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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제노께서 전화를~~~ " 혹시 12월 21일 특별한 시간이 있으신지요?" - 왜 그러시는데?- "전체 의료구역 연말 미사를 김찬선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선교센터에서 가질 예정인데 같이 가실 수 있는지요?" 연락하겠다고 전화기를 내려놓은 후 이것저것 챙겨 확인한 후 카톡으로 답을 보냈습니다. - 가능할 것 같습니다. - 그리고 당일 아침 2시 40분에 모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정하고 외출한 후 연락을 카톡으로 다시 보내왔습니다. " 길이 많이 미끄럽습니다. 그러니 지하철에서 나오지 마시고 지하철 승강장에서 기다리세요"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응답으로 보냈습니다. 엄청 량의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 걱정을 했지만 산책을 나가보니 적설량이 미비하여 안심되었지만 지역에 따라 달랐던 모양입니다. 의료구역 구성원들과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연을 이어 온 분들이셨습니다. 인연에 대한 단초는 당연히 제노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논현성당을 다니다 주거지를 옮기면서 덩달아 교적도 옮기게 됩니다. 그 당시 개척성당처럼 가 건물을 짓고 김수환 추기경님을 모시고 봉헌 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어느 날 늦게 귀가하는 날이 생기더니 최두혁 형제님과 의료봉사를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형제님은 길동에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지금도 운영 중이십니다. 하남시 산곡동 동수원이라는 마을에 기계유 씨 집성촌이 있습니다. 유명한 헌법학자이시며 고려대 총장과 야당 총재도 하셨던 유진오 박사 집안도 이 부근이었습니다. 영면하고 계신 곳도 이곳입니다. 이 부근 이면 도로 안쪽에 작은 프란치스코의 집이 있습니다. 지체부자유 형제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이곳으로 의료봉사를 다닌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제노를 통해 알게 된 후 나름대로 시설관리를 맡고 계신 수녀님과 소통하며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있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거래하던 은행 지점과 협의하여 지로를 개설하고 지로용지를 늘 갖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전해주며 회원가입을 유도하며 나름 많은 실적을 쌓아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체가 부자유스럽다 보니 생활거주지 내부 전체가 문지방 등 장애물이 없어야 형제들이 마음 놓고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동선이 필요해 환경개선이 시급했습니다. 그리고 세탁문제와 단체로 이동 시 전세버스를 이용하려면 타고 내릴 때 형제들을 업고 내려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단점이 있어 오히려 승용차로 이동하는 것이 유리하여 차량봉사자도 필요했습니다. 이런 난제들을 해결하게 된 것도 단초는 제노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노가 재직하던 메디칼센터에 병원사목실이 생겼습니다. 이곳에 파견되신 신부님은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멕시코에서 오신 한국명 소선도 요셉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은 1967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한국에 입국하여 광주 대교구 직전동 본당 보좌, 조곡동 본당과 쌍촌동 본당 주임으로 임하셨으며 서울대교구 성수동 본당과 자양동 본당 주임으로 사목활동울 하시며 자양동 성당 건축을 하셨습니다. 또한 1996년에 로마 Camillianum 대학에서 원목 신학공부를 마친 후 전라남도 순천가롤로 병원, 건국대학교 병원, 국립의료원 등에서 원목 활동을 하신 병원사목의 창시적 역할을 하신 신부님이십니다.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는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의 외방선교회’로써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태 28, 19 – 20)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하느님을 알지 못하거나, 그분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자 멕시코 주교단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1942년 10월, 멕시코 주교단은 교황청의 동의를 얻어 외방신학교 설립 안을 승인하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실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위원장인 미겔 다리오 미란다 주교는 당시 볼리비아 선교지 대리주교였던 메리놀 외방선교회 소속인 알론소 마누엘 에스칼란테 주교를 신학교 학장으로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여 승인받았으며 이후 1948년 3월에 교황 비오 12세가 신학교 설립 공사를 인가하면서 에스칼란테 주교를 학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1949년 10월, 12명의 첫 학생들(사제 1명, 신학생 11명)이 과달루페 성모님 앞에서 선교사로서의 열망을 봉헌하였습니다. 1953년 4월에 교황청은 과달루페회의 회칙을 승인하였으며, 에스칼란테 주교를 본 회 초대 총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본 회는 과달루페 성모님을 주보성인으로 공경하며 회원들을 "과달루페 선교사’ (MG : Misioneros de Guadalupe)라고 부릅니다. 본 회의 목적은 비그리스도인의 복음화에 두고 있어 특히 복음화를 담당하는 선교사제의 모집과 양성에 힘써 왔으며 멕시코 교회와 신자들의 지원과 격려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회원들은 회헌을 준수하고 본 회의 합법적인 권위에 대해 순명을 서약함으로써 본 회에 소속됩니다. 또한 형제적 공동생활에 참여하고 온전히 선교 사명에 헌신할 것을 서약하며 이 약속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애덕을 완성하기를 열망합니다. 