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의 손 / 곽주현
날씨가 포근하다. 엊그제 갖다 놓은 상자를 열었다. 씨감자가 없어 걱정했더니 친구가 구했다. 벌써 싹이 파랗게 올라오고 있다. 씨눈을 따라 조심스럽게 조각을 낸다. 겨우 몇 개 잘랐는데 그가 차 한잔하자며 카톡으로 청한다. ‘오늘만 날인가, 내일 하면 되지 뭐.’ 얼른 다른 나와 타협하고 상자를 덮었다.
그의 농막으로 갔다. 내 아파트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의 ㅅ읍에 있다. 장소를 말하지 않아도 이곳으로 알고 온다. 농장 주변에 벌써 봄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화려하게 핀 노란 복수초가 먼저 눈에 띈다. 한두 그루가 아니다. 화분에 심어 놓은 노루귀도 예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며칠 전에 왔을 때는 빈 땅만 보이더니 여기저기에 야생화가 제법 많이 피었다. 차 마시는 것은 잊고 주변을 더 둘러본다.
철쭉, 개나리, 무궁화나무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밭에는 작년 가을에 심은 채소가 가득하다. 갓, 봄동, 상추, 쪽파, 부추, 시금치 등이 자라고 있다. 보기만 해도 겨울에 잊었던 입맛이 돌아오는 것 같다. 좀 더 안으로 발을 옮겼다. 국거리로 먹을 보리도 자라고 있고, 아직도 수확하지 않은 당근도 그대로다. 겨울에 낙엽만 덮어 놓아도 추위를 잘 견디므로 필요할 때마다 싱싱한 것을 뽑아 먹을 수 있다. 나는 작년에 당근 싹 틔우기에 실패하고 모종 한 판을 사다가 심었다. 그것도 건사를 못하고 겨우 세 개밖에 못 키웠다고 말하니 묻지도 않고 10여 개를 뽑아준다. 큰 것은 팔뚝만 하다. 농약 한 번 치지 않고 이렇게 농사를 잘 짓는다. 다른 한쪽에는 더덕, 도라지와 몇 가지의 약초도 자란다.
농막으로 들어와 차를 마신다. 그가 지난가을에 국화꽃으로 만든 거다. 살짝 입술만 적셨는데 그윽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갑자기 때아닌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벽에 오래된 뻐꾸기시계가 걸려있다. 커다란 괘종시계도 보인다. 여기 오면 항상 라디오가 켜져 있다. 모두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을 수리했다. 고장 난 것을 고쳐 쓰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이 건물도 친구가 직접 지었다. 곁에서 보면 비닐하우스 같지만, 안에 들어와 보면 냉장고 등 살림 도구가 제법 갖추어져 있다. 땅이 여기 말고 두 곳이 더 있다. 거기는 감나무 등 과일나무가 자란다. 농장마다 비슷한 크기의 비닐하우스가 있어 농작물을 갈무리하고 쉼터로 이용한다. 내 농막도 거의 그의 손으로 지었다. 백공(百工)이 따로 없다. 어느 농장을 가봐도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다. 제초제 한 번 치지 않고 이렇게 관리하는 것을 보면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농막 곁에 온실도 있다. 이것도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지었다. 추위에 약한 다육 식물과 야생화 화분이 가득하다. 향기가 천 리를 간다는 서향과 넝쿨 해란초가 한창이다. 콩난을 붙인 호리병 토분이 기이하면서도 아름답다. 이건 예술 작품이다. 그 밖에도 오래전부터 가꾸어 온 많은 야생화 화분이 눈길을 끈다. 이처럼 식물에 관심이 깊어서 그와 산행을 같이하는 날이면 꽃, 풀, 나무 이름과 특징을 듣느라 가다 서기를 반복해야 한다. 봄이 더 무르익어가면 농장 주변이 온통 꽃으로 덮인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발길을 멈추고 잘 가꾸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육장도 있어 닭, 오리, 토끼도 키운다.
동식물만 잘 키우는 게 아니다. 지난겨울 어느 날 내 아파트에 와보고는 실내등이 아직도 형광등이냐며 당장 바꾸자 한다. 적잖은 비용이 들 것 같아 쉽게 교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며 줄자를 가져오란다. 전등의 길이를 잰다. 며칠이 지나자 상자를 안고 다시 왔다. 전등갓은 그대로 두고 내부 전선만 모두 잘라낸다. 그러고는 크기 별로 엘리디 모듈(Led Module, 엘리디 전광판)을 바꾸는 작업을 한다. 안전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의심쩍어하니 자기 것은 물론 여러 가정을 이렇게 교체했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거실 전등 하나 값도 안 들고 모두 엘리디로 바꾸었다. 늘 재주 많은 친구라고 여겼지만 이렇게 전기도 잘 다룰 줄 몰랐다.
그는 또 사진도 잘 찍는다.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연을 담아낸다. 작품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작업도 꾸준히 한다. 일 년에 한 번 이상 회원전을 열고 여러 촬영대회에 참가하여 가끔 수상도 한다. 전국 사진협회 작가로 이름을 올린 지 쾌 오래되었다.
그는 못 하는 것이 없을 만큼 재주꾼이다. 손을 대면 망가진 전자 제품이 작동하고 시들어 가는 식물도 생기를 얻는다. 나는 그를 <미다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왕으로 그의 손이 닿으면 모두 황금이 되었다고 한다.)의 손.>이라 부른다. 이런 친구와 함께할 수 있어 늘 든든하다. 그리고 큰 행운이다. 그의 재주를 다 표현하지 못해 아쉽다.
첫댓글 선생님 손도 친구분 못지 않게 농사를 잘 짓고 계시잖아요. 두분의 우정이 돈독해 보입니다.
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입니다.
와, 곽주현 선생님도 식물 잘 키우는데 더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 좋겠어요. 그 많은 일을 혼자 해내다니 '미다스의 손'에다 '장사' 십니다.
그 친구 재주가 많아서 가끔 질투가 납니다. 하하.
글이 포근합니다.
고맙습니다.
재주 많은 친구가 있어 든든하시겠습니다. 그 분은 선생님께서 손자들 잘 돌보고 글도 잘 쓰시는 재주를 부러워하실 것 같은데요.
고맙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글을 쓰자고 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도 잘 할 것 같아서요. 하하.
미다스 친구 못지않게 훌륭한 글을 써 올리는 선생님. 저에게는 늘 부러운 글솜씨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선생님 글이 날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와, 진짜 미다스의 손이네요. 그런 친구분이 계시니 주변 분이 도움을 받는군요.
다 선생님 복이네요.
친구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요, 큰 복이죠.
이런 멋진 친구분과 가까이에서 일상을 함께하실 수 있다니 부럽습니다. 좋은 인연은 서로를 닮아간다고합니다.
글을 멋드러지게 쓰시는 선생님은, 손끝에서 글이 살아나는 마법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우와, 대단한 친구분이시네요. 선생님은 복이 많으십니다. 저도 부지런함이 재주 인 언니가 있어 도움을 많이 받고 있네요. 늘 든든하답니다.
든든한 친구분을 두셨네요. 부럽습니다. 선생님 글은 늘 따뜻해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