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고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초·중·고 각급학교에서는 현장체험학습이 실시되고 있다. 청소년기는 신체적 성장이 빠른 반면 인지 및 정서적 능력 배양은 더디기에 야외활동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경험 학습이다. 또한 자연에서 스스로가 정체성을 찾고 도전정신 함양, 성취 동기 강화 등의 내실을 다질 수 있다.
하지만 각종 체험활동이 획일적 교육, 집단중심 성과주의, 우열의 정당화 등의 집체식 체험활동 위주로 구성돼 있어 유사 해병대캠프와 같이 청소년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피해로 이어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이에 정부는 청소년활동진흥법을 개정했고 안전한 활동여건과 신뢰받는 프로그램 제공을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믿을 수 있는 활동에 참여하도록 정부가 청소년 활동의 공공적 인증을 강화하고, 전국 규모의 역량을 갖춘 청소년단체에서의 활동을 권장하는 원칙을 세웠다. 또한 청소년 이용 시설의 안전성에 대한 평가시기를 앞당기고 청소년활동 관리와 연관된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성을 높여 체험활동의 제공에서부터 완료에 이르기까지 청소년의 안전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설의 안전과 관리를 위한 후속대책은 기대에 못 미치고 정부에서 인증한 프로그램만의 참여를 권장하거나, 위험이 예상되는 청소년활동의 경우 자치단체에 신고해 허가를 얻고 관련 정보를 경찰서와 소방서 등에서 공유하는 규제 일변도 처방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청소년에게 안전한 체험활동을 제공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국민 모두가 신뢰 가능하며 현재보다 더욱 강화된 보완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위험한 활동은 무조건 규제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신뢰할 수 있는 활동을 더욱 잘 지원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무허가시설과 업체가 난립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과 정비의 체계성을 높이는 시도가 필요하다. 특히 전국의 다양한 청소년 활동시설을 상시적으로 관리하는 청소년활동안전관리센터가 절실하다. 청소년활동진흥법을 개정하면서 프로그램 관리와 신고제도를 갖추는 노력을 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청소년 활동시설의 안전성을 상시적으로 관리해내는 시스템은 전무한 상태이다. 청소년이 야외에서 활동하는 공간과 시설 점검을 상시화하는 관리대책이 없으면 수많은 청소년 활동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지 못하게 되고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커진다.
안전과 통합을 국정의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음에도 잦은 사고가 나는 현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청소년정책에 대한 무대책, 지원 부재, 무관심 때문이다. 청소년을 위한 지원과 관심을 확대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이는 투자가 없다면 가까이는 10년 후, 멀리는 몇 십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조해내는 청소년이 많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부산시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이후 청소년수련시설 등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 40개 시설에서 57건의 문제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우리는 언제까지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를 반복할 것인가.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생 `밴드`에 들어갔다가, 포항항도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동창생의 아들이 1년 동안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동창생이 아고라에 올린 글이나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미 학교의 징계 절차도 마무리 됐고, 경찰 조사도 거의 마무리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학교의 조치나 경찰 조사 결과가 피해자 측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가해 학생들은 동창생의 아들에게 볼펜으로 온몸에 낙서를 하고, 칼로 손을 찌르고, 정수리를 동그랗게 잘라 잔디라며 물을 붓고, 흙과 치약을 먹이고, 심지어는 교실 커튼 뒤에서 음모를 뽑는 가해 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작년 12월 초쯤 학교 측에서 인지하고 두 차례 정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 조사했다. 그 결과, 주동자인 윤모군과 김모군은 출석정지 8일과 학급교체, 서면사과의 징계를, 나머지 학생 5명은 출석정지 3일, 접근금지 등의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피해자의 고소로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도 `성폭행` 혐의는 인정되지 않은 채 사건이 종결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 사건이나 다른 학교 폭력 사건을 보면 가해자들이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점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요즘 아이들은 함께 노는 친구들이 정해지게 되면, 그 아이들과 주로 다니고 소통하게 된다. 평소 놀던 친구 무리에서 벗어나면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이들은 친구가 가혹행위를 해도 어쩔 수 없이 순응하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부모나 선생님 등이 보기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심한 장난`으로 가볍게 생각하게 된다. 즉, 가해 당사자나 주위 관찰자들이 폭력을 장난으로 보게 되는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1년 동안 지속되어온 학교 폭력이 `심한 장난`으로 치부되다 보니,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도 피해자의 `기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가해자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는 수준에서 내려진다. 학교의 관대한 처분은, 자신의 행동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폭력`이라는 점을 가해자가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동창생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반성문에 `내가 이번 일로 교내봉사 며칠 하는 동안,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가라. 난 반성하고 있을께`라고 썼다고 한다. 이 문장은, 가해 학생이 학교의 징계로 인해 자신의 `고등학교 입시`가 잘못될까 하는 것에만 신경 쓰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학교 폭력이 일어날 때, 가해 학생만큼 피해자에게 방어적으로 나오는 쪽이 있는데, 이는 담임선생 등 학교 측이다. 이들은 학내에서 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이것이 자신들의 승진 등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하거나 확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 직장 동료의 경우, 조카가 전학 간 학교에서 학교 폭력을 당해 학교 측에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어줄 것을 요구하자, 학교 측에서는 한 번도 그런 위원회를 연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실제로 학교 측은 이 위원회를 여는 절차도 모르고 있어서, 피해자 가족들이 관련 자료를 알아보고 시교육청에도 항의하고 했다고 한다. 결국, 직장 동료의 조카는 다시 전학을 가야했다. 지인들의 사례이긴 하지만, 대체로 학교 폭력은 피해자가 피해 정도를 호소하는 것에 비해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다소 가볍게 내려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