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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대토(守株待兎)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을 말한다.
守 : 지킬 수(宀/3)
株 : 그루 주(木/6)
待 : 기다릴 대(彳/6)
兎 : 토끼 토(儿/5)
(유의어)
각주구검(刻舟求劍)
교주고슬(膠柱鼓瑟)
묵성지수(墨城之守)
묵적지수(墨翟之守)
묵수(墨守)
미생지신(尾生之信)
수주(守株)
주수(株守)
출전 : 한비자(韓非子)의 오두편(五蠹篇)
그루터기를 지켜보며 토끼가 나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어떤 착각에 빠져 되지도 않을 일을 공연히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누구나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덜떨어진 사람이라도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찬한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재주 있는 사람을 속이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이러니 보통의 상식으로도 뻔히 알 수 있는 길을 두고 샛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은 자칭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법구경(法句經)에 깨우치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벌써 어진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이 어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심히 어리석은 것이다.'
愚者自稱愚 常知善默慧,
우자자칭우 상지선묵혜,
默人自稱智 是謂愚中甚.
묵인자칭지 시위우중심.
어리석은 행동을 꼬집는 말은 많지만 농부가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守株) 토끼가 부딪쳐 죽는 것을 기다린다(待兎)는 이 성어가 가장 유명하다.
어리석고 고지식하여 힘들이지 않고 요행수를 바라거나, 융통성은 없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줄여서 수주(守株) 또는 주수(株守)라고도 한다.
중국 법가(法家)의 확립자 한비(韓非)가 쓴 한비자(韓非子)의 오두(五蠹)편에 나온다. 다섯 가지 좀은 오적(五賊)과 같이 나라를 갉아먹어 황폐하게 하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송(宋)나라의 한 농부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오다가 부딪쳐 죽었다.
농부는 쟁기를 풀어 놓고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얻으려 했지만 한 마리도 얻지 못했다.
因釋其耒而守株 冀復得兎 兎不可復得.
인석기뢰이수주 기부득토 토불가부득.
밭갈이는 작파하고 가만히 앉아 토끼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으니 농사가 잘 될 리가 없다. 요행을 바라다 농사 망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만 당했다.
한비자는 요순(堯舜)의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며 그루터기를 지키는 농부와 같다고 했다.
자신에게 행운이 비켜간다며 하염없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모두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남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는 쉽지만 막상 자신의 행위는 모르기 쉽다.
행운이 찾아오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하늘이 도와준다. 자신을 알고 남의 실패담을 교훈삼아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수주대토(守株待兎)
어떤 착각에 빠져 되지도 않을 일을 공연히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수주(守株)는 '그루터기를 지킨다'는 말이며, 대토(待兎)는 '토끼 한 마리를 잡게 되자 그것을 또 기대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노력하지 않고 일이 성취되기 만을 바라거나 또는 옛날 방법에 얽매여 시대에 대처하지 못함을 나타낸다.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 기대하는 것에서 나온 말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이다.
한비자(韓非子)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 가운데 법가(法家) 사상을 체계화하고 진시황(秦始皇)을 보필한 인물이다.
특히 그의 독설적 주장은 법치(法治)를 강조했는데, 모순이나 수주대토(守株待兎) 등은 적절한 비유로 자신의 사상을 설파해서 아주 유명한 고사로 사용되는 것 들이다.
수주대토는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고사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닌 고사인데, 교주고슬(膠柱鼓瑟)의 의미와도 통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한비자 오두편(五蠹篇)에 나오는 말이다. 오두(五蠹)는 다섯가지의 좀 벌레라는 뜻이다.
한비자는 나라를 좀먹는 벌레와 같은 존재를 오두(五蠹)라는 말로 표현하였는데, 한비자의 견해에 따르면 이들은 곧 학자(學者), 논객(論客), 협사(俠士), 측근(側近), 상공인(商工人) 등 다섯 부류의 사람들이다.
한비자는 법가의 대부였다. 당시 법가는 유가(儒家)와 대립 상태에 있었다. 한비자는 유가를 공격하기 위해 여라가지 우화들을 이용하였다.
한비자는 요순(堯舜)의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고 주장하여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풀숲에서 갑자기 한 마리의 토끼가 뛰어나오다가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다.
농부가 이것을 보고 그 후부터 일도 하지 않으며 매일같이 그루터기 옆에 앉아서 토끼가 뛰어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밭은 황폐해져서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농부는 온 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는 곧 낡은 관습만을 고집하여 지키고, 새로운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 말이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로 언제까지나 낡은 습관에 묶여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꼬고 있다.
한비자가 살았던 시기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인데 이 때는 전 시대에 비해 기술도 진보하고 생산도 높아졌으며, 사회의 성격도 변해 있었다.
그런데도 정치가 중에는 옛날의 정치가 이상적이라 하여 낡은 제도로 돌아갈 것만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다.
