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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하니 백공이,
“임형의 말이 잘못이요. 친구끼리의 심방은 예삿일인데 임형의 집을 누지라고 일컬으시니 이제 옴이 감당키 어렵구료.”
하고 서로 웃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문득 백공이 임진사에게,
“사실 내가 긴히 할 말이 있는데 임형은 내 청을 들어 주겠소?”
하자 임진사가,
“그야 들을 만한 말이면 들을테니 말해 보시오.”
하였다. 백공이,
“실은 다름 아니라 우리 자식 선군이 숙영낭자와 인연을 맺어서 금슬지락이 극진하여 자식 남매를 두었는데, 선군이 과거 보러 상경한 사이에 낭자가 홀연히 병을 얻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불쌍한 마음이 측량 없으나 선군이 집에 돌아와서 낭자가 죽은 줄 알면 반드시 병이 날 것 같기에 급히 규수를 널리 구하는 중이오. 그러던 중 듣자니 귀댁에 어진 규수가 있다 하니, 소제(小弟)의 가문이 비루함을 생각지 못하고 감히 귀댁에 구혼하고자 하니 임형이 이 청을 물리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오.”
하고 간청하였다. 임진사가 백공의 말을 듣고 한동안 묵묵히 생각한 끝에,
“천한 딸이 있으나, 영식(令息)의 짝이 될 만하지 못하고 또 지난해 칠월 보름날에 우연히 영식과 숙영낭자를 보았을 때, 낭자의 자태가 마치 월궁선녀 같이 아름다운 숙녀였으며, 비록 소제가 백형의 뜻대로 허혼하더라도 영식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요, 그런 경우에 영식의 신세가 가련하게 될 것이니, 이 말씀은 천만 합당치 않다고 생각하오.”
하였다. 백공이 그럴 리 없다고 굳이 재차 청하였다. 임진사가 마지 못하여 재삼당부하고 허락하자, 백공이 기뻐하고,
“그럼 이달 보름날에 선군이 집에 돌아올 적에, 귀댁 문전을 지나게 될 것이니 그날로 성례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고 임진사와 하직하였다. 백공은 집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이 사연을 전하고 곧 예물을 갖추어서 납채하고, 부인과 의논하기를,
“그건 잘 되었지만, 숙영낭자가 죽은 줄 모르고 내려올 것이니, 집에 와서 낭자가 죽은 곡절을 물으면 무어라 대답하겠소?”
하였다. 백공이,
“그 일을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으니 여차여차 말함이 좋겠소.”
하고 서로 약속하고, 선군이 내려올 날을 기다려서 풍산촌의 임진사 집으로 가기로 하였다.
각설.
이때 백선군은 벼슬 후의 근친의 말미를 얻어서 조정을 하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올 제, 어사복두(御賜幞頭)에 청사관대(靑紗冠帶)를 입고, 야대[也帶_문무과(文武科)에 새로 급제하 사람이 띠던 띠로, 한 끝이 ‘也’자 모양으로 늘어진 데서 온 이름.]를 띠고, 바른손에 옥홀(玉笏)을 잡고, 어사화(御史花)를 비스듬히 꽂고, 재인창부(才人倡夫)와 이원풍악(梨園風樂)을 벌여 세우고, 청홍개(靑紅蓋)를 앞세우고, 금안준마(金鞍駿馬)에 전후 추종이 옹위하여 대로상을 흥겹게 행진해 왔다. 길가에 모여 와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백선군의 영광을 칭송하며 부러워하여 마지않았다. 이렇게 행차하여 사나흘이 지나니, 마음이 자연 서글퍼져 백선군이 잠깐 주점에서 쉬면서 문득 졸고 있을 때 비몽사몽간에 숙영낭자가 전신에 피를 흘리고 완연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선군의 옆에 앉더니 슬프게 울면서,
“낭군이 입신양명하여 영화롭게 돌아오시니 기쁘기 측량 없사오나, 저는 시운이 불길하여 이 세상을 버리고 황천객이 되었습니다. 전에 낭군의 편지 사연을 들으니 낭군이 저에게 향한 마음이 간절하시나, 이것 역시 저의 연분이 천박하여 벌써 유명[幽明)_저승과 이승.]을 달리하였으니 구천의 혼백이라도 한스럽습니다. 그러나 저의 원통한 사연을 아무쪼록 깨끗이 풀어 주시기를 낭군에게 부탁합니다. 낭군은 소홀히 여기지 마시고 저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 주시면, 죽은 혼백이라도 깨끗한 귀신이 될까 합니다.”
