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6 추수감사주일 설교
하마스 대신 마흐세
시편 73:21~28
요즘 하늘 보셨나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청명한 가을하늘을 주셨습니다. 오늘 길가의 단풍을 보셨나요? 하나님께서 모든 나무에게 빨간 옷, 노란 옷을 입혀 놓았습니다. 이 사진에서 단풍길을 걷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나였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잎사귀들이 떨어져 쌓인 낙엽은 보고만 있어도 감성이 돋고 밟고 지나가면 힐링이 됩니다. 나무에 달린 감을 보면 안 먹어도 행복해집니다. 요즘은 더운 여름의 끈적한 습도도 없어서 짜증 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계절의 이 모든 행복감을 순식간에 빼앗아가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요즘의 뉴스입니다. 뉴스를 보는 순간 평안은 사라지고 슬픔과 분노와 짜증이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가장 속상한 것은 이태원 사고입니다. Halloween의 의미를 무시하고 흉측하거나 난잡한 Costume play를 하는 것도 보기에 불편했는데 불행한 사고까지 나고 말았습니다. 하도 어이없는 사건이 터지자 누군가 사건을 기획했다는 가짜뉴스도 많이 돌아다니는데 그런 소식을 접하는 것은 더욱 우리를 피곤하게 합니다.
11/4에 <아시아경제>는 용산경찰서장이 경찰서 옥상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보도했는데 사건 현장과 용산경찰서는 95미터 거리입니다. 서장은 옥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문제는 이태원 사고만이 아닙니다. 이태원 사고 때문에 이슈에서 잠시 밀려났지만 교과과정 시안 문제는 여전히 심각합니다. 교과과정 시안의 문제는 결국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문제입니다. 저들의 배후에는 성 주류화 정책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있습니다. 성 주류화란 은밀한 성을 밖으로 끌어내자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성행위를 권리라고 가르치면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다 허물어집니다. 지난주에도 설명했듯이 어린이들에게 조기 성애화 교육을 하려는 교과과정 시안을 우리는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교육정책연구팀은 2022년 말까지 교육과정 시안을 마무리한다고 기한을 정해놓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10/31에 시행하지 못했던 연합예배 및 국민대회를 다음 주일 11/13 오후에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교과과정 시안 전면폐기를 위해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합니다.
저 악인들은 국가로부터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교육과정 시안을 자기들 마음대로 사악하게 만들고 있는데, 우리는 왜 목사와 교수, 변호사, 교사들이 이렇게 아스팔트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걸까요? 세상에는 왜 더 나쁜 사람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마음껏 악행을 저지르고 있을까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 세상을 정직하게 사는 것이 바보처럼 여겨집니다. 악인들은 저렇게 출세하는데 평생 하나님 섬기며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는 잘 되는 것이 없으니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 편이실까요? 악인이 득세하는 불합리한 세상에서 각종 난리가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요? 다행스럽게도 오래전에 저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편 73편에 기록된 아삽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나는 미끄러져 거의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을 부러워하고, 악한 자들이 잘사는 것을 시샘한 탓입니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고생이 무엇인지 조금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겪지 않으며 사람들이 당하는 쓰라림은 아예 모릅니다.
그들은 교만을 목걸이로 삼고 폭력을 옷으로 입고 있습니다.
그들의 굳어진 가슴에는 악한 생각이 들어 있으며, 교만한 생각은 끝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헐뜯고 악한 말을 하며, 거만한 태도로 위협하기도 합니다.
입으로는 하늘을 대적하고 혀로는 땅을 두루 다니며 악한 말을 내뱉습니다.
그리하여 내 백성마저 그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의 악한 영향을 그대로 받아
“하나님이 어떻게 알겠느냐? 지극히 높으신 이가 뭘 알겠느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악인이어도, 몸은 항상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갑니다.
나는 과연 무엇 때문에 마음을 맑게 하셨으며 깨끗한 손으로 살았을까요?
나는 하루 종일 고통을 당하였으며 매일 아침마다 벌을 받고 있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말하며 살고 싶었지만, 그것은 주의 백성을 배신하는 일이기에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해 보려고 애썼지만, 그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마음이 산란하며 양심이 찔렸습니다.
(시 73: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1절에서 산란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하메츠(חָמֵץ)인데 ‘발효되다’, ‘붉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에 하메츠가 일어나는 것을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뚜껑이 열린다고 합니다. 또 양심이 찔렸다는 말은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롭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열 받아 뚜껑이 열리고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로워진 시편 기자는 17절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시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그는 성소에 들어가면서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깨달았다는 말은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입니다. 사실 열 받고 날카롭던 것은 과거 상황이고 이제는 다 해결되었다는 말입니다.