옛날에 훌륭한 것이었다고 해서 그것을 오늘날에 적응시키려는 것은 그루터기 옆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한비자는 주장하였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에서 송나라 농부를 바로 공맹(孔孟)과 같은 유가(儒家) 사상가들을 비유해서 비꼰 것이다. 그 당시 유가사상이 주장하는 혼란한 세상을 구제하는 방법이란 복고주의(復古主義)였다.
이상향의 정치를 행했다는 성인들 곧, 요(堯), 순(舜), 주공(周公)과 같이 성인의 선정에서 이상향인 정치의 표본을 찾아내고 그것을 본받아 혼란한 세상을 구제해야 한다는 입장에 반해, 한비자의 주장은 급변하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혼란한 세상을 구제하는데 선왕들의 방침만 가지고 백성들을 통치하는 것은 모두 수주대토(守株待兎)와 같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주장한 것이다.
유가사상에 대한 한비자의 비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비자는 나라를 좀먹는 다섯가지 벌레로 오두(五蠹)를 들었다.
그 첫째는 선왕의 도리와 인의를 내세우는 유학자, 둘째는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는 언론가로서의 종횡가, 셋째는 멋대로 날뛰는 협객, 넷째는 뇌물을 바쳐 병역을 기피하는 환역자, 다섯째는 비양심적인 상공민이다.
그런데 이중에서도 한비자가 가장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유학자이며, 환역자나 상공민은 부수적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비자는 절개가 있어서 세속과 구차하게 타협하지 않는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법술가(法術家)를 지칭한 것이다.
결국 법술가의 등용이나 법술의 시행과 사용에 방해가 되는 이 다섯 부류를 제거해야 할 좀벌레로 단정한 것이다. 그것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병폐를 없애는 처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요즘 사회 전반에 걸쳐 흐트러지고 정체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느 국가나 사회, 그리고 어떤 기업에도 그런 좀벌레는 새롭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들은 항상 이상적인 것을 얘기하면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변화와 혁신은 시작이 중요하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이러한 좀벌레를 제거하고 조직의 기강과 질서를 세우는데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원칙과 제도를 엄격하게 집행하는 것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한비자의 주장은 만고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다시 말해 한비자는 이 이야기에서 송나라 농부를 어느 인물들에게 비유한 것이다. 바로 공맹과 같은 유가 사상가들을 비유해서 비꼰 것이다. 유가사상이 주장하는 혼란한 세상을 구제하는 방법이란 복고주의(復古主義)이다.
이상향의 정치를 행했다는 성인들 곧,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주공(周公)과 같이 성인의 선정에서 이상적인 정치의 표본을 찾아내고 그것을 본받아 혼란한 세상을 구제해야 한다는 입장에 반해서 한비자의 주장은 급변하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혼란한 세상을 구제하는데 선왕들의 방침만 가지고 백성들을 통치하는 것은 모두 수주대토와 같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주장한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이 있는데, 먼저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송나라이다. 송나라는 고대 은(殷)나라의 유민들이 세운 작은 나라였다.
그런데 양공(襄公) 때 와서 제(齊)나라와 초(楚)나라의 틈새에서 초나라와의 전쟁에 휘말린 송나라가 양공의 어처구니 없는 명분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어짐을 과시하다가 대패하고 말았던 고사를 송나라 양공의 쓸데없는 어진 행동이라는 의미로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 한다.
또한 송나라 이야기는 맹자에게도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조장(助長)의 고사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어리석은 농부 역시 송나라 사람이다.
아울러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원문 내용을 가지고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원문의 구절에 ...兎走觸株 折頸而死... 내용은 정확하게 해석하지면 ‘토끼가 달리다가 그루터기에 부딪쳐서 목을 부러뜨리고 죽었다’이다.
바로 절경의 해석이 목이 부러진 것이 아니고 목을 부러뜨린 것이라면 토끼는 운 없이 죽은 것이 아니고 자살을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구절 묘사로 전해지는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한(韓)나라 태생인 한비자는 진시황(秦始皇) 때에 등용되어 법가사상의 역설로 현실주의적 정치를 주장했지만, 그 역시 성악설(性惡說)로 유명한 순자(荀子) 밑에서 동문수학한 이사(李斯)에게 모함을 당해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말년처럼 진(秦)나라가 강력한 대제국을 이루는데 사상적 밑바탕이 되었던 법가사상 역시 진나라의 몰락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진 사상이 되고 말았다. 단순하게 보자면 법가사상은 지나치게 과거를 단절시킨 결과 미래를 창조해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유기체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존재해야 발전과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떠올려 본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전승불복(戰勝不復)이라는 구절이 있다. 해석하면 전쟁에서 한번 거둔 승리는(戰勝) 반복되지 않는다(不復)는 뜻이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멋있는 말이다. 손자병법은 확실히 단순한 전술 병법서를 넘어선 철학이 있다.
세상에 영원한 승리란 없다. 내가 지금 이룬 이 승리가 영원히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의 승리에 도취되거나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착각하지 마라! 승리는 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 똑같은 방법으로 승리를 쟁취하려 하면 승리는 멀어질 것이다.