하고 낭자는 홀연히 사라졌다. 선군이 놀라서 꿈을 깨어보니 전신에 식은땀이 축축하고 심신이 떨려 진정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곡절을 헤아리지 못하여 인마를 재촉하여 주야로 길을 달려서 여러 날 만에 풍산 마을에 이르러서 숙소를 정하였으나, 식음을 전폐하고 앉아서 밤이 새기를 기다렸다. 밤중에 문득 하인이 와서,
“대상공(大相公)께서 오셨습니다.”
하고 알렸다. 선군이 즉시 밖에 나가 부친께 문안을 드리고 방으로 뫼시고 들어가서 가내 안부를 여쭈었다. 부친은 주저하다가 혼솔(渾率)이 무사하다고 거짓 알리고, 선군이 장원하여 높은 벼슬을 하게 된 사연을 물으면서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이윽고 선군에게 은근한 말로,
“장부가 현달(顯達) 하면, 양처(兩妻)를 두는 것이 고금의 상례로 되어 있다. 들으니 이 마을의 임진사의 딸이 매우 현숙하므로, 내가 이미 구혼하여 임진사에게 허락받고 납채하였으니, 이왕 이곳에 온 터에 내일 아주 성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고 아들에게 권하였다. 선군은 숙영낭자가 현몽하여 불행을 호소한 뒤로 반신반의하고 마음을 진정치 못하던 차에 부친의 이런 말을 듣고 추측하되,
“부인이 죽은 것이 분명하구나. 그래서 나를 속이고 임낭자를 취하게 하여 나를 위로해 주시려는 게로구나.”
하고 부친께,
“아버님 말씀은 지당하오나, 제 마음은 급하지 않사오니 후일에 정혼하여도 늦지 않을까 합니다. 그 말씀은 지금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였다. 부친은 아들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다시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밤을 지냈다. 첫닭이 울자마자 선군은 인마를 재촉하여 안동으로 급행하였다. 이때 임진사가 선군이 마을에 가까이 왔음을 알고 선군의 숙소로 찾아오다가, 도중에서 이미 선군의 행차를 만나서 장원급제한 것에 대해 치하하고 몇 마디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 뒤에 친구 백공을 만나니 선군은 만나서 얘기한 사연을 말하며,
“일이 여차여차하니 잠깐 기다리시오.”
하고 아들의 뒤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에 선군이 서둘러 집으로 향하니 하인들이 그 곡절을 모르고 의아해하였다.
선군이 본집에 와서 정부인을 뵙고 그간의 안부를 여쭙고 낭자의 거처를 물었다. 모친은 아들의 금의환향을 기뻐할 마음조차 없이 당장 아들이 묻는 말에 말문이 막혀 주저하였다. 선군이 더욱 의아스럽게 여기고 아내의 방으로 들어가 보니 천만뜻밖에 낭자는 가슴에 칼을 꽂은 채 누워 있지 않은가. 선군은 가슴이 막혀서 울지도 못하고 땅에 곤두박질하여 넘어졌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춘앵이 동생 동춘을 안고서 내달아서 부친의 옷자락을 잡고,
“아버지, 아버지는 왜 이제야 오십니까? 어머니는 벌써 죽은 지 오래지만 염습도 못하고 지금 저대로 있으니 차마 서러워서 못 살겠습니다.”
