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오늘부터는 한집안의 수입과 지출인 가계(家計)에 대해서 적으려고 한다.
오늘의 주제는 ‘가계(家計)의 핵심 주체인 가족’에 대한 얘기이다.
아버지는 ‘너의 편지’을 가지고 얘기를 시작한다.
오늘 새벽 4시부터, 잠자고 있는 있는 너희 엄마를 깨워서 너의 훈련소에서 보낸 편지를 찾았다.
엄마와 둘이서 꼭두새벽부터 장롱 옆에 박스를 다 뒤졌다.
엄마에게 보낸 편지만 꼼꼼한 엄마가 바로 찾았고,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는 어디에 두었는지를 몰라서 결국엔 찾질 못했다.
네가 훈련소에서 엄마에게 보내온 편지를 적어둔다.
한 번 읽어보거라.
자신이 쓴 편지를 다시 읽는 다는 건 매우 오글오글한 일이다.
그러나 오글오글한 마음을 참아내고 꼭 읽어야 한다.
어머님께.
저는 어머님 이제 입소한지 3일이 지났습니다.
아주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의 하루 일과는 매우 규칙적입니다.
매일 저녁 8시에 잠들어서, 다음날 새벽 06시 30분에 일어납니다.
일어나자 마자, 도포를 정리하고, 도수 체조를 합니다.
바로 아침 식사를 합니다.
짬밥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픕니다.
이건 양과 질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짬밥이라 그런 거 같습니다.
어쩌면 제 마음의 식욕일지도 모릅니다.
생활관의 동기들은 다 순딩순딩합니다.
2층 침대에 생활하는 친구는 통영 죽림에서 왔습니다.
어머니가 자란 곳에서 왔다고 하니, 마음이 끌렸습니다.
이곳 생활이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너무 편합니다.
잡다한 생각도 없고, 원초적으로 돌아가는 거 같습니다.
입소하기 2일 전에 설사가 나와서 걱정했는데, 이제는 아주 건강합니다.
소대장님도 좋으신 분입니다.
저를 보고 조교하는 게 어떠냐고 추천했습니다.
이쪽 생활 잘 적응하고 있으니, 제 걱정 말고 지내세요.
어머님
주셨던 시계는 아예 찰 수 없을 정도로 고장이 났습니다.
택배로 시계 하나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PX도 이용이 가능하니, 기업은행 972-000000-00-000에 소량의 돈도 보내주십시오.
과자나 젤리 같이 상하지 않는 음식들도 택배로 배송 가능하니 많이 넣어서 보내주시고요.
택배는 우체국 택배만 가능합니다.
부대 주소랑 교번은 191번 훈련병입니다.
부대주소는 봉투에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수료식 날에 오실 때 교번 종이 차량에 부착 후 들어오세요.
부모님 의견서는 빠르게 중대장님 주소로 보내주시고요.
어머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자꾸 어머님이 생각납니다.
아들 MJ이가.
너희 엄마는 이 편지를 받고 꺽꺽 울었다.
그날 편지쓰기 싫어하는 너희 엄마는 편지지만 여러 장 썼다 지웠다 했다.
결국 너의 편지에 대한 답장은 아버지가, 나머지의 모든 것은 엄마가 챙겨서 보내주었다.
답장편지는 늘 아버지의 몫이고, 돈을 포함한 물질적인 모든 것은 너희 엄마의 몫이었다.
여기에 너에게 썼던 편지도 적어둔다.
병장으로, 훈련병 시절에 편지를 받고 느꼈던 그때 감정을 다시 느껴보거라.
아들아
오늘 하루도 사소했다.
8월 끝자락에 걸린 그저 그런 하루였다.
저녁이 다되어 넘겨지는 오늘을 ‘사소했다’라고 결국 표현하고 만다.
아버지는 그 말 이외에 다른 표현법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의 안에 생활은 사소한데, 밖에 가을의 햇살은 청명했다.
가을의 햇살은 아침부터 청명했다.
