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는 안진경, 초서는 손과정의 서풍(書風)으로 썼다. 字의 크기는 약 1.8Cm이고 7호(毫) 겸호면상필(兼毫面相筆)을 사용했다.>
論語集註大全
논어집주대전
論語 :
공자(孔子)가 제자들이나 당시 사람들과 논란(論難: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 논하는 것) 하고 힐문(詰問: 잘못된 것을 따져 물음) 한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集註 :
주자(朱子)가 서술한 주(註)를 명칭하는 것으로 송유십일가(宋儒十一家)의 주석(註釋)에서 좋은 점을 초출(抄出) 하고 논어 주소본(註疏本)에서 주(註)를 모아 자신의 학설을 덧붙여서 집주(集註)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大全 :
명(明) 나라 성조(成祖)가 영락 년(永樂年) 중에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를 근간(根幹)으로 하여 국가에서 발간을 한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이다. 이 영락대전본은 명나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로 채택했다.
논어(論語)는 맹자(孟子)와 마찬가지로 편명(篇名)에는 뜻이 없다. 옛날 죽간을 말아놨을 때 제일 첫 번째 나온 글자 <子曰은 자주 나오므로 편명(篇名)으로 삼지 않고> 그다음의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를 편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學 자를 제일 먼저 둔 것은 공자가 배움을 먼저 거론한 뜻이 있다고 본다.
7, 述而篇(술이편) 14 ~ 19 章(장)
此篇 多記聖人謙己誨人之辭와 及其容貌行事之實이라 凡 三十七章이다.
이편은 대부분 성인(공자)이 자신을 겸손히 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신 말씀과 그(성인의) 용모와 행사(일을 행함)의 사실(事實: 내용)을 기록하였다. 모두 37장이다.
及 : 及은 與와 같이「~과 ~」할 때 쓰는 글자이며 지금은 和로 쓴다. 及, 與, 和는 같은 용법으로 우리말로는「~와. ~과」이다. 이 세 가지가 병용된 것이 於이다.
염유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위나라 임금을 도우실까? 자공이 말하기를 그렇다! 내가 그 점에 대해서 질문해야겠다.
<자공이> 들어와 말하기를(묻기를) 백이와 숙제는 어떤한 사람입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옛날의 어진 사람이었다. <자공이> 말하기를 원망(후회) 하였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인을 추구하다 인을 얻었으니 또한 무슨 후회가 있었겠느냐. <자공이> 나와서 말하기를 선생님은 <위나라 임금을> 돕지 않을 것이다.
무왕(武王)이 문왕(文王)의 신주(神主)를 싣고서 동쪽으로 주(紂)를 정벌하러 갈 때백이와 숙제가 말고삐를 잡고 간(諫) 하기를『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직 장례도 지내지 못했데 전쟁을 벌이는 것을 효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로써 임금을 시해하려고 하니 인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니 좌우의 병사들이 죽이려고 하니 강태공 의로운 사람이라고 해서 죽이지 못하게 했다. 무왕이 상(商) 나라를 멸망시키니 백이 숙제는 주나라의 녹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수양산에 은거하다가 고사리 캐먹다 굶어서 죽었다.
훗날 성근보(成謹甫)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난하사(灤河祠:백이 숙제의 사당)에 들러서 시(詩)를 지으니 그기에 있는 비석에서 땀이 주르르 흘렀다고 한다. 이 시를 짓고 돌아와서 세조에게 바로 죽었다.
<위나라> 영공(출공첩의 할아버지)이 자신의 세자 괴외(蒯聵)를 축출(逐出) 하였는데 영공이 훙(薨: 제후의 죽음) 했을 때 국인이(위나라에서) <南子가> 궤외의 아들 첩(輒)을 세웠다. 이때에 진나라<晉大夫 趙鞅이>가 궤외에게 군사를 주어 들여보냈는데 첩이 궤외를 막았다. 이때에 공자께서 위나라에 계셨는데 <위나라에서는> 궤외는 아비에게 죄를 얻었고 첩은 적손(정실이 낳은 아들)이므로 즉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염유가 의문이 있어서 질문한 것이다.