이런 여러 메시지들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는 구절이 바로 이 전승불복(戰勝不復)의 정신이다.
통계에 의하면 30년 전 국내 30대 기업에 속했던 그룹 중에 현재까지 30위 안에 드는 것은 채 10개도 안된다고 하니 승리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영원히 그 승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승리를 하는 것보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때는 잘 나가던 사람이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나면 철저하게 망가져 있는 것을 본다. 그가 한 번 이룬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순간 그의 뒤에는 또 다른 승자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16강에도 들지 못한 채 쓸쓸히 서울을 떠나야 했다. 98년도 월드컵 우승, 2000년 유럽대륙 컵 우승, 이번2002 월드컵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프랑스 팀이 손자(孫子)의 이 구절을 한 번만 되새겼다면 그런 참패와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승리가 영원히 그들에게 있으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지난 승리에 자만한 프랑스 대표팀은 똑같은 감독과 선수, 지단이란 스타 중심의 똑같은 전술로 승리를 이루려 했다. 심지어 여자 친구들까지 서울로 불러들이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결국 프랑스 팀은 참패했다. 손자의 전승불복(戰勝不復) 원칙에 어긋났던 것이다.
손자는 승리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오행(五行)의 순환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 우주의 구성물질인 오행을 보라! 어느 하나 승리를 독점하는 것은 없다(五行無常勝). 가장 강하다고 생각되는 쇠는 불앞에서는 녹아버리고, 승자인 화(火)도 또 다른 승자인 수(水) 앞에서 승리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물은 다시 땅의 기운인 토(土)에게 빨려 들어가며 무릎을 꿇고, 흙은 다시 나무인 목(木)에게 머리를 숙이고, 나무는 다시 금(金)에게 찍혀지고 만다. 과연 어느 기운이 이 우주의 진정한 승자인가?”
손자는 또 말한다. “춘하추동 사계절도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四時無常位). 저 하늘의 태양도 동쪽에서 떠올랐다 끝내는 서쪽으로 지고 만다(日有短長). 달도 차고 기우는 순환을 한다(月有死生).”
손자의 이 철학은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뜻이다. 승리했다고 환호할 시간이 없다. 그 승리 뒤에 다가오는 또 다른 실패를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북송(北宋) 때 재상을 지냈던 구래공(寇萊公)이라는 사람은 육회명(六悔銘)란 글에서 승리할 때 잊으면 후회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내가 높은 관직에 있을 때 자리를 이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취한다면 관직에 쫓겨날 때 후회할 것이다. 내가 부자로 성공했을 때 검소한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망해서 가난해 질 때 후회할 것이다. 내 몸이 건강할 때 건강을 과신하고 충분히 쉬지 않으면 쓰러져 병날 때 후회할 것이다.”
어떤 누구도 영원히 권력을 유지할 수는 없다. 부와 건강이 영원히 내 곁에 있으리란 생각은 착각이다. 권력은 잠시 내게 머물렀다 가는 것이고 부와 건강도 영원히 내 것은 아니다. 승리 뒤에는 언제 또 다른 승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승리는 영원하지 않다는 장자(莊子)의 우화가 있다. 장자가 밤나무 밭에 놀러 갔다가 이상한 까치 한마리가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장자가 까치를 향해 돌을 던져 잡으려 하는 순간 까치는 본인이 위험에 빠진 것도 모르고 나무에 있는 사마귀 한 마리를 잡아 먹으려고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데 사마귀는 자기 뒤에 까치가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사실을 모른 채 매미를 향해 두 팔을 쳐들어 잡으려 하고 있었고, 매미는 그것도 모르고 그늘 아래서 모든 것을 잊고 노래하고 있었다.
장자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 중에 진정한 승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던지려는 돌을 내려놓았다. 그 때 밤나무 밭 지기가 쫓아와 장자가 밤을 훔친 줄로 알고 그에게 욕을 퍼 부었다.
장자 역시도 최후의 승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먹히고 물려 있으면서 자신이 영원한 승리자인 듯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영원히 승리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손자는 전승불복(戰勝不復)이란 명제를 제시하면서 영원한 승자로 남기 위한 중요한 원칙을 하나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응형무궁(應形無窮)의 정신이다.
응(應)은 대응한다는 뜻이다. 형(形)은 조직의 모습이다. 무궁(無窮)은 끝없이 변하는 무궁한 상황을 뜻한다. 해석하자면 무한히 변하는 상황에 조직의 모습을 변화하라.
응형무궁(應形無窮), 전승불복(戰勝不復)의 구절과 함께 조직의 생존을 위한 손자병법의 영원한 명제다.
상황이 변하면 전술도 변하라.
지난 날 승리한 내 모습에 집착하여 변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패배를 경험할 것이다. 지나간 내 모습과 상황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 오직 새로운 상황에 적응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승리를 유지하는 유일한 비결이다.
법가 철학자인 한비자는 이런 면에서 손자의 생각을 계승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환경에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지도자는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초할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위와 같은 송나라 농부의 우화를 제시한다.
