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0 주일설교
가짜들은 결국 버림받습니다
마태복음 13:47~50
옛날에 유다에 믿음이 좋은 왕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여호사밧(יְהוֹשָׁפָט)인데 그 뜻은 “여호와께서 판단하셨다(혹은 심판하셨다)”입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자 아합왕과 지나치게 가까이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과 너무 가까워져서 결국 사돈이 되었고 아합의 딸 아달랴 때문에 하마터면 유다의 다윗계보가 끊어질 뻔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열왕기하 11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여호사밧은 이스라엘과 연합해서 아람과 전쟁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여호사밧은 선지자를 불러 여호와의 뜻을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선지자 400명이 모여와서 이번 전쟁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미가야 선지자만은 전쟁에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400명의 우두머리 시드기야가 미가야 선지자의 뺨을 때렸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목사가 다른 목사의 뺨을 때리며 네까짓 시골 목사도 목사냐고 호통을 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자기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까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굶어 죽지 않은 정도의 빵만 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 왕은 죽었고 여호사밧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성경이 이 사건을 통해 말씀하는 것은 숫자가 많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왕과 친해서 권력을 잡은 선지자라고 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8장에는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경고를 전하자 고관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구덩이에 가두었습니다. 그 구덩이는 깊어서 밧줄로 달아내려야 했고 밑에는 진흙이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 가두어 주면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죽게 되겠죠. 하지만 죽일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여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음이 곧 증명됩니다. 예레미야의 말대로 유다는 멸망했습니다.
가짜들이 득세하여 큰소리치며 진짜를 억압하는 그런 일은 인류 역사상 언제나 있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있었고 중세 시대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다고 하여 교회는 약해지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방법과 과정을 통해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 가운데 마지막은 그물 비유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천국은 그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그물은 먼저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치망(定置網)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망이란 그물의 한 종류인데 한 곳에 설치해놓고 물고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그물을 말합니다. 나라의 정치(政治)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바다란 오대양과 연결되고 염분이 있는 바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10에서 하나님은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יָם 얌)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고대 유대인들은 물이 모여있으면 그것을 바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솔로몬의 성전 앞에 놋으로 만든 거대한 물그릇이 있었는데 그것도 놋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흐르는 물은 시내 혹은 강으로 부르고 물이 모여있으면 바다라고 불렀기에 복음서에서 갈릴리 호수를 갈릴리 바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물 비유의 특징은 고기가 그물에 들어오면 그물을 끌어 올려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못된 물고기를 내버린다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그물에 들어올 때는 어떤 물고기든지 가리지 않지만 그물을 끌어 올릴 때는 좋은 물고기와 못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그물은 천국 비유인데 교회에 사람들 들어올 때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자격이 있는 사람, 자격이 없는 사람 모두 다 들어오게 둡니다. 하지만 마지막 심판 때는 누구나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준에 맞는 자만 데리고 가십니다. 예수님의 기준에 맞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선 어부는 어떤 기준으로 좋은 물고기와 못된 것을 구별할까요? 사람은 성격이 고약하고 무례하면 못됐다고 말하는데 물고기도 못된 것이 있을까요? 여기서 ‘못된’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σαπρός 인데 쓸모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어부에게는 쓸모없는 물고기란 없습니다. 크고 맛있는 것은 구분해서 팔고 남은 잡어는 한꺼번에 팔면 매운탕이라도 해 먹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물고기가 아무리 크고 살이 많아도 못 먹는 것이 있습니다. 맛이 없어서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율법적으로 못 먹는 고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쓸모없는 고기입니다. 레위기 11장에는 먹어도 되는 짐승, 먹는 새, 먹는 물고기가 있고 또 먹지 말라고 하신 짐승과 새와 물고기가 있습니다. 물고기 가운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레 11:10)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곧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물론 이 율법은 율법의 구분상 시민법이기에 신약의 성도가 문자대로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은 도덕법, 시민법, 의식법으로 구분됩니다. 그 가운데 도덕법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하는 법이고 시민법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만 지키면 되고 의식법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된 제사법입니다.
