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대하는 자세 / 박혜연
휴직을 오래했다. 첫째를 낳고 1년, 둘째를 낳고 또 3년을 했다. 딸들을 내가 직접 키우고 싶기도 했고, 어린 아이들을 맡기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공식적으로 학교를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처음 복직할 때는 같은 학교였고, 쉬었던 기간도 짧아 학교를 다시 나가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3년을 휴직한 후에는 복직을 하기 몇 달 전 부터 학교에 나갈 생각을 하면 두려움에 가슴이 떨렸다. 걱정은 꿈속에서까지 내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이 있는 교실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1월에 복직 연수를 담양 연수원에서 받는다고 연락이 왔다. 담양까지 어찌 다니나 막막 했는데 다른 선생님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고맙게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선생님에게 같이 다니자는 전화가 왔다. 다행히도 담양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었고 복직연수기간 동안 비슷한 처지의 선생님들과 함께 해서인지 한결 마음은 편해졌다.
휴직 전 다녔던 학교의 학급수가 줄면서 최장기근무자였던 내가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났다. 내가 가게 될 학교는 집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았지만 차로 이동해야 했다. 한 학년에 6-7 학급 정도의 큰 학교였지만 내가 아는 선생님은 한 분도 안계셨다. 5학년 30명의 아이들 앞에 서니 모두 나만 보고 있다. 학생들에게 능숙하게 수업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밤늦게 까지 수업준비를 했다. 운 좋게도 꿈속에서와 달리 나는 그때 너무 착한 최고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래도 휴직 전과는 다르게 자신감은 사라지고 내 스스로가 괜히 부족해 보이고 주눅이 들었다. 신규 때처럼 잘 모르겠는데 이걸 물어봐도 되는 건지 망설여졌다. 다른 선생님에게 피해주기도 싫고, 그럴수록 모르는 것도 많아져서 질문도 아껴서 했다.
그걸 눈치 채신 옆 반 선생님이 나를 정말 살뜰하게 챙겨주셨다. 학년에 제출해야 할 것이 있으면 미리 나에게 보내주셨다. 그 선생님은 그때 선도 교사 수업도 하셨고, 생활지도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옆에서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좋은 아이들과 선생님들 덕에 내가 두려워했던 것에 비해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안 되어 순천 만기가 다가왔고 나는 유난히 인사가 안 터졌던 그 해, 결국 3지망으로 썼던 고흥으로 발령이 났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 점수에 고흥으로 온 것도 다행이었다. 순천으로 신규발령을 받아 계속 가까운 학교에 다녀서 필요가 없기도 했지만 운동신경이 없고 겁이 많아 운전 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운전면허 학원을 다닐 때 강사님이 이렇게 운전을 못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었던 것도 한 이유였다. 복직하고 운전을 시작했지만 마트하고 학교밖에 가보지 못했는데 고흥으로 통근하려니 막막했다.
내신이 나고 3일을 끙끙 앓았다. 남편은 사람만 안 다치면 되는 거고 접촉사고 정도는 나도 괜찮다고 자신감 있게 운전하라고 말해주면서도 절대 다른 사람은 태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옆 반 선생님이 고맙게도 처음에는 우리 차 같이 타고 다니다가 천천히 운전하라고 해주셨지만 그러면 영영 운전을 못하게 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겐 일상인 통근길이 나에게는 하루에 제일 중요한 일이 되어 마음을 짓눌렀고 아침이면 마음을 굳게 먹고 무사히 학교에 도착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 없는 시간대에 가려고 일찍 출발한 탓에 학교에 가장 먼저 출근했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운전하는 데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그 시간이 더 이상 괴롭지도 않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곳을 갈 때면 자신이 없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하지만 조심히 가면 못 갈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두려움이 나를 한정지었을 뿐이지, 처음부터 복직이나 운전이 엄두도 못 낼 대단한 일은 아니었던 거다. 지금도 종종 번지점프대에 서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들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로 당당하게 예전에는 못했을 말이나 행동을 해내는 나를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원래 내 모습은 이게 아닌데 내가 두렵지 않은 척 하는 건 아닌가 싶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내 모습도 나고 바뀌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할까. 새 학기가 다가오고 있다. 3월은 변화의 시기여서 늘 좀 두렵다.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해냈던 경험들이 나를 더 나아지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첫댓글 저도 초보운전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처럼 자동이 아닌 수동 기어로 운전을 시작했는데 차에서 내리면 어깨도 뻐끈하고 목도 아프고,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어요. 낮은 오르막을 오를 때는 자꾸만 뒤로 밀리는 차를 어쩌지 못해서 결국 뒤차 운전자한테 옆으로 빼달라고 해서 쉬어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렇게 망설이고 조심스럽지요. 용기를 내요. 우리 선생님 충분히 잘 하고 있어요. 아자아자~~~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말씀에 늘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