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3/161120]다큐 ‘인간극장’에 비친 우리 부모의 어록(語錄)
최근 (대가족) 우리집에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지난 10월초 KBS 1 ‘인간극장’ 제작 프로덕션에서 취재기자라며 나에게 휴대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에 대해 이것저것 물을 때만 해도 몰랐는데, 그날 오후 제작팀장과 PD가 졸지에 회사로 쳐들어왔다. 하여 커피숍에서 1시간여 얘기를 나눈 바, 부모님의 일상을 ‘인간극장’ 5부작으로 찍자는 거다. 어떻게 알게 됐느냐니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잡지 ‘전라도닷컴’에서 아버지 구순과 부모 결혼 70주년을 맞아 펴낸 가족문집 <총생들아, 잘 살그라> 서평을 봤다는 거다. ‘아하, 그렇게 됐구나’. 책이야 비매품이므로 홍보할 일도 없지만, 알고 지내던 ‘전라도닷컴’ 기자에게 한 권을 보냈는데, 그 친구가 1페이지에 걸쳐 ‘기똥찬’ 서평을 실은 것이었다. 주말 거실 소파에서 흥뚱항뚱하다 펼친 잡지에서 그 서평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생생한데, 출판사를 통해 연락이 온 것이다.
‘아하, 이런 일이...’ 자못 신기했고, 속으로는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나의 글로 인한 이런 제의는 생각지 못한지라 ‘횡재’라 싶었다. 아버지는 새로운 일을 좋아하시니까 잘 말씀드리면 응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형들보다도 더 세 여동생들의 생각이 신경에 쓰였다. 이제껏 내가 제의한 어떤 일이든 찬성이었던 동생들의 반대가 거셌다. 반대 이유는 모두 일리가 있었다. 어느 대가족에나 있을 법한 ‘가족갈등’이 비칠 수 있고, 몸이 불편한 어머니의 상태가 방송파를 타는 것도 그렇고, 막상 촬영을 하면 부모의 입성도 문제이며, 거의 3주를 상주한다는 촬영팀 숙식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 등이었다. 제작팀장의 설득으로 동생들이 협조하기로 하여 형제간 ‘감정 마찰’이 없어진 게 천만다행.
마침내, 11월 7일(월)부터 11일까지 5부작이 방영되어 우리를 아는 지인들의 찬사를 받는 등 화제가 됐다. 방송을 보다 보니까 실제 총생(자식)인지라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보살핌)과 사람 사는 관계 그리고 사물(동식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대해 새삼 알게 돼 여러 번 가슴이 뭉클하고 먹먹하여 울컥하기도 하였다. 후일담이지만, 여동생들과 만나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몇몇 장면들과 불쑥불쑥 말 한 마디에 온 가족이 뒤집어지곤 했다. 어쩌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두고두고 두 분을 회억할만한 최고의 영상기록이 된 셈이다. 그 중의 몇 가지를 ‘방송 후기’식으로 정리해 본다.
# ‘아이처럼 웃는’ 어머니. 촬영도 자연스럽게 잘 임하셨다. 특히 단답형 대답이 인상적이었는데, 6번 가족과 안방에서 아버지 회갑기념 VIDEO를 보고 있다가 외손녀가 물었다한다. “할머니, 저렇게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니까 “아니, 죽고자!”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죽고자!’는 ‘죽고 싶다’는 뜻. “왜 죽고자파요?” 하니까 “살 만큼 살았응개 원도 한도 없어”라고 해서 모두 뒤집어졌다는데, 이것은 어머니의 진심이라고 믿는다. 어머니는 자식이 칠십이 다 되어도 ‘울 애기’다. “농사 지었음개 ‘울 애기들’ 줘야제” 2번형의 “어머이- 나도 늙은이여” 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자못 멋 있었다. 그뿐인가. 음치인데도 ‘사모곡’을 뽑는 형, 고생 참 많이 하셨다. 방송 후 ‘동생으로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 양반이야 묵묵부답이지만, 어찌 속마음이야 그러실까.
