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날드 다빈치는 이태리인으로 미켈란젤로 등과 거의 동시대 인으로 피렌체등 이태리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말년에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임종하게 되어서 그림도 프랑스에 남게 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성만찬 장면이다
-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위의 그림은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인 '최후의 만찬'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 당하시기 전 날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는 장면이죠.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이 날을 어떤 날이라고 알려주고 있을까요?
바로 유월절입니다.
레오나르도 "피에로"는 1452년 4월 15일 피렌체 공화국 토스카나의 '빈치(Vinci)' 마을에서 태어났다. 레오나르도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부모인 변호사 아버지 안토니오 피에로와 농민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아들이었다. 처음 태어나서는 어머니의 집에 살다 대여섯이 되서 아버지의 집에 가서 살게 되었는데, 레오나르도를 돌봐준 것은 아버지보다는 숙부였고 숙부는 어린 레오나르도에게 자연과 세상을 조금씩 가르쳐주었다.
아버지가 레오나르도의 재능을 인식한 뒤, 레오나르도는 14살쯤 피렌체로 이사를 가 안토니오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공방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20살이 되어 베로키오의 그림 <그리스도의 세례>에 어시스턴트로 참여해 꼬마 천사 두명을 맡았는데, 당시에 일반적이던 템페라 기법에 새로 알려지기 시작한 유화를 같이 실험해서 그렸다.
30살이 된 1482년 다빈치는 밀라노 공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밀라노 공이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가 다빈치를 지원하면서, 다빈치는 여러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암굴의 성모>나 <기마상> 등이 이때 만들어졌고,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최후의 만찬이다. 제2차 이탈리아 전쟁이 일어나면서 1499년에 프랑스의 루이 12세가 밀라노를 점령하고 루도비코는 프랑스에 투옥되며 밀라노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다빈치는 잠시 베네치아에서 일을 하다가 1500년 피렌체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1501년 <성 모자와 성 안나> 제단화를 그린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연구 스케치와 관찰을 남겼다. 헬리콥터나 인체비례도 등 잘 알려진 다 빈치의 과학자/기술자적 면모는 이 때의 스케치로 알게 된 것. 1503년에 피렌체 시청에 벽화작업을 의뢰받아 <앙기아리 전투> 작업을 시작했는데, 재밌는 건 옆편 벽에서 라이벌인 미켈란젤로가 <카시나 전투>를 작업하고 있었다는 것. 또한 1503년에는 그 유명한 모나리자 작업을 시작해 죽을 때까지 그림을 손에 놓지 않는다. 1506년에는 루이 12세의 요청을 받고 다시 밀라노에서 작업을 하게 된다.
밀라노를 떠나는 1513년까지 다빈치는 다양한 작업과 연구를 하면서 지냈는데, 제3차 이탈리아 전쟁으로 1512년 교황이 밀라노를 공격하고 프랑스는 물러난다. 그렇게 프랑스가 떠나면서 다빈치는 교황령의 로마로 가서 교황청 작업을 주로 하게 되었지만 완성작 없이 취소되었고, 1516년 프랑수아 1세의 요청으로 프랑스 루아르 강의 앙부아즈 궁에 기거하게 되고, 여기서 <모나리자>가 완성된다. 1519년 4월 23일 세상을 떠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도 수태고지를 그렸습니다. 1472~1475년 사이에 그려졌으며 이게 정말 다빈치가 그린 것인지 오랫동안 논란이 많았답니다. 여러 아티스트의 콜라보 작업으로 이루어졌으나 레오나르도가 완성했다고 합니다. 78x219cm의 나무 위의 유화입니다(Uffizi, Florence). 성모 마리아의 위세가 대단하고 대천사 가브리엘은 전령 같은 느낌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