수주대토(守株待兎), 한 번 다가온 행운에 기대어 그 상황이 또 반복 되리라고 생각하는 송나라 농부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고사성어다.
요즘도 주식투자에서 한 번 성공하고 그 성공이 반복되리라는 기대에 객장에서 주식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송나라 농부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현대식 고사성어로 하면 주식 객장에서 또 다시 돈이 쏟아지기를 기다리는 수주대금(守株待金)의 어리석음이다.
자연계에서 아직까지 멸종되지 않고 살고 있는 대다수의 종들은 끝없이 상황의 변화에 자신들을 변화시킨 종들이라고 한다.
바퀴벌레는 어둠 속에서 몇 달 동안 먹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상황에 적응하였다. 상황의 변화에 따른 그 놀라운 적응력이야말로 당당히 지구상의 승자라고 으스대던 큰 동물을 물리치고 마지막 승자로 남게 한 힘이었다.
세상의 마지막 승자는 상황의 변화에 놀랍도록 유연하게 변화하는 조직이 될 것이다.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겸손함으로 자신을 낮출 때 진정한 승리가 그 조직과 함께 할 것이다.
승리하고 있는 조직이라면 겸손함으로 상황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변하지 않는 다면 뒤에 또 다른 승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반대로 패배하고 있는 조직이라고 실망할 것 없다. 승리가 영원하지 않다면 실패 또한 영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당히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면 얼마든지 승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손자병법에 전승불복(戰勝不復)이란 말은 지금 승리하고 있는 자와 실패한 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구절이라 정말 손자병법의 명구절이다.
손자병법 총 13편중에 6번째 편인 허실편(虛實篇) 말미에 나오는 전승불복(戰勝不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곰씹어 보건데 손자병법에는 확실히 승패를 초월한 진정한 승리를 위한 철학이 있다.
수주대토(守株待兎)
토끼를 얻기 위해 새 그루터기를 찾아 나선다
토끼를 얻기 위해 새 그루터기를 찾아 나선다는 뜻으로, 나무 그루터기에서 토기를 기다린다는 守株待兎의 새로운 해석이다.
사람은 언제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의아하게 여긴다. 사람은 늘 생각하기 마련인데 언제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이상하게 여길 만도 하다. 생각이 현상의 원인을 찾아 대비책을 강구하는 뜻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우리는 보통 학습해서 기억한 내용을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 세상을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평소 생각하고 살기보다 이전부터 그렇게 해온 관행에 따라 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존 관행이 더 이상 현실에 들어맞지 않으면 처음에 ‘내가 뭘 잘못했을까’ 가볍게 점검하다가도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 원인을 찾게 된다.
우리는 평소 건강을 생각하지 않다가 몸이 아픈 자각 증세를 느끼게 되면 비로소 건강을 챙기느라 어떻게 할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과의 사이도 늘 되풀이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다가도 뭔가 의심이 들 때 ‘왜 그럴까’라며 생각하게 된다. 즉 생각은 기존 방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거나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비로소 가동하게 된다.
생각을 잘하려면 개인과 단체가 안정적으로 구축해온 삶의 관행에 균열이 갈 때 그 점을 예민하게 감지해야 한다. 물론 감지하더라도 별일이 아니라며 그냥 지나치면 개인과 단체는 변하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시대에 낙오하게 된다.
감지를 하더라도 기존 관행이 워낙 강해서 변화하기보다 안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렇게 되면 상황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나중에 상황에 떠밀려서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아무리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관행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사고의 폐쇄회로에 갇혀 상황 변화를 인정하기보다 부정하거나 심지어 왜곡하게 된다.
한비자 오두편을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중에 변화와 관련해 ‘수주대토(守株待兎)’ 고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송나라 농부가 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밭 가운데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었다.
농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더운 날 뙤약볕 아래에서 일해 봐도 수익이 얼마 나지 않는데 가만히 있어도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으니 그것을 팔아도 재미가 쏠쏠할 듯했다.
계산이 여기에 미치자 송나라 농부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히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다시 얻을 수 없었고, 그는 송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지금 옛날의 어질고 덕이 뛰어난 왕의 방법을 가지고서, 지금 세상의 백성을 다스리려 함은, 모두 그루터기를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宋人有耕田者, 田中有株, 兔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耒而守株, 冀復得兔, 兔不可復得, 而身為宋國笑. 今欲以先王之政, 治當世之民, 皆守株之類也.
우리는 보통 수주대토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판하는 문맥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이야기 글자 그대로에 나타나 있는 절반의 진실이다.
한비자는 수주대토의 고사를 기존 관행에 안주해 변화를 거부하는 문맥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일하지 않아도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는 일은 분명 일하지 않아도 놀고먹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앞으로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나리라고 보장할 수가 없다. 만약 농부가 농사보다 토끼 사냥에 관심이 있다면 그냥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토끼가 다니는 길목을 지켜 사냥을 하는 방법을 강구하면 된다.
