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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4장 9-12절. 성도 사랑과 성실한 노동.
1. 지난 시간에는 <거룩한 사랑의 친교>란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로서 제일 먼저 할 일은 거룩한 친교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친교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에서 아름다운 가정생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가정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생활을 하는 사람만이 교회에서도 사랑의 친교를 아름답게 한다고 했습니다.
2. 오늘은 성도간에 사랑을 더욱 많이 힘쓰라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실하게 노동해서 도와줄 것을 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3. 오늘의 설교 제목은 <성도 사랑과 성실한 노동>입니다.
4. 내용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9-10절. 형제 사랑을 더욱 많이 힘쓰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11-12절. 이웃을 사랑하며 도울 수 있도록 성실하게 노동하라는 말씀입니다.
9-10절. 형제 사랑을 더욱 많이 힘쓰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9절.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as to the love of the brethren, you have no need for anyone to write to you, for you yourselves are taught by God to love one another;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Περὶ δὲ τῆς φιλαδελφίας οὐ χρείαν ἔχετε γράφειν ὑμῖν·
about now the brotherly love not need you have to write to you
직역하면 ‘형제 사랑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쓸 필요를 너희가 갖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쓸’(γράφει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write) 현재 쓰는 것을 가리키고, ‘필요를 너희가 가지고 있지 않다’에서 동사(ἔχε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have) 부정어(οὐ:not)와 함께, 현재 계속 필요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αὐτοὶ γὰρ ὑμεῖς θεοδίδακτοί ἐστε, εἰς τὸ ἀγαπᾶν ἀλλήλους·
yourselves for you taught by God you are, into the to love one another
직역하면 ‘왜냐하면 너희들 자신이 서로 사랑하도록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너희들’(ὑμεῖς:you)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에서(θεοδίδακτοί ἐστε) 앞의 단어는 형용사이고(taught by God) 뒤의 단어(ἐστε)는 동사 현재형으로서(you are) 둘이 합쳐서 ‘너희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계속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서로 사랑함이라’(ἀγαπᾶν ἀλλήλους)에서 앞의 단어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인데(to love) ‘너희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ὑμεῖς θεοδίδακτοί ἐστε)와 연결되어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침을 계속 받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은 ‘사랑하도록’(to love)을 결과적인 용법으로 ‘가르침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로 번역했습니다.
1.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이란 어구와 같은 표현은 고린도전서에서 많이 나옵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고전 7:1), ‘처녀에 대하여는’(고전 7:25),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고전 8:1),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고전 12:1), ‘연보에 관하여는’(고전 16:1).
이런 고린도 교회에 대한 문제는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편지로 문의한 내용에 대해서 단변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문의 사항에 답변하는 것이 아니고, 교인들의 신앙생활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언급한 말씀입니다.
2.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데살로나가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서로 사랑하는 실천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불신 이방인의 핍박이 계속 심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형제 사랑이 식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형제 사랑을 더욱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0절.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ndeed you do practice it toward all the brethren who are in all Macedonia. But we urge you, brethren, to excel still more,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καὶ γὰρ ποιεῖτε αὐτὸ εἰς πάντας τοὺς ἀδελφοὺς, ἐν ὅλῃ τῇ Μακεδονίᾳ.
and for you do this toward all the brothers, in whole the Macedonia
직역하면 ‘왜냐하면 온 마게도냐 안의 모든 형제들에게 너희가 이것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행하도다’(ποιεῖ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do) 현재 계속 행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Παρακαλοῦμεν δὲ ὑμᾶς, ἀδελφοί, περισσεύειν μᾶλλον,
we exhort but you, brothers, to abound more
직역하면 ‘그러나, 형제들아, 더욱 많이 행하도록 우리가 너희에게 권면한다’는 뜻입니다.
‘더욱 많이 행하도록’에서 동사(περισσεύ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abound) 계속 더욱 많이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권하노니’(Παρακαλοῦ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exhort) 현재 계속 권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믿은 지 한두 달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주변의 빌립보교회와 베뢰아교회 등에도 사랑을 베푸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은 참 아름다운 믿음의 모습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서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사랑의 수고를 모범적으로 하는 성도라고 칭찬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불신자들의 핍박을 심하게 받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형제들을 사랑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2.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생활입니다.
이기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불평스럽고 우울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은 항상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3.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에게서 참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우리 죄인까지 사랑하시므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죽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형제를 위해서 죽기까지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1서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1서 4:10-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 사실 우리의 본성은 죄인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이야기처럼, 지금도 어떤 분이 감옥에서 9년을 살다가 나왔는데, 잠을 좀 재워달라고 찾아오면, 섬찟한 생각부터 듭니다.
