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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6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증거 2. / 聖霊様ご臨在の証拠Ⅱ
본문; 빌립보서 2:12-18
빌 2: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13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14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18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12. だから、わたしの愛する人たち、いつも従順であったように、わたしが共にいるときだけでなく、いない今はなおさら従順でいて、恐れおののきつつ自分の救いを達成するように努めなさい。13. あなたがたの内に働いて、御心のままに望ませ、行わせておられるのは神であるからです。14. 何事も、不平や理屈を言わずに行いなさい。15. そうすれば、とがめられるところのない清い者となり、よこしまな曲がった時代の中で、非のうちどころのない神の子として、世にあって星のように輝き、16. 命の言葉をしっかり保つでしょう。こうしてわたしは、自分が走ったことが無駄でなく、労苦したことも無駄ではなかったと、キリストの日に誇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17. 更に、信仰に基づいてあなたがたがいけにえを献げ、礼拝を行う際に、たとえわたしの血が注がれるとしても、わたしは喜びます。あなたがた一同と共に喜びます。18. 同様に、あなたがたも喜びなさい。わたしと一緒に喜びなさい。
지난 주일에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임재하신 증거 일곱 가지 중에 네 가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것,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고백하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은혜를 깨닫고 체감할 수 있는 것, 예수님을 이유로 누구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 이 네 가지가 성령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 증거라고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성령임재의 일곱 가지 증거 중에 나머지 세 가지 증거를 더 나누며 은혜의 시간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는 다섯 번째 증거는 성령님의 근심을 깨닫고 느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의 신앙고백과 함께 그 사람의 내면세계에 언제나 임재하고 계십니다. 한 번 성령님께서 임재하신 영혼은 영원토록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살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히브리서의 기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결코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물질적인 위기나 세속적인 문제나 환란, 그리고 고난으로 인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주님은 한 번 구원하신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의 노예살이를 끝내고 자유민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신 31:6)
주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은 결코 주님의 임재로부터 절대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뜻이지요.
제가 예전에 어떤 집사님과 상담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은 성령님께서 자신이 마음에서 들락날락하시는 것 같다고 대답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때는 은혜를 느끼고 마음이 평안하며 불안과 두려움이 없는데, 또 어떤 때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염려가 마음에 생기면서 믿음생활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인데요. 다시금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성령님은 결코 나를 떠나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선택하심 안에 분명히 있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내면에서 성령님이 안 계신 것처럼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오는 경험을 할 때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성령님을 근심하시게 하기 때문인데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에 신실하지 못할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근심하고 슬퍼하시고요. 그 인격적인 감정이 우리에게 전달되어 체감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비록 피치 못한 사정이 있더라도, 예배에 성실하지 않고, 교회 생활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을 때 성도는 자연스레 불편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해야 할 시간에 기도하지 못하고, 예물을 준비하지 못한 채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때 마음에 불편함과 주님께 대한 죄송함이 드는 것은 성령님께서 근심하시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근심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제대로 바르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10)
그런데 만일 예배해야 할 시간을 지키지 못하게 되거나, 기도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 혹은 예물을 드리지 않게 된 것에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그 시간과 물질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었다고 여겨진다면 성령의 근심을 느끼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인 것이지요.
성령님이 임재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성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담과 마음에 걸림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배에 참석하는 것과 기도와 말씀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아깝게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그 외에도 성령님은 믿는 자 안에 임재하시며 이런저런 근심의 걸림돌을 놓아주십니다. 그런 성도로서의 마음에 걸림이 생겼다면 변명하거나, 혹은 핑곗거리를 만들지 말고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마음과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분명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뜻과 상관없이 얻어지는 물질적인 이익과 성공적인 결과에 대하여 근심할 수 있는 것도 성령님께서 내 안에 임재하고 계신 증거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영적인 활동을 포기함으로 얻어낸 유익함과 성공적인 결과에 더 환호하고 있다면 옷을 찢고 회개하여 주님께 용서와 자비를 구해야 할 일인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이 성령님께서 근심하시며 내면에 걸림돌을 놓으시는 축복도 경험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섯 번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을 마음에 품습니다. 이 증거는 다섯 번째 증거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인데요.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손해를 보고,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마음에 용기와 담대함과 평안함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오히려 든든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인가 기쁨을 드리고 싶은 사랑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인데요. 여러분도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오히려 손해를 보는 선택을 즐거워하고 기뻐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군대를 제대할 즈음에 한국에는 소위 IMF사태라는 것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회의 일자리들이 줄어들고 실업자와 명예퇴직자들이 생겼습니다. 도심의 거리에 노숙하는 분들이 갑작스레 폭증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입니다. 군대를 제대한 저는 2-3개월을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한 채 놀고 있었습니다. 2학기에 신학대학교에 복학해야 하는데 당장 등록금은 커녕 생활비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격일제로 일을 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큰 돈을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2학기가 되기 전에 한 학기의 등록금과 약간의 생활비를 모을 수 있는 곳이었지요. 여름이 지나고 이제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어야 할 시점에 저의 사정을 당시 전무 직책을 맡으신 분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회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하니 복학을 미루고 좀 더 일을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나름 저를 위한다고 하셨던 말이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솔깃하였습니다. 한 1년 정도를 더 일하고 복학을 하면 좀 더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시급도 올려 주고 앞으로 대우가 더 좋은 곳으로 소개도 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저는 기도하는 중에 지금 제가 있어야 곳은 이 아르바이트 자리가 아니라, 신학대학 강의실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결정이 제 신학교 시절을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몰아가는 결정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의 짧은 경험이 저의 마음에 큰 부담과 영적인 허물을 경험하게 하였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양심을 거스르는 행동과 선택을 해야 했었습니다. 성령의 근심을 매일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겨우 한 학기 등록금과 기숙사 비용을 마련하고 복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의 결정에 제 안에 계신 성령님의 근심하심과 간절함이 역사하셨다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13절에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결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기도하면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순종하여 저는 물질의 곤궁함을 경험하였지만, 주님의 분명하신 인도하심을 분별하는 경험을 얻었습니다.