諾은 應辭也라. : 낙은 응대하는 말이다.
★ 영공(靈公)은 출공첩(出公輒)의 할아버지이고 괴외(蒯聵)의 아버지이다. 영공의 부인이 남자(南子)인데 남자가 친오빠인 송조(宋朝)와 음행(淫行)이 있는 것이 부끄러워서 계모인 남자를 괴외가 죽이려고 도모하다 먼저 발각되었다. 남자가 영공에게 이사실을 말해 영공이 아들인 괴외를 쫓아냈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려 할 때에 유명(遺命)으로 숙제를 세우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 숙제가 백이에게 <임금의 지위를> 사양하였는데 백이는 아버지의 유명(遺命)이라고 말하고 드디어 도망하여 떠났는데 숙제도 역시 즉위하지 않고 도망하니 국인(고죽 나라 사람들)이 둘째 아들을 즉위시켰다. 그 후에 무왕이 주왕(紂王)을 정벌할 때에 백이와 숙제가 말고삐를 잡고서 간하였고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니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녹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주나라를 떠나서 수양산에 은거하다가 마침내 굶어서 죽었다.
군자가 이 나라에 있을 때에는 그 나라 대부를 비방하지 않는 것인데 더군다나 그 나라 임금이겠는가? 그러므로 자공은 위나라 임금을 가리키지 않고 백이 숙제를 가지고 질문을 삼았는데 공자와 이와 같이 말씀해 주었으니 공자가 위나라 임금을 돕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백이는 아버지의 유명(遺命)을 존중하였고 숙제는 천륜을 중요하게 여겼으니 그들이 나라를 사양한 것은 모두 천리의 정도(正道)에 부합이 되고 인심의 편안함을 성취(成就) 시키는 방법을 추구한 것이다. 얼마 지난 뒤에 각각 자신을 뜻을 얻는 데에 이르러서는 그 나라를 버리기를 떨어진 신발과 같이 여겼을 뿐이니 무슨 후회가 있겠는가? 이를테면 위나라 첩이 나라를 나라를 점거(占據) 하고 아비를 막고서 오직 임금의 지위를 잃는 것을 두려워한 것을 동연(동등하게. 同一)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卽 : 卽 나아가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卽은 就와 같고 就는 成과 뜻이 같다. 그래서 成就에 뜻을 가지고 있다.
旣而 : 얼마 지난 뒤에. 俄而: 잠깐 뒤에. 시간적으로 짧은 것을 말한다.
【章下註】
程子曰 伯夷叔齊 遜國而逃하고 諫伐而餓호되 終無怨悔하니 夫子以爲賢이라 故 知其不與輒也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백이와 숙제는 나라를 사양하여서 도망을 갔고, <무왕의>정벌을 간하다가 굶어 죽었으나 끝내 후회가 없었으니 그것을 공자는 어질게 여겼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첩을 돕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이다.
[十五章]
子曰 飯 疏食飮水하고曲肱而枕之라도 樂亦在其中矣니 不義而富且貴는 於我如浮雲이니라。
자왈 반 소사음수하고 곡굉이침지라도 낙역재기중의니 불의이부차귀는 어아여부운이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를 하여 잘지라도 즐거움은 또한 그 속에 있는 것이니 불의(事理에 맞지 않음) 하여 부유하면서 지위(地位)가 높게 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다.
疏食 : 거친 밥. 원래는 소사(蔬食)로 쓴 글자인데, 요즘 소사(蔬食) 이렇게 쓰면 나물밥을 먹는 것이다. 소사(疏食: 粗米로 지은 밥)는 정사(精食: 白米로 지은 밥)와 상대어가 된다. 부유한 사람은 정사(精食)와 음갱(飮羹: 국을 끓여 먹음)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소사(疏食)와 음수(飮水: 물에 간장을 타서 먹음) 한다.
