 고장” 정도로 생각해 “예”를 예절의 禮로 생각하기 쉬운데 禮泉도 하등 상관이 없음을 예천 사람의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인지라 행인이 크게 없었는데 지나가던 안경 쓴 초등학생이 문득,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 왔다. 엉겁결에 “그래, 안녕”하고 답례를 했는데 이런 일은 돌아오는 길 주차장에서 자가용에서 내린 30대 정도의 유부녀가 또 초면에 인사를 건네는 걸로 보아 인사가 예천 사람들의 일상화된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예천 사람이 인사성이 바른 게 아니라면 그들의 눈에 내가 분명 연예인으로 보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니 내가 어찌, 차마, 외람되이, 스스로가 연예인의 용모임을 밝히리오.
8시 34분 버스를 탔는데, 차 안에는 밭일에 허리가 90°로 굽어 지팡이와 함께 h자를 만든 할머니, 신발 뒤축이 바깥쪽으로만 닳아버린 할머니, 타는 할머니의 짐을 거들어주시는 하얀 머리 할아버지까지 용문사 가는 승객은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용문사로 가는 농어촌 버스비는 거리와 상관없이 1,200원이었다. 어제 택시비가 편도 20,000원이라 했으니 왕복한 것에 비하면 35,000원 정도 절약한 셈이다. 국가가 해야 할 복지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의 경제적 위치는 버스비에서 복지를 요구할 처지가 아니라 택시를 탐으로써 택시기사와 소득을 재분배해야 할 처지니 1,200원의 복지에 우린 편승한 셈이다. 정말 편승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자리다.
< 날씨가 아주 좋아 맑은 하늘만 찍으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다시 찍었다>
일본의 와카(和歌)에 “깊은 산속 옹달샘, 개구리 한 마리 퐁당”처럼 소리가 있어야 고요함을 느끼는 듯이, 한 줌의 구름이 있어야 하늘의 푸르름이 가슴에 와 닿으니 이를 인간사에 비유하면,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속담과도 통한다고 하겠다. 내가 세속적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독자들은 이제야 겨우 깨달았을 것이다. 물이 스스로 흐려지고자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 절담이 웃자는 듯, 작아지라는 듯, 서로 손잡고 살라는 듯 >
< 용문사 마당이 넓고 시원하다. 하지만 이 절의 핵심은 본당이 아니다 >
< 단청이 곱고 지붕의 곡선이 예쁜 범종각이 있지만 이도 아니다 >
< 보물 제145호 대장전 자체도 보물이지만 이 건물 안에 3개의 보물이 더 들어 있으니 >
< 보물 제684호인 윤장대(輪藏臺) : 목불삼존좌상의 좌우에 이와 같은 한 쌍의 윤장대가 또 다른 보물이다>
이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포는 겹처마의 팔작지붕에 치밀하게 가구를 짜올린 다포계(多包系) 양식이며, 8면에 모두 문을 달아서 팔작 목조건물을 축소한 것처럼 보인다. 아랫부분은 팽이처럼 뾰족하고 한쪽 모서리에 긴 손잡이를 두어 경장을 돌리는 회전의식에 알맞도록 고안되어 있다. 작은 자물쇠 고리가 달려 있는 8개의 문은 좌우로 구별되어서 한편에는 정교하게 투조법(透彫法)으로 조각된 꽃무늬 창살이, 다른 편에는 빗살무늬 창살이 달려 있다. 윤장대는 경전을 보관하는 장소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완전한 모습으로 전해지는 것은 이것뿐이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라 한다.(Daum 백과사전 참고)
목불삼존좌상과 뒤에 대추나무로 만든 보물 제989호 목각후불탱화(後佛幀畵) 둘 다 보물이다. 일일이 말하기 귀찮으니 자세한 내용은 아래 안내판을 참고하기 바란다. 후불탱화에서 하늘로 뻗친 두 줄기 흰 줄은 월인천강(月印千江)처럼 하나뿐인 달이 모든 강을 비추듯이 한 분뿐이신 부처께서 온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이 절에는 세 가지 이적(異蹟) 중 하나인, 절의 남쪽에 9층 청석탑(靑石塔)을 세우고 사리(舍利)를 봉안하는데 4층탑 위로 오색구름이 탑 둘레를 돈 일을 표현한 것일까?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장전(大藏殿)을 비롯하여 보광명전(普光明殿)· 응향각(凝香閣)· 진영당(眞影堂)· 명부전(冥府殿)· 응진전(應眞殿)· 회전문(廻轉門)· 범종각· 강원· 천불전(千佛殿)· 두운암(杜雲庵) 등이 있다.