# 5부 맨 마지막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소원은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일치했다. “70년이나 살았으니 한날 한시에 잠 자드끼 같이 가는 게 소원”이시란다. “저승에서도 같이 만나 또 같이 살고 싶다”는 어머니·아버지. 천상 잉꼬부부 되겠다. “젊은 시절엔 어디가 예쁘고 밉고 그런 것 감지하고 살앗간디”라는 아버지는 평생 손톱 발톱을 깎아준 것도 모자라 5년 전에 쓰러진 어머니를 특급 간병하여 시방은 활발히 걷지는 못하지만, 모든 게 아주 좋아지셨다. 정말 한날 한시에 같이 가시려고 그렇게 지극정성 보살펴 살려 놓으신 걸까. 아버지의 뒷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이 양반(저그 아버지)이 고생도 지긋지긋, 몸써리나게 힛지”며 “하늘만큼 사랑한다”고 하시던 장면, 아버지 울컥해지셨다. 세상에, 어디에서 이런 뭉클한 장면을 볼 것인가.
# 뒤안 밭에서 들깨를 터는데, 사마귀 한 마리가 렌즈에 잡혔다.아버지는 “너도 출세혔다. 사진도 찍히고” 하더니 “너도 너그집 가거라. 나도 우리집 갈팅개” 하는데, 미물인 동물에게 따뜻하게 말을 거는 아버지가 마치 시인 같았다. 또한 어머니에게 ‘뚤방’(토방)에다 포장을 깔고 대봉시 닦는 어머니를 보며 하시는 말씀이 “(일을 하고 싶어서) 봄을 기대리는 사람이여” 하는데 그보다 더 적확한 말이 없을 듯해서 또 놀랐다. ‘봄을 기다리는 여인’ 시적인 표현이 아닌가. 실제로 어머니는 늘 시한(겨울)에 좀 아프시다 봄만 돌아오면 펄펄 나셨다.
# 1부 고구마를 깨며 ‘무광 고구마’가 나오는데, 온 몸뚱이가 뚱뚱 부어가면서도 ‘새끼’ 고구마를 위하여 영양분을 모두 나눠준 ‘고구마 어미’를 무광이라고 부른다는데, 퍼석퍼석해 맛이 없어 버린다고 했다. 농사꾼 자식이면서 솔직히 ‘무광’을 방송을 보고 처음 알아 민망했다. 또한 막내사위가 십자망그물로 잡아온 민물새우 한 마리가 바구니를 튀어나가 방안을 맴도는데, 신기하게도 앞으로 걷는 것이었다. 늘 희미하게 웃는 어머니가 다가가 “새비(새우의 사투리) 좀 봐” 하며 잡는 장면도 어찌 잊겠는가.
# 호박죽을 끓여드리려 광양에서 온 큰딸. 아버지가 단단한 늙은 호박을 부엌칼로 쪼개며 “호박이 사람을 이겨?” 하시던 말씀도 생생하다. 호박이 아무리 단단한들 어떻게 늙은 농부를 이기겠는가. 젊은 시절, 아버지의 도끼로 장작 패는 광경을 볼 때마다 한없이 미더웠다. 도끼 ‘한 방’에 엄청 큰 나무토막도 ‘짜아악-’ 소리와 함께 두 쪽으로 쪼개지던 장면, 그때마다 싸락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어찌 부모와의 추억이 한두 가지랴.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신(SCENE)들이다. 연출자가 묻는 ‘평생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총생들 낳아 충실하게 기르고 자라서 사회에서 각자 제몫하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는 대답은 무조건 ‘정답’이다. 그러면서 “새끼들 손톱 발톱 밑에 흙 안넣고 살게 키워가겠다는 게 소원이었다”고 하시던 말씀, 지금 떠올려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 이번 다큐 방영물을 보면서 새삼스레 형제간의 정(情)을 확인한 것도 큰 수확 중 하나. 헌칠하고 잘 생기신 둘째형(우리는 2번형, 2번오빠라고 부른다)의 회고담.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제주도 수학여행을 (돈이 없어) 못가고 수확철인지라 하루종일 나락을 지게로 져 집으로 날랐다는 형. 조금 쉴 때마다 “친구들은 지금쯤 얼마나 갔을까? 얼마나 재밌게 놀고 있을까? 나는 왜 여기서 죽어라고 일을 하고 있을까?” 했다는 형. 늙은 아버지는 그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쏙쏙 아프다”고 현장에서 말씀하셨다. 일찍 철이 든 큰딸은 여고를 졸업한 후 스스로 집안형편(네 명의 대학생 오빠 때문)을 짐작하고 취직을 한 효녀였다. ‘일복’도 타고나 평생 부모님 지킴이역할을 하고 있다. 똑똑한 6번은 내리 3년 대학 합격증을 보여주며 아버지에게 등록금을 달라는데 못줬다던가. 지금은 방송대를 장학금 받고 다닌다며 쓸쓸하게 웃는 아버지, 거의 눈물을 글썽이며 첫 등록금을 30년 후에 주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유일한 소원이 자식 일곱 명 중에 누구 하나 선생이 되는 것이었는데, ‘벌 것’이라 놀리던 7번이 선생님 되어 소원을 풀어주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부모 한과 소원을 풀어주는 게 효자 효녀인 것을.