몸을 파는 일을 오랫동안 하다가 새 삶을 살려고 한다고 도와달라고 하면, 또 돈만 사기당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나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사랑을 못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5. 그러나, 하나님의 죄인과 원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체험한 후로는 거저 주는 사랑이 무엇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속는 줄 알면서도 여러 번 계속 사랑하고 도와주면, 나도 행복하고, 결국 3년쯤이면, 나의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고, 참사랑이라는 것을 믿게 됩니다.
이처럼 참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불신 세상에서 불신과 속임수로 살던 사람이 변화를 받습니다.
6. ‘사랑’이란 기독교의 표지와 같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7. 그런데 근본적으로 이 ‘사랑’은 우리 속에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탐욕으로 가득 찬 죄인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도, 우리의 속에서 나오는 것은 각종 탐욕과 악한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기적인 사랑밖에는 체험한 것이 없습니다.
어떤 경우는 부모마저도 자기가 자식을 길러주었으니까, 마땅히 보답을 받아야 한다고 이해타산적으로 계산을 따지는 부모도 있습니다.
어떤 부부의 경우는 자신이 성을 제공했으니, 마땅히 돈을 주어야 한다고 부부의 사랑마저도 서로 거래를 주고받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8.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참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참된 사랑을 해주셨습니다.
로마서 5:8. 아직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을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내 선한 행위를 보고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내 헌금과 내 봉사를 보고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한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는 하나님께서 내 봉사와 헌금과 철저한 신앙생활을 보고, 날 사랑하신 줄로 착각하면서,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는 성도들에게 칭찬을 받으면서도, 참된 행복이 없었습니다.
성도들의 칭찬이 당연한 줄로 생각하고, 내가 학교에서 늘 우등생으로 공부하여 칭찬받았던 것처럼, 교회에서도 내 열심과 성실한 봉사 때문에, 당연히 칭찬받는 것이 신앙생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다니던 어느 봄날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내가 얼마나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는데 얼마나 울고 회개하면서, 주님의 구원의 사랑에 감격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 후로 그 사람은 주님께 헌신하고, 참된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6절에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면, 참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참된 사랑, 죄인과 원수조차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대신 죽게 하신 그 크신 사랑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이성으로나 지식으로나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전적으로 성령님이 부어주신 천래적(天來的인) 사랑입니다.
기독교인의 모든 윤리 생활은 하나님의 이 사랑을 체험한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즉, 성경의 모든 교훈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너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너는 이렇게 살아라고 교훈하십니다.
오늘의 교훈인 11-12절 말씀인 성실하게 노동하라는 것도 바로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체험했으니, 너도 형제를 돕기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11-12절. 이웃을 사랑하며 도울 수 있도록 성실하게 노동하라는 말씀입니다
11절.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o make it your ambition to lead a quiet life and attend to your own business and work with your hands, just as we commanded you,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힘쓰라.
καὶ φιλοτιμεῖσθαι ἡσυχάζειν καὶ πράσσειν τὰ ἴδια
and to strive earnestly to live quietly and to attend to the own
직역하면 ‘조용히 살고 자기 일을 하도록 힘쓰라’는 뜻입니다.
‘조용히 살고’(ἡσυχάζ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live quietly) 항상 조용히 살도록 (힘쓰라)는 뜻입니다.
‘자기 일을 하도록’에서 동사(πράσσειν)도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attend to) 항상 자기 일을 하도록 (힘쓰라)는 뜻입니다.
‘힘쓰라’(φιλοτιμεῖσθαι)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trive earnestly) 항상 힘쓰라는 것인데, 원래는 10절에 ‘우리가 권하노니’(Παρακαλοῦμεν: we urge)에 연결되어, ‘’힘쓰도록 우리가 권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네, ’권한다‘를 ’권하노니‘라고 하고, 결과적 용법으로 부정사를 해석했으므로, 여기서는 ’(권하노니) 힘쓰라‘고 번역한 것이 옳습니다.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καὶ ἐργάζεσθαι ταῖς χερσὶν ὑμῶν,
and to work with the hands of you
’일하기를‘(ἐργάζεσθαι)도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work with) 계속 자기 손으로 일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즉 세 가지 (조용히 살고, 자기 일을 하고, 자시 손으로 일하는 것)은 모두 ’힘쓰라‘에 연결된 부정사구들입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καθὼς ὑμῖν παρηγγείλαμεν,
just as you we commanded
직역하면 ‘우리가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란 뜻입니다.
동사(παρηγγείλαμεν)는 부정과거로서(we commanded) 과거에 확실히 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조용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은 남의 집에 돌아다니면서 피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과 다른 사람이 일하는 것을 찾아가서 방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일을 힘써 하는 사람은 남의 일에 간섭할 틈이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할수록 더욱 공부할 것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는 학생은 하나도 공부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기 사업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더욱더 할 일이 많이 보이고 바쁩니다.
그러나 자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괜히 남에게 가서 일을 참견하고 방해를 합니다.
