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개봉한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는 거장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대표적 걸작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유죄선고를 받고 어두운 철창 속에 갇혀야하는 기구한 팔자를 타고났다.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영국에서 발생한 폭행범죄 중 수건의 범행원인이 이 영화에서 동기 유발된 걸로 드러난 것, 큐브릭 감독은 그 즉시 배급철회를 결정했고, 그가 고인이 된 이후까지도 공식 재개봉이 불허될 정도로 이슈화되었다.
그야말로 '문제의 화제작'이 된 시대의 명화 <시계태엽 오렌지>, 스탠리 큐브릭의 시각화를 통해 스크린에 투영된 이야기는 앤터니 버지스(Anthony Burgess)의 원작소설을 각색했으며, 그 자체로 매우 독특했다. 근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전체주의적 정치에 반항하는 젊은 알렉스(말콤 맥도웰)와 그의 친구인 '갱들(Droogs)'이 벌이는 폭력과 성적 비행의 해방을 향한 무정부주의적 파티가 쇼킹하게 펼쳐진다.
베토벤 음악 애호광(狂) 알렉스와 그의 공범들의 광폭하고 문란한 행위예술은 마침내 알렉스가 감금돼 수 차례의 혐오스런 물리적 정신치료요법을 강요당하기까지, 폭행과 약탈 등 무정부주의적 대소동을 연출한다. 사회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이 엽기적 폭도들이 언급한 서사시적 은어들과 큐브릭이 형상화한 직설적인 영상충격(알렉스의 강간장면, 부랑자 집단폭행, 캣 레이디 살해, 메탈 꺾쇠로 알렉스의 눈을 크게 벌려 정신적 치료요법을 강행하는 매우 불쾌한 장면 등) 또한 그들이 도덕적 옳든 그르던 간에 당시 영국의 정치사회학적으로 상당한 논쟁거리가 될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무정부적 악동들의 광란의 파티의 사운드트랙에 실린 음악 역시 놀랍게도 고전음악(Classic)을 주로 사용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롯시니(Gioachino Rossini), 엘가(Edward Elga)의 클래식 명곡들을 만날 수 있다. 더군다나 전자음악으로 재해석해냈다는 점이다. 경이로움은 배가된다. 직관적으로 영화의 내용에 비춰 이해하기 어려운 곡 설정이 아닌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 감독으로서 영상 테크닉에 버금가는 음악 편곡에 탁월한 큐브릭의 재능은 여전히 빛을 발했다.
정치적이고 사회성 짙은 영화의 내용과 배역들의 동선을 재치와 풍자가 넘치는 해학적 차원의 교향곡과 오페라와 접목시켜 표현해낸 것이다. 이탈리아 낭만파 작곡가 롯시니(Gioachino Rossini)의 정치적인 오페라 "윌리엄 텔 서곡"(William Tell (Overture, 1829)과 "오페라 도둑까치" 서곡 (La gazza ladre/The Thieving Magpie), 동시대 불멸의 악성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9번 교향곡 <합창>의 2악장과 4악장(Symphony No.9 in D Minor, Opus 125 Choral: II. Scherzo. Molto vivace), 엘가(Sir Edward Elgar)의 행진곡 "위풍당당 1번, 작품39"(Pomp and Circumstance Marches No.1 and 4)가 그것들이다. 더욱이 원형 그대로인 클래식 연주곡과 원곡을 무그 신서사이저로 반주한 웬디 칼로스(Wendy Carlos) 개작버전, 두 가지로 삽입돼 다양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영화의 섬뜩한 분위기를 창출한 사운드메이커 웬디 칼로스(또는 월터 칼로스)는 로버트 무그(Robert Moog)박사에 의해 1964년 개발된 신서사이저를 활용했다. 신서사이저를 대중화시킨 중요한 음악가로서 그는 <Switched On Bach>(1968) 앨범을 '베스트 클래시컬 차트'에 등극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으로 1969년 그래미상 3개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무그 신서사이저의 공헌에 대한 공식적 인정을 획득하기까지 했던 명인이다.
그 영향력은 1970년부터는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키보디스트 키스 에머슨(Keith Emerson) 연주를 시작으로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그룹에도 급속히 확산되었고, 공감각적인 앰비언트(Ambient) 음악의 선구자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함께 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앨범 <Low>와 <Hero>에서도 관심을 집중시켰다. 1970년대 후반에는 울트라복스(Ultravox), 카바레 볼테어(Cabaret Voltaire), 휴먼 리그(Human League), 수어사이드(Suicide)등,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뉴 웨이브(New Wave) 신스 팝(Synth Pop) 밴드들에게도 음악적 자양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퓨전 재즈밴드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 피 펑크(P Funk)그룹 펑커델릭(Funkadelic)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디스코(Disco)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신서사이저의 비중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무그 신서사이저가 뿜어낸 갖가지 소리의 조합은 놀랍게도 큐브릭의 영화에서 공포심을 유발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작용한다. 무그 신서사이저가 내는 기계적 전자음은 냉랭하게 초현실적 공포감을 유발하는 기능을 한다. 사운드트랙에서 이는 영화 전개에 맞춰 반복 재생되면서 불길한 느낌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호기심에 접목시킨다.
이 같은 사운드에 힘입어 이후 큐브릭의 또 하나의 걸작 공포영화 <샤이닝>(The Shining, 1980)에서도 칼로스의 무그 연주는 관객들의 뇌리에 다시금 각인되었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서 뿐만 아니라 음악사적으로도 신서사이저의 대중화와 상업화의 시류에 동승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70년대 전자음악의 성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 앨범이다.
한편 1950∼1960년대 할리우드를 뮤지컬 영화를 대표했던 배우 겸 가수 진 켈리(Gene Kelly)의 크루닝 보이스가 일품인 <사랑은 비를 타고>(1989)의 주제가 'Singin' in the rain'(가택 무단침입 폭행장면)를 비롯해 림스키 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의 세헤라자데 중 '예르지 셈코프의 노래'(The Sea and Sinbad's Ship from Scheherazade)(성서 공상장면), 영국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의 '메리 2세를 위한 장례음악 중 행진곡'(March from 'Funeral Music for Queen Mary'), 영국 사이키델릭 포크 뮤직 밴드 선포레스트(Sunforest)의 멤버 테리 터커(Terry Tucker)와 에리카 에이젠(Erika Eigen)의 'Overture to the Sun'과 'I Want to Marry a Lighthouse Keeper'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실렸다. 'Cockles and Mussels'로 유명한 아일랜드 민요 'Molly Malone'을 극중 다리 밑 노숙자로 나와 직접 부른 폴 퍼렐(Paul Farrell)의 연기 또한 잊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