바로 이런 시민법 때문에 이스라엘 어부는 비늘이 없는 메기, 가물치, 장어, 미꾸라지 등은 버립니다. 이방인에게는 비늘이 없는 물고기도 맛있고 몸에도 좋은 보양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런 것은 혐오스럽다고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되고 성결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제가 2013년에 이스라엘에 갔을 때 훌라 계곡에서 엄청난 메기 떼를 보았습니다. 크기는 대충 제 허벅지에서 발끝까지 될 정도로 큰데 숫자가 올챙이처럼 많았습니다. (동영상)
훌라 계곡에 메기가 그렇게 많은 이유는 아무도 잡아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메기 한 마리면 수십 명이 먹을 것 같은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메기를 먹지 않습니다. 비늘이 없는 메기는 부정합니다. 메기 외에도 뱀처럼 보이는 장어나 괴물처럼 보이는 가물치, 더러운 물이나 진흙 속에 사는 미꾸라지도 비늘이 없고 부정한 물고기입니다.
바로 그런 율법 전통에서 예수님의 천국 비유가 나왔습니다. 어부가 내버린 물고기는 메기나 가물치 혹은 장어였을 것입니다. 장어 이야기를 하니까 침이 고입니다. 우리는 장어를 율법 때문에 못 먹는 것이 아니라 비싸서 못 먹습니다.
그런데 이 그물은 천국 비유입니다. 그물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는 교회이고 그물 속에 들어온 물고기는 교회 안에 들어온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전에 가라지 비유를 설명할 때 교회 안에는 반드시 가라지가 있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씨를 뿌린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고 마귀가 가라지를 뿌린 곳도 세상입니다. 그 가라지 비유를 통해 교회 안에는 가라지가 당연히 있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가짜가 있다는 이야기는 가라지 비유가 아니라 그물 비유에서 해야 합니다. 가라지 비유의 교훈은 따로 있는데 알고 싶으면 9월 8일 주일설교를 찾아보시면 됩니다.
그물 비유에서 그물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불러 모으는 곳입니다. 교회에는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들어와 있는 사람 가운데는 천국에 가지 못할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은 물고기와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물고기는 중간에 다른 것으로 바뀔 수가 없습니다. 메기가 노력한다고 잉어나 붕어는 될 수 없습니다. 미꾸라지가 잘 자라면 베드로 고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은 물고기와 달리 변화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완벽한 천국 백성이 되어서 교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천국 백성이 되려고 교회에 들어옵니다. 매주 예배를 드리면서 성경을 배우고 기도를 배웁니다. 믿음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더욱 성장합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뉘우치는 것을 반복하면서 점점 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성화(聖化)됩니다.
물론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해지지 않는 것이 사람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모자라는 부분을 순식간에 채워주셔서 우리가 영화(榮華)롭게 변화되는데 그것을 영화(Glorification)라고 합니다.
물고기와는 달리 사람은 처음에 교회에 들어올 때는 천국에 쓸모없는 사람도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반드시 성화하여 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이렇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못된 물고기에서 좋은 물고기로”, “지옥 백성에서 천국 백성으로”
그런데 방금 말했듯이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해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의 심판에 합격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의롭다는 기준은 점수가 아니라 방향성입니다. 주님을 향해 한 걸음을 옮긴 사람과 100걸음을 옮긴 사람은 모두 주님을 향하고 있기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 영화롭게 해 주십니다. 한걸음 옮기고 천국에 간 사람은 예수님 옆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 강도입니다.
하지만 오래 교회 안에 있으면서 교인 행세를 해도 결코 예수님의 백성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례도 받고 직분도 받고 심지어 목사도 됩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높은 자리도 차지하고 권세를 누리며 여러 사람의 존경도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짜입니다.
그런 가짜는 사람이 봐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지만 마귀 자식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비평하고 난도질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 가운데 성경을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 비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유명한 교수여도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경 비평과 함께 퀴어 신학도 문제입니다. 퀴어 신학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모두 퀴어라고 모독하는 사탄 신학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퀴어 신학자는 임보라(이 여자는 죽었다), 이동환, 김근주, 김대옥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CBS도 문제입니다. Christian Broadcasting System은 이름이 기독교방송인데 오래전에 정치 단체로 전락했습니다. 반성경적인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윤리실천 단체로 바꿔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윤리를 실천하는 율법주의 단체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주님을 섬기는 모임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여 심판하실 때 가짜들은 결국 버림받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겸손하게 주를 섬기며 스스로 한없이 부족함을 고백하는 성도입니다. 예수님을 닮으려고 한 걸음씩 주님을 향해 나아가다가 넘어지면 또 일어서서 한 걸음씩 주님을 향해 가는 사람입니다.
또한, 예수님께 합당한 사람은 교회를 공격하는 세상 권력과 맞서 나약한 자신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용사를 부르셨지 구경꾼이나 응원단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주의 용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심판하실 때 주님께 합당한 신자로 인정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