하고 부친을 끌고 낭자의 빈소로 들어가,
“어머니, 그만 일어나세요. 아버지가 지금 오셨어요. 그렇게도 주야로 그리워하시더니 왜 꼼짝도 않고 무심하게 누워만 계세요?”
하고 슬피 울었다. 선군이 비로소 참지를 못하고 한바탕 통곡하다가, 급히 부모 앞으로 나와서 숙영낭자가 참혹하게 죽은 곡절을 물었다. 백공이 오열하면서,
“네가 상경한 지 오륙일 지나가, 하루는 낭자의 기척이 없기에 우리가 이상히 여기고 제 방에 가보니 저런 처참한 모양으로 누워 있어 깜짝 놀라서 그 곡절을 알려고 했으나 아직도 자세한 곡절은 모르겠구나. 다만 추측건대 필시 어떤 놈이 네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밤중에 침입해서 겁탈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칼로 찔러 죽이고 도망친 것인가 하여 염습을 하려고 칼을 빼려고 해도, 어느 누구도 능히 빼지를 못하고, 시체를 움직여 염습하려고 해도 움직이지를 않아서 그대로 두고 너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런 일을 네가 알면 놀라 필경 병이 날까 하는 염려에서 알리지 않았다. 미리 임진사의 딸과 성혼하려고 한 것은 네가 낭자의 죽음을 알지라도 숙녀를 얻어서 새 정을 붙이면 마음이 위로될까 생각했던 것이니, 너도 기왕 당한 불행을 너무 상심하지 말고 어서 염습하여 장례 지낼 생각해라.”
하였다. 선군이 이 말을 듣고 넋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잠히 있다가 다시 낭자의 빈소로 들어가 대성통곡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노해서 집안의 모든 노비를 일시에 결박하여 뜰에 꿇어 앉히고 보니, 그중에 매월이도 끼어 있었다. 선군의 소매를 걷고 빈소로 들어가서 이불을 벗기고 보니, 낭자의 용모와 전신이 완연히 산 사람 같고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선군이 부축하여 올리고,
“이제 내가 왔으니, 가슴에 박힌 칼이 빠지면 그 칼로 원수를 갚아 낭자의 원혼을 위로하겠다.”
하고 칼을 빼니, 그 칼이 가볍게 쑥 빠졌다. 그와 동시에 그 구멍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나오며,
“매월이다, 매월이다, 매월이다.”
하고 세 번 울고 날아갔다. 그 뒤에 또 파랑새가 한 마리 나오며,
“매월이다, 매월이다, 매월이다.”
하고 세 번 울고 날아갔다. 그제서야 선군이 매월의 소행인 줄 알고, 분격하여 당에 나와 형구를 갖춰 놓고 모든 비복을 차례로 장문(杖問)하였다. 그러나 죄가 없는 비복이야 죽을망정 무슨 말로 승복할 수가 있으랴. 이에 매월을 끄러내다가 매 때려 문초하였으나 간악한 매월은 좀 체로 제 죄를 자백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가 백 대에 이르자 철석같은 몸인들 어찌 견뎌내랴. 살이 터지고 유혈이 낭자하였다. 모진 매월도 하는 수 없이 개개승복하여 울면서,
“상공께서 숙영낭자가 들어온 후로 저는 본 체도 하지 않기에 질투심이 일어나던 차, 때를 타서 감히 간계로 낭자에게 누명을 씌울려고 했습니다. 같이 공모한 자는 돌이옵니다.”
하고 실토하였다. 선군이 크게 진노하여 돌이를 또 문초하니, 매월의 뇌물을 받고 매월이가 시키는 대로 행한 죄밖에는 다른 죄가 없노라고 자백하였다. 선군이 크게 노하고 칼을 들고 뜰로 내려와서 매월의 목을 베고, 배를 갈라서 간을 꺼내어 낭자의 시체 앞에 놓고 두어 줄 제문(祭文)을 읽었다.