浮雲 : 뜬구름은 비를 내리는 것도 아니고 인간생활에서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스러운 구름, 흉한 구름이라고 하는 것은 흑운(黑雲)을 가지고 말한다. 왜냐하면 가물었을 때 검은 구름이 와서 비가 내리면 상 서러운 구름이고, 장마가 졌는데 검음 구름이 와서 비가 내리면 흉한 구름이 된다. 똑같은 구름인데 나의 입장에서 평가되기 때문이다.
飯은 食之也요 : 반은 밥을 먹는 것이다. ※食也로 쓰면 食(밥 사)가 되기 때문에 훈고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之를 붙여 서술어로 쓰였다는 것을 표현해준 것이다. 食은 명사가 되기도 하고 서술어가 되기도 하는 글자이기 때문에 밥이라고 할 때는 “사” 먹는다고 할 때는 “식” 먹인다고 할 때는 “사”가 된다.
성인의 마음은 완전한 천리 어서 비록 곤궁(매우 가난함) 한 지경에 처할지라도 즐거움이 또한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其) 옳지 못한 부귀를 보기를 뜬구름이 무유(或有或無: 어느 곳에는 없고 어느 곳에는 있는 것)과 같아서 막연(전혀 마음에 두지 않음) 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동요되는 바가 없는 것이다.
困極 : 찢어지게 가난함. 極은 窮과 통하므로 困極이나 困窮은 똑같다.
無有 : 일반적으로 “없다”이다. 有無는 “있느냐 없느냐”이다. ※우암(尤庵)은 여기의 無有는「或有或無: 어느 곳에는 있고 어느 곳에는 없는 것」로 해석해야 된다고 했다.
漠然 : 아득한 것도 막연이고, 서로를 잊는 것도 막연이고, 나하고 상관이 없는 것도 막연이다.
程子曰 非樂疏食飮水也라 雖疏食飮水라도 不能改其樂也라 不義之富貴를 視之輕如浮雲然이니라.
又曰 須知所樂者何事니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공자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비록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실지라도 자신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옳지 못한 부귀를 보기를 가벼운 뜬구름처럼 여긴 것이다.
또(明道) 말하기를 모름지기 즐기는 대상이 무슨 일인지 알아야 된다.
[十六章]
子曰 加(假)我數年하여 五十(卒)以學易 可以無大過矣리라。
자왈 가(가)아수년하여 오십(졸)이학역 가이무대과의리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몇 년을 빌려주어서 마침내 주역을 배우게 되면 큰 잘못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논어 註疏 해석》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나의 나이에 몇 년을 더하여 오십 세가 되어서 역경을 배운다면 큰 잘못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 주자는 본문을『假我數年 卒以學易』이렇게 풀이한 것이다. 假는 加와 음이 서로 비슷하고 卒은 五十을 잘못 나눈 것으로본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읽을 때 아예 五十을 卒로 읽었다.
劉聘君이 見元城劉忠定公한대 自言 嘗讀他論하니加 作假요五十 作卒이라.
유빙군(劉勉之: 주자의 장인)이 원성에 사는 유충정공(劉安世)을 만났는데 <충정공이> 스스로 말씀하기를 일찍이 다른 본의 논어를 읽었는데 더할 가자는 빌릴 가자로 되어 있고 오십이라는 글자는 마침내 졸자로 되어 있었다.라고 하였다.
蓋 加假는 聲相近而誤讀이요 : 더할 가자와빌릴 가자는 소리가 서로 근사하여서 잘못 읽어진 것이고.
卒與五十은 字相似而誤分也라. : 마침내 졸자와 오십이라는 글자는 글자가 서로 비슷하여서 잘못 놔뉘어진 것이다.