한비자는 수주대토의 고사를 통해 과거에 커다란 영광을 가져다줬던 삶의 제도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혁신돼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결국 한비자는 귀족의 명예와 교양을 중시하는 도덕에서 일반 사람의 이익과 공정을 중시하는 결과주의로 사회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자 했다.
사람은 매 순간 변하면 살 수가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안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변화도 기존에 거뒀던 성과의 연장선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안정과 성공을 보장해왔던 관행과 가치가 현실과 시대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뒤처질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수주대토의 고사에 나오는 자신의 그루터기를 붙잡고 변화를 거부하느냐 그루터기를 과감하게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느냐를 선택해야 한다. 한비자라면 ‘새로운 그루터기를 찾아(搜株)’ 토끼를 만나는 수주대토(搜株對兎)에 나설 듯하다.
수주대토(守株待兎)
어떤 착각이나 허망한 생각에 빠져 되지 않을 일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이다.
땀 흘리지 않은 결과물은 초라하다. 세월을 익히지 않은 열매는 조그맣고, 정성을 쏟지 않은 작품은 허접하다. 뿌린 대로 거두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게 이치다. 행운이란 것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최선의 부산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춘추전국시대 송(宋)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을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달려가다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받고 죽었다.
뜻하지 않게 토끼 한 마리를 잡은 농부는 다른 토끼도 그렇게 달려와 죽을 줄 알고 쟁기를 세워둔 채 그루터기만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토끼는 다시 나오지 않았고, 농부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한비자(韓非子) 오두편에 나오는 얘기다.
토끼를 기다리며 그루터기를 지켜본다는 수주대토(守株待兎)는 어떤 착각에 빠져 안 될 일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헛된 믿음으로 생각이 완고함을 꼬집는 말이다.
원래 한비한비자(韓非)는 요순(堯舜)의 이상적인 왕도정치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 이 얘기를 지어냈다. 사람들이 낡은 관습만을 고집하고, 새로운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참고로 어리석음과 연관된 고사성어에 나오는 인물은 주로 송(宋)나라 사람이다. 불필요한 인정을 베풀다 거꾸로 화를 입는다는 송양지인(宋襄之仁), 잔꾀를 부린다는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송나라 사람이다.
중국 역사에 송나라는 세 번 등장하는데, 하·은에 이어 세워진 주나라의 조그마한 제후국이 고사성어에 나오는 그 송나라다. 나라가 작고 세력이 약한 데서 연유하지 않았나 싶다. 남북조 시대의 송나라(420~479), 당나라 이후의 송나라(960~1279)가 있다.
씨앗의 법칙은 단순하다. 뿌려야 싹이 돋고, 정성을 쏟아야 열매를 맺고, 세월을 익혀야 제대로 영근다. 사상누각은 어느 순간 절로 무너진다.
수주대토(守株待兎)와 한비(韓非)
우선 4개 한자의 우리말 발음과 뜻을 살펴보자. 수(守)는 '지키다', 주(株)는 '그루터기'다. 대(待)는 '기다리다', 토(兎)는 '토끼'다.
농부가 하루는 자신의 밭 안에 있는 그루터기에 토끼 한 마리가 큰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튕겨 나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기록 경신을 추구하는 달리기 선수처럼 빠르게 밭을 가로지르던 토끼였다. 다가가서 보니 목이 부러져 즉사한 상태였다. 이후 그는 농사일을 팽개치고 이 그루터기 근처에 매복하며 다른 토끼를 기다린다. 확률에 대한 센스와 상식이 결여된 행위였다. 결국 소문이 퍼지고 나라 전체의 웃음거리 신세가 되고 만다.
수주대토(守株待兎)라, 앞 두 글자 '수주(守株)'는 '그루터기를 지키다'라는 뜻이다. '대토(待兎)'는 '토끼를 기다리다'라는 뜻이다. 이 둘을 결합하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오길 기다린다'는 의미가 된다. 수주대토(守株待兎)는 춘추전국시대 송(宋)나라 농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고사에서 유래했다. '여기가 칼 빠뜨린 곳이라며, 타고 가던 배에 표식을 새긴다'라는 의미의 각주구검(刻舟求劍)과 쓰임에서 서로 통한다. 둘 다 주인공의 '어리석음'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줄거리의 핵심이다.
한비(韓非)가 저술한 한비자(韓非子)에 이 수주대토(守株待兎) 고사가 나온다. 그는 요순(堯舜)시대 등 먼 과거의 이상적인 정치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고사를 활용했다. 그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문 명군(明君)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은 수주대토(守株待兎) 하는 농부처럼 어리석다고 여겼다. 명문화된 법률과 제도를 확립하고 그대로 집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비가 평균 수준의 군주를 염두에 두고 통치권 강화 매뉴얼도 함께 제시한 이유다.
