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 강원도의 매력 속으로 / 김 경
일찌감치 강원도로 이틀간의 문학기행 일정을 잡아놓고 보니 어찌나 시간이 감질나게 흐르던지 조바심이 일었다. 일찍 기온이 떨어지는 강원도 최북단 통일전망대에 혹여 이른 추위가 오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들었다. 일행 중에는 연세 지긋하신 분들도 있어서 불편을 최소화하는 게 집행부의 임무였다.
여행만큼 사람을 여유롭고 넉넉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당일 아침, 제법 이른 시간인데도 모두가 약속에 맞춰 버스가 기다리는 반월당으로 모였다. 저마다 화색이 도는 얼굴이었다. 인원 체크 후 드디어 출발~. 그동안 코로나다, 뭐다 해서 여행다운 여행의 기회가 적었으므로 모두가 자유와 낭만으로 완전무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워낙 먼 길인지라 시간을 절약하고자 아침밥은 찰밥과 떡으로 대신했다. 물이며 간식 봉지까지 나누니 하루 먹거리가 든든하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야기에는 마치 아이들이 소풍을 나선 듯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버스는 두어 번 휴게소에 들른 뒤 곧장 첫 번째 목적지인 고성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 어릴 때 가보고 처음이었으니 근 20년 만에 딛게 되는 땅이었다. 막간을 이용해 서른 명의 문우들이 자유로운 방식으로 인사하고 소통하니 길이 아무리 멀어도 멀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통일전망대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새삼 서럽고 애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저 멀리 북한 땅은 평온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들이 연일 쏘아대는 미사일이 믿기지 않을 만큼 눈앞의 풍경은 고요하고도 평화롭기만 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전쟁체험관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터져 나온 대포 소리에 사람들이 혼비백산했다. ‘아, 이것이 전쟁의 소리구나.’ 온몸을 강타하는 공포에 정신마저 얼어붙었다. 이어 한국전쟁의 참혹상을 전시해놓은 내부를 둘러보는 동안 가슴 아프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심장을 흔들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불행한 것이 바로 전쟁이 아닌가 싶었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그 폐해를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고 있다. 기실은 두 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그 타격으로 허덕이는 중이다. 한반도 역시 여전히 소리 없는 전쟁에 노출해 있는 만큼,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와 경각심을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은 이곳을 다녀가야 한다고 누군가 하는 이야기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였다.
여행의 목적에 먹거리를 빼놓으면 반칙이다. 일행은 통일전망대를 내려와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데워줄 황탯국 식당으로 향했다. 황탯국은 강원도의 대표 음식 중 하나다. 우리 문학회를 이끌고 가는 이숙희 회장이 여행전문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문학기행이 정해진 이후부터 내내 먹거리와 여정에 고심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가 추천하는 집은 무조건 믿고 먹으면 그만이었다. 역시나 기대를 충족시키는 첫 번째 강원도 음식에 다들 엄지 척을 아끼지 않았다.
여행의 또 하나 묘미라면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변수다. 그것은 여행의 기억을 미화시키는 힘을 오래도록 발휘하고는 한다. 오후에 접어들어 가랑비가 들기 시작하더니 잠시 내리다가 멎고, 멎었다가는 또 내리며 약을 올렸다. 비의 밀당에 휘둘릴 게 뭐람. 냅다 가게로 뛰어가 우의 30개를 사서는 하나씩 나누어 입고 보니 그새 하늘이 말갛게 개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비와 우리 사이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는데 입으면 멎고, 벗으면 내리는 비가 마치 개구쟁이 소년 같았다.
하늘은 회색빛으로 잔뜩 분위기를 잡고, 우리는 파란색, 노란색 우의로 멋을 부리며 화진포 바닷가의 이승만, 김일성 별장을 둘러보았다. 옛날의 영광은 낡아가는 집으로 남아 그들의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주변의 솔밭과 모래사장을 기웃거리는 사이 어느새 늦은 오후로 접어들었고 우리는 저녁 식사가 예약된 식당으로 이동했다. 강원도의 두 번째 음식은 곤드레밥이었다. 도시에서는 별식으로 파는 식당이 있기는 해도 곤드레나물이 조금 들어간 게 대부분인데 역시 산지의 인정은 푸짐했다. 돌솥밥과 생선과 나물과 국은 입에 달았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할 시간, 버스는 속초 중앙시장에 몇 사람을 부리고 숙소로 떠났다. 속초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한다는 야식의 성지에서 긴 줄 끝에 서는 즐거움을 언제 또 누릴 것이냐. 네 사람의 양손에 바리바리 들린 음식들은 숙소에서 열릴 조촐한 뒤풀이를 위한 것이었다. 오징어순대, 새우튀김, 닭강정, 회, 맥주에 과일까지 후회 없는 여행을 위한 큰 손들의 선택은 끝이 날 줄 몰랐다. 타지에서 누리는 여분의 행복과 자유와 방랑의 달콤함이야말로 여행의 최대 선물이라 할 것이다.
야시장의 전사들이 돌아오자 세 개의 대형 방에 나누어 짐을 푼 문우들이 한 방에 속속 모여들었다. 주부 9단들이 일사천리로 음식을 차리자 마치 잔칫집을 방불케 했다. 어라, 너무 심했나. 에이 내일 먹으면 되지 뭐. (사실 남은 몇 가지 음식은 이튿날 무사히 여행을 끝내고 모두가 돌아간 뒤, 나머지 정리차 남은 몇 사람이 맥주에 곁들여 먹었다. 여행을 조금 더 한 셈이다.)