소선도 요셉 신부님은 불교와 그리스도교 사상 고통 앞에서 라는 책을 저술 출판하셨습니다. 이 책은 로마에서 원목사목에 대한 공부를 하시며 제출하신 논문으로 스페인어로 작성된 것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신 책입니다. 신부님은 발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질병과 시련을 언제나 큰 용기와 많은 평온함을 견디어 내시며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셨던 저의 어머님께 봉헌하며.. 큰 형님은 멕시코 추기경님이십니다. 초대해 주셔서 의료구역 팀들은 멕시코 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둘 째 형님 LA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시다 선종하셨으며 신부님은 멕시코로 귀국하셔서 본당사목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환송의 뜻을 지닌 국내여행을 기획하여 여러날 여행을 모시며 함께한 시간이 어긎제 같은데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책의 추천사에서 김수환추기경님은 2007년 6월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갈수록 세계화된다는 것은 것을 매일 보고 듣고 있습니다. 종교계에 있어서도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하여 발전과 정의 그리고 평화를 위하여 함께 힘을 모으고 서로협조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바로 종교 간의 대화 분야에 속합니다. 소 신부는 구체적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고통과 질병과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매일 같이 우리가 직면하는 이 세 가지 인간적인 사건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또한 그것들에게서 해방되기 위한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자는 불교 신도들과 그리스도 신자들 간에 좋은 대화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깊이 알고 존중함으로써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때에도 제노에 의하여 병원 미사를 참여하게 되고 병원사목에 대하여 알게 되면서 소신부님께서 초대하시면 합정동에 있는 과달루페 외방전교회 수도원을 방문하여 미사를 참례드리고 소신부님께서 차려 주신 멕시코 음식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시며 신부님께서 부르시는
멕시코 민요를 즐겨 듣고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이때 당시 형제자매들은 대부분 재속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고 또한 입회 절차를 따르던 교육생 신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입회를 하기 전 함께 아씨시를 포함하여 이탈리아 북부지방에서 시작하여 로마까지 성지순레를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시간의 흐름을 딛고 08002번으로 재속회원 번호를 받은 사람이 바로 세베리노입니다.
약속시간 20분 전 도착하였습니다. 제노가 당부한 대로 승강장 6-4 위치 장의자에 앉아 카톡으로 보낼 글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 지하철 승강장 6-4 위치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 마스크 있으면 한 개 준비해 주세요" 적어서 보냈다. 잠시 기다리라 는 이야기를 확인 후 만나 선교센터를 찾아가는 동선을 손전화기 앱을 이용하여 정리해 두었습니다. 50분 정도 소요되는데... 혹시 장시간 서서 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제노가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나타난 제노 마스크를 받아 귀에 걸고 동시에 도착한 전철에 올랐습니다. 마침 두 석이 나란히 보여 신길에서 환승하면서 장영희 데레사 자매를 만나고 구로에서 유남수 헬레나 자매님과 조순희 마리아 구역장님도 만나게 됩니다. 함께 어울려 긴 동선을 걸으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그러나 어제와 달리 상당한 추위가 느껴졌습니다. 도착한 선교회가 있는 건물, 3 층에 당도하자 성인신 모니카 자매님이 참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옛적에는 자주 만나던 자매님이셨는데... 최근 들어 몇 년 만에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형제회 소속으로 있을 때는 최소한도 매월 1회 상면기회가 있었고 함께 사진클럽에 소속되어 자주 촬영 다녔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많았지만 이젠 이 또한 운영이 중지되어 상면기회가 사라진 탓입니다. 그리고 항상 의료구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주셨던 최두혁 형제님이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참 늘 따듯하게 대해 주시는 형제님이십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의료구역 모임을 대치동 성당 내 사무실을 빌려 그곳에서 모임을 갖았습니다. 마석성당 안에 만들어진 의료봉사 사무실에서 진료봉사 하고 마석 글라라의 집까지 의료봉사를 하였습니다. 소정의 절차를 끝낸 후 정식입회를 한 형제회도 실버스텔 형제회였습니다. 강남구와 서초구가 분립되어 야고바 형제회 생기면서 하루아침에 소속이 바뀌게 됩니다. 영보님은 김수일 주교님이 형제회 봉사자는 이국희 모니카 자매님이 맡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국희 모니카 자매님은 국립의료원으로 목욕 봉사를 다니셨습니다. 이런저런 인연에 의하여 야고바로 옮겨진 것입니다. 국립의료원 재속회 회원들은 전부 야고바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20년 만에 만나게 된 형제님을 뵙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외과 전문의로 몽고 등 해외 의료봉사를 많이 다니신 형제님이십니다. 몽고로 가실 때 환송해 드리며 식사자리에서 뵙고 오늘 뵙게 되면서 시간을 따져보니 주위 사람들이 20년은 된 것 같다고 알려 주어서 알았습니다. 정말 반가운 형제님이십니다. 자주 보자 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근 30여 명인데 오늘 참석 인원은 11명이라고 하는군요.
