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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중앙교회 전경
퇴임 앞둔 서임중 목사 ‘목회 35년’
서임중 포항중앙교회 담임목사가 2014년 10월 9일 70세 정년보다 5년을 앞당겨 조기 은퇴한다.
서 목사는 지난 1994년 9월 포항중앙교회 8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래 20년 동안 대구․경북지역 최대 교회로 성장시켰다.
서 목사는 이와 관련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교인들은 이런 서 목사를 ‘주님의 나귀’, ‘평행감축 목사’,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다.
40세 늦깎이 목사 안수를 받고 본격적으로 목회해 온 그를 만나 조기 퇴임한 이유와 목회비결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5년을 앞당긴 조기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조기은퇴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포항중앙교회에 부임할 때 이미 65세 조기 은퇴를 언급했었습니다. 그리고 10여 년 전부터 교계 및 일반 언론사의 인터뷰에 응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65세 조기은퇴를 선언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유별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목회관이며 삶의 의미를 담고 기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헌법이 정한 정년을 어기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교회가 가장 건강하게 성장하고 목회가 가장 평행감축(平幸感祝)의 상황이 될 때 정년과 관계없이 은퇴해 더욱 포항중앙교회가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이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둘째는 저의 말씀사역의 중심이 시무교회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전국 방방곡곡 부흥사경회를 인도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중대형교회는 일찍 부흥회준비를 위한 일정이 잡혀 상대적으로 개척 농어촌 산골교회는 항상 일정이 맞지 않아 섬길 기회가 없는 것이 항상 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직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이 문제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아 5년 조기은퇴를 하고 헌법이 정한 정년까지 미자립교회에서 강사로 초청해 주면 자비량 부흥회를 인도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포항중앙교회가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하고 동역해 줘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지난 35년의 목회를 되돌아 볼 때 가장 아쉬웠던 일, 또 가장 기억나는 일도 말씀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부족한 사람을 말씀전도의 달란트를 주셔서 목회 35년 동안 거의 세미나 및 부흥사경회로 시무교회를 돌아볼 수 있는 상황이 부족한 것이 가장 아쉬운 일입니다. 지방교회로서 대형교회인 포항중앙교회 성도님들에게는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포항중앙교회 20년 사역에 반 이상은 밖에서 목회를 한 세월이었습니다. 교인들이 담임목사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평 원망하지 않고 기도로 동행하고 동역해 주신 교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교회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지속적으로 부흥하게 된 것은 기쁘지만 성도님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기억나는 일들이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만 저의 목회35년은 날마다 기적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감동의 역사였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성전건축과 관련된 일들인데 35년 목회하는 동안 3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는데 예배당 및 부속 건물을 11동이나 신축 개축했으니 저의 목회사역은 성전건축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목사관 생활은 항상 채워지지 않은 빈곳이 많았고 그럼에도 신기하게 하나님이 그 빈 곳을 채우시는 신비로운 삶의 내용이 저의 35년 목회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에서도 포스코 회장이셨던 박태준 회장님의 교회 등록과 세례, 국회의원과 국무총리가 되어 감사예배와 소천하신 후 국립현충원에서 장례식 마지막 기도를 하면서 온몸에 그 어르신의 인격과 신앙과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었음을 목사로서 증언하고 싶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교회에서 명예 안수집사로 추대해 드리고자 결의하고 찾아뵈었을 때, ‘왜 내가 일찍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지 그것이 안타깝다’고 하시면서 두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나 같은 사람이 안수 집사가 되면 하나님이 웃으십니다.”라고 하신 끝까지 낮아지신 주님의 마음과, 둘째는 “나의 영혼을 책임지고 주님께로 인도하시는 우리 목사님”이라는 목사에 대한 기본자세의 말씀은 가슴에 새겨진 감동의 메시지로 기억됩니다.
-20년 전 중앙교회에 담임목사로 취임한 이래 교회 성장과 함께 지역복음화에도 적잖은 기여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목사님과 중앙교회를 통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회고해 주십시오.
주님이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교회는 ‘에클레시아’입니다.
불러내어 구별하여 모인 무리가 교회라면 포항중앙교회는 그런 교회로 오늘에 중앙교회가 되었습니다.
