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구루루 홈런
야구선수는 9회 말 역전포를 꿈꾼다. 농구선수는 버저비터를 그리며 그라운드를 누빈다. 스포츠에서의 역전은 선수나 관객을 최고조로 흥분시키는 요소다. 육상도 그렇고 수영도 그렇다. 역전승의 짜릿함은 라이벌끼리의 시합일 때 기대와 흥분은 배가된다. 축구는 영국에서 시작 되었고 야구는 미국에서 체계를 완성 하였다. 나는 야구보다 축구관람을 좋아하지만 42년 전의 한일전 야구경기를 잊을 수 없다. 1982년 당시 일본 문부성이 출판사를 압박하여 조선침략사의 대부분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는 보도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다. 마침 그 해 잠실야구장에서 세계야구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결승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 그렇지 않아도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우리정서에 기름을 끼얹은 불꽃처럼 35,000명 수용면적에 40,000이 넘는 관중이 모여 안전사고마저 우려되었다.
총 10개국이 참가한 대회에서 한국은 7승 1패, 일본도 7승 1패 기록으로 최종결승에서 맞붙었다. 선동열이 선발로 나섰으나 2회초 2점을 내주면서 무기력한 경기를 이어갔다. 한국팀은 당일 오전에 이미 한 경기를 치룬 뒤라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관객의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8회 초까지 일본을 따라잡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8회 말 심재원이 2루타를 치면서 기적의 여명이 비쳤다. 관람석이 술렁이기 시작하였고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격앙된 멘트롤 통해 전국에 전파되었다. 이어서 김정수의 1타점 2루타로 2루에 있던 심재원을 불러들이면서 술렁임은 파도가 되었고 함성은 하늘을 찔렀다. 1득점을 하고도 2:1로 지고 있었지만 관중은 이제 곧 승리의 홈런이 터질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들떠 있었다.
뒤따라 나온 조성옥의 보내기 번트로 김정수를 3루로 보내 동점 가능성을 한 층 올려놓았다. 조성옥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건 벤치의 주문이 있었건 그의 번트를 예측할 어떤 징후도 없었다. 기습번트였던 셈이다. 이때부터 일본투수는 기가 죽었는지 작은 범실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관람석의 열기는 그대로 그라운드로 뻗어 내렸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김재박이 배트를 어깨에 메고 자신만만하게 힙을 두어번 비틀었다. 관객은 캠프파이어 불이 꺼지듯 고요와 기대가 가득한 채 흑백사진처럼 정지장면을 연출 하였다. 뇌성이 쳐도 꿈쩍하지 않을 듯 무거운 고요가 그라운드와 관중석을 눌렀다.
나는 프라잉번트라고 이름 지었건만 허구연해설자는 개구리번트라는 용어를 썼다. 한참거리를 두고 비켜가는 투구를 그야말로 개구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날렵하게 뛰어올라 번트에 성공하면서 3루에 있던 조성옥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포수가 일어나 펄쩍 뛰는 모습으로 보아 투수와 포수가 번트에 대비했음이 확실했다. 아무리 그래도 포수가 잡을 수 있는 범위라야 했으므로 타자의 배트를 비켜갈 수는 없었다. 김재박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번트에 성공했다. 후일담이지만 벤치로부터의 번트사인은 없었다.
김재박의 프라잉번트로 얻은 1점으로 2:2 동점을 이루었으니 마치 승리라도 한 듯 열기는 뜨거워졌고 선수들도 활기가 살아났다. 8회말 2아웃에서 동점이니 9회가 남은 만큼 긴장을 늦추기에는 시기상조다. 1점이 간절한 순간이 되었다. 이 때 등장한 선수가 롯데소속 한대화 였다. 주자가 1,2루에 나가있으니 만약 어쩌다가 홈런이 터진다면 5:2 역전이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꿈같고 기적 같은 만약을 기대하면서 관중석 아니 전 국민은 한대화를 주시했다. 야구는 2아웃부터라는 속담을 믿고 싶었다.
그는 오른손잡이였고 타석에 들어서자 배트를 오른쪽 어깨에 둘러메었다. 무계중심을 오른쪽 다리로 옮기면서 좌측 무릎을 가볍게 구부려 발끝으로 트위스트 동작을 보였다. 타석에 들어서면 긴장을 풀기위해 흔히 하는 평범한 동작이었다. 슬쩍슬쩍 배트를 가볍게 휘두르며 투수와 눈싸움을 벌였다. 투수와 타자와의 긴장은 출루선수가 있을 때 훨씬 높아지기 마련이다. 한대화는 오랜 경륜을 말해주듯 태연해 보였고 관중 모두는 태풍전야처럼 고요하였다.
따악! 배트에 맞은 공은 허공을 갈랐고 각도는 어김없는 홈런이었다. 캐스터의 샤우팅은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출두하는 장면을 방불케 했다. 모든 관중은 일체히 일어섰다. 이 장면을 화가가 그림으로 나타내자면 어떻게 그려야할까. 공이 날아가는 동안이 길게 느껴졌다. 마냥 좋아 라고만 할 수 없는 궤적이었다. 파울이 될 공산이 컸다. 그리고 공은 폴대를 맞혔다. 어디로 떨어지느냐에 따라 홈런이 될 수도 파울이 될 수도 있는 초긴장상태가 0.5초 운동장을 침묵시켰다. 공은 흰선 안으로 떼구루루 굴러 떨어졌다. 지금도 세계야구 선수권대회에 들어가 한일전을 검색하면 그 장면을 재생할 수 있다. 오늘까지 잠실야구장이 건재함이 이상하다. 돌이켜보면 우리민족은 미쳐도 똑바로 미친다. 40,000명이 모여 난리를 쳐도 손가락 하나 다친사람 없는데 발렌타인 날에는 어쩌다가 목숨까지 잃었을까.
9회 초 일본의 공격이 무산되면서 9회 말 경기 없이 5:2 한국승리로 마감된 82한일전은 우리나라 야구팬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 주었다. 공도 둘글고 배트도 둥글고 폴대도 둥글다. 그 어디에 인간의 의지가 작용하여 공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배트를 휘두른 동력은 사람의 팔에서 비롯되었지만 잔디를 구른 그 공은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궤적으로 땅에 떨어진 기적이었다. 한대화는 그 한 방으로 전국민의 마음을 후련하게 위로해 주었다. 후일담에 의하면 그야말로 기적이라 할만한 홈련이었다며 그 때를 회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