내가 살펴보건대 이장의 말을 사기에는 “나에게 몇 년의 수명을 빌려주어서 이와 같이(지금처럼 공부를) 한다면 내가 역경(易經)에 대해서 빈빈(내외가 구비돼서 찬란함) 하게 될 것이다. 가자는 바로 빌릴 가자로 되어 있고 오십이라는 글자는 없었다 아마도 이때에 공자의 연세가 이미 칠십에 가까웠으니 오십이라는 글자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다. 주역을 배우면 길흉과 소장의 이치와 진퇴와 존망의 도리를 잘 알게 된다. 그러므로 큰 잘못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역경의 도가 무궁하다는 것을 깊이 알고 이것을 말씀하여 사람들을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역경(易經)을 배우지 않아서도 안되지만 또한 쉽게 여기면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주역(周易)이란 책에는 매우 좋다도 없고 매우 나쁘다도 없다.「매우 좋으나 조심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 좋지 않으나 조심하면 괜찮다」의 식이다. 주역은 회(悔)와 인(吝)이다. 잘못이 있으면 고쳐나가야 되고 고치지 않으면 후회가 될 일로 남는다. 그것이 주역이다. 즉 길흉회인(吉凶悔吝)이다.
孔子年已幾七十矣 : 사기(史記)에 의해서 공자의 연세가 70에 가깝다 라고 말한 것인데 “논어 고증”이라는 책에서는 이때의 공자의 연세는 45~6세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몇 년 더 배우면 50이 되기 때문에 五十이라는 글자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라고 한다. 50이 되어서 주역에 능통하니 비로소 공자가 이것으로 주역을 찬익(贊翼) 했다고 한다. 논어 주소에서도 五十으로 되어 있다.
吉凶消長進退存亡 :
吉
태괘
泰卦
☷
↓↓
↑↑
☰
건괘(乾卦: ☰)가 아래에 있고 곤괘(坤卦: ☷)가 위에 있는데 內卦는 건괘(올라가려는 하는 성질: 純陽)이고 外卦는 곤괘(내려가려는 성질: 純陰)여서 올라감과 내려감을 마주치게 되므로 아주 “吉”한 것이다.
凶
비괘
否卦
☰
↑↑
↓↓
☷
곤괘(坤卦: ☷)가 아래에 있고 건괘(乾卦: ☰)가 위에 있어서 올라감과 내려감이 멀어지게 되어 날이 갈수록 사이가 벌어지므로 “凶”한 것이다. 그러나 사이가 벌어질 때에 乾은 낮추려고 하고 坤은 올리려고 하면泰卦로 돌아서고 否卦를 만났어도 서로 맞추어 가면 泰卦로 변하는 게 길흉(吉凶)의 이치이다.
長
복괘
復卦
☷
↓↓
∵
☳
진괘(震卦: ☳)가 아래에 있고 곤괘(坤卦: ☷)가 위에 있는데 곤괘(내려가려는 성질)와 진괘(아래에서 陽이 자라나 자꾸만 올라감)여서 갈수록 좋아지는 것이“長”이다.
복괘가 계속 陽이 되면 다시 陰이 나오는 것이구괘이다.
消
구괘
姤卦
☰
↑↑
∵
☴
손괘(巽卦: ☴)가 아래에 있고 건괘(乾卦: ☰)가 위에 있어서 맨 아래에 음이 생겨나면서 양이 자꾸자꾸 사라지는 것이 “消”이다.
모든 것이 잘되고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안될 때도 있다는 말이다. 구괘를 만났을 때는 자신을 낮추고 단속을 해야 할 때이다.
吉과 長이 나왔을 때는 내가 나아갈 때(進)이고 보존해야 할 때(存)이다. = 進存.
凶과 消가 나왔을 때는 내가 잠시 물러날 때(退)이고 없어질 때(亡)이다. =退亡. 이것이 위에서 말하는 吉凶消長 進退存亡이다.
[十七章]
子所雅言은 詩書執禮 皆 雅言也러시다。
자소아언은 시서집례 개 아언야러시다。 공자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은 시경과 서경과 예를 지키는 것이니 모두 항상 하시는 말씀이었다.
《논어 주소 해석》
공자께서 표준어로 말씀하는 것은 시경과 서경을 읽을 때와 예를 집행(執行) 할 때는 모두 표준말로 하셨다.
雅 : 훈고학(訓詁學)적인 해석은 “바르다”이다. 雅學이라는 하는 것은 正學을 아학 이라고 한다. 雅에 “항상”이라는 뜻은 별로 안 쓰인다.
