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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11)
십자가의 길
(Way of the Cross)
(Via Dolorosa)
▲ 예수께서는 유다력으로 니산달(3~4월) 14일을 시작하는 저녁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눈 후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한 후 체포돼 가야파의 집에 감금됐다가 아침에 총독관저 법정에 끌려가 사형선고를 받고 오후 해 질 무렵 골고타에서 숨을 거두셨다. 안타깝게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던 수난의 그 길은 성경에 상세히 기록돼 있지 않아 전혀 알 수 없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십자가의 길은 1540년께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인 '작은 형제회'가 확정한 것이다.
십자가의 길 1-2처 - 작은 형제회 수도원
✠ 제1처 -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제2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 채찍 성당(Chapel of the Condemnation)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기도가 시작하는 작은 형제회 수도원 모습입니다. 이곳은 헤로데 대왕이 예루살렘 성전 북서쪽 성전 벽 모퉁이에 세운 안토니아 요새가 있던 곳입니다. 이 요새는 유다 전쟁 때 전소되었고, 70년 티투스 황제 때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총독 관저가 있었던 요새 자리에는 현재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맞은편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는 작은 형제회의 수도원과 엑체 호모(Ecce Homo) 시온 수녀원, 그리스 정교회의 그리스도의 감옥 수도원이 들어섰습니다. 작은 형제회 수도원 안에는 채찍 성당과 사형선고 성당 그리고 프란치스코회 성서대학과 박물관이 있습니다. 수도원 정문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에 채찍 성당(Chapel of the Flagellation), 왼쪽에 사형선고 성당(Chapel of the Condemnation)이 있습니다. 공식적인 십자가의 길 기도 때는 아랍 초등학교에서 1처를 시작하지만, 평소에는 수도원의 사형선고 성당에서 1-2처 기도를 바치고 이동합니다.
① 제1처 성 스테파노의 문(St Stephen’s Gate) 근처에 있는 성 안나 성당(Church of Saint Anne)에서 구시가(Old City)로 통하는 길의 왼쪽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우마리야 학교(Umariyya Boy’s School)에 이른다. 이곳이 바로 예수님이 사형 선고를 받으신 십자가의 길 제1처가 시작되는 곳이다. 바위산에 위치한 이 자리는 안토니아 요새(Antonia Fortress)가 있었던 곳이다. 이 요새는 기원전 37-35년에 헤로데 대왕에 의해 세워졌다. 그리고 요새의 이름은 헤로데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정해졌다. 안토니아 요새는 예루살렘 성전을 보호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중 신심에서 안토니아 요새는 본시오 빌라도의 관저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이곳을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기억인 요한 18,28-19,16의 배경으로 여겼다. 구약 성경에 따르면 안토니아 요새가 있었던 자리, 즉 예루살렘 성전 부근에 대한 언급이 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주님을 위하여 도성이 ‘하난엘 탑’에서 ‘모퉁이 성문’에 이르기까지 세워질 것이다.”(예레 31,38) “대사제 엘야십이 형제 사제들과 함께 나서서 ‘양 문’을 세워 봉헌하였다. 또 문짝들을 달고, ‘백인 탑’까지, 그리고 ‘하난엘 탑’까지 이르는 구간을 봉헌하였다.”(느헤 3,1), “‘에프라임 문’ 위를 지나, ‘옛 문’과 ‘물고기 문’ 위, 그리고 ‘하난엘 탑’과 ‘백인 탑’으로 해서 ‘양 문’에 이르러, ‘경비대 문’에서 멈추었다.”(느헤 12,39) 십자가의 길 제1처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안토니아 요새의 남은 흔적인 엑체 호모 아치(Ecce Homo Arch)를 볼 수 있다. 이 아치의 명칭은 빌라도가 요한 19,5에서 한 말인 “자, 이 사람이오.”에서 유래한다. 길의 오른쪽에는 시온의 수녀회(Sisters of Zion)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 안에는 과거 스트루티온 못(Struthion Pool)이 있었고, 수녀원 지하에는 돌이 깔려진 도로와 리토스트로토스(요한 19,13)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 포장된 길의 돌들에는 로마 군인들의 “임금 놀이(King Game)”의 흔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게임은 주사위를 왕관 위에 놓는 이가 승리하는 방식이다. ② 제2처 십자가의 길 제1처인 우마리야 학교에서 길을 가로지르면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채찍 수도원(Franciscan Monastery of the Flagellation)이 있다. 이곳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심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제2처이다. 이 수도원에는 프란치스코회 성서, 고고학 학교와 박물관이 있는데, 나자렛, 카파르나움, 주님 눈물 성당(Dominus Flevit) 등에서 발굴된 유물들, 동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수도원의 안뜰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예수 채찍 경당(Chapel of the Flagellation)”이다. 이 경당은 1929년 중세 때의 기초 위에 완전히 재건축되었다. 이 경당은 빌라도가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준 사건을 기억한다.(마르 15,15) 그래서 이 경당에는 채찍질 당하시는 예수님(마태 27,26), 손을 씻는 빌라도(마태 27,24), 바라빠 장면(마태 27,21)을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채찍 경당 맞은 편, 곧 수도원 안뜰의 다른 편 끝에는 “예수 사형 선고 경당(Chapel of the Condemnation)”이 있다. 20세기 초의 건물인 이 경당은 기원후 2세기 당시의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의 동쪽 광장에 있던 돌로 포장된 도로 위에 세워졌다. 이곳에서도 로마군인들의 “임금 놀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주님 사형선고 성당, 채찍 성당