포항중앙교회 부임하면서 첫 서원이 “중앙교회만의 목사가 아니라 포항시 전체교회의 목사가 되리라”는 마음으로 한 교회의 부흥은 어떤 면에 지역복음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보편적 상황을 뛰어넘어 53만 포항시민의 복음화에 초점을 맞춘 목회가 포항중앙교회 20년 사역의 전부였습니다.
한 마디로 이것이 교회라는 것을 성경적으로 산위의 동네와 등경위의 등불로서의 표현된 포항중앙교회의 모습을 포항 시민들에게 보여드리고 느끼게 해 드리고 함께 더불어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어느 정도 그 목적이 이루어졌다고 자평합니다.
그것이 치료하고 양육하고 선교하는 생명이 풍성한 교회로서의 주제였고 그로 인해 평행감축(平幸感祝)을 노래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해외선교사 파송과 교회개척, 복지부문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소개해 주시고 특별히 이런 일들은 하게 된 동기와 추진과정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의 그림은 말씀과 구제입니다. 이것을 오늘에 적용해 표현하면 선교와 복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포항중앙교회에 부임해 이 두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교회를 지향했습니다.
그 과정은 소설로 써도 다 못쓸 감동의 이야기로 엮어진 내용이며 역사입니다.
그래서 17개국 44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11개국 16명의 선교사와 협력해 60여명의 선교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가정별, 기관별, 개인별 선교사 1명을 파송하는 운동이 감동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엘림복지 재단을 설립하고 엘림실버빌, 엘림 믿음의 집, 엘림 소망의 집, 엘림 사랑의 집을 설립해 현재 정신질환, 지체부자유, 뇌변병질환, 독거노인, 부양이 필요한 노인 등 성경이 말하는 작은 자들을 200여명을 모시고 100여명의 직원들이 섬기고 있습니다. 포항중앙교회는 1년 예산의 5%를 복지재단에 지원해 하나님 복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포항중앙교회 목회사역 20년 동안 포항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와 관련한 사역도 적잖을 것 같습니다. 함께 들려주십시오.
소개하려면 끝없이 많지만 포항시를 중심으로 교회가 지향하는 소외계층을 향한 중심 사역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1. 장학사업입니다. 교회 자체적으로 연중 1억여 원의 장학기금으로 초, 중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선정하여 지급합니다. 그리고 포항시 300억 장학사업에도 3천만원을 기증했습니다.
2. 소년소녀 가장 및 영세민 가정의 중고등학생들에게 매월 1천만원의 생활 및 학비 지원금을 지급합니다.
3. 지역의 가난한 가정에 매월 1천만원의 생활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4. 연중 1회 전교인 택시타기 주일을 실시함으로 포항시내 택시기사들로 하여금 용기를 갖게 하고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고 있습니다.
5. 연 4회 사랑의 주일을 실시해 특별헌금을 하여 특별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언론사에 의뢰, 추천받아 후원하고 절망에서 희망을 갖게 하는 사업을 전개하여 현재 80차 사랑의 주일을 실시했습니다.
6. 사실혼에 있으나 형편이 여의치 못한 가정을 매년 3~6가정을 추천받아 합동결혼식을 올려드립니다.
7. 다문화 가정의 이주여성 친정보내기 운동을 전개함으로 한국에서의 외국여성들의 삶의 환경을 보다 아름답게 해 주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8. 매일 포항시 기독교연합회와 협력해 만나의 집을 운영하는데 매일 결식(缺食)자들을 200여명 점심식사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9. 매년 4월에 1천여 명의 포항시 장애인들을 초청해 섬기고 위로하는 행사를 합니다.
10. 지금은 시청요청으로 중단되었지만 교회 주변 초등학교 등교시간에 맞추어 교통도우미를 10여년 봉사해왔습니다.
11. 엘림홀 커피숍을 열어 포항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12. 매년 1004명의 천사운동으로 1004만원을 모금하여 지역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액 지원, 생명 살리기 및 희망운동으로 20여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13. 매주 화요일마다 지역 여성들의 문화 활동을 위해 여성대학을 개설하여 12개 반의 문화적 내용의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4. 매주 목요일마다 지역 노인들을 초청해 노후 삶을 보다 행복하게 하는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5. 지역 청소년을 위한 공부방을 매일 저녁 12시까지 운영했습니다.