한비는 한(韓)나라의 공자로 태어났기에 일찌감치 궁정의 이런저런 내막이나 위선 사례를 가까이서 목격했다. 군주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군주라 할지라도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조언이라면 극도로 꺼린다고 그는 기록했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이에게 다가가 유세할 때 실패하는 경우는 대부분 이 핵심을 놓치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한비자의 세난(說難) 편에 여러 예시가 나온다.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나는 한비가 '세난편'을 저술하고도 정작 자신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유독 마음 아프다." 사마천은 이렇게 그를 애도했다. 한비가 친구로 믿었던 동창생 이사(李斯)의 질투로 인해 진(秦)나라 옥에 갇히고 독살되는 최후를 맞았기 때문이다.
한비는 훗날 한(韓)· 조(趙)· 위(魏)· 초(楚)· 연(燕)· 제(齊)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 영정과 동시대 인물이다. 영정이 하루는 우연히 고분(孤憤) 편과 오두(五蠹) 편의 일부를 읽고 저자 한비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윽고 한비는 진나라를 방문하고 영정을 만나 유세를 한다. 하지만 등용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시야를 조금 확대해 볼 필요가 있다. 영정이 이끄는 진나라의 통일 의지는 쉽게 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야망을 숨기지도 않았다. 진나라 전체가 살기(殺氣)를 내뿜었고 결기로 가득했다. 이런 분위기였기에 '한나라 공자가 어찌 적국 진나라를 위한 계책을 내겠는가. 그건 불가능하다'라는 이사와 요고(姚賈)의 이간질이 영정에게도 쉽게 통했다.
한비는 '적국 인재를 살려두면 후환이 생긴다'는 이사의 독하고 비정한 논리에 따라 진나라 감옥에서 독을 마셔야만 했다. 그의 나이 불과 47세였다. 이 한비의 최후에서 알 수 있듯 당시 진나라를 잠재적으로 위협할만한 적국 인재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진나라에 등용된다, 제거당한다, 철저히 은둔한다.' 이 세 갈래 길뿐이었다. 영정의 진나라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나머지 6국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한 것은 수주대토(守株待兎)나 우연이 아니었다.
한비는 자신의 애독자(愛讀者) 영정과 시기심 많은 이사에 의해 안타까운 최후를 맞았다.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희생됐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유명한 법가였다. 먼 과거의 비극이지만 오늘날에도 법(法)의 양면성엔 늘 주의가 필요함을 각성하게 한다.
▶️ 守(지킬 수)는 ❶회의문자로 垨(수)는 동자(同字)이다. 갓머리(宀; 집, 집 안)部의 관청에서 법도(寸; 손, 손으로 꽉 잡는 일, 또는 치수, 규칙)에 따라 일을 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직무를 지킨다는 데서 지키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守자는 '지키다'나 '다스리다' 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守자는 宀(집 면)자와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寸자는 又(또 우)자에 점을 찍은 것으로 ‘법도’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금문에 나온 守자를 보면 집안에 寸자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손톱을 날카롭게 세운 듯한 모습이다. 이것은 집을 '지킨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守자는 본래 '보호하다'나 '지키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寸자가 가지고 있는 '법도'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다스리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守(수)는 (1)조선시대 때 관계(官階)가 낮은 사람을 높은 직위에 앉혔을 경우에 관계와 관직 사이에 넣어서 부르던 말. 가령 종2품(從二品)인 가선 대부다 정2품(正二品)직인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된다고 하면 가선대부 수 이조판서(嘉善大夫守吏曹判書)라고 서칭(書稱) (2)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에 두었던 정4품(正四品) 벼슬. 왕자군(王子君)의 증손(曾孫)들에게 주었음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지키다, 다스리다 ②머무르다 ③기다리다 ④거두다, 손에 넣다 ⑤청하다, 요구하다 ⑥지키는 사람 ⑦직무, 직책(職責), 임무(任務) ⑧벼슬의 지위는 낮고 관직은 높음을 나타내는 말 ⑨지방 장관(지방에 파견되어 그 곳을 지키는 일이나 사람) ⑩정조(貞操), 지조, 절개(節槪) ⑪임시, 가짜 ⑫벼슬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킬 보(保), 막을 방(防), 좇을 준(遵), 지킬 위(衛),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칠 격(擊), 칠 공(攻)이다. 