“성인도 속세에 노닐며, 숙녀도 험한 구설을 만남은 고왕금래(古往今來)에 없지 않은 불행일지나, 이번 낭자같이 지원극통(至冤極痛)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으리요. 아아 슬프다. 이것은 도시 나 선군의 탓이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요. 오늘 매월의 원수는 갚았거니와, 한 번 죽은 낭자의 화용월태를 어디 가서 다시 만나 보리오. 다만 나 선군이 죽어서 지하에 가서 낭자를 따를 것이니, 부모에게 불효가 되오나, 어찌할 수 없소이다.”
하고 선군은 제문을 다 읽고 낭자의 시체를 어루만지며 통곡하였다. 그리고 불량배 돌이를 본읍에 넘겨서 먼 절도(絶島)로 귀양보내게 하였다.
이때 선군의 부모는 며느리가 불행을 당한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가, 일이 이같이 밝혀지자 도리어 무색해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러나 선군은 화평한 얼굴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양친을 위로하고 염습제구를 준비하여 빈소로 들어가서 염을 하려고 하였으나, 여전히 시체가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이 사람을 내보내고, 선군 혼자 빈소에서 촛불을 밝히고 누워 탄식하면서 시체를 지키다가 문득 잠이 들어서 혼몽하였더니, 숙영낭자가 화려한 의상 차림으로 완연히 들어와서 사례하고,
“낭군의 도량으로 내 원수를 갚아 주시니, 그 은혜 결초보은하여도 오히려 부족하옵니다. 어제 천상의 옥황상제께서 조회 받으실 때, 저를 불러 꾸짖어 말씀하시되, ‘네 선군과 자연 만날 기한이 있는데, 삼 년 기한을 어기고 십 년을 앞당겨서 미리 인연을 맺었던 탓으로 인간에 내려가서 애매한 일로 비명횡사(非命橫死)하게 되었으니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한탄하겠느냐.’ 하시기에, 제가 사죄하고 옥제께 명을 어긴 죄는 만사무석(萬死無惜)이오나, 선군이 저를 따라서 죽고자 하오니, 다시 한번 저를 세상에 보내서 선군과 미진한 인연을 맺게 해 주십사 하고 애걸했습니다. 그러자 옥황상제께서 측은히 여기시고, 시신에게 분부하시기를, ‘숙영의 죄는 그만해도 족히 징계가 되었으니 다시 인간으로 내보내서 미진한 인연을 잇게 하라!’ 하시고, 또 염라왕에게 분부하셔서, ‘숙영을 빨리 내어 보내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염라왕이 여쭙기를, ‘분부대로 하겠사오나, 이틀만 더 지낸 후에 세상으로 돌려 보내겠습니다’ 하니 옥황상제께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남극성(南極星)을 불러서 저의 수한(壽限)을 정하라 하시니, 남극성이 팔십을 정하고 삼인이 동일 승천케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옥황상제게, ‘선군과 저 두 사람뿐인데 어찌 삼인이라 하십니까?’하고 여쭈니 옥황상제께서 ‘너희들 부부가 자연 삼인이 될 것이나 천기(天璣)를 누설치 못한다.’라고 하셔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옥황상제께서 또 다시 석가여래를 불러서, ‘자식을 점지하라.’고 분부하신 즉, 석가여래께서 삼남을 정하였으니, 낭군은 아직 제가 죽었다고 상례를 지내지 마시고 며칠만 더 기다리세요.”
하고 문득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선군은 꿈을 깨고 마음이 창망하여 꿈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마음이 극히 편치 않은 채 수일을 기다렸다. 다음날 선군이 마침 밖에 나갔다가 집에 선군이 놀라서 시체를 만져보자 온기가 완연하여 생기가 돌고 있었다. 크게 기뻐한 선군은 곧 부모를 청하여 그 신기한 사실을 알리고 인삼을 달여서 입에 흘려 넣으며 수족을 주물러 주었다. 그러자 이윽고 숙영낭자가 눈을 부시시 뜨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이것을 본 시부모와 선군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때 춘앵이 동춘을 안고 모친 시체 옆에 있다가 그 회생하는 기색을 보고 한편으로 희한하게 생각하여 모친을 붙잡고 그간의 사연을 다 말했다. 그러자 깨어난 모친이 울면서 일어나 앉았다. 한 방의 상하 모든 사람이 즐겨함은 이를 말이 없고 원근 사람들도 이 소문을 듣고 다 와서 치하하므로 이로 말미암아 측량키 어려웠다.
