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화성, 성 밖으로 걷다
1. 일자: 2023. 9. 3 (일)
2. 장소: 수원화성
3. 행로
[장안문(07:20) ~ 화성장대(07:45) ~ 지석묘군(07:52) ~ 위령비(07:58) ~ 정조대왕비(08:25) ~ 장안문(08:43) ~ 방화수류정/용연(09:00) / 5.59km]
곤히 자다 큰 소리가 들려 일어난다. 아들의 흥분한 목소리다. 손홍민이 해트트릭을 기록했단다. 흔치 않은 일이기에 TV 앞에 앉아 남은 경기를 보았다. 발군의 실력이다.
눈을 뜬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생각이 많아진다.
수원행 버스에 오른다. 장안문에서 서문으로 성 밖 길을 따라 걷는다. 처음 걷는 새길을 따라 화성장대로 오른다. 짧은 오르막이지만 평지 걷기에 익숙해져 인지 제법 숨이 차다. 장대에 서니 수원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날이 궃어서 인지 인적이 드물다. 덕분에 호젖한 분위기를 즐긴다.
비가 거세진다. 지석묘에서 순환도로로 내려선다. 비에 젖은 숲 그늘이 그윽하다. 낯선 빛바랜 비석을 발견하고 발길을 옮긴다. 23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군인 아들을 추모하는, 아버지가 세운 비석이다. 애끓는 부정이 느껴져 마음이 짠했다.
비 소리를 들으며 너른 도로를 걸으니 기분이 나아진다. 정조대왕 동상 앞에 선다. 너무 똑똑했던 그래서 일찍 죽은 개혁가, 그가 영조만큼 살았다면 이 나라가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적어도, 반개혁 수구 세력들이 친일파와 결탁하여 지금처럼 활개치는 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여러 다른 생각을 아우르며 더불어 국가와 백성을 삶을 경영했던 세종이 더 빛나는 이유다.
장안문 앞에 선다. 비가 그쳤다. 수류방화정이 올려다 보이는 용연 앞에 선다. 화성 제일의 화려한 풍광이 펼쳐진다. 비가 연못의 색을 더 푸르게 해 주었다. 한참 동안 사진찍기 놀이를 했다. 집을 나설 길 잘 했다.
비 덕에 평소 다니지 않던 둘레길로 화성 성 밖 곳곳을 헤매다 왔다. 비의 운치와 낯선 경험이 좋았다. 집 나서기까지가 어렵지, 일단 길에 서면 후회는 없다.
지난 한 주의 머리 속에 있던 찌거기들이 말큼히 씻겨져 나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