용례로는 지키고 보호함을 수호(守護), 절개를 지킴을 수절(守節), 일정한 지역이나 진지 등을 적의 침입으로부터 지키어 방비함을 수비(守備), 적을 맞아 지키는 형세 또는 힘이 부쳐서 밀리는 형세를 수세(守勢), 진보적인 것을 따르지 않고 예부터 내려오는 관습을 따름을 수구(守舊), 건물이나 물건 등을 맡아서 지킴을 수직(守直), 행동이나 절차에 관하여 지켜야 할 사항을 정한 규칙을 수칙(守則), 법을 준수함을 수법(守法), 보기 위하여 지킴으로 관청이나 회사 등의 경비를 맡아 봄 또는 맡아보는 사람을 수위(守衛), 적의 공격 등을 막기 위하여 산성을 지킴을 수성(守城), 그대로 좇아 지킴을 준수(遵守), 보전하여 지킴을 보수(保守), 굳게 지킴을 고수(固守), 죽음을 무릅쓰고 지킴을 사수(死守), 공격과 수비를 공수(攻守), 후퇴하여 수비함을 퇴수(退守), 망을 봄으로 또는 그런 사람으로 교도소에서 죄수의 감독과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간수(看守), 경계하여 지키는 것 또는 그 사람을 파수(把守), 완강하게 지킴을 완수(頑守), 튼튼하게 지킴을 견수(堅守), 감독하고 지킴 또는 그런 사람을 감수(監守), 규칙이나 명령 등을 그대로 좇아서 지킴을 순수(循守), 중요한 곳을 굳게 지킴을 액수(扼守), 혼자서 지킴으로 과부로 지냄을 독수(獨守), 엄하게 지킴으로 어기지 않고 꼭 지킴을 엄수(嚴守), 행실이나 말을 제 스스로 조심하여 지킴을 자수(自守),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을 일컫는 말을 수주대토(守株待兔),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하라는 뜻으로 비밀을 남에게 말하지 말라는 말을 수구여병(守口如甁), 사람의 도리를 지키면 뜻이 가득 차고 군자의 도를 지키면 뜻이 편안함을 일컫는 말을 수진지만(守眞志滿), 묵적의 지킴이라는 뜻으로 성의 수비가 굳세고 튼튼함을 이르는 말 또는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굳이 지킴을 일컫는 말을 묵적지수(墨翟之守), 빈방에서 혼자 잠이란 뜻으로 부부가 서로 별거하여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지냄을 뜻하는 말을 독수공방(獨守空房),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나라를 세우는 일과 나라를 지켜 나가는 일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창업수성(創業守成),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빼앗고 도리에 순종하여 지킴을 일컫는 말을 역취순수(逆取順守) 등에 쓰인다.
▶️ 株(구슬 주)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구슬옥변(玉=玉, 玊; 구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朱(주)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株자는 '그루'나 '근본', '주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株자는 木(나무 목)자와 朱(붉을 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朱자는 '붉다'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루라고 하는 것은 풀이나 나무의 아랫부분을 말한다. '근본'이나 '뿌리'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株자는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는 단단한 밑바탕이라는 의미에서 '근본'이나 '뿌리'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 주식회사(株式會社)라고 하면 주식이 회사의 자본을 탄탄하게 지탱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株(주)는 (姓)의 하나로 ①구슬 ②진주(眞珠) ③방울 ④붉은색 ⑤붉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구슬 원(瑗), 구슬 경(瓊), 구슬 선(璿), 구슬 옥(玉), 구슬 벽(璧)이다. 용례로는 구슬과 옥을 주옥(珠玉), 주판으로 하는 셈을 주산(珠算), 구슬과 같이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주뢰(珠蕾), 오리 형상으로 만든 구슬을 주부(珠鳧), 구슬을 박아서 만든 비녀를 주전(珠鈿), 구슬을 달아서 꾸며 만든 채찍을 주편(珠鞭), 사내 아이를 주화(珠化), 구슬과 옥 따위로 아름답게 꾸민 옷을 주복(珠服), 구슬처럼 떨어지는 눈물을 주루(珠淚), 구슬땀으로 구슬처럼 방울방울 맺힌 땀을 주한(珠汗), 진주가 조개 속에 들어 있음을 주태(珠胎), 고운 빛이 나는 아름다운 구슬을 명주(明珠), 보배로운 구슬을 보주(寶珠), 염불할 때에 손으로 돌려 그 수효를 세는 기구를 염주(念珠), 이슬 방울을 노주(露珠), 좋은 구슬과 옥을 상주(上珠), 깨어진 구슬 조각을 쇄주(碎珠), 신기한 구슬을 신주(神珠), 구슬을 꿰어 맴을 철주(綴珠), 관이나 갓의 끈에 꿴 구슬을 영주(纓珠), 예쁜 구슬을 미주(美珠), 수를 셈하는데 쓰는 구슬을 산주(算珠), 여러 개의 나무로 만든 구슬을 끈에 꿰어서 고리 모양으로 만든 물건을 수주(手珠), 눈망울로 눈알 앞쪽의 도톰한 곳 또는 눈동자가 있는 곳을 안주(眼珠), 꽃불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을 야주(夜珠), 인공으로 만든 주옥을 조주(造珠), 흑룡을 찾아 진주를 얻는다는 뜻으로 큰 위험을 무릅쓰고 큰 이익을 얻는 것을 탐려득주(探驪得珠), 마땅히 등용되어야 할 사람이 빠져서 한탄함을 유주지탄(遺珠之歎), 금을 산에 버리고 구슬을 못에 빠뜨린다는 뜻으로 재물을 가벼이 보고 부귀를 탐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연금침주(捐金沈珠), 큰 바다에 남아 있는 진주라는 뜻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현자나 명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창해유주(滄海遺珠), 수후의 구슬로 새를 잡는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수주탄작(隨珠彈雀), 새를 잡는 데 구슬을 쓴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명주탄작(明珠彈雀), 귀중한 구슬로 새를 쏜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이주탄작(以珠彈雀) 등에 쓰인다.
