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B-10)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 10-1. † 내세의 능력과 소망!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의 글로서 그동안 연재(連載)한 ‘세상이란 무엇인가?’시리즈의 마지막 글입니다. “내세의 능력과 소망(1),(2)로 이 주제를 마감합니다. 그동안 가톨릭 홈페이지와 가톨릭수호닷컴에도 연재한 바, 많은 호응을 보내주신 형제자매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아멘>
<내세의 능력>
히브6,5절은 “또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시대의 능력을 맛보고 나서도,”(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여기서 “올 시대의 능력을 맛본 자”(내세의 능력)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당신은 아마도 맛만 보고 아직 충분히 누릴 수 없는 “내세의 능력”이 무엇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이러한 능력은 영접하고 누리라고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맛보다”라는 단어는 단지 사람에게 생각하고 분석하라고 준 교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하고 얻을 수 있는 주관적인 어떤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능력은 하늘나라 잔치의 시작이며 이후에 아직 누릴 만한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조금씩 맛보았다!
<장래에 대한 소망>
우리는 성경에서 장래에 대한 소망을 다루는 많은 말씀을 열거할 수 있다!
(루카18,30)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1베드1,5)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히브4,9) “안식할 때가 하느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로마8,23; 1코린15,44) “필히 죽을 우리 몸의 부활과 새롭게 됨.”
(예레31,9; 이사57,14; 62,10)“어느 날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모든 일이 제해질 것이며,”
(히브8,11) “어느 때에 모든 사람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주를 알 것이며,”
(이사11,9) “그때에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에 충만할 것.”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모든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맛보지만, 아직 완전한 실현을 얻지는 못했다. 아래의 말씀은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세상”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더욱 직접적이다!
시편 8편 6절에서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히브2,8절에서 이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하였으나, 우리의 체험과 사실은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현실을 시인하고 있다.
이 두 말씀의 대비적인 서술 이외에도 루카10,19절의 말씀을 추가해야 한다! 곧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원문 참조)고 말한다. 이 말씀은 그분이 이미 그분의 제자들에게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약속인데, 우리는 오늘날 그 보이지 않는 미래를 미리 맛볼 수 있다!
더욱이 루카10,17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현재의 사실이라는 것이다. 묵시20,1-4절에서 요한 사도는 “사탄이 쇠사슬에 묶여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갇히게 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12,29절에서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곧 예수님께서는 “강한 자”가 이미 결박당했으므로 우리는 심지어 지금 그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들은 매우 의미가 깊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일 지금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면,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장래의 “능력”에 대하여 당연히 미리 맛봄이 조금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비록 아직은 보편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십자가의 부활의 열매는 원칙상 오늘날 교회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영원한 뜻은 사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분은 창세1,26절에서“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원문 참조)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사람이 능력을 발휘하여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고 통치하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구속이 하느님의 계획, 심지어 그중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람이 타락하기를 원치 않으셨으며, 더욱이 사람을 멸망시킬 뜻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의 타락을 다루고 있다. 이 장은 사람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지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목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가 건물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건물 5층에서 떨어진 것은 결코 건축 설계자의 계획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님과 같은 것이다.
<땅을 정복하라>
하느님의 계획과 사람의 통치권은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 통치권의 특별 범위가 “온 땅”(창세1,26)이라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하늘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땅에 있다! 사람이 받은 명령은 “이 땅을 정복하라”(1,28)는 것인데, 우리는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곧 만일 정복할 세력이 없다면, 왜 이러한 명령을 사람에게 주셨겠는가?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여호와 하느님께서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로 다스리며 “지키게”하셨다고(2,15) 말한다. 여기서 원문을 보면 일반적인 “지킴”이 아니라 방위를 뜻한다. 아담은 하느님의 동산을 방위해야 했다. 이것 또한 부근에 적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며, 아담은 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위했어야 했다!
창세1,26절의 화법에 주목해보라! 사람이 온 땅을 다스려야 한다는 그 말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곧 그 중에 “땅에 기는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람이 다스리지 못한 첫 번째 대상은 기는 것, 곧 뱀이었다! 사람의 실패로 인하여 마귀는 세상과 사람 안에서 땅에서의 합법적인 권리를 새롭게 얻었다. 땅의 흙이 그에게 주어진 범위였다!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창세3,14). 곧 땅의 흙이 그에게 주어진 범위였다! 그러나 흙은 무엇인가? 곧 피조된 아담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육체 안에 있는 사람은 오늘날 실제적으로 마귀와 마귀의 수하에 복종한다. 하느님의 원수는 분명한 권리를 얻었으므로 사람의 천성의 어떠함과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
<마귀의 활동을 제거하심>
그러므로 우리의 타고난 생명, 곧 옛사람은 마귀가 땅에서 활동하는 거점이다! 마귀는 사람의 혼에 미혹의 영을, 몸에는 귀신을 침입시키며, 그를 통해 세상을 지배한다! 마귀의 세상이 힘 있게 움직이는 것은 그가 사람의 몸에서 얻은 이와 같은 영적인 메카니즘과 권리에 근거하며 심지어 하느님도 이러한 권리를 비난하지 않으신다. 마귀는 아담의 실패를 통하여 모든 옛 창조에 대하여 완전한 권리를 얻었다!
(* 마귀와 타락한 천사에 관한 연구를 필독서하실 것!)
그러나 만일 우리 안에서 마귀의 활동을 멈추게 하려 한다면, 반드시 우리 안에서 그의 입장을 제거해 버려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구속 안에서 이 상황에 대처하셨는데 마귀를 직접 처리하는 방법이 아닌, 우리가 본대로 옛 창조, 곧 사람 자신,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 그리고 모든 것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마귀의 합법적인 입장을 끝내셨다.
마귀가 넘어짐은 그를 직접 공격하는 것으로서가 아닌, 간접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실제적으로 그에게 통치권을 주는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이루어졌다! 로마6,6절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다.”라고 말한다. 마귀가 우리 몸에서 더 이상 어떤 권리도 없음을 인해 주님을 찬양하자!
그러나 다만 당신이 주님을 온전히 믿는가?
알렐루야! 아멘.
(10-2. "내세의 능력과 소망"이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