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말 태봉의 궁예가 왕륭을 만나 대성할 기회를 얻었다. 왕륭의 호족 세력을 이용하여 나라를 건국하는 힘의 성취였다. 왕륭은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다. 왕건도 궁예의 예하 장군이다. 궁예의 기반은 약해도 대세를 기약할 수 있는 능력의 성취력이 눈부셔 보였다. 궁예만 잘 다스려 움직이면 국가 위력의 세력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기가 누린 호족의 위치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잘 이용하면 성공할 것으로 믿었다. 궁예보다는 왕륭이 생각하는 스케일이 훨씬 더 컸다. 호랑이 새끼를 키워 호랑이 밥이 될 수도 있지만, 호랑이 능력을 이용하면 세상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왕륭의 생각과는 달리 궁예의 성취욕이 넘쳐서 왕륭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황제의 세력으로 올라서고 말았다. 궁예는 관심법이란 타인의 심리예측을 판단한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지금 그대가 무슨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훤하게 알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을 위협한다. 실제로 관심법에 의하여 여러 사람이 참형을 당하기도 했다. 관심법이란 말만 들어도 목이 달아날 소름이 돋아난다. 이런 겁쟁이로 변하는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에게 도전할 사람이 씨가 말라지는 것 같은 생각이다. 감히 자기의 말에 토를 다는 자는 없어지고 잘난 체 하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소위 무소불위한 경지에 올랐다고 느껴졌다. 이치에 어긋나고 법치에 어긋난 명령에도 고분고분한 세월을 누리니 천하의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다.
궁예의 부하라도 자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라 생각되면 수시로 관심법으로 점검 처단한다. 이 섬뜩한 점검의 낌새를 당하는 사람은 혼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살상의 관심법 다스림은 누구라도 공포에 떨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언제 처형의 칼날이 자기의 목을 겨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백성들도 이런 공포 분위기를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생활의 복잡한 공동체 사회에서 나라의 다스림이 이처럼 손쉬운 방법도 없다는 생각이다. 임금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떠는 사람을 보면 뒷간에서 일보며 강아지 부르기보다 쉬운 일이다. 권력의 핵심에 올라보면 간이 뱃가죽 밖으로 나오도록 커진 기분이다. 그 간덩이 나와서 흉하게 보인다고 감히 누가 나무랄 일이 아니기에 말이다. 관심법이라 예고하고 많은 규범을 함부로 고쳐도 누구 하나 반대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이치나 규범을 마음대로 고쳐도 백성의 저항이 없어지고 자신이 바로 부처가 된 기분이다. 이래서 부처님을 그렇게 모셨구나 하고 느끼기에 날개를 단 기분이 든다.
이제 궁예는 아무리 마음대로 행하여도 그 행위에 반대할 사람이 없어진다. 스스로 부처님이라 하고 부처상처럼 금빛 두르마기를 입어도 나무랄 사람이 없어졌다.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 도륙해도 직언할 사람이 사라졌다. 자기의 부인과 아들까지 죽이는 패륜적인 행위를 해도 정당하고 공평한 살육이라고 부추겨 주기에 말이다. 눈을 치뜨고 궁예의 용안을 감히 똑바로 쳐다볼 반대파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만백성을 사랑하는 황제가 되어 주십사하는 직언하는 신하도 이미 사라졌다. 관심법이 먼저 알고 행하는 일에 죽음을 자청하듯 어리석은 일을 누가 할 것인가 말이다. 관심법으로 적폐 청산과 백성의 행복을 자신 있게 다짐하는 일에 목숨 걸 필요가 없는 일이다. 하다 하다 도가 지나쳐 관심법으로 다스리는 폭력 군주가 된 셈이다.
이제 할 일 없어진 궁예가 왕건 장군에게 관심법으로 보아하니 수상하다고 농담을 걸었다. 왕건은 온몸을 흔들어서까지 움츠리며 절대로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하는데 옆구리를 치는 사람의 말을 퍼뜩 느꼈다. 죽으려 환장했나 맞는다고 그래야 산다고 했다. 그제야 왕건이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역심을 품은 줄을 어이 그리 아셨지요? 죄송합니다. 저는 탄복할 따름입니다. 궁예는 순간 왕건의 탄복하는 마음을 진심으로 느꼈고 마음이 우쭐하기도 했다. 궁예는 왕건을 내려다보며 씩 웃고 역시 내 관심법이 대단하군. 그래 이렇게 솔직하게 인정하니 내 한번 봐주지 한다. 이는 궁예가 왕건이 역심을 품지 않는 사람이라 믿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지 않은 일이다. 평소에 그런 역심의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했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왕건의 평소 처신이 폭군의 눈에 믿음을 완벽하게 심어줬다는 증명이나 다름없는 이야기다.
궁예가 왕건에게 의심된다는 관심법을 이야기한 후 궁예를 내칠 역모를 하자는 사건이 벌어진다. 왕건의 아랫사람들이 사태의 긴박함을 부추겼으나 왕건은 완강이 거부했다. 그러나 왕건의 부인이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한다. 왕건의 부인은 어진 자가 어질지 못한 자를 치는 일은 관행이라고 했다. 역모 제의 하는 사람들 의견을 들어보니 왕건의 부인조차도 분이 치민다고 했다. 한번 의심을 받은 관심법이 우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 백성이 나쁜 통치자를 만나 공포 속에 산다고 하니 이런 여론을 무시하는 일도 죄가 된다는 일이다. 여러 사람의 마음은 곧 천명을 뜻하는 하늘의 마음이라고 했다. 결국 왕건의 부인이 손수 갑옷을 입혀 출정할 채비를 하게 된다.
궁예는 효용없는 관심법 타령으로 포악한 임금이 되어 폭정을 일삼다가 결국은 망한 일이다. 왕건의 혁명군에 밀린 궁예는 먼저 자기로부터 사라진 신하들을 원망하며 도망쳤다. 민가에 숨어든 궁예는 보리쌀을 훔쳐먹다가 들켜서 백성들에게 매 맞아 죽었다고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는 기록한다. 왕이 자신감의 도가 지나치면 자기 잘못은 잊고 남의 잘못하는 일만 보인다. 즉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저지르면 위법이라는 유행어가 된다. 이런 판단이 굳어지면 국민에겐 학정이 되고 학정이 지나치면 폭정이 되는 일이다. 선량한 백성은 믿을 데가 없어지고 임금은 미쳐 버리기 쉬운 일이다. 임금이 미쳐 버리면 결국 나라는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 ( 글 : 박용 2020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