(Chapel of the Condemnation)
https://youtu.be/i7r6ln7k954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 경로는 1540년경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에 의해 확정된 것으로, 예루살렘 성전 북서쪽 안토니아 요새(1~2처)에서 출발해 골고타 주님 무덤 성당(제10~14처)까지 그 사이 골목길에 7개 장소(3~9처)를 정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십자가의 길 1처
(Station 1)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십자가의 길 2처 (Station 2)
십자가의 길 3처
✠ 제3처 -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3처 모습입니다. 제2처에서 나와, 다마스쿠스의 문(Damascus Gate)에서 오물의 문(Dung Gate)으로 통하는 길을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돌면 제3처가 있다. 제3처는 비잔틴과 십자군 시대의 옛 경당 자리에 19세기 초 다시 건립한 아르메니아 가톨릭 경당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십자가의 길 3처,4처,5처
(Station 3~5)
https://youtu.be/56df8RhaHEQ
십자가의 길 4처
✠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4처 모습입니다. 제4처는 제3처 바로 옆 아르메니아 가톨릭 성당 지하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제3처에서 지하 통로로 상점을 지나 바로 가면 경당과 기도실 옆으로 십자가 길에서 예수님과 성모님이 만나시는 모습의 조각상과 함께 제4처가 있습니다. 길에서 바칠 때는 제3처에서 나와 바로 옆 성당 정문에 부착된 제4처 부조상 앞에서 기도를 바칩니다.
십자가의 길 5처
✠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5처 모습입니다. 십자가의 길 제4처에서 20m 가량 내려가다가 첫 번째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골고타를 향하는 오르막 길을 만나는데, 왼쪽에 제5처가 있다. 이곳에서는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진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마르 15,21) 이곳에는 1895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경당이 세워졌다.
십자가의 길 6처
✠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6처 모습입니다. 제6처에는 예수의 작은 자매회에서 관리하는 작은 경당(1882년에 세워진 동방 가톨릭인 멜키트의 경당)이 있고, 성녀 베로니카의 수건에 찍힌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이콘을 수녀님들이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께서 1964년 1월 4일 이곳을 순례하셨다고 합니다. 문이 잠겨 있어서 경당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십자가의 길 6처,7처
(Station 6~7)
https://youtu.be/sLmjGWW-c9s
십자가의 길 7처
✠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7처 모습입니다. 제6처에서 오르막 길을 계속 가면 다마스쿠스의 문(Damascus Gate)으로 통하는 다른 길을 만나는데, 정면에 예수님이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하는 제7처가 표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작은 경당이 있는데, 내부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당시 건설된 도시의 로마 기둥이 있다.
십자가의 길 8처
✠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8처 모습입니다. 제7처에서 출발하여 첫 번째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약 30m 오르막 길을 가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신 것을 기억하는 제8처를 만난다. “백성의 큰 무리도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보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배어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 보지 못한 여자는 행복하여라!’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루카 23,27-29) 이곳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십자가의 길 8처
(Station 8)
https://youtu.be/kE6OUrbxpUI
십자가의 길 9처
✠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9처 모습입니다. 제9처는 콥틱 정교회 앞 골목에 있고, 정교회 정문 왼쪽으로 들어가면 작고 소박한 에티오피아 정교회 수도원이 있는 마당이 나옵니다. 이 마당에서 주님 무덤 성당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로 들어가 에티오피아 정교회 성당을 지나면 주님 무덤 성당 정문 오른쪽 구석의 작은 문으로 나오게 됩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십자가의 길 9처
(Station 9)
https://youtu.be/j1gHiPaFdVE
이상에서 살펴본 십자가의 길 제1처-제9처는 골고타를 향한 여정이고, 제10처-제14처는 “주님 무덤 성당(the Holy Sepulchre)” 안에 있다. 성당의 정문에 들어서서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그곳이 바로 골고타이다. 이곳에는 두 개의 경당이 있는데, 오른쪽에 있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경당이고 왼쪽의 경당은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다. 이 두 경당의 모습과 여러 장식들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차이를 잘 드러낸다. 가톨릭교회 소속의 경당에는 십자가의 길 제10, 11처가 있고 그리스 정교회의 경당에는 제12처가 있다.