아침 일찍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어내자, 햇볕이 창문을 통해 내 방 안에 가득 차 있었다.
내 방은 침대 안쪽까지 환해졌다.
어제 내린 비가 하늘을 깨끗하게 씻어낸 거 때문인지, 햇볕은 밝고 투명하게 안쪽 구석진 곳까지 늘어졌다.
길게 늘어진 아침의 가을햇볕은 은은하게 활기찼으며, 봄볕처럼 따사로웠으나, 결코 봄볕처럼 매섭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의 사소함과 더불어 가을의 청명함이 보태진 하루였다고 적는다.
아들아
이 가을이 너의 눈에도 들어왔느냐?
보이지 않는다면, 너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라.
너의 마음이 훈련소의 훈련병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뎌야 하는 처지라는 마음의 족쇄에 갇혀있을 수 있다.
그 마음의 족쇄를 벗어버리고, 가끔은 가을이 만들어준 풍경을 보도록 해라.
가을이 너의 훈련소 바로 옆에 다가와 있다.
훈련소라는 척박한 일상에도, 분명 가을은 있다.
가을은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수풀에서는 풀벌레 울음소리로 다가온다.
가을이 차근차근 그러나 깊숙이 너의 옆에 다가와 있다.
지금 가을은 너의 마음을 위로 해줄 유일한 친구다.
이 아버지 대신 가을 친구에게 마음껏 하소연하고, 너의 고단함을 풀어버려라.
아들아
가을볕으로 시꺼멓게 탄 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9월 25일 수료식에서는 까만 얼굴에 눈빛만 반짝반짝거리는 모습의 너를 그려보았다.
그려보는 건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버지는 너를 믿는다.
지금은 이 말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구나.
아들아
또 하루가 이렇게 가고 있다.
중요한 건 너의 남아있는 제대 일수가 하루 줄었다는 사실이다.
국방부 시계도 어김없이 흘러간다.
너의 몸과 마음을 잘 챙기도록 해라.
다시 편지하마.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2019. 08 .28.
오늘은 10월 31일, 토요일이다. 그리고 네 동생의 생일날이다.
이런 뜻 깊은 시월의 마지막 날에 너는 군대에, 네 동생은 기숙사에 있다.
네 동생도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못 몬다고 연락이 왔다.
이젠 너희들이 자라서, 가족이지만 한 자리에서 아옹다옹하는 시간도 가질 수 없구나.
아버지는 퇴직하고 나서 직장 생활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다.
너희들이 어렸을 때 놀아주지 못한 거다.
너희들이 이 아버지를 찾을 때는 직장에서 죽어라 일만했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매달리는 너희들을 뿌리치고 출근을 했다.
그때는 너희들이 언제까지고 이 아버지의 팔에 매달릴 거리고 생각했다.
막상 퇴직해서 아버지가 시간을 많으니, 이젠 너희들이 시간이 없구나.
그때는 너희의 입에 들어가는 밥을 위해 법 벌이를 잘하는 것이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너희 마음에 들어가는 밥을 주는 마음 벌이에 시간을 내어서야 했는데, 후회된다.
아들아
제대하고는 염치없지만, 너희들이 바쁘겠지만, 너희들의 시간을 이 아버지에게 조금만 내주거라.
너희가 매달릴 때 주지 못한 마음의 밥을 같이 먹고 싶다.
가족의 본질은 같이 밥을 먹으면서 같이 마음을 나누는 가족의 마음 속에 있다.
마음을 나누는 가족 생활공동체가 경제의 토대이고, 인간 삶의 토대이다
가계 경제의 본질은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며, 가족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며, 함께 먹는 밥이다.
이 사실을 서로 마음에 담아주자.
아들아
내일 가계에 대해서 추가해서 얘기하마.
그리고 꼭 동생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전화해주어라.
사랑한다. 아들아.
[출처] 아들아 경제 공부해야 한다28 (家計1편) (부동산 스터디') | 작성자 정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