16. 지역주민을 위한 재활용센터를 운영해 아나바다(아끼고 나누고 바꾸고 다시 쓰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17. 포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강좌를 매주 화요일과 주일에 실시함으로 낯설고 물 설은 외국인들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18. 외국인을 대상으로 매주일 오후에 선한 이웃 진료소를 열고 있습니다. 제대로 진료 받지 못하는 외국인 거주자들로 하여금 진료에서 치료까지 3차 관계기관으로 연결되어 전액 교회가 진료비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19. 농어촌 교회 및 지역 상인들로부터 요청을 받아들여 매주금요일에는 예배당 마당에서 중앙장터를 열고 있습니다. 교인들과 직거래하게 하는 재래시장과 같은 경우입니다.
20. 매년 교회 예산의 5%를 교회가 설립한 엘림 복지재단(200여명의 정신, 지체 부자유한 노인 및 장애인과 독거노인을 100여명의 직원이 섬기고 있음)에 후원하고 있습니다.
-포항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경안신학대학원 대학교 총장 등 대외적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대외활동에 대해서도 나눠주십시오.
전라도는 기독교 복음화율이 평균이 30%를 넘지만 경상도는 10%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은 늘 목사로서 마음의 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이 보다 살맛나는 마음이 되는 것은 단순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제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시화 운동이 주창되었고 종교 간의 갈등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은 지혜롭게 처신하면서 포항을 거룩한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 성시화 운동입니다. 동역자들이 너무도 잘 하시고 지역교회가 협력하여 포항이 영남에서는 그래도 가장 복음화율이 높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은퇴를 해도 이 운동은 주님 앞에 서는 날 까지 해야 할 아름다운 복음운동입니다.
경안대학원대학교는 영남에 하나 뿐이 대학원입니다. 대형교회를 섬기다 보니 총장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면이 늘 짐이 되었지만 교무처장님을 중심으로 교수님들과 직원들이 너무도 잘하여 학교도 오늘에 이르도록 대가 없이 지역교육 문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대외 활동은 섬김 나눔 베풂의 사역에는 아낌없이 달려가는 생활 습관이 많은 직함을 갖게 되었고 그 직무를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하여 정말 쉼 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대별하면 교육활동으로 포항성서신학원장, 영남신대학교 교수출강, 볼리비아 희망대학교 총장, 모스크바 장신대 객원교수, 경안대학원대학교 총장의 직무를 수행했고, 사회사업으로 포항생명의 전화 원장 및 이사, 대구경북 장기기증협회이사, 경북도 공동모금회 이사 등을 역임하고, 의료사역으로는 포항세명기독병원, 우리들병원 이사, 사랑병원 이사장을 역임하고, 언론사역으로는 기독공보, 장로신문, 평신도신문사 논설위원 및, 한국기독신문, 경북일보 칼럼리스트로 봉사하고, 특수 선교활동으로 포항북부경찰서 경목, 안동, 경주 교도소 교화위원, 아가페 교도소 자문위원, 포항세진회 이사장, 방파선교회 회장 등등을 통해 봉사하고 헌신했습니다.
-부흥사로 국내외로 넘나들며 수많은 교회와 기독단체들의 부흥집회를 인도해 왔습니다.
영남권을 비롯한 국내외 교회 부흥을 견인해 왔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소속 교회 목회를 등한시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대외 부흥사경회를 통해서는 주님 앞에 받은 사명을 감당했다고 할 수 있지만 포항중앙교회 목회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것은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에 이르도록 교회가 성장과 성숙을 멈추지 않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받을 수 있는 교회가 된 것은 단순하게 목회를 등한시 했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부흥사경회를 인도하러 외부로 나가서도 매일처럼 20여명의 부목사님들로 하여금 매일 하루의 목회 현장 상황을 E-Mail로 보고받고 특별한 교인들의 상황에 대하여 담임목사로서 전화 문자 등으로 원격심방을 어느 한 주일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는 목회내용으로는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 포항중앙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하신 것처럼 소속교회 목회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제 예수님을 믿게 됐으면 믿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들려주십시오.