# 촬영 마지막 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신들이 심어 삼베를 짜 만든, 마지막 입고 가실, 우리도 이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수의(壽衣) 두 벌을 작은방에서 펴놓고 망연해 하며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편집을 했는데 연출인 것같아 마지막 최종심사에서 뺐다고 한다. 총생들이 그 수의를 봤으면 참으로 울적했을 것같다. 그리고 할머니 때부터 평생 공을 드리려 찾은 진안 마이산 탑사에서 공양하는 장면이 누락된 것이 또 하나의 아쉬움이지만, 제작팀의 편집 비밀작업과 그 깊은 제작의도를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아무튼, 여타 ‘인간극장’보다 시청률이 높게 기록됐다하여 그것도 다행이다. 제작팀의 무한한 건승을 이글을 빌려 빈다.
# 증손자·손녀 5명 중 한 명도 등장을 못해 무척 아쉬운 한판이었다. 4대(증조부–조부-아버지-아들)가 한 자리에서 사진만 찍었어도, 총생들이 다복하고 행복한 대가족이라는 것을 얼마든지 뽐낼 수 있었을텐데. 기회가 찬스(CHANCE)이건만 일정이 맞지 않은 걸 어이 하랴.
# 가수 ‘거시기’ 김성환씨가 ‘인간극장’에서 자기의 노래 ‘묻지 마세요’를 흥얼거리는 임실의 90대 노인 이야기가 방영된다는 얘기를 듣고 제작팀에게서 전화번호를 알아내 아버지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거시기형님’과 평소 친분이 있던 4번이 “그 양반이 우리 아버지요”라고 전화를 했다. 깜짝 놀라며 “내년 임실 사선제 사회보러 갈 때 꼭 찾아뵙겠다”고 하여 아버지의 기분이 무척 업되었다고 한다.
# 직장인들은 출근시간이기에 ‘할아버지 인간극장’을 보지 못하고 금요일 저녁 ‘다시보기’로 몰아본 4번의 큰아들, 제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 우시느라고 어떻게 봤어요?” “감동적이고 잔잔하고. 아버지가 효도하셨구나 싶기도 하고 좋은 기록이라고 생각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가하면 호주에서 유학 중인 4번의 작은아들 “완전 감동이었다”며 울먹울먹한 끝에 “훌륭한 할아버지와 올바른 가족에서 성장한 것같아 고맙다”고 해외전화를 해와 제 애비를 흐뭇하게 했다는 뒷소식이다.
첫댓글 높지 않은 산등성이에 둘러싸인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논과 밭,
눈 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우리의 고향이다.
평생 농부, 70녀 해로,
무릎이 닳고 허리가 휠 때까지 일손을 붙들고 계시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옹기종기 북적대던 형제자매,
고구마 한 알, 깨 한 톨에도 웃음과 희망이 있었다.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일군 화목한 가정
감동적이고 존경스럽다.
우리가 가장 공감하는 우리의 인생이다.
오직 오래도록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고 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