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들어 인간의 생명을 단축하는 질병은 뭐니 뭐니 해도 암이다. 각종 암 질병은 몸의 모든 세포에 있어 죽음의 세포로 확대해 간다. 무의식 중 암세포는 몸에서 씨앗을 내리고 자라난다. 자라나는 줄도 모른 채로 어느 날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암 질병을 깨닫는다. 정기적으로 점검했을 때는 종합 검사를 통해 발견되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고 점검 없이 살면서 자만하다 보면, 덜컥 생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만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 도 없는 암세포의 성장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어린 나이엔 더욱 자신의 몸뚱어리에 자신감에 차 있기에 암의 성장을 못 느낀다. 특히 어릴 땐 외형에만 관심을 가져서 몸 세포엔 무관심하다. 아니 자신의 욕맘의 희생 도구로 몸을 마구 사용한다. 정신적 쾌락의 만족을 위해 육체적 학대를 서슴지 않는다. 그 결과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다. 아무리 이렇게 타이르고 알려줘도 못 느끼고 이해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라 느낄 정도이다.
어디에서 무서운 질병의 원인이 되는 암세포가 어떻게 자라는지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세포의 유입을 막는 길 외엔 없다. 게다가 아무리 나쁜 세포를 발생하는 것이 유입되더라도 우리 몸은 단련으로 대체로 이길 수 있고 회복성이 있다. 그래서 암 질환자가 산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다가 자연 치유하는 경우는 유입하는 음식과 공기를 조절하거나 건강의 회복을 위해 몸을 단련하기에 기쁜 일이 일어난다. 그렇지 않고 모른 채로 살아가는 우리는 일단 의식적으로라도 나쁜 세포를 일으키는 음식물을 조절해야 한다. 가공식품을 되도록 적게 취해야 하거나 정규적인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나쁜 세포가 만발하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셈이다.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폐허가 된다. 사람이 살면 불편한 것을 계속해서 제거하고 보수하기에 집은 멀쩡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영의 상태는 어떨까? 몸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객기를 부리는 자가 무슨 영을 돌볼 수 있을까? 물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몸뚱이만 챙기는 자도 있기에 몸과 영이 꼭 일치하지 않는다. 육체의 훈련을 영의 훈련으로 향하지 않지만, 영의 훈련에 힘쓰는 자는 육체의 훈련에서 많은 교훈과 격려를 받는다. 훈련이 지나쳐 성장을 느끼면 카리스마를 가지게 돼 교만과 오만으로 향하는 것은 공통점이다.
아무튼 영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몸에 해가 되는 가공식품을 되도록 적게 섭취하고 좋은 음식을 되도록 많이 섭취하는 방식을 취한다. 영의 양식은 베르붐이다. 이 베르붐이 바른 것이어야 한다. 그릇된 말씀을 섭취한다면 건강에 큰 해가 될 것이다. 오염된 공기에 살아도 코로나로 인해 유해성 바이러스가 활동해도 강건하거나 면역성이 뛰어난 사람은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바른 말씀을 취하지 못하더라도 나름대로 강건한 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훈련하며 경건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서 그릇된 음식을 마냥 먹고 즐기고 제대로 영의 훈련을 하지 않는데도 자신이 건강하다고 자부한다면, 어떤 결과가 귀결될 것인지만 상식의 답변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바른 음식을 섭취하면 나쁜 질병이 유입되더라도 건강할까? 꼭 그렇지 않다. 속도가 느릴 순 있어도 훈련을 쌓지 않거나 정규적 운동하지 않은 육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바른 말씀을 듣거나 읽는다면, 꼭 정규적 운동을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어떤 사이비 사상이 들리더라도 거절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바른 음식, 정규적 훈련과 함께 음식과 훈련을 이끼는 지도자를 제대로 만나야 하고 동료도 있어야 한다. 인간은 연약하기에 지속해서 훈련시키는 교관과 동료의 격렬가 나그네와 같고 황량한 광양인 세상에서 견딜 수 있다. 사탄은 갖가지모양과 양태로 공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된 삶을 살지 못하게 방해할 뿐이지만 오는 적들에 대해 담대하게 맞서려면 건강한 교리와 훈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