▶️ 待(기다릴 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寺(사, 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寸(촌)은 손, 寺(사, 대)는 손에 물건을 가짐으로, 가만히 멈춰 있음과 손으로 무엇인가 함을 나타낸다.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는 행동하는 일, 즉 무엇인가 행동하기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일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待자는 '기다리다'나 '대우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待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寺(절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중국이 불교를 받아들이기 이전까지는 寺자가 '관청'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待자는 이렇게 '관청'을 뜻하던 寺자에 彳자가 결합한 것으로 '관청을 가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다. 그런데 지금의 待자는 왜 '기다리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관청은 행정을 담당하던 곳이었으나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가 매우 더디었다. 그래서 待자는 '관청을 가다'를 뜻하다가 후에 '기다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待(대)는 ①기다리다 ②대비하다, 갖추어 놓고 기다리다 ③대접하다, 대우하다 ④모시다, 시중들다 ⑤돕다, 거들다 ⑥의지하다, 기대다 ⑦더하다, 더해 주다 ⑧저축하다, 비축하다 ⑨기대(期待)를 걸다 ⑩지속하다, 지탱하다 ⑪임용하다 ⑫막다, 방비하다 ⑬때, 기다리는 때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손님을 맞음으로 음식을 차려서 손님을 대우함을 대접(待接), 접대로 예의를 갖추어 대함을 대우(待遇), 기회가 오기를 기다림을 대기(待機), 위험이나 난을 피하여 기다리는 일을 대피(待避), 바라고 기다림을 대망(待望), 약속을 기다림을 대기(待期), 명령을 기다림을 대령(待令), 관원이 과실이 있을 때에 처분의 명령을 기다림을 대명(待命), 죄인이 처벌을 기다림을 대죄(待罪), 손님을 대접함을 대객(待客), 시기를 기다림을 대시(待時), 병세가 대단하여 살아날 가망이 없게 됨을 대변(待變), 사람을 기다림을 대인(待人), 반갑게 맞아 대접함을 환대(歡待), 희망을 가지고 기약한 것을 기다림을 기대(期待), 몹시 괴롭히거나 사납게 대우함을 학대(虐待), 푸대접으로 소홀히 대접함을 홀대(忽待), 특별히 잘 대우함을 우대(優待), 업신여기어서 푸대접함을 천대(賤待), 매우 기다림을 고대(苦待), 사람을 불러서 대접함을 초대(招待), 손을 맞아서 대접함을 접대(接待), 정성을 들이지 않고 아무렇게나 하는 대접을 냉대(冷待), 후하게 대접함 또는 그러한 대접을 후대(厚待), 너그럽게 대접함을 관대(寬待), 높이 받들어 대접하는 것을 존대(尊待), 손님을 대접함을 객대(客待), 예로써 정중히 맞음을 예대(禮待), 불친절한 대우를 박대(薄待),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을 일컫는 말을 수주대토(守株待兔),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몹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학수고대(鶴首苦待), 거적을 깔고 엎드려 벌 주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죄과에 대한 처분을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석고대죄(席藁待罪), 오래 서서 분부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권문세가에 빌붙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을 조롱해 이르는 말을 장립대명(長立待命),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세월을 아껴라는 의미의 말을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어찌 명년을 기다리랴의 뜻으로 기다리기가 매우 지루함을 이르는 말을 하대명년(何待明年),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처지가 몹시 궁박하여 어찌할 대책도 강구할 길이 없어 될 대로 되라는 태도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좌이대사(坐而待死), 창을 베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항상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인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을 침과이대(枕戈以待), 정당한 이유없이 남보다 나쁜 대우를 함 또는 그 차별을 두고 하는 대우를 일컫는 말을 차별대우(差別待遇), 말에 기대어 서서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빠르게 잘 짓는 글재주를 부러워하여 이르는 말을 의마가대(倚馬可待), 인정없이 몹시 모질게 대함을 일컫는 말을 문전박대(門前薄待),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지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여 전력을 비축하고 나서 피로해진 적을 상대한다는 말을 이일대로(以佚待勞) 등에 쓰인다.
▶️ 兎(토끼 토)는 상형문자로 兔(토)는 본자(本字)이다. 그래서 兎(토)는 ①토끼 ②달(달 속에 토끼가 있다는 뜻에서 달의 별칭이 됨)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게 되어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 먹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혹하게 버린다는 뜻 또는 일이 있을 때는 실컷 부려먹다가 일이 끝나면 돌보지 않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정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토사구팽(兎死狗烹),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을 일컫는 말을 수주대토(守株待兎), 개와 토끼의 다툼이라는 뜻으로 두 사람의 싸움에 제삼자가 이익을 봄을 이르는 말을 견토지쟁(犬兎之爭)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