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자들아
2024. 10. 20(행복나눔축제) 마태복음 11:28-30
악동뮤지션이 부른 후라이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 제가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몇번을 들었는데, 도무지 부를 수 없어 가사를 읽어 드리겠다.
저 거위도 벽을 넘어 하늘을 날을 거라고
달팽이도 넓고 거친 바다 끝에 꿈을 둔다고
나도 꾸물꾸물 말고 꿈을 찾으래 어서 남의 꿈을 빌려 꾸기라도 해 <중략>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ry fry 같이 나른하게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하늘을 날아야 한다고 fly fly 를 외친다. 그런데 계란은 따뜻한 밥 위에 눌러붙는 fry fry가 되겠다고 고함을 치고 있는 것이다.
왜 계란은 따뜻한 밥위에 눌러붙은 후라이가 되겠다고 하는가? 오늘날 이 시대를 자아팽창의 시대라고 한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에 의하면 사람의 의식중심에 는 자아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은 내가 어디에 가면 인정과 존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찾고, 또 사람들의 그 존중을 받는 삶을 꿈꾸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 꿈을 향하여 날아오르라고 하는데, 그 결과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자기에게만 집중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은 결국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도 떨어져 결국 혼자의 외로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따뜻한 밥위에 눌려붙은 후라이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와 여러분이 그 후라이가 되고 싶지 않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고 부르셨다. 만약 예수님이 성공한 사람아, 똑똑한 사람아 다 이리로 오라고 하였다면 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고 할 때 그 초청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지쳐있기 때문이다.
왜 지쳐있는가? 성경이 재미난 것은 수고하고는 능동태이다. 즉 자기 스스로가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노력하다 방전된 상태가 수고하고 이다. 그리고 무거운 짐 진 자는 수동태이다. 타의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수고하여 지친 상태를 말한다. 즉 예수님은 자의로, 또는 타의로 수고하여 지친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읽기 바란다.
(마 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면서 쉼을 주겠다고 2번이나 약속하고 있다.
어떻게 예수님이 쉼을 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이를 위하여 2가지를 명령한다.
1. 예수님은 오라고 명령한다.
오라는 말의 전제는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모든 사람을 향하여 예수님은 오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왜 예수님은 오라고 말씀하시는가?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의 범죄가 나온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 3:16-17)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아담은 그의 아내와 함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그렇게 열매를 먹었을 때 분열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래서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을 때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하여 여기 숨었나이다(창 3:10)고 대답한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기뻐하며 살았던 아담이 이제 하나님과 분열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겠는가? 하나님께서 내가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느냐?고 아담에게 물었을 때, 아담은 내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아담은 하나님이 내게 주셔서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라고 대답한다.
그 후 아담과 하와의 사이가 좋아졌겠는가? 깨어졌겠는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내가 질문을 하면 긴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잘못하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아내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젊은 아내 : 여보 나는 고양이 상이야! 강아지 상이야!
젊은 남편 : 무슨 말이야 당신을 어떻게 고양이, 강아지 모양과 비교할 수 있어. 당신은 미스 코리아 상이야! 당신은 내 인생에 가장 예쁜 미스 코리아야
비슷한 질문을 하나 더 하겠다. 또 대답해 보기 바란다.
젊은 아내 : 만약에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가 차를 태워 달라고 하면 어디에 태워줄껀데?
젊은 남편 : 나는 내 옆자리에 태울꺼야! 내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는 당신 밖에 없어
이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안태워주지, 뒷자리에 태워주지 라는 대답은 아내의 미모를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아내에게 큰 상처를 준다.
이렇게 요즘 남편들은 아내와 대화할 때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런데 아담은 내가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이 주신 아내가 주어서 먹었다고 했으니 아내와의 관계는 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또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져 버린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오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깨어진 관계에서 멈춰 서 있지 말고,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능력의 예수님께로 나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께 나아오고 있는가? 사람을 제일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이 관계이다. 그런데 그 관계가 깨어져서 어렵고 힘든 상태에 있다면 관계를 회복케 하는 예수님께로 나아오기 바란다.
