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에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다.
그 당시는 아직 비디오 플레이어가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였다.
외삼촌은 가끔 우리 집에 오실 때 비디오테이프 2~3개와(본인용 2개, 조카용 1개) 호프집에서 노란 봉투에 담긴 전기구이 통닭을 들고 오셨다.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주는 대여점이 진월동에는 아직 없어서 시내에 계시는 외삼촌이 오시는 날을 동생과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큰누나 집에 오면서 본인을 위한 비디오 시청과(대부분이 액션 영화) 조카들을 위한 통닭, 만화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생각하신 거다.
참 고마운 분이다.
지금도 외삼촌과는 관계가 좋으며 잦은 왕래를 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진월동에도 큰 도로가에 비디오 대여점이 들어섰다.
가게 이름은 ‘나래 비디오’
이젠 외삼촌을 더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당시 비디오테이프 빌리는 가격은 1,000원이었다.
동생과 나는 1,000원이 모이면 비디오 대여점으로 달려갔다.
거기에 가면 수많은 만화영화가 가득했다.
보통의 남자아이였기에 우리는 무조건 로봇 만화를 빌렸다.
비디오 만화는 평소 티비에서 보던 만화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린 만화는 너무나도 멋있고 재미있었다.
(당시 티비에서 자주 보았던 로봇 만화로는 메칸더 V, 마징가 Z, 고바리안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진짜로 좋은 건, 다시 보고 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동생과 나는, 조금 과장하자면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반복해서 보곤 했다.
그 재미있던 만화영화 제목은 아쉽게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지금 왜 이리 희미해졌을까?
아~ 아쉽다.
하지만 그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느낌만은 참 좋다.
문득 궁금해진다.
왜 비디오 대여점 이름이 나래 비디오였을까?
딸 이름이 나래였을까?
그 나래도 나처럼 진월동에서 살아갔던 시간을 기억할까?
비디오 대여점 딸내미로서...
우리처럼 행복했을까?
비디오 빌리러 오는 진월동 사람들과의 어떤 추억들과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만날 수만 있다면 묻고 싶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지나온 사람으로서...
#나의진월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