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후퇴 후 중동부 산악지대에서는 미 제10군단의 북한강지역 차단작전으로 퇴로를 잃은 북한군과 중공군이 최후 발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진해에서 부대정비를 끝낸 해병 제1연대는 중동부전선에 준동하는 적을 격멸하라는 명령을 받고 1951년 1월 26일 LST 3척으로 용약 진해를 출발했다. 이 해병대는 경북 영덕군 강구면의 하저리에 상륙하고 1월 29일에 영덕에 집결하였다. 그 중 제1대대는 영덕군 지품면의 원전동으로 전지했고 달산면 동대산에 진을 치고 있는 적을 공격키로 하였다. 이에 따라 제1대대는 1951년 2월 8일 창수면 신기리를 우선 점령하고 2월 9일 동대산 전투에 들어갔다.
동대산은 경북 포항시 죽장면과 영덕군 달산면 남정면에 걸쳐 있는 바위산으로 그 주변에는 내연산과 바대산 등으로 이어졌다. 그 산 기슭에는 상하옥계곡, 오계계곡을 형성하고 마실골, 경방골, 물치미골 등 험한 산세를 형성했다. 이러한 산악에 늦겨울이라 밤에는 눈이 내리고 낮에는 자욱한 안개가 손에 잡힐 듯이 내리깔려 시계가 매우 불량했다. 이 때 해병 제4기생인 김형근 수병은 배동혁 중위가 지휘하는 제1대대 수색대에 편성되어 있었다. 그날따라 안개가 덮여 있는 저녁 무렵에 동대산 부근의 수색 정찰을 마치고 경계 근무 중에 있었다. 호우 4시경 안개가 차차 걷히면서 노을이 반짝하고 비쳐올 무렵에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게 눈에 띄었다. “앗, 저게 뭐냐?” 김 수병은 바짝 긴장하고 초소에서 엎드려 칼빈 M2의 방아쇠를 풀었다. 여차하면 격발하려고 집게손가락을 걸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주변에 아군은 아무도 없었고 나 혼자였으므로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시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손수건은 점점 가까이 접근해 왔다. ‘혹시, 적군일까? 아니면 우군일까?’하던 찰나에 가까이 접근하자, “누구야! 손들엇!”하고 소리쳤다. 이때 상대방이 “ 저래 좀 살려주시라요.”라는 평안도 억양이 들려왔다. “알았다. 손들고 이리로 걸어오라!” 그러자 상대방은 두 손을 하늘로 향하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닥칠 불확실한 사태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공포 속에 접근해 오는 듯 했다.
상대방이 점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보니, 그는 몹시 절뚝거리며 힘들게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김 수병은 경계를 하며 그 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가 목전에 이르자 벌떡 일어나 그 앞에 서고 보니, 그는 천만 뜻밖에도 전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여성이었다. 김 수병이 이제는 살기 띤 눈매를 다정한 모습으로 바꾸고 그를 관찰하였다. 늘씬한 몸매에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하얀 얼굴의 미인으로 순간 눈이 부시게 화려했다. 그러나 김 수병은 수색요원으로 받은 지침을 항상 머릿속에 명심하고 있었다. 공산당은 원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라 미인계를 잘 쓴다. 여성의 교묘한 웃음에 홀려서 방심하고 있다가는 부지불식간에 그들로부터 당하게 되므로 다정한 척하는 여성은 일단 경계하라고 들어왔다. 그러니 위장 투항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낙오병으로 형세가 어려워 귀순할 의사로 온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원칙대로 몸수색을 했다. “무기 가진 것을 내 놓아!” “저래 무기 같은 것은 아예 없이요.” 온 몸을 수색한 후 “이제는 됐어, 뒤로 돌아, 계급이 뭐야?” “저래 닌민군 중위야요.” “뭐! 중위?” “그렇습니다래” “그러면 어째서 여기 왔나?” “귀순하러 왔시오” “그걸 어떻게 믿나?” “제 오른쪽 다리에 파편을 맞고 보시다시피 피를 흘리고 있시오” “뭐? 피를 흘린다고,” 김 수병이 그녀의 오른 쪽 다리를 살펴보니 분명히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군방군 동무 몹시 상처가 쓰라려 못 살갓시오.” “알았다. 그러면 저 참호 속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진지로 내려가 치료를 해 줄겠다.” “부탁합네다.” 김 수병은 여자의 모습과 음성만 들어도 어쩐지 몸이 굳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10여분을 지난 후 후임교대가 왔다. 그는 김 수병과 동기인 해병 제4기였다. 호기심으로 둘을 노려보다가 북한군 여군을 보고는 “생포한 것인가?” “아니야, 손수건을 흔들면서 귀순해 왔지.” “너, 오늘 운 좋게 대박이 터졌다. 호박이 덩굴 채 굴러 들어온 것 아니냐?” “아니야, 아직은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적군일 뿐이야.” “자, 그럼 수고하게, 난 이 여군을 참호 속에 가서 한시 바삐 치료를 해주어야 되겠네.”