< 용문사 대웅전 격인 보광명전에는 누가 49재를 하는지 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가 세상을 떠난 중생을 맑은 가을 하늘 서쪽으로 끝없이 인도하고 있었다 >
개인적으로는 진영당이 좋았는데 과거에는 용문사에 주석했던 선사들의 진영(眞影)을 봉안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찰 종무소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왼쪽에 열린 봉창으로 들여다보았더니 탁자 하나와 대여섯 개의 의자가 보였는데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조각이 과거 중국 상해 예원에서 보았던 의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단청이 없어 담백하고 구조가 조촐한 것이 절집다웠다. 그리고 전면에 다시 올린 기와보다 후면이 기와가 오래된 것이 많아 와송과 돌에 붙는 이끼류도 있어 운치가 있었다. 시간은 인간에게 돈으로 만들 수 없는 작품을 선사하는데 인간은 시간의 작품을 돈을 써가며 없애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절로 가는 옆길로 들어가 절의 정문에 해당하는 사천왕문에 해당하는 회전문(膾 專門도 아니고 호텔의 回轉門도 아닌, 윤회한다는 뜻의 廻轉門)은 뒤에 보았는데 용문사가 1984년 주요 전각이 화재로 소실된 후 지은 것이라 엄청 크기는 한데 시간의 때가 눌어붙지 않아 사천왕들이 모두 말끔한 모습들이었다. 회전문을 지나면 해운루가 있고 그 아래 계단을 통해 절의 정면부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새로 지은 절이라 모두가 반듯반듯하다. 해운루 계단에 서면 보광명전의 금빛 찬란한 현판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재미있다. 혹 방문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차는 주차장에 세우고 아랫길로 내려와 돌다리가 있는 정면의 길을 권하는 바이다.
< 아마 회전문이란 현판은 옛날 것인 듯 낡았다 >
< 해운루 위 “소백산 용문사”라는 현판 아래 자랑하듯 금빛 찬란한 “보광명전”의 현판이 보인다 >
성보유물관 안에도 각종의 보물급 문화재와 같은 많은 볼거리가 있다는데 마침 수리 중이어서 폐관 중인 점이 무척 아쉬웠다. 대장전과 목각후불탱화, 윤장대 등 불에 타기 쉬운 귀중한 유물은 화재로부터 구해낸 것도 장하거니와 소실된 절을 30년 만에 이만큼이라도 회복한 것도 대견한 일이다.
< 해운루 기둥이 심차순 할머니도 이 절의 복구에 큰 보탬이 되셨음을 말하고 있다 >
11시 5분 버스로 예천에 나와 이사 갔다는 ‘청포집’을 끈질기게 찾아가서 악착같이 1만 원짜리 청포 정식을 먹었다. 상차림이 정갈하고 정성도 많이 들어간 상을 받고, 예천의 음식이 전반적으로 자존심이 강하고 값도 싼 편임을 느꼈다.
< 청포채에 홍당무, 푸른 채소, 숙주나물, 계란 지단, 김, 볶은 쇠고기, 깨소금 등을 올려 된장찌개나 양념장에 비벼 먹도록 했다. 파전과 빈대떡도 먹을 만했다>
열차가 직행은 입석밖에 없어 14시 55분 무궁화호로 예천에서 출발해 김천역에 16시 26분에 도착해 환승 후 16시 53분 김천역을 출발해 18시 08분에 청도에 도착하는 새마을을 타기로 했다. 시간도 넉넉하고 해서 걷기 시작했다. 지도상으로는 1.4km이지만 오전의 피로가 남아 있었고 햇볕도 따가워 계속 커피 마실 카페를 찾았는데 역 주변에 와서도 커피 마실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예천사람들아, 쇠고기에 참기름만 먹지 말고 더러 커피도 마시소. 겨우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가서야 카페 하나를 발견하고 냉커피 한 잔으로 더위와 피로를 씻을 수 있었다.
< 뭉티기에 기름기가 많았다. 다시마에 멸치 생 젓갈이 이채롭다 >
너무 오래 있었다며 나가자는 안 선생님의 말은 남의 점포에 앉아서 개기는 것을 즐기지 않기도 하거니와 점심과 함께 마신 소주 1병이 사실 모자라니 보충하러 가자는 뜻임을 알기에 카페를 나와 역 쪽으로 탐방을 시작했다. 역 앞까지 와 ‘나들목 식육식당’에서 참기름 가득한 양념장에 뭉티기 안주로 소주 2병을 비우니 출발 시간이 되었다. 김천에서 환승할 시간 동안 다시 650ml 한 병과 가벼운 안주를 준비 후 새마을호로 청도에 얼근하여 도착하니 1박 2일 예천 구경 잘했네.
< 청도에서 예천 가기 경비 내역 > : 괄호 안은 소줏병 수임
11일 기차비 : 22,400
열차 내 커피 : 7,600
장안사 택시비 : 10,000 / 11,000
박달식당 : 22000(2)
예천까지 시외버스비 : 3800
시장까지 택시비 : 3000
호텔 숙박비 : 50000
시장 안 굴비 식당 : 13000(1)
태평추 식당 : 21000(3)
마트 : 8500(2) ------------ 172,300 원 (8)
12일 아침 식대 : 12000
용문사 왕복 버스비 : 4800
청포집 식대 : 23000(1)
역 근처 커피 : 6000
나들목 식당 뭉티기 : 31000(2)
열차 안 간식 : 4900(2)
열차비 : 31400
------------- 113,100원 (5)
계 : 285,400원 ÷ 2명 = 142,700원 (13)
2015년 9월 12-13(1박 2일)
2015년 9월 18일 탈고
첫댓글 1박 2일 둘이서 13병이라...
광 팔고 죽을 수도 없고.
여행하면서 메모를 하남요 우째 요리 디테일하게 작성했을까나요 ㅋ 소주를 13병이나 드시면서~~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였겠어요^^
내고향 예천을 댕겨가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요로쿠롬 자사히 소개하니 풍양면 옆, 지보면 위, 개포면 사람으로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