2.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명령한다.
중동지역은 땅이 박토라서 소 2마리를 앞세워 밭을 갈았다. 그런데 가끔씩 힘이 좋은 어미소와 어린 새끼소를 앞세워 밭을 갈 때가 있다. 주인이 이렇게 하는 것은 아직 멍에를 매어보지 못한 어린소를 훈련시키기 위함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그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상태에서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부르신 예수님은 이제 그 멍애를 함께 매어서 인도하여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매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29절 말씀이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고 자신을 설명한다. 이 말은 예수님은 누군가의 뜻에 가장 잘 맞출 수 있는 분이시고, 또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있는 분이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울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참된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와서, 배우면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강남중앙침례교회 최병락 목사님이 부흥회에서 하신 말씀을 전하여 드리겠다. 목사님이 나병환자 집성촌인 소록도에 있는 중앙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교회를 섬기는 70이 넘은 남자 전도사님을 만났는데 눈썹도 없고, 코도 없는 나병환자였다. 그 전도사님은 놀라지 마소 이제는 안옮습니다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목사님. 이곳은 인생 막장들이 오는 곳입니다. 보통 집안에 암환자가 생기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병간호를 하는데, 나병은 걸리면 부모도 자식도 다 버립니다. 우리교회 여집사는 20살에 나병에 걸려서 울고 있는데, 그날 밤에 부엌에서 무슨 소리가 나 가보았더니 아버지가 죽일꺼라고 칼을 갈고 있더랍니다. 놀라서 도망을 치는데, 어머니가 따라오더니 봇다리를 주면서 멀리가라 네 아버지 앞에 절대 나타나지 마라고 말하더랍니다. 엄마도 나병 걸린 딸을 버린 것입니다. 여기 온 사람들은 이렇게 가족들에게까지 버림받은 인생막장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와서 예수님 만나서 예수 믿는 것이 너무 좋아서 지금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이 예배당을 지을 때 남자들은 산에 가서 나무를 베었는데, 손이 없어서 팔에 톱을 묶어서 나무를 잘라 안고 왔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바닷가에 가서 모래를 마대에 담아 왔는데 손이 없어서 숟가락을 팔끝에 묶어서 모래를 퍼 담았는데, 그때 바닷가에 피가 낭자했습니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이 인생막장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십니까? 인생막장들이 소록도에 와서 죽을 쌍을 하고 있다가 옆에 있는 찌라도라는 섬만 다녀오면 이렇게 바뀌는 겁니다. 혹시 목사님들도 여기까지 왔으니 찌라도 한번 가볼랍니까? 하고 물었다. 그리고 전도사님은 찌라도 주소를 불러 주었다. 하박국 3장 17절.
소록도 중앙교회 전도사님이 불러준 그 주소를 이제 같이 읽기 바란다.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나병에 걸려서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소록도 교회로 몰려온 성도들은 찌라도의 신앙으로 이렇게 고백한다.
내 몸에 있는 문둥병 죽을 때까지 낫지 않을찌라도
보고 싶은 엄마 다시는 보지 못한다 할찌라도
내 그리운 고향, 그 고향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한다 할찌라도
나는 여기서 만난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나병에 걸려서 인생 막장의 자리에 선 소록도 중앙교회 성도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라고 하는 그 명령에 따라 예수님께 나아갔고, 또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매면서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운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께 나아가 온유와 겸손을 배운 인생막장의 나병환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고, 또 자신을 버린 부모와 친지도 다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남은 것은 감사와 기쁨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쉼이 아니겠는가? 오늘 이 자리에 나아온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이 쉼이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나아와서, 온유와 겸손을 배워서 모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평안을 차지할 수 있는 복된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