십자가의 길 10-11처
✠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제10처는 예수님이 옷 벗김 당하신 것을 묵상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골고타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는 번역하면 ‘해골 터’라는 뜻이다. 그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고 나서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다.”(마르 15,22-24)
✠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제11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한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그분의 죄명 패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강도 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마르 15,25-27)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10~11처 모습입니다. 제10~11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신 골고타 언덕 위에 건립된 주님 무덤 성당 안에 있습니다. 주님 무덤 성당 정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가파른 계단이 있는데, 골고타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 위에 십자가의 길 제10~12처에 해당하는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돌아가심을 기념하는 제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경당 정면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하시는 모습이, 오른쪽 벽면에는 사도 성 요한과 예루살렘 여인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모자이크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십자가의 길 10처~14처
(Station 10~14)
https://youtu.be/oVDfLHw36SY
십자가의 길 12처
✠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제12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한다.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요한 19,28-30)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12처 모습입니다.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할하는 12처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기념하는 제대가 마련되어 있고, 제대 밑 둥근 원형 금속 아래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세웠던 골고타 언덕의 바위를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아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고,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바로 아래가 아담의 무덤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마태 27,51-52)라는 말씀처럼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써 아담이 구원되었다는 해석도 생겼고, 이를 기념해 아담 경당이 12처 제대 바로 아래 마련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 13처
✠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주님 무덤 성당”의 골고타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면 예수님의 시신을 염하던 받침대 돌판이 있다. 이곳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하는 제13처이다.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요한 19,38-40) 마르 15,46-47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요셉은 아마포를 사 가지고 와서, 그분의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을 어디에 모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13처와 염습 돌판 모습입니다. 골고타 언덕 아래, 주님 무덤 성당 정문 바로 앞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십자가에서 시신을 내려 모시고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나르드 향료와 몰약을 뿌리고 아마포로 감싼 후 돌무덤으로 모시고 가는 장면이 모자이크되어 있습니다. 작은 형제회에서는 매년 성 금요일 저녁에 제12처에서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내려 모신 후 염습 돌판 위에서 염을 하고 무덤 경당에 모시는 예수님의 장례 행렬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14처
✠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끝난다.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젊은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마르 16,1-6)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14처 주님 무덤 경당 외부 모습입니다. 주님 무덤 경당은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신 돌무덤 위에 건립되었습니다. 주님 무덤 경당(성묘 경당)을 중심으로 주님 무덤 성당이 감싸듯 이중으로 건립되었습니다. 주님 무덤 성당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발현하신 곳이기에 주님 부활 기념성당, 주님 발현 기념성당 등으로도 불립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 하루의 얘기를 담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예수님의 수난 길이 얼마나 처참했는가를 장엄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던 그 길은 성경에 상세히 기록돼 있지 않아 전혀 알 수 없다. 심지어 예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셨던 빌라도 총독관저 장소조차도 오늘날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7세기 페르시아군과 이슬람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1000년 가까이 그리스도인들의 예루살렘 순례가 단절되다시피 해 그나마 있던 교회의 흔적조차도 사라져 버렸다.
다만 333년 예루살렘을 순례한 프랑스 보르도 지방 신자들의 순례 기록에서 십자가의 길 경로가 어렴풋하게나마 추정할 수 있다. 이들은 십자가의 길 묵상 기도를 겟세마니에서 출발해 키드론 계곡과 예루살렘 대성전 서쪽에 있는 하스모니아 궁전을 지나 골고타를 순례했다고 한다.