성무일도(聖務日禱) 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공적이고 공통적인 기도로서, 일명 ‘수도자의 기도’라고도 하고 ‘聖務日課’라고도 합니다. 예전에는 일정한 시간에 맞추어 기도를 바쳤기 때문에 ‘時間經’이라고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성무일도는 초대 교회부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함께 기도했다는 사실이 성서에 기록되어 전해 오고 있습니다. 여러 지방에서는 공동기도를 위해 특별한 시간을 배정하는 관습으로 발전하였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부들은 다른 시간들도 공동기도로써 거룩히 지내기 시공동으로 바친 이 기도는 일정한 시간에 바침으로써 시간경’ 혹은 ‘성무일도’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시간경을 바치는 방법에 있어서 여러 시대에서 중대한 변경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는 개인으로 바치는 관례를 들 수 있다. 교황 성 비오(St. Pius) 5세가 1568년 공포한 <로마 성무 일도는 라틴 교회의 공적 기도의 통일성을 가져왔습니다.
1911년 교황 성 비오(St. Pous)10세는 새 성무일도서를 편찬했는데 매주 150개의 시편들을 외던 옛 관습을 복구시키고시편 부분의 전체 배열을 변경시켰습니다.최신판 <성무일도서>는 교황 바오로 6세의 교회헌장 <라우디스 칸티쿰>(1970.11.1)에 의해 공포되었는데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의 지시에 따라 성무일도의 내용과 배치를 전면적으로 개정한 것입니다. 사제와 부제(副祭)들은 성무일도를 바칠 의무가 있으며,수도자들은 수도회의 회헌에 따라 성무일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을 포함한 일반 신자들도 바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성무일도의 기도순서 ①전례시기 고유②연중시기 주일③성무일도 통상문④전례용 시편⑤성인 고유부분 공통 성무일도⑥죽은 자를 위한 성무일도.이상의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정시과(定時課)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즉 독서의 기도, 아침기도, 3시경, 6시경, 9시경, 저녁기도, 끝기도로 나누어집니다 성무일도’는 ’시간 전례’로서, ‘기도하는 교회’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교회는 이 성무일도로써 하느님께 ‘끝없는 찬미’를 바치며,천상에서 드릴 영원한 찬미를 앞당겨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례로서 그리스도의 행위인 만큼 그리스도 신비체인 공동체 전체, 곧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이 시간 전례를 거행함으로써 이 기도가 지닌 공동체성을 충만하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시간 전례를 통해서 그리스도 공동체 어디에서나 주님께 대한 찬미와 구원의 선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기다리다 성원이 되어 성무일도 시작하였습니다. 마주 보고 하기 위하여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의자를 돌려 앉았습니다. 심신의 일치를 모으는데 좋은 기도는 아무래도 성무일도 같습니다. 성무일도를 시작할 무렵 김찬선 신부님께서 분당으로 사목차 가셨다가 돌아오셨습니다. 오시는 모습을 보고 놀랬습니다. 배낭을 걸머지시고 양손으로 커다란 된장찌개가 담긴 냄비를 드시고 앞치마를 두른 채 들어오셨습니다. 여기 밥상 식당에서 저녁 먹을 때 주시기 위하여 손수 끓여 오신 것입니다.
양성체를 모신 후 미사참례를 마진 후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신부님께서 만들어 주신 음식과 따라 주시는 포도주, 함께 나누며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을 건배사로 대신하고 잔을 부딪쳤습니다.
평화의 기운이 넘쳐나고
더불어 음식 맛을 음미하며 평화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선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시며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알려 주셨습니다.
준비된 후원금도 드리고
후원금과 1,2차 봉헌금도 ~~~
즐거운 마음으로 차담을 이어가다 끝기도 드린 후 모두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여기 밥상으로 가 가래떡 또는 된장을 구매하여 신부님의 영육 간의 건강을 기원해 드린 후 각자의 집으로 향 하였습니다.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초대해 주신 형제, 자매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영육 간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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