이러구러 수일이 지나서 잔치를 베풀거 친척과 빈객을 원근없이 모두 청하여 즐거워하였다. 재인을 불러서 재주를 구경하며 창부를 불러서 노래를 시키니 풍악 소리가 하늘에 멀리 울려 퍼졌다.
각설.
이때 선군과 정혼한 임진사 집에서는 숙영낭자가 회생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납폐를 돌려보내고 다른 곳에 구혼하려고 하자, 임낭자가 그 기색을 알고 부모에게 말씀드리기를,
“여자로서 한 번 혼사를 정하고 예물을 받은 이상 그 집 사람이 분명하옵니다. 백선군 도령이 상처한 줄 알고 부모님께서 그와의 정혼을 허락하셨었는데, 이제 숙영낭자가 다시 살아났으니 국법에도 양처(兩妻)를 두지 못하게 되어 있으므로 결혼할 의사는 두지 않습니다. 저의 정리로는 맹세코 다른 가문으로는 시집을 가지 않을 것이니 더이상 혼담은 꺼내지도 마십시오.”
하였다. 임진사 부부가 딸의 이런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딸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가문에서 신랑감을 널리 구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임낭자가 다시 부모에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소녀의 혼사로 이렇게 걱정을 시켜 드리게 된 것은 소녀의 팔자가 기박한 탓이오니, 비록 여자라도 말은 천금같이 중하매 이미 금석같이 마음을 먹은 대로 평생토록 시집가지 않고 부모님 슬하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일생을 편안히 지내는 것이 원이옵니다. 그러니 또 더 이상 혼사를 의논하시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 비록 불효가 될지라도 차라리 한 지아비를 좇아서 죽은 이비[二妃_순(舜)임금의 두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자취를 따르고자 하오니 부모님은 이제 저의 혼사일은 단념하시고 소녀를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하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임진사 부부가 이 말을 듣고 도저히 그 뜻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아 비록 더 이상 의논은 하지 않았으나 여전히 근심이 아닐 수 없었다. 임진사가 하루는 백공을 찾아 보고 며느리 숙영낭자가 다시 살아났음을 축하해 주고 오겠다고 하고서 백공을 찾아갔다. 백공이 임진사를 반갑게 맞아 서로 마주 앉았다. 임진사가 백공에게,
“예로부터 한 번 죽은 사람은 다시는 태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백형의 며느리가 다시 살아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정말로 희한한 일입니다. 백형의 복 받음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산 자식을 죽이게 생겼으니 똑같은 사람끼리 화복(禍福)이 어찌 이렇게 불평등하단 말입니까?”
하고 처연하게 말했다. 백공이 깜짝 놀라서 그 연고를 물으니 임진사가 자기 여식의 그간 사정을 하나하나 말했다. 그러자 말을 다 들은 백공이 칭찬하면서,
“과연 아름다운 마음씨로군요. 그 규수의 절개가 그렇게도 굳거늘, 그런 숙녀의 일생을 우리 선군 때문에 망친대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음덕에 허물됨이 적지 않을 것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하고 말했다. 이때에 아버지를 곁에서 모시고 있던 선군이 다 듣고 있다가 임진사에게,
“귀 소저의 금옥 같은 말씀을 듣자오니 고인(古人)이 부끄럽지 않으나, 사정인 즉 난처하옵니다. 국법에 아내가 있고 취처함을 다스리는 율이 있으니 의논할 것이 안 되고, 거사가 양처를 두는 법이 있으나, 귀 소저가 어찌 남의 부실(副室)이 되시겠습니까? 형세가 이렇고 보니 이 모두 우리 탓이라 죄스럽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하고 공손히 말했다.
