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명태와 오징어, 영원하라
덕장마을! 그랬다. 묵호일대의 마을은 모두 덕장마을이었다. 집집이 마당에는 오징어가 걸렸고, 노가리가 걸렸다. 고기 마르는 냄새가 온 마을을 퀴퀴하게 했다. 아이들은 지나가다가 노가리 하나 뜯어먹으며 배고픔을 해결했다.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다. 모두 어려웠던 시절이라 이웃에 대한 인정도 많았다. 서로 챙겨주면서 어려운 살림의 억압을 풀어냈다. 오징어 하나가 주는 이웃의 정이었고, 오징어는 행복감을 느끼는 매개체였다.
그렇게 정을 나누는 오징어는 묵호사람들의 삶 자체였다. 넘쳐나는 오징어는 처치 곤란이었지만 그런 오징어가 묵호의 아들딸을 공부시키고 배고픔을 달랬다. 오징어 때문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거리는 붐볐다.
이야기가 있는 묵호에서는 오징어행렬을 손수레[리어카]와 지게로 표현했다.
묵호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게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불기 무섭게 안묵호 어판장에서 수십 대의 리어카가 줄지어 지나갔어요. 그때만 해도 비포장도로인데, 날 오징어나 노가리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향로동, 부곡동, 대원사 쪽의 덕장이나 건조공장으로 갔어요. 리어카가 수십 대 지나가면 그 뒤로 지게꾼들이 비수쿠리(싸리나무로 만든 소쿠리)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오징어, 노가리, 명태를 지고 뒤따랐지요.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콤코무리한 오징어와 노가리 냄새에다 검은 탄가루가 풀풀 날리는 게 당시 묵호였지요.(이야기가 있는 묵호)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진다. 비포장도로에 질퍽한 물이 쏟아져 생선 비린내를 풍기는 거리였다. 게다가 연탄 가루가 날려 뒤범벅이 된 묵호의 거리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도로 위로 지게를 지고 손수레를 끌고 오징어와 노가리와 명태를 나르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눈에 선하다. 생선에서 떨어지는 비릿한 물이 몸으로 스며들 때 그 기분이 느껴진다. 그렇게 힘들게 지고 끌고 간 오징어 노가리는 잘 말려야 돈이 되었다.
당시는 냉동건조기가 없던 시절이라 모두 바람과 햇빛에 말려야 했다. 말리면 보관이 되고 판매가 잘 되기 때문에 동해시에는 이곳저곳 오징어 덕장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뿌득뿌득 말리다가 소나기라도 내리면 큰일이었다. 비를 맞으면 맛이 없어져서 상품가치가 없어졌다. 비 맞은 오징어는 곧바로 구렁텅이에 버렸다. 그 때문에 묵호의 계곡과 구렁텅이에는 오징어 썩는 냄새가 끊이질 않았다. 어쩌면 그게 묵호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묵호냄새였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 대량으로 오징어를 말리는 회사가 있었다. 묵호천주교 밑에 있던 영풍상사였다. 이 회사는 실내에서 불을 지펴 오징어와 노가리를 강제로 말려 팔았다. 동호동 주민들은 아직도 영풍상사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있는 묵호에서는 영풍상사의 비도덕적인 행태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날씨가 습할 때는 회사 안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고 고기 썩는 냄새가 나서 온 동네를 진동했다. 그러면 사장은 살충제를 치면서 “이 살충제는 벌레만 잡고 인체에 해가 없는 약”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고 한다. 그렇게 말린 오징어와 노가리는 전국으로 팔려나가서 맥주안주로 인기를 끌었다.
묵호는 밤낮이 달랐다. 밤바다에 떠 있는 오징어배 불빛은 낭만이었다. 마치 논골담 불빛을 본 외국인들이 멋진 도시를 생각했다가 아침에 판자촌을 보고 실망했듯이, 밤에 보는 오징어불빛이 그런 인상을 주었다. 부산에서 묵호로 밤에 이사 온 박분달 어르신의 이야기이다.
남편이 상사인 서장과 의견 다툼이 있었어요. 그래서 묵호로 좌천되어 왔어요. 우리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강원도 묵호를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큰애는 걸리고, 작은 애는 업고 한밤중에 도착했어요. 캄캄한 밤이었는데, 어디선가 등대의 긴 빛줄기가 동해바다로 내뿜으며 길게 비추고 있었어요. 그 빛이 사라지면 수많은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 벌처럼 보였어요. 또 등대주변으로 작고고운 불빛들이 수도 없이 많았어요. 마치 지중해의 어느 해안 도시처러ퟞ 낭만적이기까지 했어요. 나는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첫인상이 너무 좋아 그날 밤을 달콤하게 잘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눈떠보니 세상에! 어젯밤 본 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바다는 망망대해고, 육지에는 볼품없는 판잣집과 슬레이트집만이 산언덕에 그득했지요. 눈에 보이는 것은온통 오징어요, 냄새 또한 오징어의 묘한 냄새였어요.(이야기가 있는 묵호)
밤낮이 다른 묵호의 현실이었다. 아마도 오징어 잡이배에서 비추는 집어등이 사람도 끌어들인 모양이다. 그렇게 많이 잡히던 오징어는 이제 다 어디로 가고, 명태도 어디로 가고 묵호의 거리는 적막감만 돌고 있다.(이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