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카와역 가나자와 시
카가 지방의 어느 산속마을에서 감자를 파서 생계를 유지하던 ‘이모호리 토고로’ 라는 사람이 감자 주위에 금이 묻어 나오자 ‘긴로 데이다쿠’에서 감자의 금을 닦아냈는데, 금을 닦던 연못이 가나자와(金澤)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맛있다는 메론 아이스크림, 사계절을 나타내는 4색의 화과자, 가나자와는 예전에 금생산지라 금이 들어 간 크림, 커피 같은 특산물이 많다, 이시카와 현은 450년간 전쟁, 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아 일본의 옛 모습과 풍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전통미술, 금박공예로 번영했던 가나자와는 에도시대 문화유산으로 가득해 새롭게 떠오르는 일본여행지이기도 하다. 이시카와 현은 세계가 인정하는 공예의 도시, ‘와지마누리( 금채 천연목 칠기쟁반) 등 10품목이 중요 국가 전통공예품으로 지정 되었다. 요즘엔 패션업계에서도 주목, 이 공예품을 이용한 드레스가 파리 콜렉션에 선보여 졌다. 온천이 유명하고 해산물이 맛있으며, 일본 3대 정원과 물에 젖지 않은 이상한 수영장등. 문화와 예술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 이곳에 아픈 우리의 역사도 함께 숨 쉬고 있었다.“도시락은 잊어도 우산은 잊지 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와 눈이 자주 내리고, 변덕스러운 날씨로도 유명하지만, 가나자와에선 빈둥거림 또한 최고의 선물이다.
’다츠구치‘ 온천마을은 1400년간 역사를 가진 혼탕문화다. 온천마을 내에 자리한 ’다가와 류센카쿠‘ 료칸 에서는 혼탕이 6종류로 다양하게 구비 되어있어, 초보자도 즐길 수 있다. 200년 역사를 품었지만 새 건물 처럽 깔끔하다. 초보자는 ’단보노우‘ 탕을 이용하면 된다. 논 한가운데서 솟아나는 온천이란 뜻,
여긴 산골마을이라 저녁 9시가 되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단다. 저녁을 마친 후 마을 투어에 나섰다. 온 마을이 온천지다. 오래된 마을이라지만 깨끗하고 조용한 아늑함에 저절로 소곤거려졌다. 길 중간 중간엔 족욕 탕이 마련되어 있었다. 본전을 빼자며 양말을 벗고 모두들 발을 담갔다. 물이 엄청 뜨거워서 소풍 나온 아이마냥 재잘 되며 얘기꽃을 피웠다. 좌석 옆에는 발 닦는 수건 2개가 얌전히 개켜져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인, 친절하고 자상한 국민성, 이런 세세한 배려까지, 그리도 밉고 싫었던 그들의 말없는 배려가 이리도 편할 수가 ...,이번 여행은 자는 곳 마다 온천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이곳 가나자와는 온천의 할아비인 만큼 잠자리 들기 전 필수코스로 온천을 하였다. 가고시마에선 바다를 보며 느긋함을 느꼈고, 이곳에선 안개 낀 산을 보며 뜨끈한 온천탕에 몸을 담그면 몸도 마음도 노고노곤, 복잡한 도심에서 정신없이 돌아가던 일상들도 조금은 뒤로 미뤄둘 수 있고,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노천 욕을 즐기는 것, 두말할 것 없이 베스트다.
톡 쏘는 따스함에 온 몸이 녹아내리고, 맑고 깨끗한 물에 다시 몸 구석구석의 노폐물들이 저절로 빠져나오는 개운함에, 시간의 흐름까지 정지되는 편안함, 하얀 설원 가득한 흰 눈을 바라보며 천연 바람의 상쾌함에 갑자기 내 지위가 급상되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노천 온천장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느낌은 참 특별해서 조금은 그들의 문화가 편하고 깊이가 느껴졌다.
모리모토역은1932년 12월 18일 매헌 윤봉길 의사를 오사카에서 가나자와로 이송. 하룻저녁을 성에 감금한 뒤, 그리고 사형집행.
1932년 상해 홍커우 공원에 도시락 폭탄사건의 주인공이다. 칭타오 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산다”. 우리에게 ’상해‘는 희열의 땅이고, 가나자와는 절망의 공간이다. 역사의 실체는 탄생과 죽음, 또는 성공과 실패, 모두를 아우를 때만 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1939년 12월 19일 그의 나이 25세 때, 일본은 그의 시신을 화장했다고 둘러 대고, 그를 욕보이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한가운데 암매장했다. 묘비도, 봉분도 없는 철저하게 위장되고 은폐된 죽음이다. 하룻밤 묵은 곳은 지금 공중화장실, 그와 내 나이를 잠시나마 가늠해 보게 한다. 왠지 서글프고 자꾸만 작아지는 나다.
가나자와성은 오사카, 구마모토와 더불어 일본의 3대 성중의 하나로 제2의 교토라고 불린다.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나무만으로 연결해서 만든 목조성문. 세계 제 2차 대전과 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아 교토에 이어 일본의 전통문화와 옛 모습이 잘 남아 있는 곳, 고즈넉한 마을 풍경과 이끼 낀 돌담.
성벽의 높이는 8m. 흰빛이 감도는 기와를 얹고 회반죽에 기와를 붙인 무늬 벽을 세웠으며, 외침에 대비해 성 외벽에 총안을 설치하고 성 주변으로 인공연못인 해자를 구축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돌담.
14대 285년에 걸쳐 가가 번을 지배한마에다 가문의 대저택이었다. 에도시대( 1603년-1867년, 봉건 사회로, 소군이 권력을 장악했던 시기를 말함) 도쿠가와 막부에 버금가는 2번째로 큰 다이묘였던 히데요시의 상관이었던마에다에 의해 1580년에 만들어진 대 저택, 화재로 손상된 것을 다시 복구. 지금은 서쪽 문만 보전되어 있고, 천수 곽을 빼고는 전부 복원하였다.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 오픈 오전 7시-6시까지, 성인 310엔, 어린이 100엔,
히가시차야가이‘거리(ひがし )는 에도 시대 게이샤(기생)들이 손님을 맞이하던 고급 요정 거리다. 요정만은 예외로 2층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일본의 기온거리와 더불어 국가문화재에도 등재된 관광지이다. 한걸음 두 걸음 옮기다 보면 동화 속을 해매이듯이 아름다운 마을의 풍경과 목조건물들을 맞이한다. 은은한 불빛과 아늑하고 정겨운 모습으로 영화 ‘게이샤의 추억’ 의 배경이기도 하였다. ‘오미초’거리는 수산물거리, 바다로 한 상 푸짐한 밥상을 맛 볼 수 있다. 가게 앞에 이름을 적은 천을 거는데 이걸 ‘노렌 のれん’ 이라 부른다. 우리는 불판 가득 고기를 굽지만 일본은 한 점 한 점 구워 먹는다. 저녁에 ‘샤브샤브’를 먹으러 간 식당 안 화장실엔 수건, 드라이기, 샴푸, 린스, 생리대까지 준비해 놓았다. 그 무한 써비스에 관광국다운 무한 신뢰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곳 지역 맥주인 ‘호시노소라“ 맥주와 카르비+밥은 정말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