임진사가 탄식하면서,
“법에 양처를 두어도 무방하다고 할진대 설사 부실이 된들 어찌 사양하겠소마는, 이미 없는 일을 더 이상 의논하여 무엇하겠는가.”
하고 다른 얘기를 하다가 돌아갔다.
차설.
선군이 숙영낭자의 침소에 들어가서 임낭자의 사정을 전하고 낭자의 뜻을 넌즈시 물어보았더니, 숙영낭자가 임낭자를 가상하게 여기고,
“임규수의 일념이 그러하여 세상을 등질 지경까지 가게 한다면, 우리는 그 낭자에게 크나큰 죄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기에 쉬운 방법이 있을 듯 합니다. 낭군은 제 생각만 하지 말고 그 같은 여자의 불행을 구해 주셔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선군이 속으로 기뻐서,
“그게 무슨 일이요?”
하였다. 숙영낭자가,
“옥황상제께서도 삼인이 승천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도 필연 임낭자와의 인연입니다. 이미 천정연분이니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낭군은 모름지기 우리 집의 전후 사정과 임낭자의 모든 사정을 자세히 주상께 상소하십시오. 그러면 주상께서 반드시 가상히 여기셔서 특별히 사혼(賜婚)하실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성인이 권도로 행하신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도리어 한 나라의 정절을 포장(襃獎)하는 일이 될 것이요, 또 한 가지 작게는 임낭자의 원한을 풀어 주는 것이 되는 것이니 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선군이 깨달아 응낙하고 행차를 준비하여 상경하였다. 상경한 뒤에 옥궐에 문안하고 수일을 쉰 후에 숙영낭자와 임낭자에 대한 얘기를 일일이 적어서 주상께 상소하였다. 주상이 선군의 상소문을 보시고 칭찬하여,
“숙영낭자의 일은 천고에 드문 일이니 정렬부인의 직첩을 내리라.”
하시고,
“임낭자의 절개 또한 아름다우니, 특별히 백선군과 결혼케하라.”
하고 숙렬부인의 직첩을 내리셨다. 백선군은 사은(謝恩)하고 다시 휴가를 얻어 바삐 집으로 돌아와서 이 사연을 임진사댁에 알렸다. 임진사댁에서 생각 밖의 일이라 기뻐하고 감격하여 택일 성례하니 신부의 화용월태가 가히 숙녀가인이었다. 신부 임낭자는 선군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와 시부모님을 효로써 모시고 낭군을 공손하게 받들면서 숙영낭자와 더불어 서로 친구처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집안이 화락(和樂)하여 그릴 것 없이 행복하게 살아갔다. 백공 부부가 함께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니 백선군의 부부가 심히 슬퍼하고 선산에 안장하여 시묘(侍墓)하였다.
그럭저럭 세월이 빨리 흐르는 동안에 정렬부인은 사남 일녀, 숙렬부인도 삼남 일녀를 낳았다. 그 구 남매는 모두 부풍모습(父風母襲)하여 하나하나가 다 옥인군자(玉人君子)요 현녀숙완(賢女淑婉)이었다. 차례로 남가여혼(男嫁女婚)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가세가 부유하여 만석군의 이름을 얻고 대대로 복록이 무궁하였다. 하루는 큰 잔치를 베풀고 자녀와 손자를 데리고 사흘을 즐기더니, 홀연히 상운(祥雲)이 사방을 둘러싸고 용(龍)이 우는 소리가 진동하더니, 한 선관(仙官)이 내려와서,
“선군아, 인간의 재미가 어떠하뇨? 그대 부부 삼인이 승천할 기약이 오늘이니, 빨리 가자.”
하고 백선군 삼인의 부부는 함께 일시에 승천하니 이때 향년 팔십이었다. 자손들이 공중을 우러러보며 망극애통해 하고 허관(虛棺)을 꾸며서 선산에 안장하였다. 그 일이 기이하므로 여기에 대강 기록하였다.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