가난한 집에 태어나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면서 세상에서 방황하던 저를 하나님이 20세에 부르셨습니다. 결핵을 앓고 몸은 쇠약하고 가정에서도 폐기처분될 상황의 청년기에 부모님이 신봉하던 삼덕교(증산도)에 회의를 느낀 어느 날 스스로 발걸음이 교회로 향한 것이 첫 신앙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의 신앙과 목회의 근간이 창세기 12:1~3절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시작과 믿음의 과정과 그 축복받은 결과를 꿈꾸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하나님은 저의 모든 면면에 축복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도록 아브라함의 복을 주셨습니다.
제가 목사로서 오늘에 이르게 된 여정 가운데 결코 잊을 수 없는 세분이 계시는데 첫째는 모교회 권영주 장로님이 신학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첫 장학금을 주셔서 출발이 가능했고, 이 일을 주선하신 어른이 고인이 되신 안동 서부 교회 원로 목사이신 김원진 목사님이신데 모교회 부흥회 오셔서 저를 발견하시고 시골 촌뜨기를 손에 잡고 안동 경안성서신학원에 입학시켜 주셔서 목사로서의 출발을 시켜 주셨고, 목회자로서 바른 걸음을 걷게 하신 분은 고인이 되신 안동 교회 담임하시는 김기수 목사님이셨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과, 찬송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십니까.
가장 좋은 하는 성경구절은 시편 18:1절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는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분은 듣기에 식상할 수 있지만 예수님뿐입니다. 이유를 꼭 물으신다면 무거운 대답이지만 그토록 존경했는데 낙심되는 경험을 수 없이 하면서 땅에 사는 날 동안에는 온전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한 분을 말씀 하라한다면 제 아내입니다. 이건 정말 진실 된 내 마음과 삶의 간증입니다.
-목사님의 목회철학의 근간(根幹)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나의 목회는 ‘어머니 마음’의 목회가 중심축이 되어 있는데 그 에피소드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초등학교 때 우리 가정은 지극히도 빈한했습니다. 점심 굶는 것은 보통이었고 종종 저녁밥도 건너야 하는 아픔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5학년 어느 날 20리 길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지만 점심 굶은 나에게 집에서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들일하러 가셨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배고픈 나는 사랑방 윗목에 다음해 종자씨앗처럼 아끼는 고구마 두 개를 화롯불에 구워 먹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아버지가 그것을 확인하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서럽고 배고파 그냥 이불 뒤집어쓰고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를 지나 잠든 나를 깨우신 분은 어머니셨습니다. 머리맡에는 삶은 고구마가 한 사발 담겨 있었습니다. “일어나 먹어라.” 어머니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언제 서운했던가 싶은 마음으로 고구마를 먹었습니다. 되돌아 앉아 저고리 고름으로 몰래 눈물 훔치시는 어머니를 본 것은 한 개를 다 먹고 난 후였습니다. 아직도 그 때 일이 잊혀 지지 않기에 나는 오늘까지 그 어머니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쌀밥 달라고 졸라대던 어린 것 품에 안고 종갓집 마당에서 쌀 밥 한 그릇 얻어 들고 돌아와 명태 두 마리 구워 한 숟갈 한 숟갈 입에 떠 넣어 주시면서 그렇게 좋아하셨던 분이 어머니였습니다. 발에 종기가 나서 걸음을 걷지 못할 때 김치를 입에 빨아 종기에 대고 “엄마가 붙이는 모든 것은 명약이다”라고 입으로 후후 부시면서 다독거려 주시던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설익은 풋풋한 사과를 먹고 배 아파 아랫목에 엎드려 울고 있을 때 “내 손이 약손이다. 엄마 손이 약손이다.”하면서 배를 쓸어 문질러 주실 때 희한하게 아프지 않고 잠이 들게 하셨던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설날이 되면 이웃 부잣집 아이들은 때때옷 입고 세배 다닐 때 묵은 헌옷 입고 세배하는 것이 속상해 정월 초하룻날 들판으로 연 날리러 갔다가 돌아온 어린 것을 치마로 감싸 안고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듯 돌아서서 눈물짓던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나이 들어 목사가 되었을 때 잠 못 자는 것이 안쓰럽게 보이시고, 소견 좁은 교인들에게 이리 저리 시달리는 것 속상해 새벽까지 아들 머리맡에 앉아 기도하시면서 성경을 눈물로 적셨던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끝없이 베푸시는 어머니의 사랑,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멈추지 않는 샘물처럼, 어머니 사랑은 그랬습니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많은 성도들에게 어머니 같은 목사로 목양 해야지.... 그러면서 벌써 강산이 세 번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고향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입니다. 넓고 넓은 바다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산입니다.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끝없이 솟아오르는 샘물입니다. 나는 오늘도 어머니 마음으로 나에게 위임해 주신 주님의 백성들을 위해 오늘도 목양(牧羊)합니다. 그래서 나의 목회 철학은 모심목회(母心牧會)입니다. 방법론으로는 절차탁마(切磋琢磨)로 통감(通鑑)의 목회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스인은 직분에는 은퇴가 있어도 사명에는 은퇴가 없다고 합니다. 원로목사로 추대되면 어떤 일이나 사역을 하고 싶으신지요.
