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밭 / 이탄(1940-2010)
얼마나 순진한가
뱃가죽이 탁 터지면 창자가 나오고
내장의 작은 부분까지 스멀스멀.
온통 밭 일대가 피가 되어버린 이야기
그 ‘피밭’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겁을 낸 것일까
옳지 않은 수작으로 땅을 샀지만
끝내 농사도 못 짓고 배가 터진 그는
얼마나 순진한가
집집마다 키우는 강아지나 애미한테
개밥을 주며
사람 목소리를 잠시나마 잊어버리는
아주머니는 얼마나 순진한가
얼마나 순진한가
두 개의 배를 지니고
하나는 터져버리고 하나는 온전한 배를 두드리며
에헴 에헴 하는 저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어서 와야만 한다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시며
쏜살같이 와야만 한다.
내 님은 피밭을 아직 보고 있을까.
*피밭: 성경 「사도행전」에 나오는 말
이탄李炭의 본명은 김형필金炯弼이다. 오얏나무(자두나무) 숯이 그의 필명으로 숯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멋을 생각하며 지었다고 한다. 시인은 「시의 발견」이라는 산문에서 필명이 지닌 의미처럼 시적방향을 논하였는데 시어를 ‘진실의 정체’에 두고 있음을 밝혔다. “시는 시대의 불이고 생활의 물이고 정신의 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꺼지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시들지 않기 위해 다듬는다. 눈을 딴 데다 돌리지 않는다.”고 말하며 거대담론의 추상적인 면보다는 ‘작은 것들’의 진실, 그 양면에 둔다고 하였다.
독일 시인 브레히트가 쓴 “진리는 구체적이다.”(「덴마크 피난처에 부쳐」)는 시구처럼 ‘작은 것들’의 진실은 다시 노자 도덕경에 있는 현소포박見素包樸과 의미를 같이하고 있다. 현소포박은 물들이지 않은 무명천이 순박함을 드러내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의 질박함을 품는 것이란 뜻으로 시인이 “순진한가”라고 말하는 시어와 결을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순진純眞하다’라는 형용사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리숙하다는 말과 마음이 꾸밈이 없이 참됨이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인은 이 두 가지 의미를 결국 진실이라는 진리의 구체성으로 양면에 도달하지 못한 ‘반쪽’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반은 나에게 와 있으면서/반은 오지 않는 님”(「반쪽의 님」)에서 볼 수 있듯이 순진한 사람의 서사(묘사)는 성경의 인물 중 예수를 팔아버린 제자 가룟 출신 유다와, 개밥을 주며 사람 목소리를 잠시 잊어버리는 아주머니에게 두고 있다.
유다의 이야기에 복선화 된 “그 ‘피밭’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 유다는 참된 사람인가, 아니면 어리숙한 사람인가. 자신의 죄를 끝내 후회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다른 유다지만 처참하게 배가 터져 죽으며 흘린 ‘피밭’은 “옳지 않은 수작으로” 산 땅이고, 아무도 농사할 사람이 없는 땅이기에 유다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시인에게 유다는 순진하다. 그러나 세상은 영악하기만 하다.
또한 “사람의 목소리를 잠시나마 잊어버리는” 아주머니는 “개밥을 주”는 하찮은 일에서 세상을 비틀어 놓는다. 개에게 밥을 주는 것도 개의 배를 위한 일이지만 개보다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자신이 두려워서 짖고, 무서워서 짖고, 겁주고 강탈하기 위해 으르렁거리는 잔혹한 세상의 소음들이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발악을 잊어버리는 순간을 시인은 짚어내고 있다.
아직 시인에게는 어리석음과 참됨의 순진함이 “하나는 터져버리고 하나는 온전한” 두 개의 배가 있는 한 구체적인 진실에 당도할 수가 없다. 종교의 위선과 정치화에 서 있는 사람들, 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개에게 밥을 주는 사람이 있는 곳에 ‘님’이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시며/쏜살같이” 와야만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껏 시를 읽으며 두 가지로 순진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인은 「길」에서 유다가 어떤 사람인지를 밝히고 있다. “그 옛날 성경에 ‘피밭’을 만든/어리석은 사람을/님은 알고 있을 것이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인에게 ‘님’은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와 같은 시구는 읽다 덮어버렸다고 했듯이 시인이 살아 온 길(어리석음)을 포함하여 생활의 작은 ‘진실의 대상’을 통해 자신의 부끄러움을 참치 못하며 참됨을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지만 이면을 볼 수 있는 충일한 시적 태도로 빚어지는 내면의 갈등에서 시인은 자기성찰의 구체적인 진리(님)에 닿기를 원하고 있다. 하여 단편적인 여러 시의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선험자의 시류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시 쓰기를 통해 성경을 인유하고 있어도 분명한 정화나 가치(숯)를 그의 필명처럼 이루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