그러고 나서, 김 수병은 그 여군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여군은 더욱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했다. 하는 수없이 김 수병이 부축했다. 점점 몸을 김 수병에게 맡기다시피 기대오더니, 결국 걸을 수 없다고 한다. 마침 큰 바위 밑에 비어있는 참호가 눈에 띄었다. 여기서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기로 했다. 마치 뒤에 찬 가방 속에는 수건과 비상약인 머규로크롬이 들어 있었다. 다리에 흐르는 피를 머큐로크롬으로 닦아내고 어깨에 멘 탄띠를 풀어 압박붕대처럼 동여매여 지혈을 해 주었다. 그 군관은 혹시 겁탈이라도 당할지 몰라 하다가 아무 일도 없으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몇 발자국 걸어가다가 주저앉았다. 어쩔 수 없이 김 수병은 그녀를 들쳐 업고 걸어야 했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얼마나 지쳤는지 겨울 저녁 칼바람이 불어오는데도 땀을 흥건히 흘려야 했다. 그렇게 20여 분을 헐레벌떡거리며 업고 걸어서 능선 아래 수색대 막사에 이르렀다. 다른 전우들이 모두 일어나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살폈고 자초지종을 들었다.
우선 김 수병은 수색대장인 배동혁 중위에게 유선으로 보고를 했다. 김형근 수병은 “오늘 수색 활동 중 귀순하는 여자군관을 발견하고 그를 지금 보호 중에 있습니다.” “뭐 여자군관이 투항하였다고? 그거 참 잘됐다. 대대본부로 데리고 오라.” 그러나 김 수병은 매우 지쳐있어 적당히 둘러댔다. “그 군관이 지금 출혈이 과다하여 걸을 수가 없으니 날이 밝는 대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라.” 그 때 여자군관이 애원조로 통사정을 했다. “국군동무, 오늘 밤은 이곳에 있게 해주시라요. 저래 너무 지쳐 있시오, 저를 좀 보호해 주시라요.” “알았소, 그렇게 하겠소.” 연민의 정인지 이상하게도 뭐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약자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협심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고이 간직해둔 시레이션을 꺼내어 그 군관에게 내밀었다. “국군동무 너무나 신세를 많이 지고 있수다래.” 그러면서 눈치코치 보지 않고 허겁지겁 집어 먹었다.
다음날 아침, 김 수병은 군관을 부축하여 한참을 걸어 대대본부 수색대장에게 그 군관을 인계하였다. 이후 김 수병은 계속되는 동대산 전투에 투입되어 수색전을 계속하였고 드디어 2월 17일 제1대대는 목표인 동대산을 점령하였다. 그 후에도 이산 저산으로 이동하며 패잔병을 섬멸하다보니 그 여자군관은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4월 5일 해병 제1연대가 전부 춘성군 동내면 학곡리에 집결하게 되었다. 그 때 연대장이 지휘관들과 함께 김 수병 등이 도열한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그 지휘관들 틈에 그 여자군관이 말쑥한 해병대 복장에 45구경권총까지 오른쪽 허리에 차고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었다. 그는 군계일학처럼 그 미모가 더욱 황홀하게 돋보였다. 이를 본 김 수병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여자 군관도 그 많은 해병 중에서 김 수병을 알아보고 순간 당황한듯하다가 야릇한 미소를 던지고 가버렸다.
그 행사 후 연대본부에 있는 동기생에게 알아보니, 그 여자 군관은 잠시 본부의 연락병으로 있다고 했다. 아무튼 김형근 수병에게는 애당초 먹지 못할 곶감이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은 어쩐지 허전하였다. ‘아무데 가서도 부디 행복하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 살벌한 전자에 피었던 아름다운 스토리였다. 이 동대산에 대하여 하나 더 부연할 것이 있다. 1950년 3월 초순 6.25 몇 달 전에, 제주도 4.3을 주도했던 김달삼이 월북 후 남파되어 동해연단이라는 유격대를 지휘하였다. 그 본거지가 동대산인데, 육군 제22연대 제2대대의 토벌전에 의해 동해연단이 괴멸되고 김달삼도 사살되었다. 그의 신원은 그의 작전 참모로 있다가 검거된 임창원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는 육사 제4기 출신으로 숙군이 시작되자 일찍이 월북한 바 있었다.
<발췌> 정수현, [한라의 젊은 영웅들], 제주특별자치도재향군인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