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한센병치료병원인
‘광주나병원’은 1925년
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에
터를 마련하고, 1928년 한센병자 600여 명이
옮겨와서 지금의 ‘애양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1936년
‘여수 애양원’으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애양원 교회(예장 통합)의 제2대
담임목사인 손양원 목사님은 1939년 7월 14일
부임하여 목회를 시작했으며, 1939년 일제에 항거한
‘원탁회 사건’으로 손양원 목사와 장로들이 검거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애양원에 가면
손 목사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봉투 하나가 유리함 속에 들어 있습니다.
바로
'감사헌금 봉투'입니다.
두 아들(동인, 동신)이 공산당
청년(안재선)에게 총살로 순교를 당한 직후
장례식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바쳤던 감사헌금 봉투입니다.
그 감사헌금
봉투 겉면에는 “두 아들의
순교를 감사하며 1만원. 손양원.” 적혀있습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의
와중에 순천사범학교를
다니던 손 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순교하게 됩니다.
당시
손 목사님은
애양원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두 아들의 순교 소식을 접하고도
모든 예배를 정상으로 인도한 후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뜻이 계셔서
제 두 아들을 불러
가신 것으로 믿고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 두 아들을 죽인 사람,
그의 생명을 보존해주십시오.
제가 전도하겠습니다. 그가 그대로
지옥에 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저에게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손 목사님이 한 인사말입니다.
“제가
이 시간에
무슨 답사를 하고
무슨 인사를 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서 몇 말씀 드립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도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열 번째,
이렇듯 과분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날
장례예배는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손 목사님은 슬퍼하기보다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하고 찬송을 힘차게 불렀습니다.
장례식 후에
감사헌금 1만 원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당시
손 목사님의 한 달
사례비는 80원이었습니다.
1만원은
목사님의 전 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손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양자로 삼아 손재선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고,
나중에 목회자로 키워내는 사랑의 기적을 이룹니다.
첫댓글 김숙희;그런 순교의 정신이
이나라를 복음 전하는 나라로 만들었네요~~
우린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신앙의 영역같에요 감사합니다, 숙희님~
이성진;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