다 같이 빙 둘러앉아서 건배도 하고, 소회도 곁들이고 또 홍교수님의 아낌없는 제자 칭찬 타임까지 참으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술이 아직 고픈 이들은 다른 방으로 옮겨가 좀 더 놀았다는 후문이 다음 날 아침에 바람을 타고 왔다.
이튿날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어 우릴 설레게 했다. 설악산 권금성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일이었다. 몇 년 전에 올랐던 기억이 좋아서 작년에 다시 갔다가 케이블카는 엄두고 못 내고 돌아왔었다. 평일인데도 줄이 얼마나 긴지 두어 시간 후에나 표를 예매할 수 있다니 주말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일이 풀리려면 연속으로 행운이 따르는 법이다. 그 오르기 어렵다는 권금성은 식당 주인의 배려로 미리 케이블카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식당 주인은 아침부터 단체 손님을 받아서 좋고 우리는 몇 시간을 아껴 가자마자 케이블카를 탈 수 있게 있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다. 강원도에서 먹는 세 번째 음식인 순두부에서는 약간 호불호가 갈렸다. 경상도식 얼큰한 순두부가 아닌 뽀얀 국물에 네모난 두부가 가득한 이 음식은 처음엔 이질감을 느끼지만 몇 번 먹다 보면 그 구수한 맛에 금방 매료되고 만다. 괜히 맛집이 아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랐다. 열 번 가면 두 번쯤 저 멀리 펼쳐진 동해를 볼 수 있다 했건만 우리는 무슨 행운인지 단번에 더없이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아래서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푸르고 문우들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으니 이 모든 것에 감사할 수밖에.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성에서 오랜 세월 그곳을 지키고 있는 어떤 힘을 보았다. 백 번 말로 듣는 것보다 한 번을 가 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어디 권금성뿐이겠는가.
아침 일찍 서둘렀으므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삼삼오오 떨어져 포즈를 취하고, 커피를 마시고 하는 일들에 여유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기왕 설악을 왔으니 신흥사를 거쳐 비선대까지 걸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무리라는 계산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버스는 마지막 목적지인 신사임당과 율곡의 도시, 강릉을 향해 달렸다. 강릉에 가면, 특히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러보아야 하는 곳이 오죽헌이다. 이곳은 신사임당의 친정집으로 이율곡을 낳고 기른 곳이다. 검은 대나무로 둘러싸인 집에서는 시대를 앞서간 여인의 향기와 성리학의 깨우침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선 듯 보였다.
이번 여행은 일요일에 출발해서 월요일에 내려오는 여정이었는데, 월요일마다 문학관에서 아카데미 수업이 열리는 관계로 수업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비롯한 몇몇 문우들이 막무가내 억지를 부렸다. 커피 성지라 불리는 ’테라로사‘가 지척에 있었다. 여자들은 커피에 민감한 데다 카페 중독증까지 있고 보면 그 유명하다는 커피집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끝도 없이 생겨나는 창고형 커피집의 원조인 만큼 넓은 공간에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고소한 커피 향이 둥둥 떠다니는 커피의 천국도 갈 길 바쁜 우리를 붙잡지는 못했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다 포기하고 포장으로 받아 버스에서 한 잔씩 나누어 마셔야 했다. 그날 사 온 커피콩은 아직 몇 번 더 내 입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마실 때마다 나는 속초와 동해와 강릉을 호흡하는 호사를 누린다.
이틀간의 다소 타이트했던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은 옆 사람들과 소곤소곤 여운을 즐기는 소리로 정겨운데 노곤한 몸을 잠깐이나마 잠에 맡긴 이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여행을 마무리할 시간, 뒷자리에서부터 차례로 마이크를 잡았다. 저마다의 소감은 달랐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될, 삶의 아름다운 한 페이지인 것만은 분명했다.
'서먹하던 마음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문우들의 향기를 얻었다, 인정을 나눠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선배들의 희생으로 값진 경험을 얻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등 한 사람 한 사람의 마무리 멘트는 마치 한 편의 수필처럼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히든카드로 나선 어떤 문우의 입담이었다. Y담의 대가답게 우리를 배꼽 빠지게 만드는 솜씨 덕에 잔잔하던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다. 그 틈을 노린 막내 문우의 깜찍한 노래, 노래보다 춤으로 승부를 거는 남자 문우의 대활약으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 했던가. 서른 명 중 재주꾼이 어찌 한 둘 만이랴. 민요에 능한 문우의 진도아리랑 시범과 후렴구 따라 부르기, 사진에 일가견 있는 문우로부터 사진 잘 찍는 노하우 배우기 등은 덤으로 얻은 소득이었다. 창밖으로는 늦가을 정취가 짙어가는데 버스 안은 그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대구에 가까웠을 무렵, 이번 여행에 대한 홍교수님의 정리가 있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고성과 속초 그리고 강릉에 얽힌 역사와 지식은 마치 책 한 권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들을 머리에 새기면서 역시 강의할 때 가장 빛나는 분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회장님은 이틀간 아무 탈 없이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함께 한 문우들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사실 이 모든 것 뒤에는 든든한 회장님의 배려가 있어 가능했다. 한 단체의 리더로서 행사를 진행하는 일에는 크고 작은 부담과 막중한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것들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척척 처리해 나가는 회장님의 능력과 추진력에 내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은 우리 일상에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피부에, 영혼에 무언가가 스며드는 경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고성과 설악과 동해의 기운으로 얼마간은 또 충만한 삶을 살게 될 우리, 그 바탕에는 필연의 수필이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내년에는 더욱 멋진 여행이 우리를 기다릴 것을 꿈꾸며 이번 강원도 여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