15절에 고백된대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이 세상의 별과 같이 빛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1998년의 결정으로 이미 별이 되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 육신의 즐거움과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갈 유익함의 결정이 아니라 주님의 소원에 동참하겠다는 결정을 했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는 제 안에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주신 감동에 순종하였기에 느낄 수 있는 기쁨입니다. 혹 여러분들의 삶은 어떠한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나는 육신적이고 현실적인 삶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하고 있는가? 혹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인가 이바지하고 섬기기 위해서 나의 감정적, 물질적, 의지적, 현실적 손해를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귀한 마음은 나의 육신적인 본능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와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며 결정인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기뻐하며, 손해 보고 고난받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는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께서 임재하신 이들은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마태복음 10장 19-2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19-20)
성령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잃어버린 자녀인 불신자들이라 할지라도 멸망하고 심판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길 소망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심판의 때를 늦추고 계신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그러니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아, 영생에 이르는 구원을 받도록 돕는 것은 복음을 전하고 듣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곧 별과 같은 존재가 되는 상급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 12:3)
그런데 많은 이들이 전도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전도는 매우 어렵고 힘들기만 한 것으로 알게 한다는 것이지요. 전도라는 것을 자신이 책임지고 누군가를 교회에 끌어와서 입으로 시인하게 하여 구원받은 증거를 눈앞에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설득력 있게 말을 잘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여기거나, 혹은 누구에게나 살갑게 잘 다가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성령님께서는 당신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 전도하고 싶은 마음을 주신다고 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전도에 대한 마음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정말 좋은 삶을 경험하게 되었고, 진정으로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분명한 생각과 가치관이 있다면 자연스레 그 삶에 대해서 고백하거나, 행동하여 티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눅 6:45)
우리 내면에 선하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고 한다면 어떤 기회를 만나더라도 전도하려 하고, 복음을 고백하려는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과 모양은 다양할 것입니다.
전도라는 것이 반드시 고수해야 할 어떤 매뉴얼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종종 그런 매뉴얼이 있으면 보다 원활하게 전도하는 일에 활용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전도의 핵심은 말 그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죄로 인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나에게 영생을 주신 예수님께 나의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 거듭나서 영생 안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라고 단순히 말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성경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4)
우리는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의지와 소망을 따라 고백하며 전도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실은 우리의 삶 전체가 전도의 기회이며, 전도의 광장입니다. 직접 복음지를 들고 나가서 전도할 수 있습니다. 직접 누군가를 붙들고 간절한 말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접 그렇게 특별한 행동을 하지 못해도 우리는 전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가치관과 태도로 전도하는 것이지요. 이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을 때, 사랑하려 하지 않을 때, 의롭고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위해서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일에 대해서는 주님께 맡기고, 오히려 성령께서 근심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행동을 보았던, 혹은 우리의 전도하는 말을 들었던 이들은 부정적으로 반응할 지라도 그 안에서 영적이고 신선한 충격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충격의 반복으로 결국 그 영혼의 견고한 진은 무너지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고후 10:4)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이 일곱 가지의 증거에 모두 그렇다고 고백할 수 있는 분도 계시고, 일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는데요. 또 한두 가지는 분명한 고백을 할 수 있는데, 나머지 항목들은 조금 연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일곱 가지의 증거들과 항목을 통해 세속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 만일 이런 증거들이 분명하지 않다면, 기도하며 주님께 더욱 분명한 마음과 태도를 달라고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영생을 소망하는 합당한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 일곱 가지 증거가 너무도 뚜렷한 삶을 살고 있다면 매일의 삶을 통해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고 일상을 살면서도 영생을 사는 삶의 이야기들을 기록에 남겨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매일 하루만큼 주님께 받는 이런 은혜는 그릇에 담지 않으면 모두 흘러 내려가 버립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단비처럼 위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며 성령님의 근심과 하나님의 소망에 민감하여 복음을 전도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태도와 자세.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입술. 하나님의 은혜를 체감하는 내면세계. 예수님 때문에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는 마음. 성령님의 근심을 체감하는 생각.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갈망하는 태도. 그리고 복음을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의지. 이 일곱 가지 증거를 통해 지금 내 안에 성령님께서 분명히 임재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만일 이 가운데 아직 한 가지라도 혹은 몇 가지를 소유하지 못하셨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회개하고 주님께 성령임재의 증거를 주시도록 구하면 됩니다. 분명한 증거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매일의 일상 가운데 예수님의 손을 잡고 언제나 풍성하고 든든한 일과들을 누리며 기쁨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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