시경으로써 마음 씀씀이를 다스렸고, 서경으로써 정사를 말(道= 記述) 하였고, 예로써 절문(등급에 맞게 조절한 문장)을 잘 지키게 하였으니 모두 일상생활의 실제에 간절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해 주신 것이다. 예만 유독 지킨다고 말(표현) 한 것은 사람들이 굳게 지켜야 될 바를 가지고서 말한 것이고 한갓 암송(暗誦) 하고 말할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以 : “시를 가지고”뜻의 以이다.
道: 말할 도. 단순히 말하다의 뜻보다는 기술(記述)의 뜻이다.
謹 : 天理之節文에 털끝만 한 일일지라도 헤아려 봐야 된다는 뜻이다.
【章下註】
程子曰 孔子雅素之言은 止於如此요 若 性與天道는 則有不可得而聞者하니 要在默而識之也라.
정자(明道)가 말하기를 공자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은 이와 같은 데에 그쳤고 성, 천도와 같은 것은 들을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요점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아는(깨우치는) 데에 달려있는 것이다.
謝氏曰 此因學易之語而類記之야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이장은 역경을 배워야 된다는 말씀으로 인해서 같은 류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十八章]
葉公 問 孔子於子路어늘 子路不對한대
섭공 문 공자어자로어늘 자로불대한대
子曰 女 奚 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하고 樂以忘憂하여 不知老之將至云爾니라。
자왈 여 해 불왈 기위인야 발분망식하고 낙이망우하여 부지노지장지운이니라。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서 물었는데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너는 어찌 “그 사람됨이 <터득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분발하여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터득하고 나면> 즐거워 근심조차 잊어버려 늙음이 이르려는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 其爲人也 다음에『篤好學 未得則(독실하게 학문을 좋아하여서 아직 터득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이, 樂以忘憂 앞에는 『旣得則(터득하고 나면)』의 문장이 들어가야 된다.
葉 : 지명이나 성을 말할 때는 섭으로 읽는다.
云爾 : 云爾를 如此(이와 같이)로 많이 해석한다. 여기서 여차로 해석한다면「늙음이 이르는 것도 이처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로 간곡한 말이 된다.
葉公은 楚葉縣尹沈諸染이니 字子高니 僭稱公也라. : 섭공은 초나라 섭현 윤(守令: 수령) 심제량 이니 자는 자고인데 참람(참람: 분수에 넘침) 하여 공이라고 칭한 것이다.
터득하지 못했을 때에는 분발해서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터득하고 나면 즐거워 근심을 잊어버려서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노력해서 날마다 부지런히 해서 남아있는 수명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다만 스스로 자신이 학문을 좋아하는 것이 독실(篤實) 하다는 것을 말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씀을> 깊이 맛보게 되면 그 온전한 본체가 지극하여서 순수하면서도 중지하지 않은 신묘(神妙) 함이 나타나 있으니 성인이 아니라면 미치지 못할 것이 있다. 대체로 공자께서 스스로 <겸사로> 하신 말씀들은 그 분류가 이와 같으니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생각을 다해야 될 것이다.
俛焉 : 노력해 나감. 俛은 勉(힘쓸 면)과 음이 같아서 가차(假借)가 된다.
年數 : 남아있는 수명.
[十九章]
子曰 我 非生而知之者라 好古敏以求之者也라。
자왈 아 비생이지지자라 호고민이구지자야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안 사람이 아니다. 옛날의 <道>를 좋아하여 서둘러서(노력하여)<그 이치를 알기를> 추구한 사람이다.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 성인으로써 언제나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을 면려(勉勵) 시키려고 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대체로 태어나면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의리일 뿐이니 만일 저 예막의 명물(名: 모든 예악의 그에 따른 명칭. 物: 그에 따른 형식)과 고금의 사변과 같은 것은 <生而知之者> 라도 반드시 배우기를 필요로 한 연후에 그 사실을 증험(證驗)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