앞에서 말씀 드렸지만 포항중앙교회 담임목사의 직은 은퇴하지만 목사의 직은 은퇴 할 수 없잖아요. 은퇴를 한 후에 후임 목사의 목회에 좁쌀만큼이라도 간섭하거나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은 진정한 은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주님이 주인이시고 주님이 인도하시고 목사는 거룩한 도구일 뿐입니다. 이 부분은 확실하게 짚어두고 싶습니다.
다만 원로 목사로 추대 받은 후에도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주님이 주신 말씀사역을 계속하는 것이 저의 조기은퇴의 목적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소망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이 나에게 환경 여건을 허락하시는 그 날까지 농어촌, 개척 미자립교회 자비량 부흥회를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이라고 깨달았기에 조기 은퇴를 결심했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새내기 목회자들과 이 시대 크리스천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느덧 목회 35년, 포항중앙교회 담임 20년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그러면서 대가 없이 오늘에 이른 목회여정을 돌아보니 나의 목회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일보다 사람을 중히 여겼습니다. 목회 현장의 가장 큰 아픔은 일 하다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일을 하다가 사람을 잃을 것 같으면 일을 중단했습니다. 나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빌립보서 2장에서 사도바울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그려놓은 것을 보면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숙련된 기술자는 조급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부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절대 거만하지 않습니다. 공작새는 자기 발밑을 볼 때는 깃털을 접습니다.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항상 작은 병에 담겨 있습니다. 병에 담겨진 물은 저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처럼 인격과 학문과 신앙을 갖춘 사람은 떠들지 않습니다. 마음이 고상한 사람은 절대로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 같은 마음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듯 목회도 신앙도 언제나 낮은 곳으로 가는 걸음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은 흐르다가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돌아 흐르듯 목회도 이곳을 막으면 저곳으로 돌아가고 저곳을 막으면 이곳으로 돌아 흐르듯 사역하는 것입니다. 물은 흐르다가 막다른 곳에 이르면 흐름을 멈추듯 그럴 때는 주님도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면서 기다리듯 조급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목회입니다.
그러나 그 멈춤은 멈춘 것이 아니라 막힘을 통과하기 위한 또 다른 조용한 준비입니다. 그러다가 물은 더 이상 가로막는 것이 없을 때는 그 동안 채우기 위해 멈추었던 시간의 몇 배 빠른 속도로 흐르는 것처럼 목회는 가로막혀 멈추었다고 속상하거나 아파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물은 욕심이 없습니다. 그저 낮은 곳으로 흐를 뿐입니다. 흘러가면서 모든 것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혼자 흐르는 것 같지만 비록 하찮아 보이지만 낙엽도 함께 동행 하고 새들도 동행하고 구름도 동행하는 것처럼 목회는 돌아보면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도 동행하시고 사역의 동행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물은 생명이기에 흘러 들어가는 곳마다 살아나고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듯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목회를 하면 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도 심히 많아지고 이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마다 각처의 모든 것이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지만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 마다 과실나무가 자라고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이지 않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고 잎사귀까지 약 재료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에스겔을 통한 말씀 사역의 축복입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도 낮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목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흐르는 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사역하는 목회자의 삶이며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바쁜 시간에 장시간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론인홀리클럽 공동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