영화에서처럼 예수의 체포부터 십자가상에서의 처형까지는 단 하루 만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유다인들은 해질 무렵 저녁부터 시작해 아침과 낮을 지나 다음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창세 1,5 참조)라 했다. 예수께서는 유다력으로 니산달(태양력 3~4월) 14일을 시작하는 저녁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눈 다음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한 후 체포돼 아침에 법정에 끌려가 사형선고를 받고, 오후 해질 무렵 십자가형을 받고 죽으셨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수석 사제들과 원로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에게 붙잡혔다. 성전 경비병들은 주로 레위인들로 성전 지성소를 지키고 예루살렘 치안을 유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를 제일 먼저 '한나스' 에게 데려갔다(요한 18,12). 한나스는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의 장인으로 오랫동안 대사제직을 지낸 인물이다. 한나스는 예수를 심문했고, 성전 경비병은 예수의 뺨을 때리며 폭행을 가했다. 당시 로마법이나 유다 종교법에 따르면, 예수를 사법권이 있는 유다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으로 데려가지 않고, 전직 대사제의 집에 구금해 심문하고 폭행을 가한 것은 명백히 불법이었다. 불법은 재판 과정에서도 계속된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예수는 산헤드린으로 끌려갔다(마르 14,55-64; 마태 26,59-66; 루카 22,66-71 참조). 하지만 요한복음서는 산헤드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예수께서 '카야파'의 집으로 끌려갔다(요한 18,28)고 진술한다.
대다수 성경학자들도 요한의 진술에 신빙성을 더 두고 있다. 그 이유로 종교 문제 소송은 대사제의 집이 아니라 성전 안 '돌을 깔아놓은 자리' 에서 열려야 하고, 법에 따라 적어도 24시간 동안 형 집행을 연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점, 또 예수께서 산헤드린이 지정한 사형수 무덤 2곳 중 어디에도 묻히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카야파는 예수를 신성모독자로 낙인찍고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에게 넘겼다. 마침 로마 총독 빌라도와 로마가 세운 유다왕 헤로데 안티파스가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빌라도는 자신의 곤란함과 짐을 덜기 위해 예수를 헤로데에게 보냈고, 헤로데는 예수를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냄으로써 응수했다. 예수는 이처럼 온갖 잔인함의 노리갯감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넘겨졌다가 끝내 사형선고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십자가형을 받기 위해 사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채찍질을 당해 반죽음 상태에 빠졌다. 그런 예수에게 로마군 병사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붉은 망토를 입혔다. 또 손에 왕홀 대신 갈대를 쥐여주고,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의 왕, 만세!"라고 소리 지르며 모욕했다.
파스카 축제 준비로 분주한 예루살렘 성내, 순례자들과 주민들로 붐비는 골목길로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형장으로 끌려갔다. 로마 군인들이 갈릴래아 사람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할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온 예루살렘에 퍼져 있었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 길에는 벌써 구경꾼들로 가득 찼다. 예수를 죽이라고 고함을 치고 모독하는 선동꾼들이 있는가 하며, 눈물조차 메마를 만큼 충격에 휩싸여 마른침을 삼키며 가슴을 치는 무리도 있었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기도를 하는 신심은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 중요 사건을 통해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다.
십자가의 길은 4세기경엔 겟세마니에서 키드론 계곡을 지나 대사제 카야파의 집을 거쳐 골고타로 이르는 길로 구성됐다. 비잔틴 시대에는 로마 총독 관저 자리로 추정되는 예루살렘 하스모니아 궁전 인근에 있던 소피아 성당에서 출발해 골고타까지 이어졌다. 이후 십자군 시대에 오늘날 순례자들이 행하고 있는 십자가의 길이 대충 설정됐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십자가의 길은 1540년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수도회)가 확정한 것이다. 예루살렘 대성전 북서쪽 성전 벽 모퉁이에 있는 안토니아 성(제1,2처)에서 출발해 골고타(제10~14처)까지 그 사이 골목길에 7개 장소(3~9처)를 정해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게 배려했다.
이 길은 예수께서 걸으셨던 바로 그 십자가의 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하기에는 충분하고도 소중한 기도처이다.
[알고 가면 기쁨 두 배]
1. 십자가의 길은 현재 작은 형제회 성서대학인 '예수께서 채찍질 당하신 성당'(Flagellation)에서 시작한다.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길 원하면 이곳에서 십자가를 빌릴 수 있다. 대여 가격은 미화 30달러 정도.
2.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제1처 성당에서 작은 형제회가 주관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가 있다. 개인 순례자일 경우 이날 수도자들과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을 추천한다.
3. 가톨릭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제3처 경당에선 매일 성체조배와 성체강복이 거행된다.
4. 예수의 작은 자매회가 관리하는 제6처 경당에는 수녀들이 제작한 베로니카의 수건에 찍혀진 예수의 얼굴 이콘을 판매하고 있다.
5. 제12처 골고타 바위 사진을 찍으면 예수의 얼굴 또는 성심이 나온다고 한다. 기도한 후 작은 틈으로 보이는 바위를 사진 촬영해 보시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광주대교구
남동 5.18 기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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