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1년 홍건적 침입 기록과 개령감무
고려사 공민왕 10년(1361) 신축년 11월
정묘일. 어가(御駕)가 남쪽으로 떠나는데, 공주는 연(輦)을 버리고 말을 탔으며 차비(次妃) 이씨(李氏)가 탄 말은 파리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어 보는 사람이 다 눈물을 흘렸다. 분수원(焚修院 :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에 이르니 안렴사(按廉使) 안종원(安宗源)과 충주목사(忠州牧使) 박희(朴曦)가 와서 알현했으며 영서역(迎曙驛 : 지금의 경기도 양주시)까지 오자 남경유수(南京留守) 최인원(崔仁遠)과 청주목사(淸州牧使) 김성갑(金成甲)이 와서 알현했다.
○1361년 11월 21일(음) 무진(戊辰)
戊辰 尙州判官趙縉以兵千四百來, 使大將軍金得齊領之.
무진일. 상주판관(尙州判官) 조진(趙縉)이 병사 1,400명을 인솔해 오자 대장군(大將軍) 김득제(金得齊)로 하여금 지휘하게 했다.
駕至沙平院, 開寧監務來, 獻刷馬百餘匹. 駕次廣州, 吏民皆登山城, 惟州官在.
어가가 사평원(沙平院 :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에 이르자 개령감무(開寧監務)가 와서 쇄마(刷馬) 1백여 필을 바쳤다. 어가가 광주(廣州)에 이르니 이민(吏民)은 모두 산성(山城)에 올라가고 주관(州官)만이 남아 있었다.
○ 유탁(柳濯)을 경상도도순문(慶尙道都巡問) 겸 병마사(兵馬使)로, 이춘부(李春富)를 전라도도순문(全羅道都巡問) 겸 병마사(兵馬使)로, 최안소(崔安沼)주16)를 양광도 도순문사(都巡問使)로 각각 임명했다.
기사일. 어가가 경안역(慶安驛 :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에 있음)에 이르렀다.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이성서(李成瑞)를 양광도도순문(楊廣道都巡問) 겸 병마사(兵馬使)로,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강석(姜碩)을 교주강릉도도순문(交州江陵道都巡問) 겸 병마사(兵馬使)로 임명했으며, 조진(趙縉)과 개령감무(開寧監務)는 모두 품계를 올려주었다.
신미일.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가가 이천현(利川縣 : 지금의 경기도 이천시)에 당도했는데 비에 젖은 왕의 옷이 얼어붙자 장작불을 피워 한기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