2.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바울 사도는 전도 여행을 하면서도 천막을 만들어서 파는 천막 장사를 했습니다. (행 18:2-3)
유대인들은 반드시 어려서부터 한 가지 먹고 살 기술을 습득하게 했습니다.
바울은 어렸을 때, 길리기아 다소에서 자랐으므로, 길리기아 산 긴 흑염소 털로 천막 만드는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당시 길리기아 산 염소 털 천막은 세계에서 유명한 천막이어서, 매우 값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복음 전도하면서 이 천막을 만들어 파는 기술로 돈을 벌어서 자비량 전도를 했고, 또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도 때도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도 자기 손으로 일하여 먹고 살도록 잘 교훈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2절.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at you will behave properly toward outsiders and not be in any need.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ἵνα περιπατῆτε εὐσχημόνως πρὸς τοὺς ἔξω
so that you may walk properly toward outsiders
‘단정히 행하고’에서 동사(περιπατῆτε)는 현재 가정법 동사로서(you may walk) 언제나 단정히 행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καὶ μηδενὸς χρείαν ἔχητε.
and of no one need you may have
직역하면 ‘너희가 아무 궁핍함을 갖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뜻입니다.
동사(ἔχητε)는 현재 가정법 동사로서(you may have) 부정어(μηδενὸς:of no one)와 함께, 언제나 궁핍함을 갖지 않는 상태를 가정한 말입니다.
1.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외인’이란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단정히 행한다’는 것은 무질서하거나(고전 7:35), 불합리하거나, 빈축을 사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하면서, 무위도식하므로 사회에서 불신자들에게 빈축을 사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데살로니가 일부 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하면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무위도식하는 종말론적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살후 3:11-12).
데살로니가후서 3:11-12.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그러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불신 사회에서 지탄받을 무질서한 행동을 하지 말고, 자기 일을 하면서 단정하고, 질서 있고, 칭찬받는 생활을 하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2.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모범적인 신앙생활자는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자기가 먹을 것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재림 신앙만을 고집하면서 무위도식하는 신자는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자기도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3.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너무나 많은 핍박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니,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지고, 오직 천국 가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가지고 있던 재산이 있어서, 그것을 팔아서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사랑을 나누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이 그렇게 생각처럼 빨리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먹을 것은 떨어져 가고, 천국은 빨리 오지 않으니, 성도간의 사랑도 식어갔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처럼 위태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서, 무엇보다도 성도간의 사랑이 식지 않도록 성실히 노동할 것을 교훈했습니다.
4. 오늘날도 시한부 종말론 이단들은 예수님이 몇 년 몇월 며칠에 오신다고 주장하면서, 그때까지만 먹고살 것 남기고, 나머지 재산은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 받도록, 다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말을 꼭 믿고, 재산을 다 바치고, 가정이 파탄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에 ‘정감록’을 믿고 따른 사람들이 그랬고, ‘차천자교’를 따르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박태선을 따라서 신앙촌에 들어간 사람들이 그랬고, 유재열을 따라서 장막성전에 들어간 사람들이 그랬고, 1992년 10월 28일 이장림 재림론을 따르는 자들이 그랬고, 오늘날 신천지 이단이나, 안식교나 여호와증인이나, 안상홍 증인회나, JMS, 엘리야 복음선교원, 영성훈련원 등이 그렇습니다.
광주 동*교회에 지산동에 사는 어떤 교수 부인이 이장림 재림론을 믿고, 시루떡을 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재산을 다 바쳤습니다.
그렇게 확실히 재림 날짜를 믿었으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자, 부끄러워서 교회로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이단으로 가버렸습니다.
5.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에는,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 하매, 종말의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는 임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후서 2장 1-2절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말로나 혹 우리에게 받았다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 이하에서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노니,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6.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노동의 의미와 목표를 분명히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노동하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자식이나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도 행복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인생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일할 때가 행복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품에서 떠나가 버리고, 자립해버리면, 부모의 마음은 빈둥지가 되어서, 우울합니다.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대상이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우울증에 걸렸든지, 아니면, 모든 사람을 미워하는 분노로 성격장애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노동하는 것은 정말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노동의 의미요 목표입니다.
7. 잘 아시는 예화로, 똑같은 석공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고 했고, 한 사람은 죽지 못해 일한다고 했고, 한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장식하려고 정성을 다하여 석공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 청소한다고 했고, 못 배운 사람이 할 일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청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지구의 한구석을 아름답게 청소한다고 했고, 또한 하나님께 예배드릴 성전을 정성을 다해서 청소한다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일을 하는 사람도 노동의 의미와 목표에 따라서, 행복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은 무슨 자세로 일하고 계십니까?
성도님은 무슨 의미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성도님은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 따라서,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참사랑을 체험하시고, 성도님들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성실하게 노동하시는 일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