성소에 들어가면서 그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성소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번제단을 지나게 합니다. 번제단에는 온종일 번제물이 타고 있고 그 위에 속죄제와 화목제 제물을 올립니다. 번제는 헌신의 제사이며 속죄제는 대속의 제사입니다. 양이 나를 대신해서 죽는 것이 번제와 속죄제입니다. 시인은 메시아를 통한 대속의 은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장면을 보면서 시인은 그리스도 메시아 없이 사는 저 악인들의 종말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시편 73편을 기록한 아삽이 성소에 들어가면서, 번제단을 지나며 대속의 은혜를 깨닫게 된 것처럼 오늘 여러분도 삼위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면서 동일한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고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땅의 현실을 보던 눈을 들어 하늘의 실체를 보게 되시기 바랍니다.
아삽이 깨닫고 보니 그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권세자와 부자들이 모두 멸망할 운명에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18절에서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하신다면 그들은 그 심판을 거부할 수도 없고 피할 길도 없습니다.
또, 19절에서 그들을 갑자기 황폐되었다는 말씀을 보면서 어릴 적의 돈 줍는 꿈이 생각납니다. 꿈에 10원 동전을 주웠는데 옆에 또 있고 그 옆에 또 있고, 그 옆에는 100원 동전이 있고, 또 그 옆에는 500원 동전이 있고 정신없이 주웠는데 갑자기 꿈을 깨는 바람에 순식간에 사라졌지요.
악인들의 모든 소유와 권력은 현실이 아니라 일장춘몽(一場春夢)일 뿐입니다. 지금 악인의 권력과 소유물과 건강과 인기 등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한 짓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꿈 깨.”
지금 옆의 성도가 혹시 세상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한 마디 해 주세요. “꿈 깨.”
또 이 자리에 없지만, 여러분 주변에서 돈 좀 가졌다고, 나보다 지위가 높다고 으스대며 나를 조롱하고 조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따끔하게 한마디 해 주세요. “꿈 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에, 시대적 상황 때문에, 집요하게 괴롭히는 어떤 사람 때문에 혹시 뚜껑이 열리는 일이 있습니까? 혹시 신경이 매우 예민하고 날카로워지는 일이 있습니까? 내가 어쩌다가 예수님을 믿어서 못된 방법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바보처럼 살고 있는지 한숨이 나옵니까?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 편이신지 묻고 싶습니까?
그런 분은 아삽의 고백을 잘 배워서 아삽과 같은 깨달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삽과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7절에서 아삽이 깨달았다고 한 말이 과거형이듯이 23절에서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다는 말도 과거형입니다. 하나님은 내 손을 놓고 도망가셨다가 인제 와서 슬그머니 손을 잡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늘 함께하시고 손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아삽의 이 말이 공감되십니까? 쉽게 공감되는 분들은 큰 고난을 당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삽의 이 시는 다윗 왕권이 파괴되고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 지은 시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윗 왕권과 유다 나라를 붙들고 계셨다면 이렇게 비참하게 나라는 멸망하고 성전은 파괴되고 왕과 제사장, 모든 귀족과 백성이 몽땅 바벨론으로 끌려오는 일이 발생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삽이 깨닫고 보니 그것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26절에서는 마음이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하면서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진정한 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주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고 주님의 행적을 퍼뜨리겠다고 고백합니다.
28절의 피난처는 히브리어로 ‘마흐세’인데 6절의 ‘강포’는 ‘하마스’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입니다.
“너희는 하마스 믿니? 나는 마흐세 믿는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이 자신의 하마스를 믿고 까불 때 여러분은 주 여호와의 마흐세를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2022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뭐라도 감사해야겠는데 곰곰이 생각해봐도 크게 감사할 것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 제목도 많고 아직 생활이 안정되지도 못했고 여전히 돈이 부족해서 팔짝팔짝 뛰고 계시지요?
특히 깔짝깔짝 괴롭히는 그 사람은 아직도 득세하고 있고 내일 직장이나 학교에 가면 또 그 사람과 대면할 것을 생각하면 뚜껑이 열리고 신경이 날카로워지지요?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의 감사할 이유는 환경이 아니고 소유가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성공이 아니고 하나님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님이 최후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미끄러운 언덕에 세우시고 졸지에 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속의 은혜로 구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주가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도 많이 있습니다.
응답하신 기도도 감사하지만 거절하신 것도 사실 감사합니다
기쁨도 감사하지만 겸손하도록 주신 아픔도 감사제목입니다.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장미꽃도 감사하고
그 장미에 가까이 다가가서 가시에 찔린 것도 감사합니다.
장미꽃 가시 같이 나를 아프게 한 그 사람도.... 감사하죠.
지금도 따스한 가정과 가족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요
이루지 못한 기도제목이 많지만 희망이 있는 것이 감사해요.
가장 감사한 것은 희망이 있고 하늘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https://youtu.be/MZPKnUHaF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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