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0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사랑은 율법의 완성. 愛は律法を全うするもの。
본문: 롬 13:8-10
롬 13: 8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9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8. 互いに愛し合うことのほかは、だれに対しても借りがあってはなりません。人を愛する者は、律法を全うしているのです。9. 「姦淫するな、殺すな、盗むな、むさぼるな」、そのほかどんな掟があっても、「隣人を自分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いう言葉に要約されます。10. 愛は隣人に悪を行いません。だから、愛は律法を全うするものです。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천사 미하일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의 임무였던 ‘죽음의 천사’ 사역을 한 번 거역했기 때문이지요. 어린 두 딸을 남겨 둔 어머니의 영혼을 하늘로 불러가야 했던 미하일은 차마 그 잔인한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벌을 받고 벌거벗겨진 채 땅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면 다시 천사의 직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질문은 첫째,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두번째,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세번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입니다.
답을 말씀 드리면 첫째, 사람 안에는 동정심, 즉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 있습니다. 둘째, 사람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사람은 그 안에 품고 있는 동정심과 연민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극복하며 서로 돕는 사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특별한 능력으로 서로 사랑하는 동정심과 연민, 그리고 자비함으로 생존하고, 생활하며, 생명을 이어간다는 뜻입니다. 꼭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에게는 누구나 서로 사랑의 빚을 지며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랑의 빚 외에 다른 어떤 빚을 지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사랑의 빚은 인간으로서는 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또한 사랑의 빚을 지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8절과 10절에 연속으로 사랑하는 것은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며,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구원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과 제사법을 지키며 신앙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그들이 단지 잘 먹고, 잘 입고, 성공하기 위해서 신앙을 지킨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신앙을 지켰기에 부수적으로 잘 먹을 수 있었고, 잘 입을 수 있었고, 심지어 성공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성경은 곳곳에서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보통 ‘사랑장’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구절입니다. 노래도 있을 정도이니까요. 오늘도 우리가 예배 전에 함께 불렀던 찬양곡이기도 하지요.
예수님도 언제나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율법을 한 마디로 종합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대표적인 행실은 한 주간의 첫 날인 주일에 무엇보다 먼저 예배와 찬양하는 일입니다. 그 시간과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찬양하는 시간과 자리를 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배를 잘 지킨다고 성공한다는 방정식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목숨처럼 지켜서 그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주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입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중에도 주일을 꼭 지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학교 교사로 섬겨야 했기 때문이지요. 주일예배를 지키고 교회학교 교사로 섬기는 것이 곧 사랑하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최소한의 예의였던 셈입니다. 퇴임 후에 그는 헤비타트라는 단체에서 봉사하는데요. 그 단체는 집이 없는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합니다. 그 일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5일만 봉사를 한다고 하지요. 그 이유는 마찬가지 주일예배와 자신의 섬김에 헌신하기 위해서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예배로 나타난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용서로 나타나지요. 한 번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형제가 잘못해서 용서를 구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가요? 베드로는 한 7번 정도면 되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7번에 70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숫자를 세어 가면서 용서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말씀의 뉘앙스는 끊임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이라고 알아들으시면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가룟 유다이지요. 그 가룟 유다와 필적할 만큼 예수님을 아프게 한 인물이 바로 용서에 관한 질문을 했던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과의 관계를 세 번이나 부정한 사람인데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자주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런 예수님께 다가갈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배신과 불신에 짓눌려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업이었던 고기잡이를 하러 갔습니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도 저도 되지 않는 어설픈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아침밥으로 물고기를 구우시면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시죠.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모든 이들이 곧 예수님의 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완성하셨습니다.
하치오지영광교회는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갚을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손을 통해 세워 주신 곳입니다. 2008년 12월 28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교회설립예배를 마치고 누군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목회를 하겠는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그 때 저에게 주신 성령님의 감동은 이렇게 대답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도구가 되겠습니다. 주님께서 망치로 쓰시면 망치가 되고, 가위로 쓰시면 가위가 되고, 호미로 쓰시면 호미가 되겠습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일본에서 예수님께서 쓰시는 일들에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인 바로 일본을 향한 사랑을 품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을 사랑하며 이 자리를 그저 지키는 것이지요.
독도가 누구 땅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저는 대답합니다.
독도는 하나님의 땅입니다.
요즘 한일관계가 매우 냉랭합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대통령과 일본의 총리가 해외의 국제회의에서 만났는데, 그 만남에 대하여 우리나라 정부의 말과 일본 정부의 말이 다릅니다. 여전히 거리가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을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며 한국과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공동기도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31일간 같은 기도의 제목으로 매일 기도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모임이지만, 저의 손에까지 그 기도문 책자가 도착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기회로 알고 매일 이 기도책자의 기도문을 소리내어 읽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을 방문하시고, 일본선교에 동참하시며 귀하고 큰 걸음을 하신 영등포중앙교회의 일본선교위원회의 김 권사님과 해외선교위원장이신 조 장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도 과거사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은 정부가 정권을 가진 일본을 사랑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사명입니다. 일본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오신 그 발걸음이 말씀 그대로 별빛과도 같이 빛나는 발걸음이라고 여겨집니다.
어떤 이들은 이웃나라를 미워하고, 이웃나라의 흠을 들춰내야 애국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애국은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기나라와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불매운동과 여행 포기로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내 활동하는 한인 상가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고 합니다. 또 일부 과격한 우익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매운동을 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인 관점, 영정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미움에 근거한 활동이 아니라, 사랑에 근거한 활동에 힘을 써야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우리 선배 그리스도인들이 제국주의의 억압과 무력에 항거하였던 역사가 있습니다. 그 때 그분들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미움이 아닌, 일제를 조종하는 사탄의 세력과 맞서 싸웠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라면, 주변의 이웃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친구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일본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에 합당한 우리의 모습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온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시선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사랑을 하려고 할 때 우리가 사람다운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이고 행복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인생인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고, 복음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원수에게까지 그 능력이 확장되고 확대됩니다. 우리가 일본을 사랑하고, 우리와 신념이 다른 사람들, 우리를 오해하고 미워하는 이들의 마음까지 수용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을 지키지 못하면 교회도, 우리의 삶도, 우리의 꿈도 그 어떤 것도 지킬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 즉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기의 신념은 지켰습니다. 물론 그들의 신념을 주님도 인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의 신념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이 모두 각인되어 있어야 그 화폐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행실을 원하십니까? 먼저 사랑하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배의 자리를 지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지킬 때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시선을 의식하면 우리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한 자의 일상도 살 수 있는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기까지 나의 자리와 나의 시간을 지키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위한 소명을 잊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며 삶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지요. 그럼 성령님께서 사랑의 능력을 주시고, 사명을 감당할 실력도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며, 서로 사랑으로 실감나는 행복을 체감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